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입시 개혁을 바라며/ 오세곤

(제 72호 편집인의 글)

 

연기 입시 개혁을 바라며

 

헬 조선! 우리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맞다. 우린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것이다. 마치 여럿이 커다란 원을 그린 채 있는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형상이다. 이탈은 탈락이고 탈락은 죽음이다. 오직 죽기살기로 뛰는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천천히 걸으면 모두 편할 텐데 앞에서 뛰고 뒤에서 뛰니 가운데 사람은 그냥 그 속도로 함께 뛰든지 죽음의 낙오를 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제는 마치 선착순 달리기에서 그렇듯 각자 앞의 사람을 이기기 위해 잡아당기거나 꼬집거나 때리거나 찌르면서 뛴다는 것이다. 어차피 원을 그리며 뛰고 있으므로 선착순의 의미가 없다는 것도 모르는 채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다. 원의 중앙이나 원 밖에서 빨리 뛰라고 구령을 외치거나 채찍질을 해대는 사람이 있다면 오로지 그 사람 말고는 모두가 괴로운 형국인 셈이다. 하긴 그 구령자마저도 또 다른 절대 존재의 압박으로 괴로워하며 남들을 괴롭히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까지 파악할 도리는 없다.

 

모두 남을 이기려 한다. 그래서 남보다 한 발 먼저 가려고 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적으로도 나타난다. 학교는 좋은 학생 뽑겠다고 입시를 앞당긴다. 회사도 좋은 인력 선점하겠다고 인턴이니 뭐니 하며 아직 졸업도 안한 학생들을 고용한다. 대학 수시 입시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는 없다. 조기 취업의 장려로 대학의 4학년 2학기도 없다. 아마 이렇게 한 발씩 앞서 가다가는 조만간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입을 보고 대학교 3학년 때 취업하는 식으로 빨라질 것이다. 그렇게 어디까지 빨라질지는 알 수 없다.

 

요즘 대학 수시 입시로 다들 바쁘다. 아마도 연극 관련학과 교수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수업 결손을 막겠다며 보강 계획 등까지 조사하는 교육부가 이렇게 학기 중에 길게는 열흘씩이나 수업을 전폐하고 입시를 진행하는 데 대해서 아무 제지가 없는 건 왜일까?

 

연기 입시 실기는 거의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한다. 입시 시기가 앞당겨지면 학원 다니는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다. 또 정시까지 가게 되면 기간이 길어질 게 당연하다. 결국 입시생과 부모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수시에 4년제 6군데 포함해 전문대와 산업대까지 10군데 이상 시험을 보는 경우도 흔하다. 정시도 4년제가 3군데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학원비에 수험료, 교통비, 숙박비까지 합치면 대단히 부담스러운 액수가 될 것은 틀림없다.

 

다른 전공 분야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연극 실기 분야 입시에서 수시가 정말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정시에 비해 훈련의 정도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같은 학생들과 같은 심사위원들이 여기저기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있는 우스운 상황이다. 그것도 십중팔구는 같은 내용을 가지고 만나니 더욱 우습다.

 

이제 연극 관련학과 교수들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를 못 느낀다면 그 무감각을 반성해야 한다. 문제를 느끼는데 가만 있다면 지탄받아야 한다. 그래서 틀린 게 무엇이고 올바른 게 무엇인지 주장해야 한다. 어떻게 고쳐야할지 고민하고 대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육부를 설득하고 각자 자기 소속 학교를 설득하고 함께 노력해서 낭비 없는 입시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대학 연기 실기 입시 공동 관리”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커다란 흐름을 바꾸는 것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연기 입시가 합리적으로 바뀌고 그 작은 성공이 전체를 바꾸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고등학교 3학년이 학교로 돌아오고 대학 4학년이 학교로 돌아오고….
그래서 저마다 한 발씩 빨리 뛰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 이 불행한 헬 조선을 벗어날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너무도 강하고 너무도 밝고 너무도 뜨겁기만 한 이 세상에 얇디 얇은 우리의 눈꺼풀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조그만 그늘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연극이라 생각하면서 바로 그 연극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연극 교육계와 연극계가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작은 개혁을 이뤄내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2016년 10월 4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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