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공연과 이론>>(2014년 겨울호)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못생긴 여자와 몸 파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
– 창작 판소리 <추물/살인>
김 향 (연극평론가)
원작 : 주요섭
작·작창·예술감독 : 이자람
연출·드라마투르기 : 박지혜
단체 : 판소리만들기 “자”
공연일시 : 2014/11/20-11/23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극일시 : 2014/11/20 8pm., 11/21 8pm.
1. 판소리를 통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 찾기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2007)와 뮤지컬 <서편제>(2010) 그리고 판소리 <억척가>(2011)를 통해 판소리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추구하는 이자람이 이번에는 주요섭 단편소설 중 <추물>(1936)과 <살인>(1925)을 판소리로 만들어 공연했다. <추물/살인>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통해 이름난 주요섭의 작품들로 한국 근대 작품이기에 브레히트의 <사천 사는 선인>이나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과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자람은 <추물/살인>에서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발견하였고 그 문제의식은 <사천가>와 <억척가> 때부터 이어지는 것이었다. 전쟁의 폭력성,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가난과 실직의 고통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작품들 속에도 오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삶에서 소외되어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 특히 타자화 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판소리로 들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연출을 양손 프로젝트의 박지혜가 맡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박지혜가 연출한 양손 프로젝트 작품을 보아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판소리와 관련된 공연을 하던 연출가는 아니다. 그러나 박지혜 연출이 추구하는 연출 방식, 즉 최소의 무대장치와 배우의 몸만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판소리의 기본적인 특징이기에, 박지혜는 판소리 <추물/살인>을 연출하기에 손색이 없는, 오히려 판소리의 현대화에 기여하는 바가 큰 연출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리꾼 이자람과 연출가 박지혜는 대의적인 의미에서 판소리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추구했다기보다는 꽁꽁 감추어져 있던, 소외되어 목소리를 잃은 여인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관객들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연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자람 개인적으로는 <사천가>를 전수받아 공연했던 이승희와 김소진에게 그들 고유의 창작 판소리 레퍼토리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바람이 있기도 했다. 한마디로 창작 판소리 <추물/살인>은 소외된 여인들의 섬세한 내면을 옹골진 소리꾼들 소리로 표현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지닌 판소리가 동시대에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드러낸 공연이라 할 수 있다.
2. ‘언년이’와 ‘우뽀’의 불완전한 몸과 사랑
판소리 <추물/살인>은 각각 흉물스런 외모를 지닌 ‘언년이’와 몸 파는 갈보 ‘우뽀’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몸은 비호감의 불완전한 몸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천대 받고 폭력에 시달리는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년이와 우뽀는 ‘새 삶에 대한 각오’를 다짐하지만, 그러한 다짐은 미혼모와 살인자가 되어 버리는 우울한 현실로 그려지고 있다. 원작이 판소리로 창작되는 과정에서 인물의 내면의 변화에 따른 상황 변화가 극적인 사설로 재창작되면서, <추물>에서 경험되는 ‘아이러니한 유머’와 <살인>에서 경험되는 ‘우울한 쾌감’은 음악적인 생동감을 얻었다.
1) 병풍 위 고운 저고리 같은 언년이
판소리 <추물>의 언년이 서사는 참으로 박복한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에게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에 유머가 담겨 있다. 짝사랑하던 청년에게 거절당하는 장면이 남부끄러우니 제발 자신을 마음에 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는 것으로 형상화 된다거나, 언년이의 외모가 매파에 의해 재담으로 미화되는 것, 혼인 첫날밤 언년이가 소박맞는 것이 자진모리장단에 새신랑이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며 혼비백산 도망가는 것으로 형상화 되거나, 언년이의 외모를 흉보는 젊은 마님들의 수다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지닌 여자들 간의 수다로 형상화 되면서 관객들에게 아이러니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언년이가 상처를 받는 이 사건들이 유머러스하게 경험되는 것은 당연히 소리꾼 김소진의 맛깔스런 아니리와 다채로운 장단의 소리 그리고 너름새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소리꾼의 소리로 각 장면들이 눈에 그려지듯 형상화되면서(이면의 형상화) 관객들에게 상상하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판소리 <추물/살인>은 창작 판소리이기에 관객들에게 익숙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새롭게 편곡되어 섞여 있고 너름새를 넘어선 춤도 삽입되어 있다. 판소리 성음으로 짜인 음악들이 관객들에게 그 상황을 희극적으로 상상하게 한다면, 시조창 풍의 언년이 노래 ‘저고리 짓는 노래’, 1930~40년대 유행했을 법한 유행가와 춤으로 짜인 ‘창경궁의 야간 꽃구경’ 노래 그리고 카페 풍경 노래는 김소진 소리꾼의 시·청각적인 연기에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이었다.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곱고 아름답게 형상화되는 언년이의 ‘저고리 짓는 노래’는 외양과 대비되는 언년이의 고운 내면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이후 언년이의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언년이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3년을 시댁에서 일만 하다 팔자를 고칠 양으로 상경한다. 인파로 넘실되던 야간 벚꽃 구경 중 무심코 자신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남자의 손길에 느낀 언년이는 온몸으로 반응한다. 언년이는 비로소 제 몸이 사랑 받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짜릿한 유희도 잠시, 언년이는 곧 사람들 사이에서 흉물스럽다는 수모를 당하며 엉엉 울다가 길을 잃거나 두 달 동안 열일곱집에서 식모살이를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년이의 몸의 깨어남은 식모살이하는 집을 드나드는 다양한 남자들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이어진다.
언년이는 남자를 그리는 마음으로 주인 나리의 속옷 빨래를 만지는가 하면 주인 나리의 숨소리만 크게 들려도 화들짝 놀라 몸이 달아올랐다. 남자를 그리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한 어느날 언년이는 불시에 홀아비 텁석부리 영감에게 강간을 당하고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색시가 되고자 했던 언년이는 겁탈 당해 사생아를 잉태한 몸이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혹시 그 텁석부리 영감과 부부인연으로 맺어지지 않을까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후 텁석부리 영감은 자취를 감추었고 언년이는 홀로 아기를 낳게 된다. 아기를 낳기 전 언년이는 다부진 소리로 기도를 한다. 굿장단으로 예쁜 딸을 낳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외모 때문에 받은 치욕을 예쁜 딸을 낳음으로 되갚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년이의 기도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고 언년이는 자신을 꼭 닮은 못생긴 언청이 딸을 낳았다. 절망한 언년이는 자신이 곱게 지은 저고리로 아기를 눌러 죽이려 하나 아기는 살아남았고, 판소리에서는 원작에는 없는 아기의 이름을 지어준다. “무예”.
무대 위 흰 병풍 한쪽 끝에 그림처럼 또는 문양처럼 얹혀 있던 고운 저고리는 때때로 조명을 받으며 그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증을 자아내었지만 공연이 진행되는 중 그 저고리는 추한 외모에 가려져 있는, 무시당하고 있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확고한 ‘언년의 여성성’으로 해석되었다.
2) 아무렇게나 던져진 푸른 치마 같은 우뽀
판소리 <살인>에서는 <추물>에서와 달리 붉은 색 병풍을 세워 놓고 있었으며 병풍 중 한 폭은 전면 거울로 만들어져 있었다. 거울과 붉은 이미지로 인해, 그 공간은 홍등가 이미지를 물씬 풍기고 있었고 병풍 한쪽 끝에는 흰색과 푸른색 치마 두 벌이 겹쳐진 채 걸쳐져 있었다. 우뽀를 연기하는 소리꾼 이승희는 공연하는 중 흰색 치마를 꺼내 입었지만 이 초록색 치마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병풍 위에 얹혀 있다.
판소리 <살인>은 원작과 달리 소리꾼 이승희가 아니리로 매춘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회학적인 비판 인식을 드러내며 <살인> 공연을 시작하는 것은 ‘여인들의 몸 파는 이야기’라는 다소 고전적인 주제를 식상하지도 선정적이지도 그러면서도 낯설지 않게 꺼내 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연이 전개되는 중에 판소리 <살인>은 우뽀가 겪는 상황을 그림 그리듯 상상하게 한다. 원작 소설의 묘사 장면을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통해 그림을 보는 듯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뽀는 평범한 집의 딸이었으나 16살에 가난을 견디지 못한 부모에 의해 양귀자(洋鬼子: 동양 사람들이 서양 사람을 부를 때 쓰던 말)에게 보리 서말에 팔려 간다. 양귀자에게 삼일 동안 성적 유린을 당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그녀가 다시 기력을 회복하자 부모는 본격적으로 색주가에 팔아넘긴다. 이후 3년 간 우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겨를 없이 ‘생식기 노동’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우뽀를 비롯한 다른 갈보들은 외양과 달리 20여 세 안팎의 젊은 여인들이기에 손님으로 온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치려다 죽도록 얻어맞기도 하고 때론 꽃단장을 하고 외출을 나서기도 했다. 공연 중 “비단 원피스로 곱게 단장하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음악은 작창자 이자람이 1930~40년대 유곽 여인들이 불렀던 가사를 채록하여 곡조를 붙인 노래로,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도 민요의 느낌도 나는 묘하고 신비한 느낌의 곡이었다.
이렇듯 흐르는 대로 삶을 살아가던 우뽀는 어느날 우연히 늘 같은 시간대에 창밖을 지나가던 한 미남자에 주목하게 된다. 그 미남자는 선뜻 우뽀의 가슴 속에 들어와 우뽀에게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짝사랑은 곧 우뽀의 생활에 큰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우뽀는 사랑의 감정에 설레고 감정의 기복이 생겼으며 점차 자신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절망의 감정도 함께 느꼈다. 우뽀는 그 미남자를 K씨로 부르고 버젓한 학교 교사로 상상하며 자신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남자라고 절망한다. 이 절망의 감정은 그녀의 생활을 무너뜨리고 이를 눈치 챈 포주 뚱보할매는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며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노동자 한명을 밀어 넣어 그녀의 몸을 유린한다. 늘 스스로 남자를 끌어들이던 그녀는 뚱보할매의 행위에 큰 모욕감과 치욕을 느끼게 되는데, K씨를 향한 우뽀의 사랑의 감정은 자신의 훼손된 몸, 현실을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부조리한 상황에 눈뜨게 하면서 분노와 증오의 감정까지 불러일으킨 것이다. 우뽀는 그 상황에서 다시 미남자 K를 떠올리고 K씨는 우뽀에게 그 삶을 벗어나 새롭게 살도록 이끈다. 이 환상은 우뽀의 무의식일 수 있지만 그녀는 그 무의식에 따라 인적이 끊긴 깊고 어두운 밤에 뚱뚱할매를 칼로 찔러 죽이고 K씨가 걸어다니던 그 거리로 뛰쳐나간다.
이러한 일련의 우뽀의 서사는 그리 밝지 않은 이미지로 그러나 아니리와 소리에 코멘트가 섞인 채 공연되는데, 무거운 이미지 속에서도 우뽀의 살인 장면에서는 일종의 통쾌함을 경험하게 된다. ‘살인’은 뚱뚱할매의 살인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우뽀를 가두었던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K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우뽀가 자신의 억눌린 삶의 모순을 깨닫고 그 삶의 족쇄를 풀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환상이라는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고 그 행위로 범죄자가 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녀는 현재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며 그 내적 변화와 행위는 그녀를 자유롭게 해줄 거라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에 남아 있는 그 푸른색 치마는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여전히 음지에서 살고 있는 우뽀와 같은 그녀들로 인식된다.
3. 생명력을 지니고 산다는 것
판소리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의 소리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비루한 민중들의 삶을 그리는 가운데, 구체적인 삶을 소리로 그려낸다. 삶의 사실적 표현이 아닌 생명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추물>과 <살인>은 원작에서 이미 그녀들의 계속되는 삶을 예고하고 있지만, 판소리 <추물/살인>은 생명력을 지닌 판소리로 언년이와 우뽀의 삶을 구체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창작 판소리에서 또 한가지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3인으로 구성된 고수들의 생생한 연기이다. 판소리를 설명하는 말 중에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소리꾼이 우선이 아닌 고수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판소리에서는 북반주자 고수가 명창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식될 만큼 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판소리 <추물/살인>에서는 이 고수를 3인으로 꾸리면서 이 공연 특유의 고수 연기를 구현하고 있었다.
고수 김홍식, 이향하 그리고 신승태는 소리꾼 김소진과 이승희의 소리에 다채로운 악기의 반주, 추임새 그리고 몸의 연기로 응수한다. <추물>에서 소리꾼 김소진이 언년이를 내쫓는 가정집 주인장 소리를 하면 고수 김홍식은 어느새 언년이가 되어 눈을 왕방울처럼 크게 뜨고 김소진을 째려보며 그녀의 연기에 응수한다. 그리고 야경 벚꽃 구경 장면에서 김소진이 춤추며 노래를 하면 연주자들도 거리의 어여쁜 여인네들이 되어 어깨를 들썩이고 머리를 매만지며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살인>에서 이승희의 비장한 연기에서는 고수들도 어느새 비장한 여인네들이 되어 있다. 창작 판소리 <살인/추물>은 젊고 끼 넘치는 소리꾼 김소진과 이승희의 소리 연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쁜 와중에 고수 3인의 연기까지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공연이었던 것이다.
비호감 외모를 지닌 사람들, 생계를 위해 생식기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여인들이 우리들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들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아픈 삶을 살고 있으며 작은 소리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판소리 <추물/살인>은 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내면이 어느새 언년이보다 더 흉해지고 우뽀보다 더 비루하게 몸파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언질을 주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