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공연 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3년 12월 공연총평

 

12월에는 한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는 연극인들의 의지와 열정이 공연작품을 통해 드러나, 우수한 공연이 많았기에 총평을 흐뭇한 마음으로 집필할 수 있었다. 12월 공연총평과 더불어 2013년 전체공연 중 필자의 기억에 남는 걸작공연 10개를 열거한다.

 

1, 인천시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인천시립극단의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을 관람했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엘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I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거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거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등퇴장 로를 만들어 놓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계단과 중간무대 그리고 경사진 무대로 이어진다. 무대 좌우로도 출연자들이 등퇴장을 하고 철제 빔에 수많은 조명을 달아 극의 후반 광야에서의 기상변화를 조명색상의 변화와 효과음으로 적절하게 표현한다. 벽 형태의 조형물을 천정에서 하강, 상승시켜 장면변화에 사용하고, 소품으로 네 개의 의자로 리어왕과 세 명의 딸이 앉는다. 이 의자는 종반부에 광대에 의해 쓰러뜨려진다. 연출자가 강조한 광대역의 등장과 마무리가 효과를 발하는 느낌이다.

서국현이 리어왕으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중후한 기량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조윤경과 정순미가 거너릴로 출연하고, 강주희와 강성숙이 리건으로 출연해 각자 탁월한 성격창출과 관능미 넘치는 호연으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황혜원과 이신애가 코딜리어로 출연해 관객의 동정과 사랑을 듬뿍 받는다. 차광영이 글로스터, 김현준이 에드먼드, 김희원이 에드거, 이범우가 켄트, 심영민이 콘월, 김세경이 올버니로 출연해 제각기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최진영이 광대, 김태범이 오스왈드, 서창희가 프랑스 왕, 권순정이 버건디, 김문정이 전의로 출연해 각자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이유정, 조명디자인 이상봉, 의상디자인 정경희, 분장디자인 손진숙, 소품디자인 김혜지, 음악 이나리메, 사진 류재형, 헤어디자인 빅토리아, 무대감독 이완희, 조연출 손경희, 단무장 김화산, 기획 홍보 이옥희 이돈형 김새롬 등 스텝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여, 인천시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독특하고 색다른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2, 50대 연기자 그룹의 빅토르 위고 작, 국민성 각색, 박장렬 연출의 <레미제라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서울연극협회 50대연기자그룹의 빅토르 위고 원작, 국민성 각색, 박장렬 연출, 윤여성 예술감독의 <레 미제라블>을 관람했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빠리의 노트르담(Notre Dame de Paris)>과 함께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 1885)가 남긴 명작이다. 이 소설은 18세기 당시 프랑스 정치적 변혁과 세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1776년 미국의 독립 전쟁의 발발과 함께 프랑스에서도 대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조가 폐지되고 민주적인 공화정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이때 나폴레옹이 등장해 유럽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자 프랑스는 부르봉 왕가의 후손인 루이 필립을 최고 통치권자로 옹립해 왕정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왕정에 불만을 품은 공화정 지지파들은 호시탐탐 제 2의 프랑스 혁명을 꾸미고 있었는데, <레 미제라블>은 바로 이런 상황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치 소용돌이는 경제성장을 저해시키고, 대다수의 민중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니,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 미제라블>은 장 발장 뿐 아니라, 프랑스 민중전체에 붙인 대명사라는 설도 있다.

<레 미제라블>은 연극 뿐 아니라, 뮤지컬, 그리고 수많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원작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1957년 장 폴 르 샤느와 감독의 영화 <장 발장>으로 장 가뱅과 다니엘 다리유, 버나드 블리어가 출연해, 세계인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1982년에 개봉한 로베르 오센 감독의 <레 미제라블>은 리노 벤추라, 루이스 사이그너, 미셀 부크, 장 카르메가 출연했으나, 장 가뱅 출연작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95년 <남과 여>의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20세기 레미제라블>은 장 폴 벨몬도, 미셸 부예나, 알렉산드라 마티네스가 출연해 역시 호평을 받았다. <레 미제라블>의 첫 영화는 1934년 에 제작된 리처드 볼레라 위스키가 감독한 영화로, 명배우 프레드릭 마치(장발장)와 찰스 로톤(자베르)의 명연기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8년에는 빌 어거스트 감독과 리엄 니슨, 제프리 러시, 우마 셔먼이 출연한 영화가 대중의 흥미를 진작시켰고, 2000년대에는 조시 데얀 감독과 제라르 디 빠르디유, 크리스티앙 클라비에, 존 말코비치, 비르지니 르도엥 주연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2011년에는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캐머런 매킨토시가, 톰 후퍼를 감독으로 선정하고, 휴 잭맨을 장 발장으로, 러셀 크로우를 자베르로, 앤 헤서웨이, 헬레나 본 햄 카터, 제프리 러시 등이 출연한 최초의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을 만들어 세계에 선을 보였다.

서울연극협회 50대연기자그룹의 <레 미제라블>은 도입에 배경 막 쪽의 벽면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강렬한 역광을 등에 받으며, 출감(出監)하는 장 발장의 모습에서 연극이 시작된다. 그가 첫발을 내딛는 도시는 우중중하고 허름한 건물이 즐비하게 서있고, 빈곤한 모습의 민중만 길거리를 배회하는 곳이다. 장 발장은 군중 속에서 배고픔을 하소연하지만, 그의 호소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다. 장 발장은 의외의 인물인 미리엘 주교의 구원으로 식사와 잠자리 제공을 받는다. 그 밤 장 발장은 주교관의 은제식기를 배낭에 꾸려 넣고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경찰에게 붙잡히고, 주교에게 끌려온다. 주교는 은제식기를 자신이 선물한 것이라며, 장 발장의 손에 은제 촛대까지 쥐어준다.

주교관을 나서는 장 발장에게 주교의 선행이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타고난 도벽은 우연히 등장한 한 어린이가 떨어뜨린 동전까지 자신의 발로 밟고, 어린이의 애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울려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이성을 찾은 장 발장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과 함께 바르게살기로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맹세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향후 장 발장은 그 어린이의 동전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다닌다.

세월이 흐르고, 장 발장은 공장주로 성공하여 한 도시의 시장이 된다. 한편 자베르가 그 도시의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오고, 가석방된 장 발장이 자신의 감시를 피해 종적을 감춘 것에 책임감을 느꼈던 자베르는 시장인 장 발장과의 대면에서 그를 단번에 알아보고, 가석방 기간 중 보호감찰을 피해 도주한 인물로 검찰에 고발한다. 마침 장 발장이라는 의외에 인물이 나타나고, 법정에서 장 발장의 감옥동기들은 장 발장과 흡사한 모습의 인물을 진짜 장 발장으로 오인하고 수긍하는 증언한다. 그때 장 발장이 등장해 자신이 진짜 장 발장임을 고백하고, 3,4일의 여유를 달라고 부탁하고 기일이 경과한 후에는 스스로 찾아오겠노라 약속하고 법정에서 사라진다.

장발장은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던 한 병약한 미혼모의 죽음으로, 그녀의 딸 코제트를 대신 데려다 기르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기에, 장 발장은 코제트를 찾으려고 떠난 것이다.

코제트는 건달이자 부량배인 테나르디에 부부의 손에 맡겨져 혹사당하고 있고, 장 발장은 비싼 양육비를 지불하고, 코제트를 데리고 행방을 감춘다.

10년 뒤 수도원에서 은거하고 있던 장발장과 코제트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들어낸다. 성년이 된 미모의 코제트는 귀족의 자제 마리우스라는 청년의 눈에 들게 되고 두 젊은이는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마리우스의 할아버지 질르노르망은 자신처럼 귀족가문의 출신이 아닌 코제트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한편 테나르디에부부도 장 발장을 알아보고 그를 납치해 거액의 돈을 뜯어낼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사실을 갈파한 마리우스는 황급히 자베르에게 알린다. 장 발장은 테나르디에를 비롯한 부랑자 패거리들에게 붙잡힌다. 현장에 자베르가 부하들과 급습해 장 발장을 구해낸다. 그러나 장 발장은 바로 행방을 감춘다. 자베르는 그가 장 발장임을 알아차린다.

한편 프랑스 민중은 왕당파와 공화당파로 나뉘어 싸우고, 마리우스는 귀족가문의 후예답지 않게 공화당파에 앞장서 싸운다. 자베르는 공화당파 진중 속에 잠입했다가 포로로 되어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다. 그때 장 발장이 등장해 자베르를 석방시켜준다. 왕당파의 총공격으로 마리우스가 총탄에 쓰러진다.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빠리의 거대한 지하배수로를 통해 탈출을 시도한다. 배수로 속에서 장 발장은 테나르디에와 부딪친다. 장 발장은 테나르디에 일행에게 포박된 채 버려진다.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위기에서 자베르가 나타나 장 발장을 풀어준다.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업고 수로를 빠져나온다.

자베르는 경찰서장으로서의 곧이 곧 대로의 편협한 삶과 전과자인 장 발장의 사랑으로 베푸는 삶을 비교하고, 자존감의 상실과 수치심과 후회로 결국 자결하고 만다. 장 발장도 행방이 묘연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을 하고,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거리를 지나간다. 멀리서 이를 바라보는 장 발장은 신께 감사하듯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을 밝은 미소와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거리의 벤치에 걸터앉는다. 장 발장의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으로 한 어린이가 다가오고, 자신에게 동전을 빼앗겼던 바로 그 어린이 손에 평생 간직했던 동전을 쥐어주고는, 벤치에 기댄 채 운명의 순간을 맞는다. 죽음의 나라로 향하는 그를 칭송하듯 파리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그를 에워싸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합창곡인 “비참한 사람들”은 극의 흐름과 적절하게 부합되어 장면 장면을 100% 살려낸 명곡으로 관객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다.

장 발장으로 정상철, 강희영/ 자베르로 고인배, 차재성/ 주교로 박웅, 최병규/ 테나르디에로 김춘기, 이윤상/ 테나르디에 부인으로 이명희, 이경미/ 질르노르망으로 오현경, 문영수/ 질르노르망양으로 도영희,/ 국장으로 박상규, 박기산/ 맹인집시 이재희/ 신부 한필수/ 수녀 권남희/ 바티스틴 유진희/ 마글루아부인 조문경/ 경위 정슬기/ 여반장 이용녀/ 바스크 서울/ 마리우스 정구민/ 코제트 박지연/ 에포닌 김진영/ 팡틴 전채희/ 앙졸라 원종철/ 페이버릿 구민정/ 공프베르 성환/앙졸라 곽현석/ 쿠르페라크 이대복/ 파뫼유 김태완/ 리스톨리에 황영준/ 톨로미에스 송현섭/ 제핀 황윤희/ 죄수 경찰 김휘연/ 한량 패거리 이창익, 박례영/ 집시여인 이가을/ 파뫼유 김태완/ 달리아 한경애/ 가브로슈 김주승(아역)/ 프티제르베 김세중(아역)/ 코제트 안채은(아역)/ 에포닌 류다은(아역)/ 주교 홍창진 신부, 아코디언 이선백 등이 출연해 탁월한 기량과 열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엄진선의 무대미술/ 최형오, 김건영의 조명디자인/ 한철의 음향감독/ 박진규의 음악/ 손진숙의 의상디자인/ 아트컴퍼니 날개의 소품디자인/ 오픈스테이지(대표 김종한) 김명준, 박효정, 석필선, 손희수의 분장/ 박호빈의 안무/ 협력연출 무대감독 이성구/ 무대감독보조 박인환/ 음향오퍼 유요한/ 사진 강현/ 제작감독 도영희/ 인쇄물제작 MAC24/총기획 이종열/ 기획 박우화, 홍금숙/ 홍보마케팅 정승연, 박연욱 등 제작팀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50대 연기자그룹의 빅토르 위고 원작/ 예술감독 윤여성/ 국민성 각색/ 박장렬 연출의 <레 미제라블>을 한편의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극단 민예의 김성환 작 연출 <햄릿 왕 피살사건>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극단 민예 40주년 150회 정기공연 김성환 작 연출의 <햄릿 왕 피살사건>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아버지인 왕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듣고 덴마크로 귀국한 왕자 햄릿은 장례를 치르자마자 숙부와 결혼을 한 어머니, 그리고 왕위를 계승한 숙부의 모습에 아연실색한다. 그러든 어느 날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을 대면하게 된다. 암살을 당했다는 아버지 햄릿 왕의 외침을 듣고, 그에 대한 진실 밝히기가 이 연극의 주제이자 내용이다.

무대는 세 개의 직사각의 입체조형물을 무대 한 가운데에 삼 방향으로 놓아두고,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은 아홉 명의 출연자들이 가로로, 세로로, 또는 나란히 입체조형물을 이동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무대 배경 가까이에, 그리고 좌우에 의자를 배치해 출연자들이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연극은 도입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는 술래잡기 놀이에서 시작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는 구호가 연극의 도입에서 대단원까지 계속되고, 남녀 아홉 명의 출연자가, 햄릿, 거투루드, 클로디어스,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호레이쇼, 로즌크렌츠, 길든스턴, 레어티즈, 광대역을 연기한다. 남녀 3인이 햄릿을 연기하기도 하고, 작중인물을 번갈아 연기한다.

출연자들이 시종일관 직사각의 입체조형물을 이동시키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를 외쳐가며 연극을 펼쳐가기에 관객은 극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시종일관 관극을 하게 되고, 원작에는 없지만 법정장면과, 법관 역할의 폴로니어스의 독특한 변신을 접하고, 관객은 법정장면에서 배심원이 된 듯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장면은 상대와의 진검승부가 아닌 각자 검을 휘두르는 독특한 표현방식에 머리를 끄덕이는 관객의 모습을 보게 되고, 대단원에서 역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로 연극은 술래잡기 놀이의 마무리를 한다.

홍석빈이 폴로니어스, 이윤숙이 거투루드, 송정아가 햄릿, 손대방이 햄릿, 제희찬이 햄릿과 레어티즈, 신슬기가 호레이쇼, 강동수가 클로디어스, 김시원이 오필리어, 조희민 길든스턴, 광대 등을 출연자들이 2역이나 3역을 해 열연과 호연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출연자들의 흰색 바지저고리 설정도 인상에 남는다.

작곡 심영섭, 조명 이재호 등 스텝의 노력이 돋보인 극단 민예(대표 이혜연)의 40주년 150회 정기공연 김성환 작 연출의 <햄릿 왕 피살사건>을 술래잡기 놀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연극을 이끌어 관객의 기억에 각인시킨 한편의 성공작이 되었다.

 

4, 극단 가변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조현아 재창작, 송현옥 예술감독, 송형종 연출의 <오셀로 니그레도>

 

예술공간 서울에서 극단 가변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조현아 재창작, 송현옥 예술감독, 송형종 연출의 <오셀로 니그레도(Othello-Nigredo)>를 관람했다.

 

<오셀로 니그레도(Othello-Nigredo)>는 오셀로, 데스데모나, 캐시어, 그리고 이아고 등 4인의 등장인물만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무대는 중앙에 검은 타일을 입힌 탁자와 의자를 고정 배치하고, 배경 왼쪽과 대각선 방향의 무대 오른편 객석 가까이 촘촘한 철제창살로 벽모서리를 만들어 천정까지 세워놓았다. 배경 오른편에도 철제 기둥을 세워 출연자들이 건드리면 쇠 소리가 난다. 무대바닥에 청색과 황색의 긴 형광 등이 켜져 극적 효과를 높이고, 격정적인 탱고 음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400여 년 전의 사건을 현대로 이끌어 와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오셀로의 의처증을 부추기고, 극적 긴장감 상승과 파멸의 주도적 역할을 이끌어 낸다.

니그레도(nigredo, 검정)는 연금술 과정에서 출발점이자 융합과정에서의 혼돈을 의미한다. 물론 이 혼돈의 덩어리는 물질의 바탕을 이루는 원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이 혼돈의 덩어리는 일차적으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과의 결합, 혹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라고도 표현된다. 니그레도의 상태는 심리학적으로 자아의 퇴행(Regression)과 죽음(mortificatio)를 의미하기도 하고, 여기서의 검정색은 죽음과 부패, 그리고 파멸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흑인인 오셀로와 극의 제목을 <오셀로 니그레도>로 표현한 작가의 창의력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오셀로>에서는 장군인 오셀로에게 이아고가 승진만을 위해 캐시오를 모함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오셀로 니그레도>에서는 이아고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연민과 욕정이, 캐시어를 가까이하는 데스데모나에 대한 질투로 이어져 이아고의 감성을 마비시기고, 사랑의 경쟁자를 모함해서라도 제거하려는 이야고의 행위로 분출된다. 그로인해 장군 오셀로에게 이아 고는 데스데모나가 캐시어와 정분을 나누는 것 같다는 거짓 고자질을 해 오셀로의 의처증을 부풀리고,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한 단순한 두 사람의 일상적 행동을 열정적 사랑의 행위라고 부풀려 증거자료를 오셀로에게 내놓는다. 그 자료를 본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와 캐시어의 정사장면을 연상하고, 고뇌에 빠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특히 데스데모나와 캐시어의 정사장면은 격정적인 탱고음악과 어우러져 관객의 감성을 부축일 정도의 정사장면이지만, 예술적인 표현으로 인해 전혀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음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대단원에서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달리 오셀로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자결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배우진이 오셀로, 임정은이 데스데모나, 이문석이 캐시어, 김지수가 이아고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극의 수준을 상승시키고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연기지도 류지미, 안무감독 강미선, 무대디자인 고인하, 의상디자인 오수현, 조명디자인 박원광, 무대감독 이성구, 기획 이영훈, 조연출 지단비, 음향오퍼 한요셉, 조명오퍼 김래은, 진행 강수길, 홍보물디자인 임주민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공연의 예술성을 상승시켜, 극단 가변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조한아 작, 송현옥 예술감독, 송형종 연출의 <오셀로 니그레도>를 예술성이 돋보이는 수준급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5,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닉키 실버 작, 정윤경 최형인 역, 이기용 연출의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

 

한양레퍼토리 시어터에서 닉키 실버(Nicky Silver)작, 정윤경 최형인 역, 이기용 연출의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미국사회의 한 가족의 이야기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 시집가 두 명의 아이를 낳은 딸과 동성애를 하는 아들이 아버지 병실에서 벌이는 이야기와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가 복선으로 깔린다. 이들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가 통상의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과는 거리가 있고, 부부간의 사랑이나, 자식들이 어버이에게 대하는 효성심이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관계나 도덕심과는 다르게 표현되지만, 점차 우리도 미국인의 전철을 따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관람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

미국의 젊은 작가인 닉키 실버(Nicky Silver)의 최신작 더 라이언즈(The Lions)의 제목을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로 바꿔 이번에 첫 선을 보였다.

 

무대는 암 병동의 1인 병실이다. 암환자를 위한 장비와 기구, 그리고 침상이 중앙에 놓여있고, 무대 왼쪽에는 보호자를 위한 소파와 탁자가 무대 오른쪽에는 방문객을 위한 소파가 비치되어 있다. 오른쪽 벽면에 출입구가 있어, 간호사와 방문객의 등퇴장 로가 된다. 장면이 바뀌면 빈 아파트의 거실이 되고, 마지막 장면은 처음과 같은 병실이다.

연극은 시작 전부터 병실침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어머니가 등장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간호보다는 집의 실내장식을 바꾸겠다는 이야기로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다. 아버지의 반대와 거기에 아랑곳 않는 어머니의 대화가 시작되고, 잠시 후 시집간 딸이 등장해 몸 전체로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아버지의 병세를 알고 놀란다. 딸은 남편과 별거중이고, 부부간의 갈등이 많은 것으로 소개가 된다. 잠시 후 작가노릇을 한다는 아들도 문병을 온다. 아버지는 아들이 할아버지 이름을 따 부르도록 지어 주었는데도 그 이름을 버리고 계집애 이름으로 바꾼 것에 대한 불만과 질책을 한다. 아들은 여자 친구와 갈등이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되지만 누이의 이야기로는 여자가 아닌 남자임을 알리고 남자동생이 동성애자임을 부모에게 알린다. 남동생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고 고백하며, 누이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별거중인 것으로 부모님께 이야기는 하지만, 여전히 동거중이며 폭력을 당하면서도 남편과의 잠자리에 매달린다고 일러바친다. 이런 와중에 간호사가 드나들고, 문병보다는 가족 각자의 일상과 생활이 두드러져 환자인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장면이 전환된다.

다음 장면은 판매하려고 내놓은 텅 빈 아파트의 거실이다. 아들이 등장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청년과 대면을 한다. 금액을 이야기 하는 중에 중개인이 과거 한 때 연기 지망생이었으며, 아직도 꿈을 갖고 있음을 이야기하니, 아들은 자기가 아는 엔터테인먼트 사를 소개하겠노라고 중개인 청년에게 관심을 보인다. 중개인 청년은 고마워하지만, 잠시 후 부동산 가격이나 부동산소개료를 깎을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소용없는 소리라며 눈을 부라린다. 아들은 절대 그럴 의도가 없노라고 이야기를 하고, 청년에게 진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증거로, 자신은 중개인 청년이 살고 있는 맞은편 아파트에 거주하고, 늘 중개인 청년의 방을 들여다보고 있노라고 고백을 한다. 중개인 청년은 비로소 상대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그를 혐오하고 쓰러질 때까지 구타한다.

마지막 장은 아들이 입원한 병실이다. 아버지는 사망한 것으로 소개가 되고, 아들이 아버지 대신 침상에 누워있다. 간호사가 들어와 아버지를 대하던 때와는 반대로 아들에게 막 대한다. 누이가 찾아오고 어머니도 상복차림으로 등장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보다는 집의 실내장식과 다른 병실의 환자에게 관심이 가 있다. 간호사가 자신에게 푸대접을 한다고 아들이 어머니와 누이에게 이야기하니, 그 간호사의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 아들이 모른다고 하니, 이름도 묻지 않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간호사인들 무슨 마음으로 환자를 호의로 대하겠느냐며, 어머니와 누이는 자리를 뜬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오고, 여전히 정 없이 딱딱하게 자신을 대하니, 아들은 간호사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 간호사의 놀라는 모습과 간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아들과 대화를 나눌 의사를 나타내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이주실, 최형인, 최용민, 유연수, 정윤경, 구혜령, 송희연, 조한준, 조용경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이 도입부터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킨다.

각자 더블캐스트로 열연을 보이고, 갈채를 받는다.

기획 변경태, 홍보 라희석, 티켓관리 김희원, 하우스크루 설예준, 예술감독 권용, 무대감독 신우철, 무대디자인 이진석, 무대제작 수무대, 음악감독 한재권, 음향오퍼 이현지, 조명디자인 이현승, 조명오퍼 이은송, 의상 강정화, 소품 장지은 김도연, 홍보물디자인 주수진, 사진 이상욱, 조연출 권미소, 드라마 트루기 송희연 등 스텝의 기량도 드러나,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닉키 실버 작, 정윤경 최형인 역, 이기용 연출의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를 다가올 우리의 가족관계를 예측토록 만드는 흥미로운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6, 오프 대학로 페스티벌 극단 각인각색의 안톤 체홉 작 이정하 연출의 <백조의 노래>

 

청운예술극장에서 off 대학로 페스티벌 극단 각인각색의 안톤 체홉 작, 이장하 연출의 <백조의 노래>를 관람했다.

 

<백조의 노래>는 근자에 각 극단에서 여러 차례 공연이 되었고, 서울에서는  노배우로 여무영(2011년), 박정자(2013년) 등이 출연한 공연이 훌륭했고, 지방에서는 포항의 김삼일(2013년), 춘천에서는 조주현(2013년)의 공연이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1886년 안톤 체홉은 단막극 [백조의 노래]를 한 잡지에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4분의 1길이의 희곡을 썼습니다. 이 작품을 공연 하는데는 15~20여분이 소요될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지요. 꼬르쉬 극장의 유명한 배우 다븨도프가 공연할 겁니다….. 전 이 희곡을 쓰는데 1시간 5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깔하스]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이후 [백조의 노래]로 바뀌고, 내용도 검열에 의해 몇 차례 수정을 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이 극중에서 연기하는 작품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러시아 작가, ‘그리보에도프’나 ‘뿌쉬낀’의 작품에서, ‘세익스피어’의 “오델로”로 바뀌게 된다.

 

내용은 지방 무대의 노배우가 만취 후 무대에 혼자 남게 되고, 잠긴 극장 문 때문에 귀가를 못하는 상황에서 마침 극장에서 프롬프터를 하며 기거하는  젊은 배우와 대면하게 되고, 그 젊은 배우에게 자신의 연기자로서의 생애를 소개하며, 과거 무대에 대한 열정과 꿈, 그리고 현재 회한과 좌절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리고 과거 주인공을 했던 작품을 회상 재연하고, 현재 텅 빈 객석과 소리 없는 갈채지만, 당시 극장이 떠나갈 듯 우렁찬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운명을 한다는 줄거리다.

일생 동안 울지 않다가 죽을 때 한번 우는 백조의 삶처럼, <백조의 노래>는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와 함께 그의 생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무대는 삼각으로 펼쳐진 무대이고, 붉은 바탕에 흰 독수리무늬가 들어간 큰 깃발이 삼각 좌우로 연결된 줄에 내려뜨려져 있다. 깃발 사이에 긴 천들도 내려뜨려져 있고, 오른쪽 줄에는 서너 벌의 고전극 의상이 나란히 걸려있다. 탁자와 의자가 무대 중앙에 있고, 탁자위에는 빈 술병과 물 컵이 놓여있다.

 

연극은 도입에 노배우가 탁자 옆에 앉아 잠이 든 상태에서 시작된다. 잠시 후 그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공연이 끝난 뒤 극장에서 술에 취해 홀로 잠들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극장 출입문을 열려고 하지만 이미 문은 잠겨있는 상태다. 홀로 있게 된 노배우는 자신을 질책하기 시작하고, 잠시 후 인기척과 함께 젊은이 한 사람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서로 대면하고 놀라지만, 노배우는 젊은이가 극장에서 배우들에게 프롬프터를 해주는 청년임을 알고 반긴다. 청년은 분장실에서 기거를 하기에, 노배우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두 사람의 신세타령이 시작되고, 노배우는 자신의 연극생애를 젊은이에게 들려주며, 화려했던 옛날, 명배우시절의 몇 작품을 회상하며, 그 자리에서 재현시킨다. 젊은이는 의상을 가져다 입혀주고, 노배우의 연기를 돕는다.

 

노배우는 뿌쉬낀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의 주인공 역할을 기량을 다해 열연한다.

 

원작에서는 노배우가 연기를 마치고 운명을 하는 장면이 끝이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젊은이의 박수를 관객전체의 우렁찬 갈채인양 들으며 노배우가 퇴장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고태호가 노배우로, 최운학이 젊은이로 출연해 호연을 보이고, 조연출과 음향오퍼 양재찬,  연기지도 박명희(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드라마트루크 민병은(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조명 황동균, 의상 김정향, 조명오퍼 백종철, 음악 최강혁, 무대 차준혁, 소품 이우첩, 진행 임현숙, 영상촬영 김준호 등 스텝진의 기량도 드러나, off 대학로 페스티벌, 극단 각인각색의 안톤 체홉 작, 이정하(세명대학교 방송연예학과 교수) 연출의 <백조의 노래>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7, 국립극단의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

 

서계동 (재)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혜경궁 홍씨가 집필한 한중록(閑中錄)을 토대로 창작한 작품이다. 한중록의 내용은 혜경궁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것으로 부군(夫君) 사도세자가 부왕(父王)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및 사적 연루(連累)와 국가 종사(宗社)에 관한 당쟁의 복잡 미묘한 문제 등 여러 무서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날을 밟으며 살아온 것 같은 일생 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一代記)이다. 그 문체와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그려져, 강렬한 박진감으로 하여 한국 산문문학(散文文學)의 정수(精髓)라고 평가된다. 또한 이 글을 통하여 조선 여성의 이면사(裏面史)를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정치풍토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史料的) 가치가 풍부한 작품으로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함께 궁중문학의 쌍벽을 이룬다.

한중록을 바탕으로 1956년에 제작된 안종화 감독의 열 번째 영화 <사도세자>는 거문고 명인 지영희가 국악으로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서라벌영화공사 3주년 기념작이다. 비사 속에 구색으로 등장하는 자객, 투사, 약사발, 간신, 모사 등이 나열되면서 안종화는 영화 속에서 노장다운 역량감과 안정된 통일성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시대극이 모두 남녀 애정을 그린 비극인데 비해 이 영화는 역사를 정면에 내세우면서 사회적인 시각에서 역사 속 인물을 비극적 인간상으로 부각시켰다. “역사의 인물도 현실의 인물이며 역사적 사실은 반드시 작가적 시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조선일보 1956. 12. 20)는 영화계 반응과 함께 이 영화 <사도세자>는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의 내용은 조선왕조 21대 왕인 영조(38년)의 제2왕자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다. 영조의 다음 대를 승계할 세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왕위 쟁탈전을 묘사했다. 영조는 장헌세자로 하여금 대리섭정을 하게 하지만 세자가 당쟁에 이용되자 세자를 폐한 후 뒤주 속에 가두어 굶어 죽게 한다. 그러나 영조는 훗날 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음을 알고 자신의 가혹했던 처사를 후회해 왕자를 애도하는 뜻이 담긴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린다.

2011년 2월에 공연된 극단 인혁의 <한중록>은 연극적 진실의 재연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묻는다. 권력 쟁투, 외척과 부왕 간 갈등의 제물이 돼야 했던 사도세자. 극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펼친 7일간의 행적과 그 앞에 서막을 여는 대목(제1일)까지 모두 여드레를 다룬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간섭하고 맞물려 들어가는 모습이 클레오파트라에서 마오쩌둥(毛澤東)까지 역사적 인물들을 현재의 무대에 불러내 서로 충돌시키는 과정이 서사 극을 연상케 한다. 김일성과 박정희의 영상까지 동원되면서 백하룡 작, 이기도 연출의 <한중록>은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8월에는 여성국극예술협회(이사장 허숙자)와 한국전통예술공연진흥재단 주관으로 박종곤 예술감독, 김재복 각색, 홍성덕 작창, 박종철 연출의 <사도세자>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해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재)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 <혜경궁 홍씨>의 무대는 궁궐 깊숙이 자리한 동궁의 처소지만, 평생을 홀로 보낸 세자빈 혜경궁 홍씨의 처소이기도 하다, 세자(3尺) 높이로 주 무대를 높여 만들고, 한 칸짜리 방을 만들어 격자무늬 창호지를 바른 여닫이문과 방안에는 사람 키만 한 촛대가 양쪽에 놓이고, 낮은 상에 음식을 담은 쟁반이 보인다. 출연자들이 동궁처소를 시계반대반향으로 회전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처소 좌우에 통로가 있어 왕과 신하 그리고 궁녀와 환관 등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무대 전면은 동궁처소의 뜨락과 근정전 앞 조례 장처럼 사용된다. 옷 칠을 한 뒤주가 대도구로 등장하고, 하수 쪽의 우물도 깊이가 대단한 것으로 설정된다.

연극은 도입에 백발의 혜경궁 홍 씨를 정조가 인도해 화성 현륭원 부근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갑연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모후인 홍 씨가 침소에 들면서 가려움을 호소하고, 내인들이 거드는 장면이 자못 흥미를 끌면서 세월은 과거로 돌아간다.

인물이 훤칠한 세자, 그러나 부왕인 영조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부왕의 면전에서 물러나면, 무예를 익혀 사냥을 나서고, 동궁 빈 이외의 여인과 관계를 맺는 등 세자로서의 도리를 이탈한 행동을 한다. 세자빈의 부친 홍봉한은 딸에게 궁중의 변화에 냉철하게 대하고 내심의 표현을 삼갈 것을 당부한다. 점차 영조의 신뢰가 세자로부터 떠나가고, 급기야 배다른 사촌누이와 통정을 하는 것을 안 부왕은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도록 만든다.

영조 이후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 정조로 호칭된다. 정조는 어릴 적 일을 기억하지만, 할아버지인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함구령에 순종한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극진히 모신다. 화성에 아버지의 묘소를 마련하고, 이 연극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추운 계절에 안양천을 발을 벗고 건너지 않도록 일곱 개의 무지개 형태의 교각으로 떠받들어진 만안교를 건립해 신을 신고 넓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효성 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척신들의 싸움과 외명부 내명부 척족 여인들의 암투가 정조 시대까지 이어지고, 통한의 혜경궁 홍 씨의 눈앞에 남편인 사도세자의 망령과 아버지 홍봉한의 망령이 자주 등장하고, 평생 앓던 가려움증이 도진다. 쇠똥을 주서다 가려운 곳에 발라 문지르며, 모후 홍 씨는 역적의 자손이라 하여, 이십여 년 전 궁궐에서 쫓겨난 친누이동생이 금족령임에도 불구하고, 성문출입이 거부되자 험산을 넘어 찾아와, 언니인 홍 씨에게 남루한 몰골로 회갑인사를 한다. 혜경궁 홍씨의 반가운 마음이야 이루 어찌 다 표현하랴? 정조가 이 사실을 알고 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는다. 그러나 어머님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 인륜을 행한 도리에 감복해 정조는 이모뻘인 부인에게 큰절을 한다. 남루한 여인도 맞절을 하는 감동적인 장면에 객석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이어진다.

 

대단원에서 망령들의 모습이 일시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면, 처소에서 <한중록>을 집필하는 모후 홍 씨의 기품 있는 모습과 가지런한 달필로 가득 찬 화선지를 내인들이 길게 펼쳐들고 읽는 장면과 영상으로 그 내용이 무대에 투사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혜경궁 홍씨로 김소희, 영조로 전성환, 사도세자 최우성, 박정무, 정조 정태준, 어린정조로 주재희, 그리고 차희, 박지아, 이원희, 한갑수, 이주희, 민정기, 허대욱, 신재훈, 이승헌, 이재훈, 양예지, 정연, 박주희, 이영옥, 유선영, 강해진, 이지은, 등의 호연과 한림, 이재하, 조한결, 정준규 등의 연주가 공연을 감동으로 이끈다.

 

조명 영상 조인곤, 장치 김경수, 의상 이윤정, 소품 김병준, 안무 이승헌, 특별안무 박은영, 작곡 이재하, 음악감독 이시율, 음향 강국현, 분장 이지원, 장치보 김한솔, 무감 변오영, 무감조 신지혜 박상아, 음향오퍼 곽시온, 조명오퍼 홍선화 윤지수, 그 외 스텝 모두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재) 국립극단의 이윤택 작 연출의 <혜경궁 홍씨>를 백성희장민호극장에 걸 맞는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명동예술극장의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역, 오경택 연출의 <햄릿>

 

명동예술극장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역, 오경택 연출의 <햄릿>을 관람했다.

필자가 관람한 우리나라의 역대 햄릿은 김동원, 최무룡, 최상현, 오지명, 김동훈, 길영림(마로위츠 햄릿), 양재성, 노주현, 유인촌, 김석훈, 이명호(블랙 햄릿), 김명수, 장준호, 강신구, 김수용(뮤지컬 햄릿), 박은태(뮤지컬 햄릿), 박세욱(뮤지컬 햄릿), 김태훈(인천시립극단 햄릿) 최윤석, 김동현, 이호협 류지완, 최수호, 그리고 정보석 등 이다.

 

햄릿을 맡은 배우들은 맡은 역에 혼신의 열정과 기량을 다한다. 물론 함께 출연한 연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남성배우들은 누구나 햄릿 역 하기를 원하고, 3막 1장의 “To be or not to be…”를 노래가사 외우 듯 암송한다.

내용은 원작을 따르지만 근자에 이르러 축소 변형된 공연이 많고, 3, 4명으로 축약시킨 공연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뿐 아니라, 고전을 변형시킨 공연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세를 이루는 작금의 현실이니 누가 그것을 탓하랴?

명동예술극장의 <햄릿>도 시대를 400년을 뛰어넘는 현대로 설정을 했다. 칼대신 피스톨이 사용되고, 음악도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리니스트(Fiddler on the roof)>에서 악사로 출연한 “야샤 하이페츠”처럼 광대의 현악기 연주가 절묘하게 현대와 어울린다. 북구라파를 둘러싼 전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왕비 거투루드가 사망한 햄릿 왕보다 젊은 숙부 클로디어스의 품으로 달려 들어간 이유가 성적만족을 위해서라는 것도 요즘 세태의 성풍속도와 다를 바가 없고, 부왕의 망령이 나신으로 등장하는 것도 충격이지만, 축 늘어진 그의 몸에서 정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딸에게 “햄릿왕자의 노리개 깜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대사도, 딸을 둔 아버지가 딸이 행여 남성들의 노리개가 됨을 걱정하는 표현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햄릿이 벗 호레이쇼에게 “세상에는 네가 몽상조차하기 힘든 많은 일이 생겨난다.”는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무대는 커다란 거울가게처럼 수많은 액자와 사각의 조형물을 천정으로부터 하강시키거나, 상승시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직사각의 철판을 천정에서부터 출입구 까지 늘어뜨려 출연자들이 건드리면 마치 천둥소리 같이 점차 울려 퍼지면서 그 소리를 들은 경비병이 곧바로 등장해, 궁궐에 침입자의 접근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 직사각의 조형물을 모조리 상승시키면, 배경 가까이 네 개의 문설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긴 테이블과 여러 개의 의자를 상승시켜 왕의 취임식이나, 결혼식 장면의 잔치 상으로 사용되고, 극중 배우들의 공연장면에서 관람석이 되기도 한다. 2부에서는 묘역으로, 또는 햄릿과 레어티즈와의 결투장면에서의 참관석이 되기도 한다. 배경 가까이 있는 2층 회랑은 부왕의 망령이 배회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오케스트라박스에 발을 내려뜨리고 걸터앉아 병술을 들이키는 햄릿의 고뇌에 찬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장발의 호레이쇼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조명이 바뀌면 출연자들이 배경 막에 운집해 부동자세로 서있다.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긴 테이블이 술잔과 함께 상승하고, 백색 면사포를 쓴 거트루드와 붉은 의상과 장발의 클로디우스의 결혼연이 벌어지면서 오필리어의 모습과 오라비인 레어티즈의 다정한 모습이 부각되고, 남매의 부친 폴로니우스의 동태가 무대뿐 아니라 객석전체를 포용한다. 레어티즈의 인물과 성격이 제대로 부각된 느낌이고, 왕비 거투르드의 성격창출은 기존의 인물설정에서 한 발 앞선 느낌이다. 그녀의 출렁이는 육체는 시체라도 벌떡 일으켜 세울 정도로 관능미를 발휘한다. 숙부인 신왕 클로디우스는 연주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모습이나, 밝은 의상차림에서 가장 현대판 인물설정과 성격창출임을 감지할 수 있다. 장면이 바뀌고 부왕의 망령의 출현을 알리고, 햄릿이 망령과 대면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부왕의 망령이 나신으로 등장해 주술로 호레이쇼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후 햄릿에게 복수를 당부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마치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한 영화 <맥베스>에서 마녀들이 전라로 출연한 장면에 비견되는 부왕(정재진) 망령장면이다. 경비원들이 등장할 때나 로젠크렌츠나 길덴스텐이 등장할 때 출입로에서 울리는 철판의 천둥소리도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듯싶고, 숙부 왕이 잘못을 회개하며 신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햄릿이 숙부의 등 뒤에 나타나 번쩍 들어 올린 철판에 햄릿의 뽑아든 비수가 시퍼렇게 빛나는 장면도 가히 명장면이라 하겠다. 햄릿과 왕비와의 대화를 출입로 철판 뒤에서 엿듣다가 살해당하는 폴로니우스나, 폴로니우스의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운반하는 햄릿과 이를 본 오필리어가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놀라며 슬퍼하는 장면 또한 일품이다.

 

햄릿을 찾은 배우들의 공연장면도 수준급이고, 2부 오필리어의 묘역에서의 해골을 던져 올리는 인부들 장면, 그리고 햄릿과 대화를 나누는 인부들의 모습은 <춘향전>에서 암행어사인 이몽룡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탐관오리를 욕하는 남원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오필리어의 시신을 담은 관이 도착하고, 레어티즈의 슬픔을 숨어보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하며 등장하는 햄릿과 햄릿을 저주하며 죽일 듯 덤벼드는 레어티즈의 장면도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고, 대단원에서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장면, 독배를 든 왕비의 죽음, 자신이 바른 독에 찔려 죽어가며 모든 흉계가 숙부왕 클로디우스에게서 나왔다는 레어티즈의 고백을 들으며 함께 절명하는 햄릿, 클로디우스는 자리를 피해 도망하지만, 덴마크를 접수하려는 포틴브라스 군의 총탄에 맞아 절명한다.

 

마지막 장면은 포틴브라스가 마이크에 대고 덴마크 국민에게 상황을 알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원작의 3막 1장의 명 독백 “사느냐 죽느냐….”는 어둠 속에서 녹음으로 흘러나와 대미를 장식한다.

정보석, 남명렬, 서주희, 김학철, 박완규, 전경수, 정재진, 지춘성, 이지수, 김병희, 구도균, 신기원, 배소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극의 수준을 고품격 연극으로 상승시킨다.

제작 명동예술극장(사장 구자흥), 윤색 이양구, 무대 정승호, 조명 김광섭, 의상 이주희, 분장 백지영, 소품 최혜진, 음악 김태근, 안무 박호빈, 액션안무 서정주, 조연출 전윤환 조민정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종환 역, 오경택 연출의 <햄릿>을 세계 어디에 내 보여도 좋을 걸작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9, 극단 예우의 배이 작 김문광 각색 황해국 연출의 <사라와 제니퍼>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극단 예우의 박병모 예술감독, 배이 작, 김문광 각색, 황해국 연출의 <사라와 제니퍼>를 관람했다.

 

<사라와 제니퍼>는 미군 기지촌에서 클럽 종업원으로 일을 하던 두 여인과 기지촌의 한 건물의 매매와 관련해 건물주와 그의 친구,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 그리고 이웃 건물의 주인이자 부동산 투기꾼여인이 벌이는 이야기다.

제니퍼는 흑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여인이다. 현재 6 25사변당시 태어난 혼혈인과 2010년까지 외국인과의 결합으로 태어난 혼혈인의 수가 150만 명을 너머서고 있다.

 

무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 방이다. 무대가 갖춰진 주점으로 현재는 비어있고, 한단 높은 하수 쪽 무대에는 타악기가 놓여있다. 상수 쪽은 벽에 술병을 진열했던 장이 부착되어있고, 카운터와 소파 그리고 의자가 보인다. 배경 막 가까이 창이 있어 아래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창에는 커튼이 늘어져 있다.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출입문이 있고, 문에는 매드 맥스라는 영문글씨가 보인다.

 

연극은 도입에 대머리인 건물주와 반백인 그의 친구가 건물임대료문제로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이 된다. 친구의 허랑방탕함을 꼬집으며, 임대료를 지불해야만 건물을 빌려주고 무대도 사용하도록 해주겠다는 건물주의 의사가 자못 완강하다. 건물주는 이북 사투리를 쓰고, 친구는 전라도 말씨다. 건물주는 친구가 떨어뜨린 환각제 주사기를 발견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예정했던 여행을 떠난다.

장면이 바뀌면 서투른 이북 사투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반백의 친구, 통화의 내용으로 보아 여행을 떠난 이북 말씨의 대머리 건물주 대신, 자신이 건물주인양 건물을 처분하려고 서투른 이북말씨를 사용하며 부동산 중개인과 하는 통화다. 매매가 이루어 질 듯싶은 가능성이 보인다.

장면이 바뀌면 미군살해사건발생과 함께 경적 음이 울리고, 미군헌병대의 수색이 건물부근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이 녹음을 통해 객석에 전달되면서 매드  맥스라고 적힌 문을 강제로 열고 <사라와 제니퍼>가 등장한다. 사라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다.

반백의 친구와 <사라와 제니퍼>의 조우가 이루어지고, 장면은 과거로 돌아가 장사가 제법 되던 시절의 클럽의 광경이 펼쳐진다. 천정에 연결된 철제 긴 봉을 돌며 관능적인 춤을 추는 무희와 타악기 연주를 하는 반백의 친구의 모습이 객석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또한 제니퍼가 현재 세 들어 사는 방의 월세를 지불하지 못하고, 집주인 여인에게 닦달과 다그침을 받는 장면도 설치극장 정미소의 2층 회랑과 연결된 무대 위에서 전개된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부동산 중개인이 들어 닥치면서, 건물주임을 증명하는 제증명서를 요구하고,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는 반백에게 사라와 제니퍼가 동조를 하는 연극을 꾸미면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건물매매대금의 10%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매매를 성사시키도록 종용을 한다. 건물을 매입하겠다며 등장한 여인은 바로 제니퍼가 세 들어 사는 집 여주인으로, 제니퍼의 모습을 본 순간 여인은 모든 것이 거짓임을 갈파한다. 그렇다고 눈앞에 이득을 포기할 그런 인물이 아님을 이 여인은 복부인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낸다. 여인은 제3의 인물에게 거액으로 건물을 팔기로 이들과 공모를 한다. 건물 매매대금을 여럿이 공평하게 분배하도록 약속하고…..

이들의 계획이 성사되게 될 즈음 건물주가 등장한다. 이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찰나에 사라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그리고 반백도 사라 어머니를 학대했던 전남편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사라의 총구를 피해 오층 창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는다. 부동산 중개인도 사라의 총탄에 쓰러지고, 사라 역시 자진을 한다. 마지막으로 제니퍼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반백의 악사로 이윤선, 건물주로 원근희, 철제 봉 무희와 복부인 역으로 정아미가 출연해 출중한 기량과 호연으로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킨다. 부동산 중개인으로 김정익, 사라로 임은연, 제니퍼로 김화영이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예술감독 박병모, 무대감독 양일권, 무대디자인 전성종, 조명디자인 김종호, 분장디자인 박영화 전예출분장연구소 대표, 음악 음향 한철, 조연출 배찬태, 분장 최솔, PD 이준석, 진행 김지애, 방언지도 곽지훈, 시진 진현민, 홍보 마케팅 WHO, 등 스텝 전원의 기량과 열정이 합하여, 극단 예우의 배이 작, 김문광 각색 황해국 연출의 <사라와 제니퍼>를 기억에 길이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 극단 청국장의 김한길 작 연출의 <마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청국장의 김한길 작 연출의 <마흔>을 관람했다.

 

무대는 벽장 같기도 하고 장롱을 세워놓은 것 같은 나무조형물 기둥이 무대삼면에 뺑 둘러 세워져 있다. 그 바닥에 낙엽이 수북이 깔린 것으로 보아 오래된 건물임을 그리 표현한 듯하다. 하수 쪽은 주인공의 가정이고, 상수 쪽은 사무실로 사용이 된다. 하수 쪽에는 침대,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정면에는 책과 잡동사니를 얹어놓은 장식장이 있다. 상수 쪽에는 사무용 책상과 의자가 가로 세로 놓이고, 그 위에 사무용품을 꽂아놓는 작은 책꽂이와 전화기가 놓여 있다. 상수와 하수 중앙부분에 드럼통처럼 생긴 원형탁자도 있어 주점장면에서 사용이 되고, 중앙의 장롱 사이에 등퇴장 로가 마련되어 있다. 나무기둥조형물과 배경 막 사이로 통로가 있어 복도 구실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무대 하수에서 일본으로 이모를 만나러 가는 부인과 주인공인 남편의 배웅장면이 전개되고, 휴대전화 통화와 함께 홍콩에 소재를 둔 기업의 홍보 차, 사십대의 안경 쓴 남성이 주인공의 집을 찾아와, 역시 맨발로 등장해, 주인공에게 투자설명을 한다. 투자설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주인공의 휴대전화벨소리가 계속되니, 설명회는 중단이 되고, 다음기회 대화를 갖도록 하자며 안경 쓴 남성이 퇴장하면서 홍콩에 있는 책임자가 박 씨 성을 가졌음을 누차 강조하고 떠나간다. 주인공의 선배인지 형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연극을 한다는 남성이 맨발로 등장해, 새로 공연할 대본이라며 주인공에게 한 부를 전해주고 떠나간다. 주인공이 홍보회사를 운영하는지 믿고 맡기는 눈치다.

 

상수 쪽으로 장면이 바뀌면 주인공의 사무실이고, 맨발의 여직원이 퇴근준비를 한다. 주인공이 등장해 여직원과의 대화에서 신통치 않은 현재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회사를 경영해보려는 의사가 전달되고, 그 것을 냉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여직원의 이지적인 모습이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러는 중에도 휴대전화통화가 계속되면서 장면전환이 되면 무대중앙 드럼통 형태의 원탁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주인공과, 체구가 비교적 작아 보이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그의 선배의 모습이 보이고, 선배의 다변함에 비해 주인공이 말을 아끼는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이 자리에 주인공 회사의 여직원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담담하게 반기는 것과는 달리 선배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여직원을 좋아라, 반긴다. 여직원도 약간의 취기를 보이고,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왔노라고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마자 여직원의 남자친구가 대취해 등장한다. 여직원보다 연하로 보이는 남자친구는 자신의 학생신분임을 밝히고, 자기의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광경에 화를 내며, 이 남자 때문에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것이 아닌가 하고, 결투라도 벌일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의 선배와 청년은 티격태격하며 서로 껴안고 용을 쓰다가 둘 다 땅바닥에 나둥그러진다.

 

한편 일본으로 가 이모를 만난 주인공의 처는 이모가 북의 공작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놀란다. 이모는 일이 실패했을 경우에 사용할 독침과 암호문, 그리고 초록제비인가 나비인가 하는 별호를 갖고 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지령을 수행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에 대비할 방법도 조카에게 알려주며, 박씨 성을 가진 조카 남편의 사촌이 남쪽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북으로 귀환하리라는 정보을 일러준다. 조카는 황당하기가 그지없다는 표정을 보이며 이모에게 북의 지령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설득한다.

 

장면전환이 되면 주인공의 집에서 여직원과 변호사 선배가 각자 잠을 자게 된다. 주인공은 옛 애인이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때를 회상한다. 그녀는 주인공과 헤어져 정치지망생에게 발길을 돌린 것으로 소개가 된다. 주인공에 집에서 잠이 깬 선배는 술이 부족하다며 술을 사러 나가고, 단 둘이 남은 주인공과 여직원의 진솔한 대화가 흡사 연인들의 모습에 비견된다.

 

장면이 바뀌면 홍콩소재 투자회사의 직원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사실 자신은 중앙정보부직원이라는 신분을 밝히면서 권총까지 보이고, 박 씨 성을 가진 주인공의 사촌이자 북의 요원이 임무를 마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갈 예정임을 알리고, 이를 막아야 할 것임을 주인공에게 알린다.

 

다시 장면이 바뀌면 중앙의 원통형 탁자에 주인공과 선배가 만나 음주를 하며, 여직원의 남자친구로 인해 선배는 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것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선배에게 정보부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선배는 믿지를 않는 눈치이고, 정보부원은 피스톨을 소지하지 않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로 주인공을 더욱 헷갈리도록 만든다. 이때 여직원의 남자친구가 등장해 두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는 여직원과 헤어질 수  없다며, 눈물을 터뜨리는 남자친구에게 “여자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늘 주변에서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조언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십대의 지성미에다가 인간미까지 드러낸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장면이 바뀌면 일본을 방문한 정보부직원이 이모와 주인공의 처를 만나, 박 씨 성을 가진 사촌의 밀입북을 막도록 일본정부에 신고해 주기를 부탁하고, 대신 포상금을 두 여인에게 지급하겠노라는 약속을 한다.

주인공의 처가 기쁜 모습으로 귀가를 하고, 포상금을 받았음을 남편에게 암시를 하지만 남편이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대단원에서 주인공은 변호사인 선배와 연극하는 선배를 원통술집에서 만난다. 연극하는 선배는 더 이상 배우노릇을 하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토로한다. 변호사 선배는 걱정을 하지만, 연극하는 선배를 신뢰하는 주인공은 그 다음 말을 기다린다. 연극하는 선배는 말을 이어간다. “연기를 하는 것 대신에 앞으로는 연출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로 주인공의 손을 꽉 잡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지우석이 주인공으로, 임은희가 이모, 강현식이 연극하는 선배, 이동용이 인권변호사인 선배, 유지수가 주인공의 부인, 오주환이 정보부원, 박기만이 여직원의 남자친구, 조유진이 여직원, 김수현이 주인공의 옛 연인으로 출연해,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창출로 극적조화를 이루며 호연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음악 이동호, 의상 양화렬, 조연출 우제준, 기획 최효정, 홍보&마케팅 우물누리, 웹디자인 이선영, 사진 이지락 등 스텝 진의 기량과 노력이 돋보이고, 무대장치의 힘을 들인 것이 역력한 극단 청국장의 김한길 작 연출의 <마흔>을 연말을 마무리하는 수준급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3년 걸작 10선

 

1, 명동예술극장&극단 컬티즌의 데이비드 헤어 작, 성수정 역, 최용훈 연출의 <에이미> 

 

명동예술극장에서 데이비드 헤어(David Hare) 작, 성수정 역, 최용훈 연출의 <에이미(Amy’s View)>를 관람했다.

 

데이비드 헤어(David Hare)는 영국작가(1947~)로 희곡 <불순물 Slag (1970)> <만국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 (1972)> <철면피 Brassneck (1973)> <관절 Knuckle (1974)> <Fanshen (1975)> <미소Teeth ‘n’ Smiles (1975)><풍요 Plenty (1978)> <세계지도 A Map of the World (1982)> <프라우다 Pravda (1985)> <엉망진창 The Bay at Nice, and Wrecked Eggs (1986)> <남모르는 환희>The Secret Rapture (1988)> <경마귀신 Racing Demon (1990)> <속삭이는 판사>Murmuring Judges (1991)> <전쟁의 부재 The Absence of War (1993)> <채광창 Skylight (1995) <에이미의 견해 Amy`s View1997)> <푸른 방 The Blue Room (1998)> <유다의 입맞춤 The Judas Kiss (1998)> <고난의 길 Via Dolorosa (1998)> <내 아연침대 My Zinc Bed (2000)> <삶의 귀중함 The Breath of Life (play) (2002)>

<철로 The Permanent Way (2004)> <어리둥절한 사태 Stuff Happens (2004)><곧바른 시간 The Vertical Hour (2006)> <게세마네 Gethsemane (2008)> <강조된 답변 The Power of Yes (2009)> <사우스 다운스 South Downs (2011) 잉글랜드 남부 지명> 등을 발표했고. 시나리오도 많이 썼다.

1998년에 영국왕실에서 기사작위를 받아 데이비드 헤어 경 (Sir David Hare)으로 존칭된다.

 

성수정(成壽貞)은 ‘희곡 전문 번역가’다. 2002년부터 <거기>, 2003년 <달의 저편> 등 주목받는 작품을 번역해 올렸고, <맘마미아>도 번역했다. <레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철로> <33개의 변주곡>과 그 외 많은 작품을 번역했다. 그녀는 대학(연세대 사학과)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영자신문(코리아 헤럴드)에 입사해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고, 2002년부터 희곡 번역가가 됐다. 우리나라 젊은 작가의 희곡도 영어로 옮겨 외국에 소개하는 번역계의 보석 같은 존재다.

무대는 한적한 교외의 저택이다. 전면에 확 트인 여닫이창과 함께 현관이 있고,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식탁과 의자 소파, 책장 등이 배치되어 있고, 벽에는 후기인상파 화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꽃그림이 여러 점 걸려있다. 아름다운 문양의 접시 여러 개도 벽에 걸어놓아 이채롭기 그지없다. 오른쪽 벽 창문의 커튼을 열면 들어오는 햇볕의 변화도 일품이고, 대단원에서 소극장 분장실로 설정된 장치와 마지막 장면에서의 조명은 극적감동을 배가시킨다.

1998년 영국에서 초연된 <에이미>에서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에 출연한 여우 “주디 덴치”가 당시 76세의 고령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낡은 방식만 고집하는 “에이미”의 어머니인 연극배우 “에스메”와 새로운 미디어만 믿는 영화감독인 사위 “도미닉”과의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두 인물의 가치관 충돌을 바라보는 “에스메”의 딸 <에이미의 시선(Amy’s View)>이 극의 내용이다.

 

남자친구 “도미닉”의 아기를 임신했으면서도 임신한 여인을 버린 전력이 있는 그 남자친구에게 차마 고백을 못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도미닉”이 딸에게 다가오자, 침실로 향하며 “에이미”가 아이를 배었다고 내뱉는 소리는 장면전환과 함께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두 번째 장에서는 결혼을 한 딸 내외와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되고, 장모와 사위가 서로 다른 시각과 견해로 충돌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갈등을 해소시켜보려는 딸의 노력이 극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장모와 사위의 화합보다는 “에이미”와 “도미닉”의 사이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확대된다. 다음 장면에서는 “에스메”도 남자친구 “프랭크”와 가까워지고, “프랭크”의 권유로 가입한 계약회사의 적자가 늘어나고, 그 회사의 파산으로 인해 “에스메”는 평생 갚아도 모자랄 부채를 안게 된다. 오랜 만에 “에스메”를 찾은 “에이미”는 이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에이미” 역시 “도미닉”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겨 심적 갈등으로 나날을 보내는 형편임을 알게 되고, 어머니가 사위를 한 번도 이해하려 하거나 긍정적으로 대해준적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울부짖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에스메”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가는 장면에서 전환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백발의 “에스메”가 조그만 소극장 분장실에 앉아 젊은 출연배우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딸 “에이미”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사실과 딸의 죽음으로 연기에 변화된 모습을 보인 “에스메”의 호연과 호평으로 관객이 밀어닥치는 극장현황이 소개가 된다. 젊은 배우는 존경심으로 “에스메”를 대한다. 이때 영화감독이 되어 성공작을 낸 사위 “도미닉”이 찾아온다. 젊은 배우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피해준다. 장모와 사위의 진솔한 대화가 잠시 이어지고, 화해의 기운이 봄꽃망울처럼 살포시 피어오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감정을 상대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사위 “도미닉”은 선물상자를 놓고 떠난다. “에스메”는 다가가 상자의 뚜껑을 연다. 오! 거기에는……

 

윤소정이 “에스메”로 출연해 연기의 진수를 보인다. 서은경이 “에이미”로 출연해 윤소정과 듀엣으로 열연을 하고, 원작의 “에이미”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인다. 백수련이 시어머니 “이블린”으로 모처럼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극의 무게가 가중된다. “도미닉”으로 출연한 정승길의 호연은 그의 발전적인 앞날을 예측하기에 충분하고, 어머니의 남자친구 “프랭크”로 출연한 이호재는 그의 중후한 기량과 함께 작품의 버팀목이 된다. 젊은 배우 “토비”로 출연한 김병희는 순발력과 함께 절제된 연기로 그의 기량을 감지할 수 있고, 창창한 그의 앞날이 기대되기도 한다.

 

정혜영의 제작, 하성옥의 무대, 신 호의 조명, 이승무의 의상, 백지영의 분장, 이형주의 음악, 서정인의 소품 전유경과 임지민의 조연출 등 스텝진의 기량이 돋보인, 명동예술극장(극장장 구자흥)의 데이비드 헤어 작, 성수정 역, 최용훈 연출의 <에이미>를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공연제작센터의 롤란트 시멜페니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에서 롤란트 시멜페니(Roland Schimmelpfennig)히 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黃金龍)>을 관람했다.

 

<황금용>을 번역한 이원양 교수는 서울대 독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연구했으며 지난 80년부터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독문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저서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우리시대의 독일연극'(1998), ‘독일어기초과정'(1995) 등이 있고, 한국 브레히트학회 회장(93-95), 한국 독일어교육학회 회장(97-99), 한국 독어독문학회 회장(2000)을 역임하면서 국내 및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하여 학회의 발전을 힘쓰고, 1980년대부터 한·중·일 3국간 학술대회를 정례 화시켜 동아시아 3국간 독어독문학 국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롤란트 시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1967~)는 <그라이프스발트 가(街)> <아라비안 나이트> <과거의 여인> <동물의 제국> <황금용>을 비롯해 30 편에 이르는 희곡을 집필하고,  뮐하임 페스티발, 테아터 호이테 등에서 극작가상을 수상한 현재 독일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2007년에는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인도의 떠오르는 여성 연출가 줄레이카 차우다리(Zuleikha Chaudhari) 연출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인도참가작으로 공연된바 있다.

2008년에는 연희단거리패의 김경화 작 이윤택· 연출의 <산 넘어 개똥이>를 이원양 교수 의 독역으로 <베를린 개똥이: 이윤택·알렉시스 부크 공동제작>독일공연이 이루어져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무대는 30cm 높이의 정사각의 대를 무대전면에 설치하고 그 좌우에 출연자들이 앉을 의자와 철제 조리대를 비치했다. 조명을 바꿔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황금용>이 그려진 휘장을 늘어뜨리거나, 두루마리 천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베짱이 한 마리가 깡충 깡충 뛰어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조명이 바뀌면 철제 조리대 주변에 다섯 명의 남녀 요리사가 크고 작은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보이고, 향후 식당 손님인 항공사 여승무원 역, 개미와 베짱이 역, 노인과 손녀딸 역, 줄무늬 옷을 입은 젊은 남자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 웨이트리스, 바비퍼커 등의 역을 다섯 배우가 번갈아 해낸다. 독특한 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나이든 남성이 젊은 여성으로 출연하거나, 나이든 여성이 젊은 남성으로 출연해 무대 위에서 의상을 바꿔 입고,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우리나라에 중국음식점이 많듯 독일의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진출한 태국-중국-월남인 등 중국계 음식점에서는 <황금용>을 그린 간판을 달고 식당업을 한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족 수가 현재 150만에 이르듯 독일에 이주한 중국계 사람들도 100만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 중에는 불법체류자도 부지기수이고, 이 연극에서는 독일거주 한 불법체류자 남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라비는 요리를 만들다가 치통을 호소하지만,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가려해도 불법체류자임이 드러나 추방을 당하게 되니, 통증이 심해도 치과에 갈 수가 없다.

누이는 언어장벽과 의사불통으로, 한 겨울에 개미집을 찾은 베짱이 신세와 다름이 없다. 베짱이는 음식구걸을 하다가 개미들의 성노리개 감으로 전락한다. 낯선 이국에서 홀로된 여성은 호구지책으로 성노리개 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식당 위층의 조그만 방에는 젊은 남녀의 혼전동거 장면이 펼쳐지고, 혼인의사와 관계없는 동거도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다름이 없다. 사랑이 식은 여성 쪽에서 다른 남자와 정분을 나누고, 동거남과 헤어지는 장면은 세태를 반영한 듯싶고, 지성보다는 관능적이거나 색정적인 몸매와 차림에 치중하는 것도 동서양이 매일반이다. 이 장면은 극의 말미에 노인과 손녀딸에게로 이어져, 성노리개로 전락했다가 지옥의 개미굴에서 탈출한 베짱이가 노인의 회춘의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성적가혹행위를 당하고 온몸에 선혈이 낭자해 축 늘어진 모습은 비통과 비감을 객석에 전달한다. 어쨌건 치과대신에 오라비는 병든 치아를 동료 요리사들에 의해 파이프렌치로 강제 제거하게 되고, 그 뺀 치아가 잘못 프라이팬으로 날아 들어가, 그것이 항공기 여승무원 2인이 주문한 음식물에 들어가 31세 된 여승무원 식기에서 발견된다. 28세의 동료는 자리를 박차고 식당을 뛰쳐나가지만, 31세는 그것을 핸드백에 보관하고 집으로 간다. 치아를 뺀 젊은 요리사는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동료들은 시체를 <황금용> 문양이 들어간 휘장에 말아 강물에 버린다. 시체가 발견된들 거주등록도 아니 된 불법체류자의 신원을 어찌 밝혀내랴? 죽은 오라비와 죽은 듯 늘어진 누이의 모습은 불법체류자들의 삶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단원에서 시체를 버리고 떠나는 요리사들과 마주친 31세의 여승무원이 자신의 음식에 들어간 이빨 이야기를 애써 참으며 요리사들에게 잘 가라고 하는 인사는 우리 모두의 잘못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씨와 용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감동의 마무리로 느껴진다.

 

이호성, 남미정, 이동근, 방현숙, 한덕호 등 출연자들의 1인 다 역 혼성연기가 독특하고 탁월해, 연극의 도입에서부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출중한 기량으로 폭소와 비감을 동시에 창출해 낸다.

박은혜의 무대디자인, 조인곤의 조명디자인, 신주연의 분장디자인, 김상회의 의상디자인, 미스미 시니치의 음향디자인, 허유미의 안무, 이채경의 조연출, 김성현의 무대감독, 김정현의 소품제작 등 스텝진의 기량이 합창단원들의 음향조화처럼 느껴지는 공연으로, 덕우기획과 공연제작센터 제작의 롤란트 시멜페니히 원작, 이원양 역, 윤광진 연출의 <황금용>을 봄바람처럼 싸늘하면서도 따뜻하게 몸과 가슴에 스며드는 한 편의 잊지 못할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인천시립극단의 괴테 원작, 국민성 각색, 미하엘 슈타우다허 작편곡, 이종훈 연출의 <파우스트>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인천시립극단의 괴테 원작, 국민성 각색, 미하엘 슈타우다허 작편곡, 이종훈 연출의 <파우스트(Faust)>를 관람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 공부를 하며, 미술 연구와 회화, 문학 등에도 관심을 두고 공부하다가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으로 전학해, 자연과 민중과 개성을 존중하는 ‘질풍노도’라는 새로운 문예관에 접한다. 졸업과 동시에 고향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였으며, 24세부터 창작을 시작하여, 희곡 <괴츠>와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명성을 얻는다. 향후 그는 희곡 <파우스트>,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서덩 시편>, 자서전 <시와 진실>, <이탈리아 기행>,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등을 집필하고, 그 외에도 <첫사랑>, <이별>, <5월의 노래>,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마음 변한 소녀>, <경고>, <넓은 세계로>, <목자 탄식의 노래>, <나그네의 밤 노래>, <미뇽에게>, <탄금 시인>, <마왕>, <툴레의 임금님>, <신비의 합창> 등을 발표한다.

 

<파우스>트는 화가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그림  <파우스트>와 작곡가 구노(Gounod, Charles Francois 1818~1893)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유명하다.

 

영화로는 1928년에 제작된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1888~1931) 감독 주연의 <파우스트>와 1960년에 제작된 페테르 고르스키(Peter Gorski) 감독과 구스타프 그륀트겐스(Gustaf Gründgens 1899~ 1963) 주연의 <파우스트>를 명화로 일컫는다.

 

연극으로는 1829년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제1부가 초연된 이래 <파우스트>는 200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약 1000여 회 이상 연극으로 제작 공연되었다.

 

서독에서는 1957~58년에 구스타프 그륀트겐스의 “함부르크” 공연이후 1966년 “베를린”의 실러 극장에서 에른스트 슈뢰더가 <파우스트> 제2부를 별도로 공연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동독에서는 1952~53년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에곤 몽크에 의한 <초고 파우스트> 공연이 이루어지고, 브레히트는 이 공연에서 비속하고 희극적이며 유쾌한 요소를 강조해, 새로운 연극적 해석으로 평가되었다. 이 공연은 그후 볼프강 하인츠와 아돌프 드레젠에 의한 동베를린 공연(1968), 파이만/프라이어에 의한 슈투트가르트 공연(1977), 크리스토프 슈로트에 의한 슈베린 공연(1979) 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독일 통일과 함께 <파우스트>는 이데올로기적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동서독간의 경쟁관계도 없어져, 자유로운 실험 대상물로 공연이 되고, 아이나르 슐레프의 “프랑크푸르트” 공연(1990)과 볼프강 엥겔의 “드레스덴” 공연에서는 <파우스트> 제1부와 제2부를 함께 공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대에 페터 슈타인의 연출에 의한 최초의 <파우스트> 무삭제 전작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이해랑 연출의 <파우스트>가 명동국립극장에서 초연되고, 김동원, 장민호, 백성희, 나옥주 고설봉, 신원균 등이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국립극단 초연 이후 여러 차례 재공연과 각 극단에서의 공연이 이루어졌고, 신구, 박근형, 권성덕, 유인촌, 장두이, 윤주상, 손숙, 송채현 등이 출연해, 호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인천시립극단의 공연은 기존의 공연과는 달리 노 박사 <파우스트>와 청년 <파우스트>를 등장시키는 2인 1역의 <파우스트>다. 메피스토 역시 2인 1역으로 등장한다.

 

무대는 배경 막에 독일 전원풍경과 주점, 가로수, 그리고 번개 치는 장면 등의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이고, 음악과 무용은 물론 출연자의 의상 하나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연극은 도입에 무대 배경으로부터 역광으로 조명이 비춰지고, 백발의 파우스트와 얼굴 반쪽 괴물가면을 쓴 메피스토가 등장해 <파우스트>의 젊음을 되찾기 위한 영혼거래장면과 신과 악마의 내기가 펼쳐진다.

 

청년으로 변신한 <파우스트>가 미모의 처녀 그레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위한 메피스토의 보석상자가 효과를 발휘한다.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메피스토도 그레첸의 보모격인 메르타와의 정분을 나눈다. 그레첸의 어머니는 딸이 낯선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충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군대에서 돌아온 그레첸의 오라비 발렌틴은 여동생과 침상에서 딩구는 파우스트를 보고 분노로 칼을 뽑는다. 그러나 오라비 역시 파우스트와의 칼싸움 끝에 메피스토의 공격을 받고 절명한다. 저지른 살인죄을 피하려고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떠나 유곽(遊廓)에 몸을 맡긴다.

 

어머니와 오라비의 죽음에 접한 그레첸은 실성을 한다. 그레첸에게서 태어난 아기 역시 죽으니, 아기 살해범이라는 명목으로 그레첸은 철창에 갇힌다.

 

유곽에서 문득 빈사(瀕死) 직전의 그레첸의 애처러운 환상에 접한 파우스트는 자신의 일을 후회하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감옥으로 찾아간다. 메피스토는 그를 백발의 모습으로 환원시킨다. 감옥에서 파우스트는 그레첸을 찾는다. 그러나 백발의 파우스트를 그레첸이 어찌 알랴? 그러나 음성으로 백발노인이 파우스트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가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포옹하면서 숨을 거두자 백발의 파우스트도 함께 숨을 거둔다.

 

신과 내기를 한 메피스토는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에 그만 두 손을 들고, 지옥으로 되돌아간다.

 

신은 파우스트와 그레첸 두 영혼에게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뻗히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차광연, 이범우, 김현준, 김태훈, 이신애, 강주희, 조윤경, 정순미, 서국현, 최진영, 강성숙, 심영민, 김세경, 김태범, 서창희, 김희원, 권순정, 김문정, 송주희, 이수정, 최지연, 황혜원 등 인천시립극단 단원들의 열연과 열창, 그리고 무용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안무 이지영, 음악감독 신동희, 무대디자인 이태섭, 의상디자인 정경희·성영심, 조명디자인 이상봉, 분장 손진숙·배윤정, 소품 김혜지, 특수효과 성범재, 훈련장 이완희, 단무장 김화산, 조연출 손경희, 기획·홍보 이옥희·이돈형, 김새롬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연출력이 돋보인, 인천시립극단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원작, 국민성 각색, 미하엘 슈타우다허 작편곡, 이종훈 연출의 <파우스트>를 감동만점의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4, 극단 몽씨어터의 마이클 프레인 원작, 이동선 번역·연출의 <데모크라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몽씨어터의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  원작, 이동선 각색·연출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관람했다.

 

마이클 프레인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번역가로, 1933년 런던에서 태어났케임브리지 대학 에마누엘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이후 「가디언」지와 「옵서버」지에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소설을 발표했다.
데뷔작 <양철 인간Tin Men>(1965)으로 서머싯 모옴 상(賞)을 받은 프레인은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 그 이듬해 <러시아 통역관(The Russina Interpreter)>(1966)으로 또다시 호손덴 상을 받는 역량을 과시하며 영국 문학을 이끌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그 후 계속해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던 그는 장르를 바꿔 1970년에 단막극용 희곡 네 편을 묶어 펴낸 <우리 둘(The Two of Us)>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2000년에는 토니상을 받기도 하는 등 소설과 희곡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체호프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포함해 러시아 작품 상당수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양철 인간>(1965), <러시아 통역관>(1966), <태양에 착륙하기(A Landing on the Sun)>(1991, 선데이 익스프레스 북상), <스파이Spies>(2002, 코먼웰스 작가상) 등의 소설이 있고, 희곡으로 <알파벳순(Alphabetical Order)>(1975, 이브닝 스탠더드 상), <구름Clouds>(1976), <코펜하겐(Copenhagen)>(1998, 프릭스 몰리에르 상, 토니상) 등이 있으며, 그 외 희곡 모음 <우리 둘The Two of Us)>』(1970), 논픽션 <근교에서(On the Outskirts)>(1964), <신호가 울린 뒤에 말하기(Speak after the Beep)>(1995) <노이즈 오프(Noises Off)) 등이 있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는 독일 북부 항구도시 뤼벡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던 1930년 사민당(SPD) 당원이 됐을 만큼 정치적 관심이 높았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지하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여, 나치에 의한 체포 위험이 높아지자 노르웨이, 스웨덴으로 망명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한동안 사민당 집행위원회의 베를린 대표로 지내다가 1949년 연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7년 베를린 시장, 64년 사민당 총재 취임을 거쳐 66년 키싱어 총리 때는 외무장관을 맡아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냉전을 완화시켰다. 1969년부터 72년까지는 최초의 사민당 출신 서독 총리가 돼 본격적인 동서화해 정책을 펼쳤다.

총리로 선출된 이듬해에 브란트는 외교문제에 전념했으며 특히 오스트폴리티크(동방정책)로 알려진 정책을 공식화하여 동독, 동유럽의 기타 공산국가들 그리고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1970년엔 폴란드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고 나치만행을 사죄하기도 했다.

그는 소련과의 기본조약(70년), 폴란드와의 바르샤바 조약(70년), 베를린에 대한 4강 협약(71년), 동독과의 기본 조약(73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우호조약(73년) 등 동서화해 정책을 추구, 공로를 인정받아 외무장관 발터 쉘과 함께 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이후 헬싱키 조약으로 이어지고 ‘유럽안보협력기구(ESZE)를 탄생시키며 동구권의 대변혁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하지만 빌리 브란트가 대외적으로 이런 동서화해의 동방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독일 사회 내부는 이념적으로 매우 분열되어 있었다. 그의 화해정책에 대해 보수정당 기민당(CDU)과 보수언론, 여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72년에는 불신임 투표까지 행해졌다. 하지만 브란트는 다행히 불신임 투표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승리해 동방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격화하는 이념 대립과 경제 위기 등이 겹치면서 서독 사회 내부의 분열은 더욱 가속했고 브란트는 결국 74년 수상실 비서 기욤이 동독 국가안전국의 간첩이었다는 ‘기욤사건’으로 수상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는 이후 87년까지 사민당 총재로 있으면서 평화운동에 헌신했고 1990년의 동서독 통일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79세로 사망했다.

 

연극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동독에서 귀재(鬼才) 간첩 귄터 기욤(Günter Guillaume, 1927~ 1995을 파견하는데서 시작된다.

 

귄터 기욤은 1956년 동독 국가보안부 소속 중앙정보국(Hauptverwaltung Aufklärung,HVA)의 지령을 받고, “특수임무 장교”로 서독에 입국한다. 당시 슈타지 요원이던 기욤은 동독을 탈출한 망명자라고 속인다. 귀욤은 서독에 정착한 후 사민당 활동을 시작한다. 프랑크푸르트 사민당의 보수파에서 경력을 쌓는다. 그 후 기욤은 연방총리실 직원이 된다(1970년). 1972년 10월에는 총리의 당무비서가 된다. 기욤의 업무는 다른 직원과 함께 사민당 당대표를 겸직하고 있던 브란트 총리의 당내일정을 조직하고, 당 기관과 당원과의 문서유통을 담당하는 것이다. 기욤은 이 업무를 통해 브란트의 최측근 그룹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총리와 함께 휴가를 떠날 정도로 가까워진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처럼, 귀욤 부부에게 보낸 동독의 생일축하메시지가 서독의 중앙정보국에 의해 발견되면서 기욤 부부의 정체확인의 단서가 된다.

 

귄터 귀욤이 동독의 스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1974년 4월), 기욤의 부인 크리스텔 역시 스파이임이 밝혀진다. 이 일로 브란트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1974년 5월 7일). 기욤이 동독에 넘긴 정보가 안보에 결정적인 정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브란트 사임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으나, 귀욤이 동독으로 보내는 문서에 브란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고, 거기에 브란트의 음주와 섹스스캔들도 들어 있었기에 결정적인 사임근거가 된다.

 

연극은 배경 막에 영상으로, 빌리 브란트의 시대적 역사적 장면을 투사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배경 가까이 2단 높이의 대를 중앙과 무대 좌우에 만들고, 중앙에는 마이크를 세워놓았다. 무대좌우의 대에는 의자를 비치했다. 중간의 무대 좌우의 벽에도 의자를 놓고, 객석 가까이 무대 좌우 벽에도 의자가 있다. 무대 왼쪽 벽에는 와인 병을 잔뜩 진열한 장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책장이 있다.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 천정에서 늘어뜨린 마이크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중앙에는 탁자도 놓여있다. 배경 오른쪽에 등퇴장 로가 있고, 무대 왼쪽 벽면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극장 입구도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연극은 도입에 헌팅캡을 쓴 남자가 귄터 기욤에게 지령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면전환과 함께 의자가 배치된 곳마다 출연자들이 등장해 자리를 잡는다. 빌리 브란트가 정면의 단 마이크 앞에 서서 사민장, 기민당, 자민당 당수들에게 소신을 피력한다. 각 정당의 리더나, 국무위원, 수상실의 경호관, 비서관, 중앙정보국 책임자 등 차례로 등장하는 10인의 배우들이 인물도 출중하지만, 모두 발군의 기량을 지닌 연기자들이라, 연극이 계속되면서 연기의 각축장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일치된 호흡과 오케스트라의 화음 같은 조화가 이루어져, 모처럼 고품격 공연물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향후 영상과 연극의 플롯이 병행되고, 조명의 적절한 변화와 광도 하나에 이르기까지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 마치 추리 극을 관람하는 듯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빌리 브란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탓하지도 않고, 언제나처럼 조용히 손을 저으며 퇴장하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김종태, 권태건, 선종남, 이승훈, 송영근, 이화룡, 이종무, 김하준, 황 건, 차스호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극장을 가득채운 여성관객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조연출 임재하, 무대 임건수, 의상 우영주, 조명 김상호, 분장 장경숙, 영상 김재연, 음향 엄태훈, 사진 하정아, 그래픽 윤용석, 홍보 바나나문 프로젝트 등 스텝의 기량이 잘 들어나, 극단 몽씨어터의 마이클 프레인 원작, 이동선 번역·연출의 <데모크라시>를 명화 같은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5, 극단 서울공장의 유리피데스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 <두 메데아>

 

게릴라극장의 해외극 페스티발 희랍극 4 극단 서울공장의 유리피데스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의 <두 메데아(Medea and it’s Double)>을 관람했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 그리이스 3대 비극시인 중 세 번째 인물. 기원전 480년경에 태어난 아테나이의 명문가 출신이다. 두 번 결혼하였으나, 상대는 모두가 음란 다정한 여성이었다. 그의 작품 중 여성을 매도하는 말이 많은 것으로 보아, 미소지니(misogyny : 여성혐오)라는 세평을 받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누구도 감히 따르지 못하는 여성 심리의 예리한 통찰 자였다. 성격은 비사교적이고, 고독 속에서 서적에 싸여, 사라미스 섬의 동굴에서 집필하였다. 작품은 19편이 현존하고 있는데, <히폴리토스> <트로이아의 여인> <메데아> <헬레네> <오레스테스> <바카이> 등이 유명하다. 현실과 인간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의거하여, 일상적 인간관계를 대담하게 신화 속에 그려 넣음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사실주의를 확립하였으나, 니체는 그를 비극적 죽음의 하수인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406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데아>의 내용은 희랍신화대로 전개된다. 이아손은 아르고호라는 커다란 배를 건조하여 그리스의 이름난 영웅들을 이끌고 갖가지 난관을 극복한 끝에 콜키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콜키스의 왕인 아이에테스는 그에게 입에서 불을 내뿜는 황소로 밭을 갈고, 거기에 용의 어금니를 뽑아 뿌리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낸다. 그런데 이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면 땅에서 병사들이 솟구치고, 이 병사들은 용의 이빨을 뿌린 사람을 죽이려 달려든다. 이때 아이에테스의 딸인 <메데아>가 등장해 이 일을 해결한다. 하지만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때에 또 다시 <메데아>의 도움으로 이아손은 자신이 원하던 황금의 양털을 얻게 된다. 황금의 양털을 얻고 아르고호를 이끌고 콜키스를 도망가려는 그들에게 아이에테스 왕이 보낸 추격자들이 따라붙는다, 이때 <메데아>는 자신의 동생을 갈가리 찢어 바다에 뿌림으로써 추격자들을 피한다. 그 후 이아손은 황금의 양털을 가져왔지만 이일을 시킨 장본인인 펠리아스가 그를 죽이려 하니, 이번에는 <메데아>가 그를 도와  펠리아스를 죽인다. <메데아>가 펠리아스를 죽인 방법은 그의 두 딸에게 끓는 가마솥에 늙은 양을 토막 내어 넣게 하고, 그 양이 젊은 양이 되어 가마솥에서 뛰쳐나오는 마술을 보여준 다음 그 두 딸에게 아버지 펠리아스를 젊게 만들 수 있으니, 같은 방법으로 청춘을 되찾게 하자고 부추겨, 결국 그 말에 속은 두 딸에 의해 펠리아스는 죽게 된다. 펠리아스를 죽이고 도망치는 <메데아>와 이아손에게 추적자가 뒤를 쫒으니, <메데아>는 동생의 시체를 바다에 뿌려 추적자를 따돌린다.

<메데아>와 이아손은 두 아들을 낳고, 코린트로 오게 된다. 하지만 이아손은 추격자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딸들을 속여 펠리아스를 죽이게 한 <메데아>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코린트의 왕의 딸과 결혼을 하려 하는데 이에 격분한 <메데아>는 왕과 공주,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까지 죽이고 이아손을 떠난다. <메데아>는 후에 테세우스의 이야기에 다시 등장하고.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무대는 배경 막에 붉은 바탕에 지도 같기도 하고, 구름처럼 보이는 그림 위로 커다란 곤충의 망막 같은 원형의 발광체가 마치 태양이나 달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무대 바닥에는 긴 직사각의 움푹 파인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물을 채우고, 놋 사발을 띄워놓았다. 놋 사발마다 키가 낮은 초를 한 개씩 넣어 후에 불을 켜도록 해놓았다. 무대 좌우에 타악기 연주석이 있고,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에 기타 연주자가 착석을 하고 있다.

 

연극이 시작되면 연주석으로 소복을 한 연주자들이 차례로 등장을 해 착석을 한다. 연주자들은 한 동안 우리 귀에 익은 전래동요를 부르며 실제로 술래잡기나, 유희를 하고, 또 타악기를 두드리며 구음으로 구성지게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원작에 따른 극 전개가 시작되지만, 팬터마임을 하듯 무용을 하듯 또는 유희를 하듯 하는 연기자들의 움직임이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인 양상을 띠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 복장과 장비, 특히 무기나 지우산, 놋그릇과 그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촛불에 이르기까지,

마치 우리의 전래동화나 신화 속 이야기를 관람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종일관 관극을 하게 된다. 특히 연기자들이 타악 연주를 하면서 작중인물로 등장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무언극처럼 연극을 이끌어 갈 때에는 관객은 꿈처럼 환상처럼 연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빨려들게 되고, <메데아>의 두 아들 대신 아기 인형을 등장시켜, 인형놀이나 인형극을 하듯 연희마당을 펼칠 때에는 완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극에 몰입하기도 한다. 두 명의 <메데아>를 등장시켜 잔인의 극치를 발하는 일방과 자애롭고 따사로운 일방이 대조적인연기를 펼치는 장면이라든가, 만난을 무릅쓰고 <메데아>와 고락을 함께한 훤칠하고 늠름한 모습의 사나이 이아손이 <메데아>를 외면하고, 크레온의 딸과 결혼을 하기로 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분노로 배경의 붉은 색조가 더욱 붉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물이 가득 찬 수조 속으로 또 한 명의 <메데아>가 들어가 거닐 때에는, 함께 거니는 듯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 심리극적 효과까지 깃들인 공연이었다. 구음과 타악 연주, 그리고 기타반주 또한 극의 분위기를 숙성시키고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도록 만든 일품 연주라 평하겠다.

메데아 1 이경, 메데아 2 구시연, 유모 광대 윤가현, 이아손 김사련, 크레온 이홍재, 아이게우스 교사 정한솔, 정가 김민정, 판소리 조연주 김채현, 하모니카 김여래, 기타 박신원 윤경로 등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연주자들의 기량이 모두 어우러지고 돋보인 공연이다.

 

기술감독 정태진, 음악감독 윤경로, 드라마투르기 김재권, 안무 김소이, 소리구성 차희, 조명 정태진, 무대 배석영, 무대제작 임민, 의상 최순화, 음향 안창용, 사진 홍웅기, 영상 김민, 포스터디자인 윤용석, 조연출 고해종 김연주 임주은, 무대감독 고해종, 조명오퍼 임주은, 음향오퍼 김연주, 홈페이지 김재진, 블로그 홍보 홍웅기, 그래픽디자인 신은혜, 진행 권미나 배수진, 프로덕션 매니저 이수연, 기획 신은혜 하승연, 기획총괄 정승연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서울공장의 유리피데스 원작, 임형택 각색 연출의 <두 메데아(Medea and it’s Double)>를 명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6, 극단 관악극회 제2회 정기공연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극단 관악극회의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을 관람했다.

 

아서밀러(Arthur Miller)는 1915년 뉴욕에서 출생, 미시간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 쓴 몇 편의 희곡으로 상을 받고, 졸업 후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희곡 창작을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군수산업의 경영자와 아들의 대립을 다룬, 전쟁 비판적인 심리극 <모두가 나의 아들 All My Sons>(1947)로 비평가와 관객의 칭찬을 받았다.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1949)으로 퓰리처상 및 비평가 상을 받고, 브로드웨이에서 2년간의 장기공연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꿈과 현실과의 괴리(乖離)에 부자(父子)간의 사랑을 곁들여, 회상형식의 교묘한 무대처리로 현대의 불안을 강렬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밀러는 이 작품으로 전후 미국 연극계의 제1인자의 지위를 획득했다.

 

<도가니(가혹한 시련) The Crucible>(1953)는 리얼리즘의 수법을 버리고,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재판(魔女裁判)을 주제로, 그 당시 미국전체를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을 풍류(諷喩)한 희곡이다. 그 후 여배우 M.먼로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다(1960). 그밖에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A View from the Bridge>(1955, 퓰리처상 수상), 먼로를 모델로 한 <전락(轉落) 후에 After the Fall>(1964) 등의 희곡과 소설·라디오 드라마·평론이 있다. 그는 T.윌리엄스와 함께 미국 연극의 발전과 실험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의 희곡은 대부분 미국인의 공통된 비극적 생활을 주제로 삼아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으로<행운을 잡은 사나이>(The Man Who Had All the Luck, 1944)<모두 내 아들>(All My Sons, 1947)《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8)<도가니> (The Crucible, 1953)<다리에서의 조망>(A View From The Bridge, 1955)을 썼고, 이어서 M.몬로의 일대기<전락 이후>(After the Fall)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잔혹상을 묘사한<비시에서 생긴 일> (Incident at Vichy)을 썼다. 1968년 봄에는 <프라이스>(The Price) 1972년 가을에는 <천지창조와 다른 일들>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Other Business)을 완성 공연했다.

 

<시련>(1953)은 1692년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있었던 전대미문의 ‘마녀 재판’사건을 모티브로 1950년대 미국에 몰아친 메카시즘의 집단적 광기와 폭거에 의해 자행되었던 개인의 인권유린을 신랄하게 비판한 문제작이다.

실제로 아서 밀러는 주인공 존 프락터와 마찬가지로 매카시 광풍의 희생자였다. ‘非 미 활동 조사위원회 (The 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의 조사를 받으러 청문회에 소환되어 다른 혐의자의 이름을 댈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고, 그 결과 1차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인간 본능이 철저하게 통제받는 청교도적 신권통치의 작은 마을인 세일럼에서 어느 날 밤 숲 속에서 어린 소녀들이 발가벗고 춤을 추며, 주술을 외우고 혼령을 불러내는 금기된 놀이를 벌인다. 패리스 목사에게 발각된 소녀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악마에 사로잡힌 듯 연극을 하게 된다. 거짓 연극을 하고 있는 소녀들을 본 주민들은 이성을 잃고 정말 마을에 악마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억제된 청교도적 규범 속에서 거친 환경을 상대로 투쟁하듯 살아야 했던 마을 주민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오랜 앙금과 현실적 이해관계가 폭발 직전에 다다라 있었다.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욕구불만은 악마와 대항해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며, 잔인하고 비열한 복수심은 정당화된다. 소녀들의 금기된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어 마녀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위장한 고소, 재판, 급기야 교수형에 치닫는 극한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평소에 품고 있던 욕망과 질시, 불만, 이기심 등 악의 요소를 드러내 보인다.

초기의 희생자는 거지나 술주정뱅이처럼 힘없고 평소 마을의 골칫거리들이었으나, 점차 집단적 광기가 가열되며 개인적인 이권이나 원한에 얽힌 사람들이 고발되기 시작한다. 이미 명분은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재판 또한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죄를 묻는 재판이 아니라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재판으로 변질되고, 정의를 상실한 힘은, 누구라도 처형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권력의 편에서 폭거를 자행하던 자들마저 공포에 휩싸인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소된 사람을 구명하려는 명분을 다시 날조하려 들지만, 무릇 정의의 편에 섰던 인간상들이 보여주었듯 그들은 타협을 거부하고 정의로운 증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의 길을 택하게 된다.

 

<시련>의 서두 작가 노트에서 아서 밀러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상의 역할과 유사한, 어떤 경우에는 아주 똑같은 역할을 한다”며, 그래서 관객들은 “이 연극 속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괴이하고 또 가장 무서운 사건들 중의 하나가 갖는 본질을 찾아내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 중 하나는 인간사회에서 시대나 상황에 따라 빌미가 되는 명분은 다를지라도 정의가 없는 힘의 폭거는 저질러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환기이며 양심에의 부르짖음일 것이다.

 

무대는 서두에 스크린에 영상으로 숲 장면이 드러나고, 처녀들의 벌거벗고 춤추는 모습이 한 동안 지속된다. 그러다가 돌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고, 처녀들은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는 광경에서 장면전환이 된다.

향후 장면별로 영상이 투사되고, 대도구와 탁자 의자 그리고 법정 장면까지 대소도구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극의 신속한 진행을 꾀한다.

 

연극은 도입에 세일럼의 숲 장면에서 출발해, 패리스 목사의 집 거실장면,

프락터의 집과 법정장면 등으로 구분되어 배경에 영상이 투사되면서 대단원까지 계속된다.

프락터로 김동범과 정태민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특히 정태민은 훤칠한 키와 잘 생긴 모습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댄포스 역의 심양홍은 그의 중후한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해일목사 역의 최종률은 그의 출중한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보인 연출력에 대비되는 호연으로 그의 기량을 드러낸다. 패리스 목사 역의 김인수는 각종 뮤지컬과 연극에서 보인 기량을 이번 시련에서도 잘 나타내 연극의 버팀목이 된다. 애비게일 역의 윤소연은 놀라운 호연으로 기량을 드러내고, 엘리자베스 역의 박혜성 김선애, 최선영, 메어리워렌 역의 태영 등이 출연해 호연을 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연극에 고정시킨다. 가일즈 역의 정창옥의 호연은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프랜시스 김일호, 하쏘온 백영호는 연극의 주춧돌 역할을 해낸다. 푸트남 역의 박찬빈은 그의 당당한 체구와 두발삭발 모습에서 이 극에서의 악역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푸트남 부인 역의 나호숙도 호연으로 무대를 장식한다. 레베카 역으로 이기원과 유성신, 치이버 영그로 박영주, 티튜바 역으로 문경해가 출연해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해릭으로 황도원, 사라굿으로 김은자가 출연해 깜짝 놀랄 기량을 보이고, 수잔나 이채은, 머시 당가민, 베티 김하림, 소녀들 나아름 유혜민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제작총괄 윤완석, 이태식, 제작책임 김은상 설경수 이현숙, 기획총괄 한승우, 기획 김종완 박진우 김정욱, 홍보총괄 김은자, 홍보디자인 김석환 이인숙, 홍보 김윤경, 진행총괄 김승주, 진행 안태진, 협력연출 박경일, 조연출 차주영, 무대감독 문원섭, 무대조감독 손한성, 무대디자인 최종률, 조명디자인 박원근, 조명오퍼 이현구 강인정, 음향감독 이 호, 작곡 미셸K, 음향오퍼 이희원, 의상 정소진, 보이스코치 김선애, 안무 홍세정, 영상 이남훈, 분장감독 조성환, 분장팀 박윤행 이연재 김나현 이현지 정선화, 사진 윤준섭 등 스텝 전원의 기량과 호흡이 일치되어, 관악극회 제2회 정기공연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을 고품격, 고수준의 우수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 충무아트홀에서 프로스페르 메리메 원작 심연주 음악감독 이용주 대본 연출의 음악극 <카르멘>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극단 벼랑끝날다·모비딕프로덕션의 프로스페르 메리메 원작, 심연주 작곡·편곡·음악감독, 이용주 대본·연출의 음악극 <카르멘>을 관람했다.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 1803~1870)는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다. 대표작은<콜롱바>(1840),<카르멘>등이다. 프랑스 아카데미회원, 상원의원이었다. 독특, 간결, 착실한 문체로 작품의 예술적 완성을 꾀한 점에서 고전적인 새로운 사실주의 문학을 지향했다.

 

메리메는 법률가가 되었으나 예술적 재능이 높았고, 소설가 스탕달과 친분이 깊었다. 22세 때 에스파냐 여배우의 이름을 빌려 <클라라 가줄 희곡집>(1825)을 발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단편소설에서 발견되었는데, 1829~1830년에 걸쳐 <마테오 팔코네> <타망고> <에트루리아의 항아리> 등을 발표해 인정을 받았다. 이 단편들은 훗날 단편집 <모자이크>(1883)에 수록되었다. 1834년 문화재 시찰관에 임명된 것을 계기로, 프랑스 국내와 코르시카 ·이탈리아 ·그리스 ·에스파냐 각지를 순방했고, 대표적인 걸작 <콜롱바>(1840) <카르멘>(1845) 등은 그 때의 견문(見聞)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1844년 프랑스 아카데미회원, 1853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나폴레옹 3세의 궁정에 출입하게 되었다. 그는 직업적인 소설가라기보다 호사가(好事家)의 입장에서 소설을 썼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싫어하고 색다른 이국정서(異國情緖)나 야성적인 정열을 좋아한 낭만주의자였지만, 독특하고 간결하며 착실한 문체로 작품의 예술적 완성을 꾀한 점에서는 오히려 고전적(古典的)이고 사실주의적 문학을 지향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무대는 <카르멘>이라는 카페다. 왼쪽에 건반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전자건반악기의 연주석이 있고, 오른쪽은 카운터 겸 해설자의 좌석이 있다. 카운터 뒤쪽에도 금관악기가 벽에 기대어져 있고, 한 쌍의 타악기가 눈에 띤다. 카페 <카르멘>에 어울리는 장식과 문양이 벽과 천정에 부착되어 있고, 배경 좌우와 무대 왼쪽에 등퇴장 로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해설자 죠바니가 소설 <카르멘>을 낭독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연주자들이 착석을 하고, 출연자들이 등장을 하면, 합창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연주자나 출연자나 하나가 되어 음악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킨다. 연주자들도 극의 흐름에 따라 감정변화에 편승하여 온 몸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가히 일품이다.

 

키가 크고 훤칠한 모습의 병사 돈 호세가 집시 여인 카르멘의 야성적 매력에 첫 눈에 빠져들고, 절도죄를 비롯해 잡범인 그녀를 체포해 호송 역을 맡게 되면서 카르멘의 유혹에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군인신분을 망각한 돈 호세가 카르멘이 직속상관과 관계를 하는 장면을 접하고, 질투로 상관과 결투를 해 그를 살해한 후 도망병에 낭인신세가 된다. 그 후 카르멘의 안내로 산 도적 같은 범죄 집단에 일원이 된다. 원작소설에서 돈 호세의 약혼자 미카엘라 대신 범죄 집단의 일원인 처녀를 등장시켜 돈 호세와 밀착되어가는 과정이 잠시 펼쳐지기도 하지만, 그녀가 부상으로 뒤에 처지니, 카르멘의 정부 격인 행동대장 가르시아가 그녀를 살해한다. 돈 호세는 가르시아와 혈투를 벌이고 끝내 그를 살해한다. 카르멘은 차츰 그에게 밀착되는 듯싶다가도 부유한 영국신사 제임스에게 달려들고, 돈 호세의 질투는 절정에 이른다. 그 때 매력만점의 투우사 루카스가 카르멘 앞에 등장하고, 카르멘은 루카스에게 현혹된다. 돈 호세가 질투와 적대감으로 루카스에게 덤벼들지만, 그는 루카스의 상대가 아니다. 카르멘은 완전히 루카스에게 빠져든다. 이성을 잃은 돈 호세는 혼신을 힘을 다해 루카스까지 살해한다.

대단원에서 돈 호세는 카르멘에게 자신만을 사랑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카르멘의 거부의사와 답변에 결국 카르멘마저 살해하는 장면에서 해설자의 소설낭독이 끝이 난다.

 

해설자로 박준석이 출연해 탁월한 가창력과 함께 호연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건반악기와 아코디언을 연주자 심연주의 연주모습은 극의 분위기를 창출해 가고, 그녀가 심취해 연주하는 모습은 관객을 환상과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만든다. 카르멘으로 황연비가 출연해 호연과 무용으로 남성관객의 열정과 열망어린 시선을 일신에 집중시킨다. 김현경의 카르멘으로 더블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돈 호세로 정성윤이 출연해 열연으로 극의 중앙에 우뚝 선다. 김동준이 돈 호세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가르시아로 신상환과 이준희가 출연해 호연을 보이고, 양성훈이 부유한 영국신사 제임스로 출연해 그의 피둥피둥한 체구를 무대 위에서 솜털처럼 휘두르며 관객의 폭소를 야기 시킨다. 에스카밀리오 대신 투우사 루카스 역의 함형래… 이토록 출중한 매력남이 있을 줄이야….! 그의 등장으로 여성관객은 완전히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가 돈 호세에게 살해당하자 비로소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임환덕이 더블캐스트로 출연한다. 쏘샨나로 허란과 박아룽, 레멘다죠로 김현경과 김수경이 각기 더블 캐스팅 되어 호연을 보인다.

심연주…그녀의 명품연주와 기량은 가히 일품이라는 칭호가 알맞고, 조여진, 최진경, 최진리의 연주 또한 최고의 기량과 수준임을 이번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듀서 조용신, 기획실장 엄국천, 제작실장·미술감독 박찬호, 조명감독 문종태, 음향감독 김경남, 의상감독 노유나, 분장디자인 유현정, 안무 허 란, 연지지도 조승연, 안무지도 전성제, 조연출 장화식, 홍보 정수진, 제작1팀 최민호·이은비, 제작2팀 강동섭·강푸름·김보라·손정기·임성규, 교육사업팀 하정아·조은빛, 미디어팀 장 훈·마동원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여, 극단 벼랑끝날다·모비딕프로덕션의 프로스페르 메리메 원작, 심연주 음악감독, 이용주 연출의 음악극 <카르멘>을 우수작이자 걸작 음악극으로 창출시켰다.

 

8,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의 <타인의 눈>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 최정일 예술감독의 <타인의 눈>을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1926- )는 존 오스본(John Osborne),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존 아덴(John Arden)보다는 나이가 서너 살 위지만, 그의 첫 희곡 Five Finger Exercise를 내놓은 것이 1958년이고, 뒤이은 그의 극작 활동 역시 두드러져 1950년 이후의 영국 신예 극작가의 한 사람으로 부각되었다. 그의 작품의 형식이나 수법 또한 영국 연극의 전통적 흐름을 이어받아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표현 기법상의 실험을 쌓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

Five Finger Exercise는 사춘기의 고통을 다루고 있는데, Harrington 집안의 열아홉 살 난 아들 Clive를 중심으로 열 네 살 난 그의 누이동생 Pamela와, 자신들의 잘못된 결혼 생활에 대한 분노와 불만으로 늘 싸우고 있는 아버지 Stanley와 어머니 Louise, 그리고 자신의 출신을 감추는, 나치 독일인의 아들이며 Pamela의 프랑스어 가정 교사인 스물 두 살 난 Walter Langer 등 다섯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엮은 가정극으로, 철저하게 연극적인 이른바 전통적 기교극(Well-Made Play)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어서 음악에 미친 몽상가 Bob과, 그가 음악회에서 우연히 만난 아가씨 Doreen과, 그들의 사랑을 도와 주려는 친구 Ted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룬 The Private Ear(1962)와, 중년 회계사가 10대인 아내의 행실을 탐지하기 위해 고용한 사설 탐정의 이야기로 부부간의 의사 소통의 파탄을 다룬 The Public Eye(1962) 등 두 편의 단막 희극을 낸 다음, 16세기 스페인 군의 페루 정벌을 소재로 한 The Royal Hunt of the Sun(1964)을 발표한다.
이어서 나온 Black Comedy(1967)는 영국을 순회 공연한 중국 극단의 배우들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 어둠을 시늉으로 창조해 내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쓴 작품이다. 거의 모든 액션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면 무대 조명은 실재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정반대로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등장 인물들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 더듬고 다녀야 할 때는 무대가 전적으로 밝아지고, 정녕 조명이 밝아져야 할 때는 무대가 어두워지는 것이다. 가구들도 인물들이 암중 모색하느라고 마구 부딪쳐 자주 옮겨 대야 하고 인물들도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지 못하니까 상대방을 앞에 두고 마구 욕을 하거나 헐뜯게 된다. 따라서 주로 소극이라 할 이 극은 은퇴한 육군 장교 출신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사교계의 딸과 그녀의 약혼자이며 극의 중심 인물인 실험적 젊은 조각가 Brindsley Miller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과 계략을 다루고 있다. 이 극의 뉴욕 공연의 부대 작품으로 썼다는 White Lies(1967)는 The White Liars(1968), White Liars(1976) 등의 제목으로도 공연되고 있지만 내용은 Baroness Lamberg란 가명으로 위장한 어느 바닷가의 점장이를 중심으로 역시 자신의 신분과 감정에 관해 세상 사람들을 속이려 드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피터 쉐퍼는 Terence Rattigan 등의 기교극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의 기발한 발상들과 여러 가지 심리적 관계들을 다루면서 언어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연극적으로나 놀라울 만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다.

 

<타인의 눈>은 20년의 나이차가 있는 회계사와 그의 아내와의 사랑과 불신을 다룬 연극이다. 신혼시절이 지나자마자 40대의 남편은 20대 초반의 아내에게 의처증을 느끼고, 아내의 불륜을 탐지하기 위해 탐정을 고용해 아내를 미행시킨다. 그러나 아내는 순결하기 그지없는 여인이다. 오히려 남편이 성매매 여인의 집을 출입하면서, 아내의 행실을 의심하게 되고, 탐정까지 고용해 아내의 뒤를 밟게 하지만, 불륜을 행할 까닭이 없는 아내는 탐정인줄은 모르지만 한 남자가 자꾸 자신의 뒤를 밟는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고, 우연히 들른 남편의 사무실에서 그 사나이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행실을 의심해 탐정을 고용한 사실을 알고는 분노와 허탈감에 빠진다. 부부는 결별하기 직전까지 가는가 싶도록 감정이 격해진다. 결국 탐정이 나서서 그동안 타인의 불륜사실을 파헤쳐 그 행위로 보수를 받고, 부부간의 이혼을 시킨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재확인시키고 ,부부간의 신뢰를 복원시키고, 부부를 재결합 시키는 작업으로 탐정 일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해피엔딩 코미디다.

 

무대는 회계사의 서재 겸 사무실답게 옷 칠을 한 장롱처럼 갈색바탕으로 실내를 고풍스럽게 칠해 관객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정면에 커다란 창이 달린 문이 열려있고, 문을 나서면 엘 그레코의 그림인 듯한, 여인의 초상화가 벽면에 걸린 좁은 복도가 있고, 복도 오른편 끝에 출입구가 있다.

정면의 문 왼쪽 벽에 원형의 벽시계가 걸려있고, 그 왼쪽에도 문이 있는데, 비상문처럼 외부로 통하도록 되어있다, 무대왼쪽 벽면에는 위로 밀어 올리는 창문이 두 개가 달려있고, 벽 앞에 술병과 잔을 올려놓은 낮은 탁자가 있다. 탁자와 조금 떨어져 원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무대 중앙을 향해있고 그 다음으로 무대중앙에 소파와 탁자가 비치되어 있다. 그 오른 쪽에는 의자가 놓였다. 무대 오른쪽 벽면에는 책장이 창문과 창문 사이, 그리고 창문 건너 로 세 개가 벽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세워져 있고, 책장의 책마다 금박을 입힌 글자가 눈에 띈다. 정면 벽과 왼쪽 벽 사이에 옷걸이가 세워져 있고, 옷이 걸려있다.

 

연극은 도입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사무실에 앉아 가방에서 견과류 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손수건 펼쳐 그 위에 쏟고, 품에서 건포도 병을 꺼내 견과류 위에 입맛을 다시며 쏟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중년의 회계사가 등장하고, 오늘은 토요일이라 고객을 받지 않는다며, 자신은 정리할 일이 있어 잠시 사무실에 들른 거라며, 사나이에게 가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사나이는 아랑곳 않고, 이번에는 요구르트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회계사가 퇴실할 것을 거듭 요구하자, 사나이는 나갈 수 없노라고 한다. 그리고는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며, 회계사가 자신에게 이리로 오도록 요구했다며, 황당하게 여기는 회계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탐정이라는….

40대의 회계사가 20대 초반의 아내에게 의처증을 품게 되고, 아내의 불륜을 탐지하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해, 바로 그 탐정노릇을 한 사나이가 결과 보고 차 회계사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탐정의 말로는 며칠 동안을 회계사의 아내를 미행했지만 불륜은커녕 비행 사실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남편이 의처증을 거두지 않으니, 탐정은 젊은 남자가 늘 아내 주변을 배회하고는 있었지만, 그 남자와 회계사의 아내가 어떤 이상한 낌새를 보인적은 없었노라 이야기를 한다. 마침 그 때 회계사의 아내가 남편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노크소리와 음성에 놀란 회계사는 비상문으로 탐정을 내보낸다. 다음 화요일에 다시 방문하라며…

아내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와 꽃병에 꽂는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를 빈정거리듯 주시하며 질문을 퍼붓는다. 미켈란젤로 광장 커피숍에 간일이며, 그 밖의 행적을 본 듯이 꿰어 맞추며, 아내의 행적을 열거하고, 늘 같이 있던 젊은 사나이가 누구냐고 질문을 한다. 아내는 놀라면서도 솔직하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한다. 미켈란젤로 커피숍은 친구여인들과 늘 상 다니던 장소이고, 최근에 전혀 생면부지의 남자 한 사람이 자신의 뒤를 쫓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지만, 아직 대화한번 나눈 적이 없노라고 털어놓는다. 그 남자는 가방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먹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편이 계속 아내를 추궁하려하자, 비상문 밖에서 인기척과 기침소리가 들리고, 비상문을 연 남편이 사나이를 발견하고 당황해 하자, 사나이는 문을 밀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아내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사나이가 남편이 자신을 못 믿어 고용한 탐정임을 알게 되고, 배신감과 절망감에 쌓여 남편과 결별을 할 의사를 나타내려 한다. 그 때 탐정이 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수습하려 한다. 탐정은 우선 남편을 밖으로 잠시 내보내고, 아내에게 설득작업을 편다. 우선 견과류와 건포도를 권하면서, 아내는 남편이 탐정을 고용해 자신의 행적을 알아내듯 자신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인 여인으로부터 남편이 젖가슴이 크기로 소문난 여인의 성매매업소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남자는 가끔 그렇게 기분전환을 해야 아내에게 더 잘해준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젊은 여인답지 않게 남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을 가진 여인을 불행한 길로 가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는 탐정의 작전이 펼쳐진다. 탐정의 지시를 부부가 따르기로 하면서, 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주제음악인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함께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한다.

 

김동찬이 회계사로 출연해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모습에 어울리는 품격 높은 연기로 극의 기둥역할을 한다. 강민호가 희랍인 탐정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호연을 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김수경이 아내로 출연해 산뜻 발랄한 모습과 품위를 갖춘 연기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감독 최정일, 무대디자인 김만식, 조명디자인 김명남, 의상디자인 박은정, 제작감독 오선경, 연습감독 이은미, 조연출 김희정, 조연출보 정가영, 무대작화 이소영, 그 외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합하여,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의 <타인의 눈>을 품격높고 고수준일 뿐 아니라, 연출력이 돋보이는 우수걸작 희극으로 탄생시켰다.

 

9, 극단 광대무변&The Well의  강혜정 예술감독, 유인촌 연출의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극단 광대무변&The Well 제작·기획, 유인촌 연출, 강혜정 예술감독의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하나로 엮어 만든 공연이다. 그렇기에 무대에는 연극배우와 오페라 가수가 함께 출연해 공연을 이끌어 간다. 피아노와 오르간 반주, 그리고 무용이 포함된다.

 

<파우스트>는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가 1859년에 작곡한 전5막의 오페라이다. 대본은 괴테(J. W. Goethe: 1749-1832)의 <파우스트> 1부를 줄르 바르비에르(Jules Barbier: 1825-1901)와 미셸 카레(Michel Carre: 1821-1872)가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다.

 

줄르 바르비에르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et Juliette), 시바의 여왕 (La Reine de Saba), 필레몬과 보시스 (Philemon et Baucis)를 오페라대본으로 각색했다. 그중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미셸 카레와의 합작이다. 미셸 카레는 구노의 미레이유(Mireille), 비제의 진주잡이 (Les Pecheurs de Perles),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Les contes d’Hoffmann)를 오페라대본으로 만들었다. 파우스트는 1859년 3월 파리 시민회관(Theatre-Lyrique : Theatre de la Ville)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무대왼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붉은 테이블보를 덮은 책상과 의자가 있다. 그리고 책상 앞쪽의 4각의 입체조형물이 의자구실을 한다. 중앙에는 샹들리에가 천정에 매달려 있고, 무대 왼쪽 이층 발코니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다.

 

극장을 들어서면 연극은 시작이 되기 전인데도 파우스트 박사가 책상 앞에 앉아 집필을 하는 모습이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극이 시작되면 악마의 무리가 등장하고, 발코니와 연결된 계단 중앙에 앉은 소녀모습의 신이 사탄과 대화를 편다. 원작의 내용대로 신과 사탄이 내기를 하는 장면에 이르면, 백발이 성성한 낭독자가 극장 출입구 쪽에서 서서히 등장해 책상에 다가가 앉아서 원고를 펼친다. 향후 낭독자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낭독하기도 하고 실제 대사처럼 읊기도 한다.

<파우스트>는 나이 먹음을 비관하고, 악마의 문서에 피를 묻혀 서명한 후 젊음을 되찾아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설정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이고, 거기에 금상첨화(錦上添花) 격으로 최고기량의 성악가들이 출연해 구노의 오페라의 명곡을 장면마다 열창을 하니, 관객은 꿈이나, 환상에 빠진 듯 공연에 심취하게 된다. 작중인물을 배우와 성악가가 번갈아 하며, 공연을 이끌어 가니, 오페라와 연극을 동시에 관람하는 느낌의 공연이다.

 

괴테 원작의 내용대로 누이를 농락한 파우스트와 결투를 신청한 오라비가 죽자, 여주인공의 비탄과 절망이 극에 달해, 정신이상상태에서 마르 게리테는 자신의 갓 태어난 아기까지 죽이니,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고, 여주인공은 발광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접한 <파우스트>의 후회와 뼈저린 반성, 그리고 그의 자살이 메피스토의 쾌재(快哉)와 악마의 승리로 귀결이 되는 시점에서 대반전이 이루어진다. 신의 구원의 손길로.

 

유인촌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1인2역을 하며 극을 낭독공연형식으로 이끌어간다.

 

정주영, 김정음, 마정석, 김성진, 김진아, 이훈민, 김화랑, 변세희 등 극단 광대무변의 출연자 전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2시간여의 공연을 수준급으로 이끌고, 김동원, 정경호, 최광호, 이명희, 인구슬, 임희성, 최종현, 등 The Well의 성악가 출연자들도 최고의 기량으로 열창과 열연을 해,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특히 피아니스트 노성희의 연주는 출중하고, 김영미의 독무와 안무 역시 극의 품격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술감독 강혜정, 조연출 남윤호의 열정과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광대무변과 The Well 공동제작, 유인촌 연출의 <괴테와 구노의 만남, 파우스트>를 강남지역에 어울리는 수준 높은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10,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윤정모 작, 구태환 연출의 <봉선화>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윤정모 작, 구태환 연출의 <봉선화>를 관람했다.

 

<봉선화>는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 입장이 아닌 가족의 입장에서 다룬 연극이다.

 

이 작품은 윤정모 작가가 1982년에 발표한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를 토대로, 그 후 손자세대인 오늘날까지로 시대적 배경을 확대해 극적구성을 했다.

 

이 소설은 1991년 문태선 프로덕션에서 지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Mommy’s name was Josenpi]”로 개봉되었다.

영화는 필리핀에서 촬영되었고, 당시 필리핀의 여배우를 대거 종군 위안부로 출연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용은 1944년 말,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전세를 역전시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병과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강제징집했던 일본은, 군복 세탁을 위해 조선 아녀자들을 근로보국정신대로 끌어갔다. 영화는 “내가 2년여 정신대 생활을 하는 동안 상대한 남자는 몇 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학교 1학년 때 이웃학교에 다니던 영수 오빠를 짝사랑했다. 그 오빠와 결혼해서 1남 2녀 자식을 낳아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꿈을 누가 빼앗아 갔는가?”라는 피맺힌 독백으로 시작된다. 전라도와 경상도 접경의 한 읍에서 무장한 일본군에게 끌려간 소녀는 필리핀 전선에 배치되어 인간으로서는 물론 여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처참한 아픔을 겪는다.

 

윤정모(尹靜慕) 작가는 1946년 경북 월성 태생. 부산 혜화여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서 문학 수업을 받았다. 대학 재학 중인 1968년 첫 장편 「무늬져 부는 바람」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그래도 들녘엔 햇살이』(1972), 『생의 여로에서』(1973), 『저 바람이 꽃잎을』(1973) 등을 잇달아 출간하였다. 1981년에는 『여성중앙』 현상모집에 중편 「바람벽의 딸들」이 당선되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문학적 시야를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옮기면서 민족사의 비극적 체험에 해당하는 식민지 시대의 민족 현실과 분단 상황을 비롯하여 사회적 빈부계층의 대립과 갈등 문제 등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접근해 들어가게 된다. 일제 말기의 여성 군대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중편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일제 시대 나환자들의 항쟁사를 다룬 장편 「섬」(이후에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로 개작), 성의 상품화와 외세 지배와의 관계를 그린 장편 「고삐」, 독일에서 활동한 작곡가 윤이상의 삶을 통해 예술적 성취와 민족적 불행의 엇갈림을 형상화한 장편 「나비의 꿈」등은 모두 이같은 작가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특히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취재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서술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문학적 형상화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을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으며, 단재문학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소설집 『수메리안』(2005), 『길가메시』(2007) 등을 간행하였다.

 

연극 <봉선화>에서는 어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현재 대학학장인 아들과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하고 성장해 온 손녀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벌이는 부녀간의 갈등과 일제시대, 할머니의 위안부로서의 고난의 삶이 복선으로 전개되는 연극이다.

 

무대는 스크린, 망사막, 백색바탕의 가리개를 중간 막으로 장면변화마다 상하 좌우로 사용하고, 영상으로 실크 스크린에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들의 모습을 투사하면서 연극을 이끌어간다.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사용해, 소녀들의 놀이터 장면에 배치하고, 일본군들이 위안부들과 벌이는 육체접촉 장소로 묘사되기도 하면서, 탁자와 의자를 들여와 대학 이사장실이나, 학장실의 대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서울시극단 단원이나, 객원 출연자의 연기가 기존공연보다 탁월하게 느껴지고, 신심을 다하는 열연으로 느껴지는 것은, 연기상 수상 경력의 예술 감독과 묵묵히 자신의 기량을 쌓아 온 연출가 재능, 그리고 민족수난과 분단의 고통, 질곡의 역사를 작품 속에 표현한 작가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서울시극단의 연극을 한 단계 상승시키고, 발전적 양상을 띠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이재희, 이창직, 최광덕, 나자명, 강신구, 김신기, 정연심, 최나라, 박신운, 노상원, 김대현, 노현열, 백지예, 강보미, 김은지, 인혜선, 이민주, 최문혁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극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트루기 양윤석, 작곡 음악감독 김태근, 안무 박호빈, 무대디자인 임일진, 조명디자인 김학철, 음향디자인 이유진, 소품디자인 서현석, 의상디자인 홍정희, 분장 김선미, 다큐영상 김장연, 무대감독 장연희, 조연출 노현열, 기획 박진아, 제작감독 이강선, 제작보 김바우, 행정 장나영, 홍보지원 고려민 고다영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여,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윤정모 작, 구태환 연출의 <봉선화>를 시의적절한 국민이 꼭 보아야 할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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