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채 까담
주 제 : 예술과 권력
일 시 : 2015년 10월 14일 오후 4시
장 소 : 극단 노을 사무실
참석자: 채승훈(연출가), 오세곤(연출가), 이신영(연출가, 사회), 이채원(서기)
이 :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치적 검열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대학로의 한 공간에서 문화연대, 서울연극협회, 대학로x포럼 등이 주최한 연대포럼이 있었습니다. 문화의 세기라 할 수 있는 21세기에, 그것도 이 정부에서 국가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문화융성과는 완전히 괴리되는 처사라 하겠는데요. 특히 심사과정에 지원 기관이 개입해서 특정 예술인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종용하거나, 이에 더해 그 심사대상에게 직접 찾아가 포기를 권고했다는 기사를 접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이에 서울연극협회, 연출가협회, 작가협회 등에서 이미 많은 성명서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국가지원 철학이 “지원하지 않고 간섭한다.”로 둔갑한 것 같습니다. 예술지원 기관이 지원만 잘 하면 되지, 왜 심사과정에 개입을 하고, 각종 검열을 통해서 작품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걸러내는 걸까요? 오늘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 : 뭐 기본 인식의 문제죠. 예를 들어, 내가 개인적으로 누구를 도와줬는데 그 사람이 나를 욕한다고 하면 왜 도와주고 욕먹나 하는 생각을 할 거에요. 정부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맞는 것처럼 보여요. 정부가 예술가들을 도와줬는데 도움을 받은 그 예술가들이 작품에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맞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 지원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개인적으로 누구를 돕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죠. 국가가 예술을 지원을 한다는 것, 일단 그것은 국가의 돈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국민의 돈이고, 따라서 국민의 돈으로 지원을 한다는 것이 맞는 것이죠. 예술이 국가와 민족,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요소라 할 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지원은 아니거든요. 마치 국방을 위해서 군대를 유지한다거나 환경을 위해서 물과 도로를 유지한다거나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예술은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 요소인데, 그것을 자꾸 지원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혜택을 준다고 생각한다거나, 게다가 마치 그것을 개인이 지원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죠. “내가 너희를 도와줬는데 날 욕해?”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은 비판적이 아니면 이미 예술이 아니에요. 세상을 늘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것이 예술이지 항상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이죠. 늘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예술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근본적으로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입맛에 맞는 것을 정해 놓고 여기에 맞지 않으면 잘못됐다고 한단 말예요? 너무 초보적인 수준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비전문가들에게 조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우리는 그냥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설명하라 그러면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이미 오래전 겪었던 시행착오를 또 다시 겪고 있어요. 완전히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걸 설득하는 것도 한심하고, 그래서 이것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예술지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선언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지킨다면 국가 내지 정부의 자격이 있는 것이고 아니면 없는 것이죠. “자격이 없다.”라고 한다면 그런 상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분명해지는 것이죠. 어쨌든 “예술은 이런 것이고 예술 지원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은 분명히 명백하게 하나의 일종의 진리처럼 선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자격이 되는지 안 되는지 결정하는 하나의 지표로 세워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채 : 이번에 일련의 사건 진행과정들, 즉, 일단 박근형씨사건과 또 이윤택씨사건, 그 다음에 또 최근에 알게 된 거지만 다른 예들이 또 있죠. 이런 것들을 보면서 박근형씨사건 같은 경우에는 문화예술위원회나 정부 측 입장의 심리에는 이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국립극단에서 <개구리> 공연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소위 찍힌 연극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윤택씨 같은 경우에는 야당 대표인 문재인 전 대통령후보를 지지했다는 전례가 있고요. <안산 순례길>도 심사에서 떨어진 것도 유사한 경우고요. 사안이 조금씩 다 다르지만은 이것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예술탄압의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항간에 떠도는 블랙리스트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의심도 들고요.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연극인 출신 장관이 일방적인 문화 행정을 할 때, 그때는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해서 연극인들이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단 말들이 돌았고요. 그게 사실인지는 확인이 안 되지만, 요즘에 결과적인 것을 보게 되면 그러한 블랙리스트 내지는 예술가들을 감시 감독하는 보이지 않는 눈들이 존재함을 짐작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집권자를 우습게 만들었다라고 해서 그것을 괘씸죄로 다루는 것, 이것도 명백히 옳지 못한 것이지만 그것을 포함해 전반적인 사항을 보게 되면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흥분해서 벌인 일이라고 보기 보다는 좀 더 조직적이고 좀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으로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눈이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는 거죠. 비판하지 말라고 재갈을 물리는 것, 이것이 가장 명백한 입장이죠. 불행하게도 일회성이라고 볼 근거가 희박합니다. 글쎄요, 솔직한 얘기로 지금 아무런 답변이 없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어떤 답변도 없어요. 전혀 제스쳐도 없구요.
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예술계 편파 지원 논란에 대한 입장’이란 글에서 해명 글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이 해명 글도 우리 연극인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억측으로 점철된 글로서 논란을 증폭시킨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채 : 연극인들이 요구한 것들이 있잖아요. 사과라거나 해임이라거나 이런 것들에 관해서요. 그것을 떠나서 어떤 변명도 그 이후에 아무 것도 없어요. 이것은 무엇이냐.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표현인데, 지금 우리를 벌레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린 무엇이냐? 이런 생각이……. 자괴감이 드는 거죠. 떠들어라,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거나, 틀렸다 맞았다 토론의 대상으로도 되지 않는 그런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 늘 그렇듯 “저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채 : 완전히 무시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 그것은 나도 그렇게 느껴요. 예전에는 이런 것을 숨기려고 하고, 드러나지 않고 교묘하게 했었는데, 이번에는 교묘한 것이 하나도 없고 아주 거칠어요. 얼핏 조직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칠어요. 세심하지 않게 “그냥 안 돼” 이런 식인데, 그렇게 하는 것을 쭉 지켜보니까 상당히 일관성이 있는 거예요. 숨기지 않는다.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별 문제없다는 인식인 것이죠. 해명 나온 것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문제 제기를 한다. 그런데 무조건 그것에 대해서 사과할 수도 없는 것이고 설명할 것은 다 했다.” 이런 태도인 거예요. 이건 엄청난 자신감처럼 보이기도 하고 커다란 원칙이 서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랬을 때 내가 처음에 했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인식, 뭐 거기에는 아까 채선생이 이야기한 것에 더 해서 국민, 국가에 대한 인식과 결부가 되는 것 같아요. 생각 자체가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예술에 대해서 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봉사와 현 정부가 생각하는 그것이 전혀 다른 것 같고요. 현 정부는 ‘용비어천가’처럼 국가 시책을 찬양하는 그런 역할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이고, 지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지원 대상이 아니라 처벌 대상이고 막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 지점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어요. 과연 예술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들은 후 그게 명백히 틀렸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은 자격이 없다.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사실은 이번 국정 교과서 사태를 봤을 때 뭘 느꼈냐면,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더라고요.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일종의 법이죠. 그것에 따라 교과서를 쓰게 되어 있어요. 그 쓴 것을 놓고서 검정을 하고 심의를 한단 말이에요. 거기서 표현이 과하거나 논리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뭔가 왜곡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심의에서 수정 의견을 내고 마지막에는 수정 지시를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교육과정이에요. 근데 그 교육과정 상에 학습 요소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성취기준이라는 것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 북한을 가르칠 때 당연히 주체사상, 천리마 운동, 세습 이런 것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들어가야 할 요소로 못 박혀 있어요. 앞으로 국정교과서를 쓰더라도 그것은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교육과정이라는 것에 대해 비전문가들이잖아요. 새누리당이 현수막을 붙였잖아요. “자손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칠 것이냐”. 가르쳐야죠. 당연히. 북한은 없다고 할 거예요? 있잖아요. 그게 아주 상식적인 교육과정을 짜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 들어가 있는 건데, 국민들 대부분이 교육과정을 잘 모르는 것을 악용하고 있는 그 수준이라는 거죠. 교육과정도 모르면서 교육을 운운하는 한 나라의 여당이 공개적으로 그런 현수막을 붙이니 정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적어도 한 나라를 운영한다고 하면서 예술이 뭔지, 예술지원이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아주 초보적인 이해도 없다는 것이죠. 그럼 얘기할 것이 없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사과를 하라고 하지만 사과를 어떻게 하겠어요. 사과 안 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조차 안하는데, 어떻게 사과를 해요. “돈 줬는데, 돈 받고서 우리를 욕해도 되나?” 이 수준인데요.
채 : 돈을 마치 자기네 개인 주머니에서 내준 것 마냥 행동한다는 거죠.
오 :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난 그 수준으로 봐요.
채 : 우리 예술인들을 기업의 홍보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오 : 그런 거죠. 우리가 월급 받는데 회사를 욕해도 되나 이런 거죠.
이 : 제가 알기에 처음에는 드러내놓고 하진 않았던 것 같고, 박근형 연출가님의 <개구리>라든지 이윤택연출가님의 이야기가 국정감사에서 얘기가 나오니까 마지못해 해명한다고 한 것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이후에 아예 지원기관이 통제하고 간섭할 수 있다 라는 길로 방향을 틀어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드러 내놓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국민들의 혈세를 공정하게 써야하는 기금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예술위원회의 각종 심사과정에서 최종결정은 해당 심사위원이 아니라 문화예술위원회에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오 : 그런데 그게 만약 그렇다면 처음부터 공표가 돼서 공유해야죠. 심의 위원들이 심의를 하지만 위원들이 조정을 해서 최종 확정을 한다는 문구가 어딘가에 있어야 해요.
이 : 맞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최고 점수를 준 작가의 작품이 배제될 정도라면 심사한 위원들이 굉장히 자괴감이 들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이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죠. 그런 정보를 사전에 알고 심사를 했느냐가 중요한데, 이렇게 문화위에서 간섭할 정도면 애초에 보이콧할 심사위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봅니다.
오 : 심사할 때 예비 뽑아달라고 하잖아요. 뽑아주고 주를 붙인단 말이에요. 어떤 것들이 충족이 안 되면 예비로 넘어간다든가, 예비에서의 결정은 위원회에서 알아서 하라든가 이렇게 할 수는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최종결정을 위원회에서 이거 빼고 저거 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채 :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았어요. 문화예술위원회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정된 작품에 대해서 경제적인 부분을 배분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작품의 내용이나 창작자들의 성향을 판단해서 가부여부를 최종적 결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이고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보기 힘든 일을 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그랬단 말인가요?
오 : 네. 문학작품 102작품 올렸더니 70작품만 뽑아 올렸잖아요. 102작품을 뽑은 곳은 심사위원회인데 거기서 70작품을 뽑은 건 문예위원회입니다. 거기에 탈락된 32작품 중에 이윤택씨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 거지요.
채 : 그런데 점수제로 한다면 순위는 매겨질 수 있겠죠. 그리고 한정된 액수를 조정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커트라인이 생길 수는 있겠지요.
오 : 그런데 그것은 심사위원들이 위임을 해줘야 해요. 심사위원들이 우리는 예비로 돈 되는데 까지 해달라고 그랬을 때 가능한 이야기지요.
채 : 그것도 그렇고 이윤택씨 작품은 최상위 순위를 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까 그것은 그렇게 무슨 예외적인 조항에도 걸릴 수 없는 작품이잖아요.
오 : 그러니까 다른 원칙을 적용했단 것이죠. 위원들이 이 사업은 중견을 지원하는 거란 겁니다. 최고가 아니라 더 최고로 가야할 중견을 지원하는 지원 사업인데 최고가 선정되었다라는 식이죠. 그런 원칙을 가지고 선별을 해서 70작품을 골랐다는 말이에요.
채 : 아주 어린애 같은 궤변으로 타당성을 이야기한 것이군요.
오 : 문화예술위원들이 직접 한 이야기는 아니고, 해명이라고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낸 것이니까……. 위원장 혹은 장관의 이야기니까.
채 : 예술에서 최고라는 개념은 무엇이고, 중견과 최고는 어떤 구별점을 갖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유치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언어유희를 가지고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문화예술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예술적 지식을 가지고 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치원생 같다는 생각이 들죠. 문화예술위원이든 위원장이든 이미 심사가 끝난 것을 가지고 가부결정을 또 다시 논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명분상으로도 그렇고,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토론의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야하는데, 지금 우리는 성토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없다는 것은 연극인들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국민들 알기를 뭘로 알고 있는 겁니다. 이것저것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밀어붙이고 웬만한 사람들을 동원해서 떠들어대고 여론조성하면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끝납니다. 사계의 의견 전혀 듣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겁니다. “그냥 무시해도 되네, 무시해도 먹히네! 병신들이네!, 수천 만 명이 병신으로 보이는데 고작 몇 천 명도 안 되는 예술인들이 떠든다고 우리가 끄떡이나 하겠냐?” 이런 게 아닌가 해요.
이 : 제가 이런 사태에 이른 근본 원인에 대해서 과거 기록을 좀 찾아보니까 벌써 12년 정도가 된 것 같은데, 2003년도에 대학로포럼에서 당시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에 대해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여기 이 자리에 계신 두 분께서는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 시에 많은 기여를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원회로의 전환에 있어 핵심은 인사제도의 투명성, 심의절차의 공정성을 꾀하고 그리고 적재적소에 기금을 쓰는데 있어 우리 공연예술인이 그 주체자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반대도 있었지만, 정말로 예술인들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자 3,000인 예술인 서명 등 간절한 염원이 모아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그러니까 진흥원의 지원체제 등의 문제점은 무엇이었고, 위원회로의 전환 시 어떠한 것을 기대했었습니까? 답답한 것은 왜 다시 진흥원 체제 이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채 : 지난 정권 때부터 그런 것 아니에요? 예술인들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세워줘야 될 문화예술위원회의 독립성을 도리어 저해하고, 이에 더해 근무 연한이 남아있는 위원장을 압력으로 내보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려고 한 거 아닙니까. 부족하고 미흡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문화예술위원회의 개혁과 독립성, 투명성, 공정성 확보라든가 이런 것 등등을 더 확충시키고 더 공고히 해야 할 시점에서 그것을 다시 과거로 되돌린 장본인들이 지난 정권 인사들이었다고 봐요. 예술인의 자존심을 더욱 가져올 수 있었던 때에 도리어 인사권을 더욱 수직화 해버리니, 문화예술위원회 위원들도 제대로 항변 못하고 결국 문화예술위원회는 문광부 산하 작은 관청과 다름없게 된 거죠.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이나 위원은 진짜 예술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딱 중립적이고 독립적이고 예술인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하고, 문화예술위원회는 그것이 잘 되도록 행정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그냥 관청처럼 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이름만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었는데, 그 때 전환운동을 했던 우리 같은 사람들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역사회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그렇게 한 번 밀어붙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가서 돌멩이를 던지겠어요, 뭘 어쩌겠어요. 그러니까 밀어붙이면 통하니까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고, 예술인들은 알량한 지원금이라도 받으려다보니까 계속 눈치를 보게 되고 이러다 보니까 이런 지점까지 오지 않았나 해요. 여기서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이런 일에 원로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자존감을 지켜서 뭔가 나서는 어른들이 적어요. 이런 일 벌어지는데 그냥 그저 고개 숙이고 복지부동하는 그런데만 익숙한 어른들만 있지, 쓴 소리 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정부에서 무슨 일을 추진할 때, 그렇게 약해 빠진 어른들과 식사한번하면서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킨 거잖아요. 당시에 문화예술위원회의 과거회귀도 그렇고, 국립극단 해체해서 끌고 나오는 것도 그렇고 다 일방적이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전체의견은 하나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몇 분하고 밥 먹고 말입니다. 그 앞에서 박수쳐주고 이런 사람들 누굽니까? 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소에는 존경하는 예술 선배들 아니에요. 불행한 일이죠.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 낸 거예요. 이런 상황을.
오 : 물론 우리 스스로 자책을 해보기도해요. 문화예술위원회를 만들자고 운동을 한 그 다음에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든지 왜곡된다고 느껴지면 바로 반응을 보이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 부분들에서 볼 때는 자성, 자책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감시하지 않으면 호시탐탐 되돌아가는 것이었나? 그건 나쁜 거죠. 그리고 우리의 본분이 그런 실무 차원의 감시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때도 “왜 우리가 계속 국회에 가서 이거 바꿔달라고 해야 하나, 시간 없어 죽겠는데?” 이랬단 말이에요? 그래도 시간을 내서 했어요. 최소한 우리가 노력을 해서 해줬으면 잘 가줘야 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어쩔 수 없이 나선다 하더라도 빨리 본연의 자기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어요. 사실은 어느 정도 잘못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겁이 나는 게, 자세히 알고 나면 또 나서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 약간의 안일함을 이용한다는 것이죠. 감시 제대로 하지 않는다. 또 설령 어느 정도 문제가 있어도 이것은 마주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런 예술인들의 속성을 갖다가 악용을 한다 이거죠. 그래서 참 굉장히 회한이 있어요. 2003년 그때 문화예술위원회가 되고, 아까 이신영 사회자가 말한 것처럼 독립이 되어야 하니까 예산 문제를 이야기한 거예요. 예산 없으면 꼼짝 못하고 종속된다는 거죠. 문화부가 예산을 가지고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당장 부족한 예산은 기금을 깨서라도 충당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고가 자동적으로 책정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거고요. 인원 구성도 바뀌었어요. 초기 2년차 때 바뀌었나요? 국가인사기본법이 바뀌면서 위원들이 이사로 바뀌었고, 임기도 2년으로 바뀌는 그런 일도 벌어졌습니다. 위원장 호선하는 제도도 없어졌습니다. 위원장은 별도로 추천을 하면 장관이 낙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바뀔 때부터 어쨌든 문제의 소지가 발생한 것인데 그러한 것은 작은 문제라고 생각해서 놓친 거예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유인촌 장관이 들어서면서 김정헌 위원장을 내쫓는 그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시적으로 드러난 예일 뿐이고, 이미 그때는 그 정도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악화시켜 놓은 상태였어요. 우리가 맨 처음에 얘기했던 독립성이라든가 투명성이라든가 예산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이미 많이 잃어버린 상태가 되어 있지 않았나, 그런데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더더욱, 언제부턴가 예술인들이 아예 기대도 안하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린 겁니다. 예술인들이 다 같이 똘똘 뭉쳐서 얘기를 한다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다음 작품이 걱정인 것이고, 지원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걱정인 것이고, 이러면서 점점 파편화하고 약화되어 온 것이 지금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호시탐탐 역행시키려는 자세가 문제지만 우리도 못 지킨 것에 대해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 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위원장 선임이나 위원임기 기간의 변화 등의 정보가 수시로 공시되나요? 아니면 누구한테 물어봐야하는 건가요?
오 : 우선 위원으로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위원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변화가 있었거든요. 그럼 그것을 다시 예술계에 알려야 하잖아요. 예술계가 같이 노력해서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런 제도가 바뀌고 있다 이런 것을 안 알리는 거죠. 난 거기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봐요. 예술가는 모두 자기 일 하기도 바빠요. 자기 일에 집중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어쨌든 호소는 했어야 하는 거거든요. 자기들은 알고 그것을 수용하고 넘어갔다는 말이에요. 맨 처음에 우리는 민간 주도를 생각했는데 그게 점점 관 주도로 바뀌어가는 과정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법이 자꾸 바뀌면서요. 그런데 그것을 무기력하게 수용을 다 했단 말이죠.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랑티켓을 복권기금으로 한다고 했을 때 다들 우려는 했지만, 돈이 더 많아지니 좋다고 했단 말이에요. 웬 걸. 사랑티켓 2년인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복권기금에서 참견하기 시작해서 소외계층만 해당된다고 다 바뀐 거잖아요. 사랑 티켓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 말이에요. 예술가들이 어떤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못한다는 약점이 계속 악용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예술가들마저도 그런 것들을 공유하기 보다는 일단 들어가면 혼자 즐기는 권력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그 위원들한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위원회는 예술계를 대표해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들은 대표해서 들어갔다 보다는 자기들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고요.
이 : 문예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 할 때 일부 예술계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사실은 연극계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이 공정성, 투명성, 자율성 등 그런 명제가 있었는데요. 위원회로 전환 시에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고 어떠한 긍정적인 요소를 기대하셨는지 그것을 조금 더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채 : 모든 일에는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예술인들의 염원이 표현된 거잖아요, 물론 반대가 있었지만, 반대한 사람들의 심리구조는 아직도 전 이해는 안가요. 왜 반대했는지. 당시에 예술계의 주도권이 민예총으로 넘어간다,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위원회로 제도가 바뀌면서 민예총으로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우려를 해서 반대를 했다는 건데, 뭐가 넘어갔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총은 뭐고 민예총은 뭡니까, 이 시대에, 미래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예측을 한 그런 사람들이 정말 우습습니다. 그런 사람들 지금 뭐 말 한 마디라도 있어요? 어찌되었든 손뼉의 한쪽은 예술인들입니다. 그 당시에 대다수의 예술인들은 예술계의 행정이 수평적이고 투명성, 독립성,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좋다고 했죠. 한두 가지 우려는 했지만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술계의 염원이 표현이 된 거잖아요. 그럼 그 파트너는 누구냐, 그것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죠. 소위 관료들이나 정치가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그런 염원을 받아줘야 하는데, 안 받아 준거죠. 그것은 어느 정권이나 다 비슷했다고 봐요. 뭔가 그런 것들을 예술인들에게 전격적으로 내주진 않더라고요. 특히 문광부의 관료들은 문화예술위원회를 예술인들한테 완전히 넘겨주고 지원만 해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네들의 영토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또 정권을 잡은 쪽에서는 저 문화예술계가 뒤틀어지면 곤란한 존재다, 쟤네 입을 틀어막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당근만 주면 안 된다, 채찍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생각을 할 거고요. 이런 것들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소위 기득권의식을 버려야 해요. 그것이 또 한쪽의 손뼉입니다. 그런데 자꾸 안 놓겠다고 하면 어떻게 이겨요, 예술인들이, 물리적으로, 그렇잖아요. 지금도 계속해서 그렇잖아요. 힘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원을 표출했으면, 그들이 허심탄회하게 호응해 주고 그렇게 하는 성숙된 문화가 유럽의 문화선진국들처럼 되어가는 단계를 밟는건데 자꾸 과거로 회귀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가다가 되돌이표하고, 무슨 초등학교 노랩니까? 자꾸만 되돌이표로 가는게 말입니다. 하여튼 이런 상황을 막는 것은 우리 예술인들만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아까 오선생도 좋은 얘기 했지만, 사실 예술계에 끊임없이 저항을 할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그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쪽에서 공을 던지고 염원을 표출했으면, 성숙하게 그것을 관료나 정치인들이 “아 그래. 우리도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가야지. 저들에게 줄 것은 주고 채찍은 거둬들이자” 이런 생각을 같이 해줘야 맞는 거죠. 이게 가다가 자꾸 되돌이표로 와서 이게 뭡니까. 자꾸 과거로 돌아가자는 거잖아요. 사전검열 다시 다 재생시키고 말이죠. 앞으로 사전검열 다시 법제화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요새 하는 것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오 : 이게 자꾸 왜곡이 되는 것이 검열이 아니라고 한단 말이에요. 돈이라는 치사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진행하고 있는 건데, 나는 그래서 아까 자격이 없다고 선언을 해야 된다고 했는데요. 아예 법적으로 명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든 절대 관여하면 안 된다고요. 위원 선발에 관여 안 하겠다고 민간인으로 위원추천위원회를 만들죠. 하지만 그 추천위원 구성에 관여할 수 있거든요. 결국 그게 그거죠. 그래서 아예 법적으로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경우건 실질적인 관여가 있으면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도록이요. 마찬가지로 검열 또는 검열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어떤 행위도 안 된다는 것이 진짜 법에 명시되거나 헌법에 들어가거나 이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하는 겁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술인들은 조용하니까 우리 마음대로 한다 이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조용하지만 조용하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대로 하다보면 다 망가지고 저 사람들이 좋지 않은 경우에 있을 때 결국은 나라도 위험해진다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참으로 암담하다는 겁니다. 공허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국가가 이런 진리를 인정하고 명문화하는 과정까지를 이번 계기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여기서 그냥 지나간다고 하면, 진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예술은 국가가 개입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든가, 예술 지원 기관은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구나, 아무리 시끄러워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게 최선이구나, 이런 것들이 이번에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해야 합니다. 사실은 오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왔어요.
이 : 이전에 문화예술위원회 전환 시 삼천 명 이상 서명할 때 굉장히 젊은 연극인들이 실명을 걸고 참여했었거든요. 이번에도 보니까 대학로 엑스포럼 등에서의 연극인이 굉장히 많은 참여했고, 또한 문화연대도 같이 하면서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가 남겨진 것 같습니다.
채 : 저도 이번에 보인 희망적인 성과는 그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은 원로, 중견 연극인 선언 나왔을 때만 해도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 줄 거라고는 몰랐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젊은 연극인들이 참여를 하고 말입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거죠. 연극인들이 대외적인 의사표현들을 이번처럼 크게 한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이런 사안에서는 더욱더요. 옛날에 현대그룹이 동양극장 없앨 때, 연극인들이 의사표현을 한 번 했었지요. 또 지난 정권 시절 그런 의사표명을 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사이사이 정치적 발언을 했지만은 이렇게 예술적인 사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한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중한 연대를 잘 지속시켜서 정치적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술표현의 독립성과 자유 등 본질적인 주장을 성취하는데 이 힘을 좀 가져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오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서명할 때 메아리가 없을 거라고 다들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아무런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오 선생 얘기처럼 이것을 명문화하는 부분으로 해서 큰 운동, 입법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것이 근본적으로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표현의 자유하고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고, 우리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힘은 별로 없지만 이번 사안뿐만 아니라 꾸준히 지속해서 애를 써야하고, 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어요. 이것을 쉽게 끝내면 안 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끊임없이 여기에 대해서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 선생이 이야기한 방법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서명에 참가했고 참가한 사람들이 다양한 교집합으로 의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한다고 봐요.
오 : 제일 걱정되는 것은 지친단 말이에요. 지치지 않고 의지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물론 전략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때까지 보면 우리가 막 모여서 노력하다가 지레 지쳐 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상대방은 훨씬 유리한 자리에 앉아서 묵묵부답일 때, 이번에는 우리가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한 것은 각오가 됐잖아요. 그게 조금은 덜 지치거든요, 하지만 역시 지쳐요. 이건 그냥 단계로 설정을 하고, 다음 단계로 계속 가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야 하는 거거든요. 예술인답게 지속적으로 버티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채 : 이 문제가 수 십 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호흡이라는 것은 굉장히 긴 호흡을 이야기하는 거죠. 아마도 우리 목숨이 다하고 나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오 : 각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이 2015년을 계기로 나중에 보니까 훨씬 비판적으로 바뀌었다든가 그 전까지는 맥아리가 없던 연극 작품들이 2015년 사건을 계기로, 마치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지식인들을 각성시켰듯이 연극계의 검열사태가 연극계를 그 정도로 각성시켰다. 적어도 그 정도 평가가 나올 수 있게, 채선생도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사회를 갖다가 올바르게 담아두고 있는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신영 선생과 나도 그렇고 그런 식의 글쓰기라든가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가 예술인답게 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고 대외적으로 작품을 통한 메시지 발신이 2015년을 기준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필요해요.
채 : 아주 긴 호흡으로 수 십 년간 가야 한다는 것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느낀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도 혹시 아시겠지만 저는 과거에 사전검열제도 철폐와 깊은 관계가 있는 <매춘>을 직접 연출했던 당사자거든요. 당시의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세월이 삼십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잖아요. 되돌이표가 자주 사용되는 우리나라와 같은 풍토에서 본다면, 이런 문제는 삼보전진 이보후퇴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수십 년 걸릴 것 같다고 봅니다. 조금 더 인내심과 긴 호흡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작품에서도 그렇고 대외적인 입법 활동에서도 그렇고요.
이 : 이번에 서명한 천명 가까운 연극인의 수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염원을 잘 키워 나가야겠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예술은 검열의 대상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알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극장 벽보나 공연 프로그램의 문구를 통해서 그런 것을 알리는 것이죠. 늘 그렇듯 우리 내부의 분열도 조장될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 안에서 더욱 더 성숙해져야하고, 이왕 시작한 것이니 단체 간의 연합도 잘 되어야 하겠습니다.
채 : 네, 그리고 다른 쪽에서 볼 때 가볍게 보고 우리들이 언젠가는 분열될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시켜 주자고요. 연극 열심히 한 사람들은 거의 다 성명에 참가한 것을 보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때 협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의견통일을 위한 성숙해나가는 과정도 더 필요할 수도 있고 그래서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 서울시 또는 어떤 지자체에서 예술기금을 지원할 때 절대 간섭이나 검열 같은 것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법적 조항으로 먼저 선포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아무래도 파장이 클 것 같은데요.
오 : 지자체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런 지원 기관들이, 지방정부들이, 우리는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런 식의 영향을 주지 않겠다든가, 성숙한 지원원칙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든가, 지원은 있지만 간섭을 결코 있을 수 없고, 작품의 내용에 대한 작품의 사전 검열은 있을 수 없다든가 특히 개인 블랙리스트 이런 건 불가능하다든가, 그런 일은 앞으로도 영구히 없도록 우리는 선언한다든가, 그런 것들이 있겠죠.
채 : 그 방법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지금 서울시는 현재 정부와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잖아요. 어느 지자체는 그런 것을 발표하고 어디는 안 하고, 정부는 또 그것을 보고 또 다른 행보를 취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런 요소가 도리어 연극인들에게 양비론을 갖게 할 수도 있다고 봐요. 지자체들이 자발적으로 하면 모르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항에 있어서는 예술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내부 열정으로만 해도 장기적으로 한다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 어찌되었건 내부든 외부든 어떠한 충격이 가해져서 국가의 예술지원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오 : 일단은 우리가 정부에 대해서 큰 차원에서 이런 것이 필요하다, 선언이 필요하다, 명문화가 필요하다, 법적화가 필요하다는 등 이런 주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채 : 그것은 당연히 먼저 선언되어야 하는 것이죠. 성명과 비슷하게 정리된 어떤 독립선언서 같은 것도 좋겠네요.
오 : 초안정도는 발표할 수 있어요. 헌장, 예술헌장이든가 그런 것을 먼저 채택을 한다, 이 정도의 헌장을 정부는 채택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지자체에서 나설 수도 있는 거거든요.
채 : 다른 장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언젠가는 우리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돌아서겠죠.
이 : 우리 주장이 담긴 내용을 서협 홈페이지나 언론을 통해서만 주장했는데, 연합할 수 있는 단체와 공동 발의로 하여 공문형태로 제시를 해서 그것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 자체로 고민이 있지 않을까요? 답변이 없으면 없는 데로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채 :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양식이 있다면 다 괜찮은 방법이 될 거예요. 항상 그게 문제지요.
이 :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은 합니다. 다음 달에도 오늘에 이어 같은 성격의 주제로 ‘예술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와 탄압’에 대해서 이어 나가겠습니다. 현 상태로 봐서는 이문제가 오채까담의 1년 주제가 되어도 될 것 같군요.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