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채까담
일 자 : 2015년 7월 3일
장 소 : 대학로 노을 소극장
참석자: 채승훈(연출가), 오세곤(평론가, 연출가), 이신영(연출가, 사회)
이 : 안녕하세요! 드디어 오채까담 그 첫 번째 만남의 시간입니다. 두 분은 대학에 있으면서 후진교육에 앞장서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주로 연출을 하면서 각기 극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연극교육, 예술정책 등 한마디로 연극 환경개선 운동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더 노력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자리는 연극관련 정책들이 무엇이 있고, 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또한 이를 토대로 어떠한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가면 좋을 듯 합니다. 마침 오채까담이란 모임명이 오세곤선생님과 채승훈 선생님의 성을 따서 한마디로 오세곤과 채승훈이 까놓고 이야기한다이니 보다 허심탄회하고 밀도 있고 때론 위트있으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내용들이 오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채 : 그동안 오세곤 선생과 오랫동안 연극계에서 대안 정책, 연극계의 환경 개선에 대해서 얘기를 해왔습니다. 대학로포럼 출발 시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연극인들이 연극 만들기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만 자기가 속한 연극계의 환경개선에 관해서는 조금 무기력하게 대처해 왔다고 하는 자성 속에서 대학로 연극계에 토론문화를 한번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17년 가까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많을 때는 40~50명 정도의 회원이 같이 어울려서 엠티도 같이 갈 정도로 활기찼습니다. 그런데 점점 회원의 수가 줄어들면서 최근에는 그런 참여의 폭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새로 참여하는 분들은 적다보니 저와 오세곤 선생, 이신영 선생 등 몇 명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만 우리는 그래도 우리 갈 길을 가야겠지요, 이번 기회에 저하고 오 선생이 처음부터 현재까지 같이 해왔기에 그동안 같이 의논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둘이서 심도 있게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일 년 정도 가져보자 해서 오채까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 인원수가 적어진 것도 문제이지만 이전만큼의 동력이 생길 수 있는 새로운 아젠다 모색이 부족했고, 또한 새로 참여 하신 분들이 연속해서 오는 횟수가 드물고, 더욱이 두 분 만큼의 대학로 정책과 환경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다보니까 이야기가 다소 겉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채 : 얘기를 부연하겠습니다. 인원이 수십 명씩 있다가 지금은 왜 사라졌느냐. 도리어 지금이 더 활성화 되어야하는데 왜 줄어들었냐.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대학로포럼에서 토론을 하면 첫째 ‘별로 좋을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로포럼에서 그동안 쭉 해왔던 이야기들이 주로 지원 단체라던가 또는 공공 단체라던가 이런 데의 정책이나 행정 과정 등을 비판하는 것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면을 통해 나가게 되니까 참여를 하는 사람들이 뭔지 모르게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 지원말씀하시는 건가요?
채 :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게 그런 것들에 관해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로포럼에서 하는 일이 만나서 같이 연극계 이야기나 좀 하자는 건데 왜 참가자가 줄어들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일인지 아니면 기우일 뿐인데 지레 자기 검열로 그러는 것인지는 판단할 수는 없지만 17년 동안 지내보면서 본 시각으로는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런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인지, 적어도 예술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생각해보면 마음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오세곤 : 비판 이라는 것이 상당히 건설적이라고 생각 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을 불편하게만 생각합니다. 힘이 있고 중요한 일을 할수록 비판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건데요. 오히려 그런 데에 비판이 없으면 사회가 병적인 상태라고 봐야합니다. 당연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들리는 말이 많아야 하는데 말이 없다 조용하다 그러면 그것은 침묵의 병증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 일수록 많은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채 선생이 이야기한 대학로 포럼이라는 것이 비판 정신으로 모인 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유리하지 않다고 해서 참여가 저조해지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연극이라는 동네가 상당히 비판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불편함을 갖고 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정말 이 일을 잘하려고 한다면 비판이 없으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지원기관이나 문화산업이나 이야기가 집중이 되는데 그런 지원 기관이나 정부에서도 현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비판이 없다고 했을 땐 우려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우리가 굉장히 심각하게 집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지 또는 없다가 터져 나올 땐 왜 너무 강하게 터져 나오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최근에 서울연극협회와 문화예술위원회의 충돌 같은 경우는 중간에 의논하고 조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터져버렸습니다. 평상시에 비판의 목소리가 충분히 나오지 않고 듣지 않고 그랬던 것과 관련 있지 않나. 조용하다고 해서 문제가 과연 없는 것인가? 문제가 누적 되고 있다가 터져버린단 말이죠. 그러면 아무도 중재할 수 없는 그냥 커다란 사건으로 번질 수 있고, 나중에 갈등도 더 커질 수 있죠. 결국엔 좋은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채: 여기서 잠깐 그… 혹시 오 선생이나 저 같은 사람이 앞장서서 해왔는데 저희가 반성할 것은 없나요? 우리가 재미가 떨어진다던가 (하하하) 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 : 글쎄…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대학로 포럼을 만들었고 그것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채선생과 저의 입장에서는 책임이 있겠죠?
채 : 먹을 걸 안 사줘서?
오: 글쎄요 (하하하) 치열성의 문제일 수 있고. 같이 으쌰으쌰 해서 끌고 가야 하는데 바쁘고 힘들고 하다 보니까 최소한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로 채 선생이나 나나 있는 에너지 중에서 일부를 여기에 투자해가면서 비판의식을 가진 단체로서의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갔다. 사실은 하나의 조직이 많은 인원을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성할 게 당연히 있죠.
채: 초창기서부터 대학로포럼 같이 해왔다던가 참여해왔던 분들이 다시 좀 참가해서 조금 우리 연극계의 건전하고 균형 있는 발전에 도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Come Back HOME!
이 : 대학로 포럼이 이전에 한상철 선생님이 있을 때. 예술 정책 연구소인가요? 대학로 포럼이 활발하게 활동 했을 때가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전 그린에서 ‘10만원 토론회’ 라는 것을 했고, 그 때 아마 액션21이라는 신문도 발간하고, 문화예술 위원회로의 전환과 대학로 문화지구 선정에서 대학로 포럼이 큰 역할을 했죠. 기초 연대도 만들어지고 일련의 일들이 이루어 졌습니다. 제가 볼 때는 채승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참여가 저조한 이유가 공공연하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대관, 지원, 심사 이런 것들이 불이익을 받는 다는 것이죠. 그와 더불어 그 때 주도적으로 활동하셨던 분들이 학교로 가신 이유도 있고요. 저와 두 선생님이 연배가 차이가 나는데 중간 정도에 액티브하게 좀 더 일을 맡아서 같이 갈 분들이 없어서 그렇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채 : 여기서 잠깐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대학로 엑스 포럼이라고 있잖아요. 최근에는 어떻게 활동 하고 있나요?
이 : 그게 매 달 개최되는 토론회인지는 모르겠고. 이번에 서울 연극제 대관 탈락과 관련해서 그것도 터놓고 얘기해보자 해서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연속적으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선생님 혹시 참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 : 참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관 탈락 사태 그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대학로에 있는 젊은 연극인들 비교적 젊은 연극인들 중심으로 진짜 오랜만에 많이 모인 것 같아요. 대학로 엑스 포럼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고 SNS를 통해서 가입신청을 보니까 참여율도 높구요. 제가 알기론 모임은 2번 가진 것으로 압니다. 형식도 상당히 현대적이고 괜찮은 것 같아요. 참가자들이 돈을 얼마씩 내서 미리 참가 신청을 하고 이런 식인데 참여 의지들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밖에서 봤을 때. 문제는 우리도 포럼을 해봐서 알지만 그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는 두고 봐야겠죠. 활동적인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상당히 좋게 봐야 할듯 합니다. 제가 쓴 원고도 그쪽에서 재인용해서 올리고 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쪽하고 저하고 잠시 연결 되었었습니다. 김소연 선생이 주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토론하는 내용을 ‘오늘의 서울연극’에 싣는 것은 어떠냐 했더니 그것은 완곡하게 거절하더군요. 각 개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두 번의 오프라인 포럼이 있었고, 주로 대관 탈락과 관련된 지원, 극장 이런 것으로 이루어졌었다. 그 이후로는 오프라인 모임은 모르겠고 SNS를 통해서 글들을 통해서 공유하고 그런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제 관련 글들도 올라와 있더군요. 모이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사실이고 어쨌든 더 지켜봐야겠죠.
이 : 우리 연극인들이 연극 만들기에 있어서는 굉장히 창조적인데,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개선하는 것에서는 무관심하고 게으르게 가다보니 여러 문제점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데요. 이러한 다양한 모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채 :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죠. 그리고 토론 문화, 다양한 의견을 서로 만드는 장이 존재한다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 올해 초부터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과 관련한 일련의 문제가 큰 홍역을 치루고 있는데요. 여차저차 했지만 다른 극장을 대관해서 연극제는 끝났지만, 서울연극제를 주관하는 서울연극협회 측과 아르코 극장을 대관하는 문화예술위원회 사이에 법적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근본원인은 어디서 오고 해결책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도 극단이 서울 연극제에 선정이 되면 당연히 공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또 다시 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잘 몰랐었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이번 계기를 통해 알게 된 연극인도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서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극장들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서울 연극제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오 : 저는 글도 썼습니다. 작년에 대관 탈락사태가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 서로 타협이 되었는데. 서울연극제 개막식 직전에 구동장치 이상으로 휴관 한다는 공문이 옴으로써 다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럴 수 있죠 물론. 안전이 중요하니까. 갑자기 돌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대처해나가는 문화예술위원회 태도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의심받을 일이 새기면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해결해가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그런 구동장치 이상 때문에 휴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보고가 되었다고 했을 때 위원장부터 나섰어야 되는 상황입니다. 위원장이 나서서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이다라고 했어야 합니다. 위원회가 민간단체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것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극장을 못 쓰게 된 것의 1.5배정도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었어야 합니다. 대체 공간을 구해준다거나 홍보를 적극적으로 같이 해준다거나 말입니다. 극장을 못 씀에도 불구하고 연극제가 성공 할 수 있도록 위원회가 총력을 기울여서 돕는다던가. 이렇게 해서 “아~ 이 정도 하는 것으로 봐서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겠구나” 했을 정도로 했어야지. 그래야 신뢰가 회복이 되는 것이지 공문 하나 딱 보내놓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감정적으로 나가도 사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이 갑작스러운 휴관에 들어간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처는 유연하지 못했습니다.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논리싸움을 하고 있었단 말이죠. 논리 싸움을 벌일 일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같이 해결해야 하느냐 하고 머리를 맞댔어야 하는데, 논리 싸움 하는 방식으로 갔었습니다. 양비론 이라는 것을 싫어하지만 서울 연극협회도 사실은 좀 짚어볼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제시하는 심사 기준이 연극제와 안 맞습니다. 그럼 이의 제기를 먼저 했어야합니다. 몇 년째 그냥 갔습니다. 그러니까 대관 탈락은 호의적이지 않은 심의 주관 그룹이 들어섰을 때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매년 심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안정장치를 해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일은 많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기관이 임시방편으로 “괜찮다”고 했다가 담당자 바뀌면 “모릅니다. 원칙에 안 맞는다”고 해버리면 끝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티켓 기금으로 안 되니까 복권기금으로 가는 것으로 바꾸었단 말이에요. 다 동의를 했습니다. 그때도 봤지만 1~2년 지나니까 복권 기금 쪽에서 소외 계층만을 위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니 제도가 바뀌어서 간신히 설득해서 학생을 넣는 쪽으로 마무리를 했죠. 지금 당장 괜찮다 하더라도, 심사 규정이 있지만 서울연극제를 떨어뜨리겠어? 괜찮습니다. 했다고 하더라도 심사 기준이 있고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면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꿔 놓으려는 노력을 했었어야 합니다. 굉장히 오랜 동안 방치를 했습니다. 방치했다가 일이 터지니까 이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속적인 사업에 대해서 떨어뜨릴 상황이었으면 고민하고 했어야 합니다. 위원회도 문제가 있지만 서울연극협회도 안일했다 생각합니다.
이 : 요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안전이 문제가 된다면, 모든 것이 STOP되어야 하는 것이 맞긴 맞는데요. 뭔가 석연치 않게 공감이 가는 행정이 아니란 말이죠. 그런 것이 민관 관계에 있어 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문예위가 예술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 기관인데, 오히려 시혜를 베푸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서울연극협회도 기존에 지원했던 방식을 고수해서 현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지적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한팩극장 역사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연극협회 초대 회장을 맡으신 채승훈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노력하셔서 현 한팩 부지가 상업시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대학로에 연극 공연장이 없으니 민간 극단들이 사용할 극장이 꼭 있어야 한다는 염원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채 : 대학로예술극장은 저희뿐만이 아니라 서울 연극인들의 여러 노력이 있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을 하구요. 여러 자리에서 얘기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를 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도 이번에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겉으로는 피상적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서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극계나 문화예술위원회나, 서로 주고받는 외면적 이슈들 말입니다. 언론들까지도 함께 하고 있지요. 그러나 사실 연극인 다수는 내면적으로는 다른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서울연극협회 또는 서울 연극인들이 그동안 야당 친화적으로 하지 않았느냐, 작년에 있었던 서울연극제 행사에 일정부분 그런 것들을 표현하지 않았느냐, 혹은 그동안 서울연극협회가 보여준 것들이 그런 것 아니냐 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이 밉게 보였기 때문에 길들이기 차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가 서울연극협회에 제재를 한 것이 아니냐 하는 얘기들을 연극인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합니다. 또 서울연극협회 지도부가 일정부분 빌미를 제공한 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그에 반해서 많은 연극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기화로 연극계를 그런 태도로, 나름대로 권한을 가진 공공 기관에서 창조자 측인 연극협회를 이렇게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주류적인 의견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여기저기 언론 등에 서술된 피상적인 이야기보다도 본질적인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걸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거죠. 여기서 한번 그게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한번 얘기해봅시다. 그게 그렇게 용서받지 못하는 일인가요? 그것을 가지고 길들이기를 해야 하나요? 예술인들이 어느 쪽이든 표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주 반복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의도적이건 우발적이든 그것은 예술가들의 하나의 주어진 창조적 권한 속에서 있는 일이다 이런 거 아닐까요?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 시대엔 그런 것들을 인정해주는 포용적이고 예술지향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설사 그런 일들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계 내의 자정 능력으로 해결해내기를 기다려 주어야한다, 열려있는 자세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체 내의 토론 등을 통해서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노력이 훨씬 더 성숙한 태도라고 봅니다. 그러한 것이 도리어 예술 쪽 해결방식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간에 서로 고소 고발이 오가는 연극계 초유의 사태로 가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사실상 창조자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로 되어있는 것인데, 도리어 이번 사태를 보면 공공 단체가 예술가들을 밀어주고 포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벽을 쌓듯이 차갑게 대하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건 근본적인 그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폭넓게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로포럼도 관계된 이야기지만, 과거에 문예진흥원을 수평적 구조의 위원회 체제로 전환을 하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문화예술시대에 걸 맞는 개혁의 중요한 단계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혁을 절반 밖에는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사방식의 문제입니다. 공모라고는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형식적이며 아직도 수직적 임명방식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누구나 공모를 하고 그들의 포부와 잠재력 등을 다수의 전문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채점해서 임명하는 방식, 그래서 예술인들 대다수가 수긍하는 인사가 장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데 그것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단체장들이 예술계 전체의 의견을 통해서 선출된 분들이라기보다는 관에서 임명된 분이라는 인상이 강한 겁니다. 개인적으로의 능력이나 예술적 안목 등이 어떤지 여부는 살펴볼 여유도 없구요. 그러다보니까 그 분들이 혹시나 예술계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생각을 갖기 보다는 도리어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 소위 관권 등에 의해서 주체성을 잃거나 이러진 않을까 그런 우려가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잘 해결되고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관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은 예술계에 있는 공공 단체의 인사권을 모든 예술인들에게 돌려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근만 주고 채찍은 거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수십년간 예술계의 공공단체장들은 그때의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독차지 했지요. 그러다 보니 예술계 내부에서도 항상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는 거구요. 힘없는 예술계를 좌지우지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되묻고 싶어요. 예술인들은 개성이 강하기에 이렇게 표현도 하고 저렇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예술적 시각 안에서 모두가 용인되는 풍토, 이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민도를 높이고 소위 완전한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부디 인식해주기 바랍니다.
오 : 예술은 비판적이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의 비판적인 면을 포용하지 못하면 그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게 불편하면 반성해야 한다. 정부가 되었건 산하 기관이 되었건 예술의 속성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얼마나 신랄하게 세상에 대해서 비판을 했습니까? 그런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인간과 사회에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본정신이지요. 그리고 서울연극협회 회장 개인적인 것이 있겠죠. 다만 개인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거야 말로 사실은 어디서부터 갈라져야 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그러워도 되지 않느냐… 설령 그것이 구분이 잘 안 될 때 지적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불이익을 준다. 그건 안 되죠. 공사를 구분하라고 지적을 하면 됐지, 공사 구분하라는 지적을 하지 않고 불이익을 주어서 버릇을 가르치겠다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만 하더라도 맨 처음 위원회 운동을 했을 때 두 가지였습니다. 인사가 예술계에서 원하는 그런 식으로 되기를 희망 했던 것입니다. 예술계 전체가 투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추천 절차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천위원회를 만든 것인데, 그 추천 위원을 누가 추천하느냐 때문에 문제가 되었죠. 결국은 관에서 입김을 넣으려면 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는 관에는 열려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 때도 인사 그런 원칙이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마저도 나중에 다 바뀌었더라고요. 인사 추천위원회에서 위원을 추천해서 결정되면 그 위원들이 모여서 위원장을 호선하면 임명되는 것이었는데, 인사 기본법이 바뀌고 임기가 3년에서 2년으로 줄면서 위원이 이사가 되면서 다른 규칙들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죠. 위원장도 호선이 아니라 별도의 추천 위원회에서 두 명을 추천하면 그 중에서 문화부장관이 임명하는 식이에요. 그러니까 맨 처음에 만들었던 호선의 정신이 없어져버린 그런 인사부분에 대해서 원래도 인사 추천 위원회 방식도 문화부에서 열린 방식이 아니면 종속될 수밖에 없다. 해서 간곡하게 부탁했던 부분이 열린 인사를 취해 달라. 지금은 아주 그냥 제도적으로 마지막 낙점을 찍을 수 있게 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산 문제였죠. 안정적으로 예전에는 기금을 몇 천억을 쌓아놓고 이자를 가지고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거예요. 그 수익을 가지고 지원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정부 예산을 가지고 해야 한다. 매년 예산을 편성해서. 예술 지원은 꼭 필요한 거니까. 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지키는 문제이니까. 앞으로 그렇게 제도가 바뀌기 전까지 급하니까. 기금을 헐어서라도 당장 버티면서 정기적으로 안정적으로 마련하자 라는 취지에서 기금을 헐어 쓰자 했는데 알고 보니 10년 동안 헐어만 썼지 대책마련은 안 했더라구요. 그래서 기금이 1천억도 안 남아 있어요. 올해 쓰면 없다고 합니다. 기금 고갈 상태인데… 그것을 어떻게 위원회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냐 이거죠. 국가가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위원회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닌데…위원회는 고민하는 것 같은데 국가는 고민을 별로 안 하죠. 같이 고민해야 하는데 기금은 없다 그러면 매년 국가 예산으로 해야 한다고 확실하게 해야 하는데 확실하지 않으니까… 위원회 직원들이 왜 그 걱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걱정을 한단 말이죠. 이거는 실무 담당자들이 고민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인사 부분과 예산 부분이 우리가 생각 했던 것과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그리고 아까 얘기 했듯이 전체적으로는 예술에서 나오는 비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얼마 전에 박근형씨가 연출한 <개구리>라는 연극 있잖아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 극단에서 이런 연극을 하면 되겠느냐? 전 그 얘기 자체가 넌센스 같습니다. 아니 국립극단은 예술이 아닌가요? 예술이 비판적인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도 보면 우리 민간서부터 왕들이 즐기는 예술까지 비판적인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조선시대도 그랬는데 21세기에 그걸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그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비판하니까 불편하다가 아니라 비판이 없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같은 경우는 차관급정도인가요? 개방형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공모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 : 공모 합니다.
오 : 합니다. 공모해서 두 명으로 압축 해 놓으면 마지막에 문화부에서 찍는 식입니다.
이 ; 공모가 굉장히 형식적인…
채 : 항상 그렇죠.
오 : 공모를 한다면 과정이 투명해야 하는데 공모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공모에 응하면서도 알아서들 낼만한 사람들만 낸다고 그러는데
이 : 본인이 하든 아님 좋은 분을 추천하든, 자기가 기관장이 되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약들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 되면 좋을 텐데요.
오 : 공모를 해서 하는데 우리도 다 알 수 있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가 문화예술 위원회 위원장이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예술인들이 알고 우리는 누구를 지지한다. 그런 공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의 계획서를 내긴 하겠지만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고… 인사위원회 정도에서 보고 심사 하는 것이겠죠. 예술가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쪽으로 하고 싶다. 그런 쪽으로 된다면 하겠는데 지금 식의 공모 가지고는 예술계의 의견이 정확하게 들어가기 어렵죠.
채 :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서 기타 공공단체들, 그냥 그 정권이 바뀌거나 그러면 거의 낙하산 비슷하게 임명이 내정되어 있거나하는 관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가기도 하지만 그 내막을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쪽 사람들을 심어서 그들을 장 자리에 앉혀놓으면 그쪽 계통이 대체로 우리 편이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겠죠.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예술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발 빠른 사람들이 아예 선거 전에 줄을 대고 나중에 자기 고향인 예술계에 금의환향 하듯이 임명을 받아서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거죠. 이게 큰 발전이 있을까요? 예술계에? 그런 정치적인 논리로 해서 단체장들이 된 경우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 이름을 적시하긴 그렇지만, 세월을 좀먹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문화를 청산해야한다고 보는 거죠. 자리에 걸 맞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고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인사가 적재적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갈 길이 먼 연극계의 발전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합니다. 시급합니다. 연극 교육이나 복지 등등 여러 분야에서 애써 오신 오 선생은 이런 측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 : 문제는 누가 보더라도 그걸 맡을 만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 능력과 열정이겠죠. 능력과 의지를 갖춘 분들이 맡아서 100% 찬성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그런 인사가 이루어지면 괜찮은데 가끔 가다 보면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결정되면 저분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인데 맡을 때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는 참 의아합니다.
채 : 배도 좀 아파요. (하하하하하)
오 : 원래 사회라는 게 그런 거야 하고 넘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도 인적자원인데 그런 부분은 좀 안타깝죠.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가야 하는데 차선도 아니고 차차선도 아니고 최악을 막는 차악정도를 기대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채: 부연할게 있습니다. 서울연극제 대관사태 벌어진 이면에 연극계 내부에서 갈등이 조성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소위 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을 주축으로 한 지도부 등이 편향된 행동들을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런 태도가 그런 사태를 초래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연극협회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런 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다는 얘기 말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갈등이 서울연극협회가 문화예술위원회와 대립할 때에 서울연극인들이 구심점을 갖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연극인들이 소위 연극계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러한 여건 조성을 책임 있는 연극인들, 중견 연극인들,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연극인들이 나서서 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연극계가 좁은 바닥이지만 생각보다는 굉장히 다양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갈등관계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가 21세기를 들어서 15년이나 지난 2015년입니다. 한국 연극 100년도 지났구요. 공존의 문화, 공존의 미덕을 만들어 나가야될 책임이 우리세대 연극인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 신파극과 신극의 다툼의 결과로 신파극이 사라져버린 예에서도 보듯이, 이룬 토양이나 가진 재산은 별로 없는 연극계에 불행하게도 서로 공존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문화가 먼저 자리 잡은 거죠. 마치 삼류정치인들이 하는 행태를 가지고 만들어진 문화, 그것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오늘날 까지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편협한 연극인들도 간혹 봤구요. 이 시점에서 그런 갈등 구조를 극복하고 화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데 허심탄회하게 모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빛나는 태양 아래 우리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냅시다. 과거에 저질렀었던 우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오 :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연극인들이 아 정말 우리 협회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 가기보다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여유가 없고, 그래서 정보가 그렇게 활발하게 흘러나오지 않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 연극제 심사를 한다고 했을 때 과감하게 심사 과정도 공개 한다면 심사위원도 긴장되겠죠. 책임지고 왜 이런 작품을 뽑느냐 라든가. 이런 식으로 어렵더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느 순간 갑이 되어 버린단 말이죠. 일반단체는 그들만의 싸움이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진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해볼 필요가 있나? 할 정도로 했으면 좋겠어요. 말 많고 시끄러운 것을 감수하는. 지금 반대로 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서울연극협회고 일의 집행을 하는 입장에서 힘이고 권력이란 말이죠. 똑같은 것을 일반단체가 느끼지 않도록 비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이런 일이 있을 때 연극인들이 다 나서는데 사실은 그렇게 다 안 나서게 되는 이유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그런 이유에서 깊이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채 :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모든 구성원들한테 파이의 조각들을 빠짐없이 모두 다 나눠 줄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연극계같이 가난한 동네에선 말입니다. 그럼에도 전체를 다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화합방정식은 존재합니다. 오 선생이 언급한 것처럼 공정한 룰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말입니다. 그런 과정들을 정말 멋지게 보여주면 통합과 화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신뢰가 기본이 된다면 수긍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죠, 당연히.
이 : 오래된 이야기인데 영화 쪽에서 스크린 쿼터 관련해서 여러 주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우리 연극계는 왜 저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거든요.
채: 아니에요. 말 끊어서 미안한데요. 당시에 영화인들도 다 한 목소리를 낸 건 아니에요.
이 : 제 말은, 그렇다면 영화를 떠나서 우리 연극계가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뭔가 새로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니면 협회가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를테면 한국연극협회가 모든 주체들이 들어가 있는데 가능할까요? 아니면 제 3의 뭐가 나와야할까요?
채 : 예술계 아니 연극계만 하더라도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도 있고 그 외에 여러 단체도 있지만, 한국에 있는 모든 연극계 종사자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통합을 지향하고 같이 어울려서 공존해야 한다면 모두가 함께 하는 그런 단체 구성이 이루어져야하는 때가 있어야 하겠죠. 그러나 한편으론 단체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냐 하는 견해도 있죠. 어떤 나라에서는 그런 게 거의 없는 나라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잘만 운영된다면 회의체들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발전에 더욱 좋다고 봅니다. 연극도 다양해지고 표현 방식, 제작방식, 참여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런 다양함 속에서 회의체 또한 다양해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죠. 시민문화 또한 계속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요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체가 필요할 수 있고 말입니다. 그와 함께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등의 지역협회, 연출가협회, 배우협회 등등 기존의 단체들은 개혁을 해야죠. 지금과 같은 상태로서는 아무리 잘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합니다. 한국연극협회의 예를 들자면 1차 폭발은 있었죠. 한국연극협회에서 서울연극협회가 분리 독립된 것만으로도 개혁의 하나입니다. 1차 개혁이었죠. 2차 폭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미흡했다고 봅니다. 지난 10여 년간 말입니다. 이름만 요란한 시상제도 만든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협회 홈페이지 들어가 보십시오. 고생하는 회원들에게 무슨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소식이 있나요. 연극발전의 기본이 뭡니까? 능력 있고 의욕에 찬 신진 연극인들을 많이 입문하게 하고 그들이 공정한 제도 속에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환경조성 해주고 그러므로 해서 시민관객들이 연극에 좀 더 많이 호응해주고, 열심히 잘하는 기성연극인들은 계속 응원해주고 그런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소위 협회라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도리어 그 반대로 해왔던 것 아닌가 합니다. 능력에 관계없이 그저 협회에 관계하고자 선거에서 한 역할이나 하면 지역에서 행세나 하고, 예총임원이나 되려 하고, 지원금은 독차지 하려하고, 상이나 먼저 타고, 말 잘 듣는 후배나 겨우 챙기고, 그런 이력으로 나중에 한자리나 차지하려하고 말입니다. 신진 연극인들은 그러다보니 눈치나 보게 하고 말입니다. 눈칫밥이 기회가 되고, 줄을 잘서는 것이 쉽게 크는 방법이 되는 막장으로 전락한 연극계, 그 일차적인 책임이 협회들에 있습니다. 그런 불합리한 흐름이 우리 연극의 동맥을 끊어 놓은 거라고 봅니다. 과거보다는 많아진 연극인, 많은 지역, 다양한 연극 등을 모두 수용하고 화합, 통합하려면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수직적 구조를 고수하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절대 통합할 수 없습니다. 통합이 안 되면 무슨 일이든지 힘을 받지 못합니다. 수평적 구조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선거도 전체 구성원들의 요구가 골고루 반영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지역에서 나름의 연극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권을 독차지 하는 방식으로는 통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한국연극협회는 지역연극협회들의 연합으로만 존재하고 각 장르별 협회는 완전 분리되어서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 협조와 균형을 이루는 형태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극계에 공정성이 담보되고 많은 것을 연극계 밖으로부터 얻어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정관개정도 과거에 한 것인데 왜 아직도 그대로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국연극제가 대한민국연극제로 명칭이 바뀌고 서울연극협회 작품이 참가하게 되었다는데 그것은 잘된 것입니다. 과거 서울만의 연극에서 전국의 연극으로 개혁되는 과정이지요. 이것은 서울연극협회가 분리 독립된 결과입니다. 다른 협회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이 있지만 다음 기회로 하지요.
오: 협회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분야 이기주의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질적인 부분 때문에라도. 예를 들어서 연극계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과연 연기, 연극 관련 일들이 어디까지를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봐야 하느냐예요. 예를 들어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을 한다거나 수많은 홈쇼핑의 그런 것이라던가. 그런 분야에 대해서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할 수 없다든가. 외국에는 되어 있을 거예요. 아무나 훈련 받지 않고 전공도 안하고 현장경력도 없는데 갑자기 길거리 캐스팅이 된다는 것은 우리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실은 협회나 조직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거든요. 적어도 몇 퍼센트 이상은 전문 인력을 써야 한다 이런 것은 협회도 그렇고 교수협의회도 그렇고 굉장히 중요한 일 같은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 오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만,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관련한 문제가 커서 그쪽으로 이야기가 집중된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론 2011년인가요. 최고은 작가의 사망을 계기로 이른바 ‘최고은 법’에 따른 예술인복지법이 예술계는 물론이고 사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언론 등에서 한참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더디고 미진하기 하지만 예술인복지법이 통과 되고, 예술인들의 복지와 창작 활동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예술인복지재단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운하 배우의 쓸쓸한 죽음을 묵도하면서 과연 예술인복지법에 의한 예산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가 우리 사회, 문학계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우리 연극계는 표절, 저작권 문제에 대해 그 시장이 크지 않아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둔감한 것 같습니다. 다음 오채까담에서는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서 현 시점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굉장히 좋은 대담입니다. 우선 ‘발언’이 없는 연극계에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대환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동네에서는 이런 말도 하고 있습니다. 자칫 ‘발언’이 대학의 전임이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발언’을 꺼린다고요. 눈치를 살피는 것이라고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부탁이 있는데, 발언의 정확성을 위해 ‘소리 말’을 그대로 적시하면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용을 알기 어렵습니다. ‘글말’과 소리 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은 발언 내용을 요약정리해서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많은 좋은 내용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표절, 저작권’ 등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참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