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없이 벽을 짚은 여자의 핏기 없는 손등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들의 삶 : “환영”
김창화
2016년 소설가 김이설 원작, 황이선 각색, 연출의 연극 “환영”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보다는 자본의 노예가 되어 윤리와 존재, 가족과 미래를 모두 다 저당 잡힌 끔찍한 소설의 주인공 윤영(김 설 역)의 삶이, 그리고 윤영의 삶과 함께 윤영이, 이 거대한 도시의 그늘에서 당하고 살아온, 그 억압의 역사가 결코 허구적 환상만은 아닐 것이라는, ‘실체’에 대한 예감과 더불어, 소리 없이 숨죽여 살아가는, 삶의 ‘환영’이 악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작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으나, 황이선 연출은 소설에서 사용하는 서사와 서술의 기법을 ‘선돌극장’의 결코 넓지 않은 무대 위에, 몇 개의 작은 상자들을 연결시켜, 윤영이 작으나마 가정을 꾸미고, 남편과 오순도순 살 때의 공간과 그 공간이 조금씩 분리되어 사라져가는 과정을 통해, 윤영의 현실과 삶의 환경이, 충분한 ‘서사적 연상’으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했으며, 최근 유럽에서 자주 사용되는 새로운 공연기법으로서의 ‘서사적 연출’ 방식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 공연은 제4회 서울연극인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고, 윤영 역을 맡은 김설은 연기상, 무대를 디자인한 김혜지는 스태프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연극의 가장 큰 공로자는 역시 원작을 쓴 소설가 김이설과 각색을 하고, 연출을 한 황이선일 것이다.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16일까지 선돌극장에서, 2016년 공연에 이어, 2017년 서울연극인 대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한 재공연이 있었다.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의 무대로 만나는 소설, “환영”은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난 한 여성이 목숨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여동생(노준영 역),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기에 급급한 남편(문병주 역) 때문에, 도심 주변의 강가에 차려진 어느 백숙 집에서 불법적인 매춘에 관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왕백숙집’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왕사장(리우진 역)과 왕사장의 아들 태민(이인석 역)은 윤영을 억압하는 중심인물로 이 연극에 등장하고 있다. 왕사장은 돈이 필요한 윤영의 약점을 이용해서, 윤영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아직 청소년인 태민은 돈 때문에 매춘을 하고 있는 윤영의 약점을 이용해서, 윤영을 성적으로 희롱한다. 어린 시절엔 아주 똑똑했던 윤영의 여동생은 끝없이 윤영에게 돈을 빌리고, 돈 때문에 쫓겨 다니다가 결국 강원도의 카지노장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윤영의 여동생은 몰랐을까? 일확천금을 노리고, 끝없이 돈을 빌리고, 빌린 돈으로 돈 벌 궁리 만하던 윤영 여동생의 죽음은, 남아있는 가족을 형편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동생의 빚 때문에 윤영은 결국 매춘을 선택해야만 했다. 고시원에서 만난 윤영의 남편은 가난했고, 스스로 이 사회에서 ‘입신양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고시’였다고 믿었으나,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등용문에 도달할 수 없었고, 돈을 벌기 위해 아픈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아내 윤영과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결국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노동의 과정에서 그는 다시 불구의 몸이 된다. 좋은 일은 찾아오지 않고, 나쁜 일은 겹쳐서 일어나는 윤영의 주변은, 삶에 대한 용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모두 뺏어간다. 자본주의의 엄중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매춘의 함정, 혹은 빚으로 인한 자본의 덫에 빠진 윤영이가 바라보는 강가의 왕백숙집에는, 윤영과 같은 또래의 여자들이 드나들면서 행복한 웃음과 즐거운 담소를 나눈다. 향유하는 자와 그 대상을 위해 봉사하는 자의 엄격한 구분이 자본의 유, 무를 통해 구분되는 이 연극에서, 가족은 윤영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윤영의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의 의미’였다. 그러나 그 가족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증폭되는 현실은 윤영으로 하여금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느끼게 했고, 작가가 프로그램의 글에 실은 이 글이 그런 윤영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재공연 소식을 전해 받은 날, 저는 모처럼 다시 ”환영“을 꺼내 들었습니다. 책등엔 맥없이 벽을 짚은 여자의 핏기 없는 손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손마디가 뭉툭합니다. 심지어 손톱은 시커멓게 타들 어간지 오래인 듯싶습니다.”
윤영의 삶은 환영인가? 환영이라면 너무나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