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연극의 역할이 필요하다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자살 기도가 있었다. 주민이 아파트 5층에서 빵을 집어 던지면서 주워 먹으라는 모멸적인 언행이 이러한 사고를 불러온 원인 중에 하나라고 한다. 사회에 아름다운 감동을 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예술작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연극인으로서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아픔과 함께 무한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시장중심주의, 소비지상주의적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불과 2, 30년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삶은 더 편리해졌고, 없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정보가 넘치고 풍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 우리 사회는 경제 양극화, 보편적 복지의 논쟁,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의 갈등, 청년들을 비롯한 퇴직자의 재 취업난과 같은 문제들의 심각성을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도 현실이다. 출산률, 자살률, 취업률 등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고 미래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과연 이 모두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불거진 문제인 것인가.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은 현실적, 물질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있는 듯하지만, 더 어려웠던 과거 시절보다 우리가 더 위로 받거나 격려 받지 못하고, 더 큰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다분히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하여 연극은 사회에 어떠한 가치를 전달하면서 역할을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술활동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삶의 질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생활의 질을 창출하는 것이고, 예술적 사고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 지역과 각각의 공간에서의 행동과 프로그램 등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또한 예술의 한 분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근본적 바탕을 가지고 그 동안 연극은 우리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개발을 요구하고 지원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에 직면한 지금 연극도 예술 생산자 중심의 사고에서 향유자 중심의 연극환경 조성을 위해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우려스럽다. 지난 반세기 이상 문화 민주화란 근간 철학을 통해 예술이 일부 특정 계층이 향유하던 것에서 보편적 인간이 향유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목격했다. 지금은 문화민주주의 시대에 모든 인간이 예술 생산의 주체로서 활동하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 연극은 과연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예술이, 연극이 우리 삶 속에서 자라나고, 그 풍요로운 결실을 국민들이 향유하고 있다면 과연 경비원의 분신자살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연극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조화롭게, 평화롭게, 즐거운 꿈을 꾸며 살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면 타인을 향한 무차별한 폭언과 폭행에도 불이익을 우려하여 침묵하는 사회가 되었겠는가?
판사가 되기보다는 거리의 청소부가 되는 것이 낫다고 어떤 철학자는 말하였다. 짧은 시간에 이룬 물질적 성장이 혹여 우리를 황금만능주의의 포로가 되게 하지는 않았는지, 경제와 권력의 욕망이 모두가 위로 향한 경쟁을 함으로써 사람의 가치를 단순한 피라미드 구조의 위, 아래로만 매기지는 않았는지,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이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들을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물질과 권력을 향한 일상의 길에서 벗어나,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에게 인간과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하고,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연극의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고 중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