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 인사 적폐는 없는가?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지난 한 두 달여 대한민국을 떠들썩거리던 청문회와 선거가 끝났다. 장관의 공직후보자 추천과 국회의원 공천 등 인사와 관련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인사적폐를 해결하겠다는 정권의 다짐이 무색하게 총리후보자와 장관들이 잇따라 낙마하였다. 문화예술계도 장관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을 통해 낙마하고 신임장관이 임명되기 전에 현직 장관이 면직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 정작 주무장관의 교체와 관련한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과정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고요하다. 연극계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연극계는 그동안 장관의 임면과 관련하여 언제나처럼 오랜 세월동안의 익숙해짐에 따른 무관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임명과 관련한 거센 논란도 이제는 조용하다.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직을 놓고 어느 정도 타협들이 되었는지 슬그머니 넘어 가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예술인복지재단 상임이사 사임, 예술원 회원 선출과정에서의 불협화음,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의 서울시 의회 해임건의안 제출 등 인사와 관련한 논란이 많아 졌다. 돌이켜 보면 최고의 해프닝은 지난 정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해임과 임명과정에서 겪은 두 명의 위원장 사건일 것이다. 이 모두 어떤 연유에서든 시시비비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문화예술계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는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인사와 관련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인사 적폐의 문제와 다르지 않음을 심히 우려한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 우리 문화예술을 위해서 일할 기관장들을 선출하는 과정에 우리 연극인들의 입장이 반영된 인사가 이루어지기를 강력히 요구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 그리고 예술을 창작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는 경제적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고 모든 사회, 문화적 이슈를 뒤로 미루고 살아 왔다. 문화예술계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한 축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예술 창작의 일념을 불태우며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일구어 내었다. 지금은 문화예술과 관련한 수많은 인프라가 생겨났고, 문화예술 지원 방식의 변화와 함께 많은 지원기관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화예술시설 및 공공예술단체와 기관을 운영하는 기관장들을 국가와 지자체에서 임명하는 수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임명된 문화예술시설과 기관의 장들이 시대의 변화 요구를 수용하면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공공의 예술행정과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서 운영 되고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정권이 바뀌고 지자체 단체장 등이 교체되면 언제나 문화예술계의 인사가 뒤따를 것이라는 것과 함께 누가 어디로 갈 것이며, 누가 교체 되어야 된다는 등 말들이 무성하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한다는, 그중에서도 좀 이름난 예술계 인사들이 인사에 대한 처신을 보자면 가히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자리를 보존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의 경영진에 줄을 서는 회사원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물론 예술가로서 제대로 된 작업하기 힘들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란 자존심마저 내팽겨진 채 권력자와 행정 관료들에게 예술가로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예술계의 현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권력에 기생하고 아부하는 식으로 연극인들이 행세를 하고, 문화예술계 보직을 마치 전리품 나누어주듯 인사를 자행하는 정치권력에 예술가들은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예술가들이 정치적이면 잘못된 것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주장들을 한다. 하지만 예술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강조하는 것 또한 정치적인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대통령후보 언론특보였던 신문사 출신을 국립극장장으로 앉혔다. 언론인 출신은 정치적이면 되고 예술가나 연극인 출신은 정치적이면 안 되는 것인가. 문화예술계에 문화산업이라는 담론 하에 진행되고 있는 반 예술정책이 최고조에 달하고, 연극계는 점점 사회와 대중들에게 철저히 소외되고 있음에도 연극인은, 예술가는 언제까지 정치적이면 안 된다는 공허한 외침만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 연극인들이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순수하게 작업하는 그 동안에 상업주의 연극들이 이제는 버젓이 대학로 중심으로 나와 있고, 100 여개에 가까운 대학의 연극과를 졸업하면 바로 실업자로 전락하는 실정일진데도, 정부나 지자체 지원기관의 지원방식은 투명하지 않고 관료적인 행정지상주의에 오히려 예술은 자생력을 잃어감에도 연극인 누구하나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평생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던 사람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예술기관을 경영한답시고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것은 예술계가, 연극인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 그래도 예술가가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할 것인가. 이미 이천년이 넘는 역사 이전부터 연극은 정치, 사회 비판을 통해 대중들 삶의 절실한 문제를 얘기 해주었건만 언제부터 연극이 의식 없는 싸구려 오락거리 엔터테인먼트 보다 못하게 되었는지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이제는 예술인들도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누가 우파이고 누가 좌파인지, 어느 예술집단이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은 하나의 표피적인 주장, 즉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는 네가티브적인 정치적 개념에 예술가들이 함몰되는 바람에 하는 주장일 뿐이다. 예술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사회의 잘못된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올바른 가치를 전달하는 인간사회의 제도적인 행위인 것이다. 예술과 정치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상호 영향을 주며 발전하였음을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예술은 성숙한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를 배양하는 토대로 시민들에게 상호 이해와 신뢰를 제공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예술가 또한 인간이고 따라서 예술가는 정치적인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정치적 성향을 숨기고 있는 비겁함 보다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것이 더 예술가다울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지난 100여일 사회 분위기가 무겁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중에는 인사적폐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많은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연·지연과 관피아로 명명되는 인사를 우리 예술계도 피해가지 못하는 것 같다. 부디 문화예술계, 특히 연극계에는 인사적폐란 단어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서울연극협회는 다음과 같이 제언 한다.
하나, 연극계와 관련된 인사에 투명하게 공개된 공모 제도와 심의를 통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하나, 임명된 인사가 소신껏 자신의 신념을 펼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관료들로부터 어떠한 간섭과 부당한 요구에도, 개인적인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연극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예술행정을 펼칠 수 있을 때 우리 연극인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인간으로서, 국가의 일원으로서, 예술가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에 대하여 연극계의 네거티브한 비판들을 중단하고 상호존중하면서 연극계 발전에 힘을 합쳐 나가기를 바란다.
2014년 8월 1일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