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지원정책을 바란다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가을에 접어들면서 예술계는 다음해 사업 준비에 바빠진다. 사업을 위한 국가 및 지자체, 예술지원기관의 공모와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공모사업의 지원과 심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대한 논란도 항상 따른다. 하지만 잠시일 뿐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아마도 다음해에는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희망도 있을 것이고 불만을 강하게 표시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연극을 하고 있는 현실자체가 고통스러운데 그나마 이렇게 연극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연극계가 묵시적으로 불평보다는 수긍하는 쪽으로 쉬쉬하면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연극계 내에서 공공연하게 말한다. 올해는 지원을 받지 못해서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을 이제 막 시작한 신진 연극인도 2,30년 한 중견 연극인도, 그리고 원로 연극인도 모두가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이 지원을 받지 못해서라는 당당한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연극인이 과연 예술가로서 존재하는 것인지, 연극인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표현일지 모르지만 취로사업장의 생활보호대상자인지 분간조차 힘들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연극계가 이제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연극의 미래는 불을 보듯 자명할 것이다.
지난 십, 수년 동안 공공의 연극 지원은 상당한 증가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증가 했다고 해서 충족하다는 것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지원제도가 다양화 되고 지원금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왜 연극계는 이렇게 힘든 것인가. 과연 연극은 자생적으로 버티기 힘든 것인가. 최소한 한, 두해 정도는 지원 없이도 공연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연극계 스스로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자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성을 토대로 연극과 관련한 공공지원이 연극인들의 당연한 권리이고 주체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우리들의 작업환경이라는 인식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그리고 연극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지 못하게 하는 연극 지원제도의 원인을 찾아 개선해 나아갈 때 우리의 연극이 제대로 설 것이다. 물론 그 원인이 바로 찾아지고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많은 연극인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지원기관과 수혜자간의 관계, 그리고 연극계 모두가 단순한 하나의 목적의식에서만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공공성과 논리적인 합리성을 바탕으로 논의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예술지원은 예술단체의 적자를 공공지원금으로 충당해주는 적자보전의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건, 매년 대규모 지원금을 받는 엘리트 예술기관들의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여전히 예술지원 혜택이 주로 엘리트 예술단체와 제한된 예술소비자에게 집중되었건, 연극의 공공지원에 대한 대가로 연극인이이나 지원기관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지원 수혜단체에 책임성을 요구하지 않았건, 그 원인을 이제는 분명 개선을 하여야 하는 것이고 늦으면 늦을수록 그 해법을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는 부디 연극의 공공지원이 연극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성과물을 요구하기보다 예술가에게 실패할 권리도 부여하면서 연극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지원정책이 되기 위해 연극의 공공지원과 관련된 모든 연극계가 목소리를 내주기 바라고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