(36호 편집인의 글)
공공극장의 갈 길
문화부가 공공극장 정책을 발표했다. 9월 4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새 예술 정책 연속 토론회’에서 공연전통예술과장이 직접 발제자로 나섰으니 그것이 그냥 개인의 의견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발표에 대해 연극계는 조용하기만 하다. 분명 연극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도 근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반응이 없다.
사실 연극계는 스스로의 일에 대해서조차 의견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척박한 환경에서 연극을 하느라, 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나마 유지하느라 지쳐서 그 두 가지 일을 제외하고는 미처 반응을 보일 여력마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해서야 어찌 연극을 하고 예술을 하겠는가? 인간사에 대한 날카롭고 정확한 비판 자세가 연극과 예술을 움직이는 근본이라는 말이 맞는다면 말이다.
발표의 내용을 요약하면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을 통합하고, 국립오페라단은 예술의 전당에 편입시키고, 국립현대무용단은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서울예술단은 어린이 청소년 전문 공연단체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이중 두 번째 국립오페라단을 빼고는 모두 연극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들이다.
우선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통합은 아무리 명분상 그것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과연 현재의 국립극단과 현재의 명동예술극장의 상태가 그 통합을 감당할 만한지 따져본 연후라야 판단이 가능한 일이다. 애초 국립극단을 국립극장에서 내보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전용극장이었을 텐데 당시엔 그런 의견을 여지없이 묵살하고 명동예술극장이 나름의 성격을 갖춰버린 뒤 그 둘을 다시 합치겠다니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 당연하다.
다음으로 국립현대무용단과 한팩의 협력관계 구축은 얼핏 보면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즉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유인촌 장관에 의해 아르코 예술극장을 무용 중심으로 대학로 예술극장을 연극 중심으로 선언한 바 있는데, 그 때도 각각에 대해 ‘전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 연극계 정서를 고려해 ‘중심’이라는 묘한 단어를 찾아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국립현대무용단이 공식적인 협력관계가 된다면 그 ‘중심’이 ‘전용’으로 가는 것은 너무도 훤히 보이는 일이다.
아르코 예술극장이 무엇인가? 80년대 시작과 함께 대학로에 들어선 문예회관이 아닌가? 그로 해서 지금의 대학로가 생긴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대학로는 대한민국 연극의 중심이고 그 중심의 중심은 문예회관이다. 그런데 그 문예회관이 ‘무용 중심’을 넘어 ‘무용 전용’이 되려 한다. 물론 연극과 무용은 예술 중에도 특히 가까워서 때로 하나로도 볼 수 있는 공연예술 장르이고 따라서 많은 일에서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하는 동지이다. 그러나 이렇게 연극의 중심 중 중심이며 상징이랄 수 있는 장소에 대해 무용이 수식어로 붙는다는 것은 정서와 심하게 어긋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무용계에서 먼저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게 쑥스러운 건 당연하고 그것을 남이 먼저 배려해주면 피차 점잖고 좋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서울예술단 얘기는 정말 느닷없다. 그간 존재감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누구 책임인가? 인사와 운영에 있어 연극계가 감히 말이나 한 번 건넬 수 있었는가? 그런데 갑자기 정체성이 모호하니 바꾸겠다는 말을 한다. 더욱이 어린이 청소년 전문 공연 단체는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성립이 된다는 말인가? 일반 공연단체보다 더 예민하고 정교해야 하는 것이 어린이 청소년 공연단체일 텐데, 그런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 동안 제대로 못 했으니 그냥 어린이 청소년 연극이나 하라는 식의 수준 낮은 생각이 깔려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어린이 청소년 연극이 일반 연극에 비해 손쉬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연극계의 태도이다. 정부의 정책이 졸속인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슬쩍 던져 보아 반응을 보는 것도 자주 보는 방식이다. 그러니 그걸 탓하는 것도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제라도 정확한 반응을 나타내야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중단시켜야 한다. 적어도 연극계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연극계가 가장 정확한 진단과 의견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볼 줄 아는 깨어있는 연극 정신을 기대하며.
2013년 10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정책의 아쉬움은 문화계 전반에 걸친 문제인것 같습니다. 민간극장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던 몇 년 전과 달리 서울시내에만도 민간극장과 공공극장의 비율은 대략 5:5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공연장도 많아지고 예산도 감소되는 경쟁력 없는 공공극장으로 전락해버리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문화계 융성을 위해서라도 심도있는 고민과 정책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