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HE MOVE 10월호에 발표된 글을 재수록한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 “제향날”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1937년 11월 ‘조광’지에 발표된,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채만식의 희곡 “제향날”은 오랫동안 단순히 읽기 위한 희곡, 혹은 문학적 희곡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8번째 시도한 공연 “제향날”은 1930-40년대에는 무대 위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극중극’의 형식을 오늘날의 관객에게 ‘동시 진행형’의 무대로 보여줬으며, 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삼일 만세 운동, 그리고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가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작가의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후대의 이론가들은 일본의 엄격한 ‘문화검열’에 어떻게 이런 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향날”은 ‘제사’의 높임말이고, 우리말에서 쓰이기보다는 ‘제사’라는 일본어의 ‘경어체’로 활용되던 용어였고, 개인의 제사뿐 아니라, 국가규모의 큰 제사를 포괄하는 용어이기도 하기에, 이미 죽어버린 ‘조선’에 대한 국가적 규모의 ‘제례’라는 의미와 이 작품에 의외의 구조와 소재로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설화와 원시인들의 등장이 이 작품에 내재된 ‘불씨’를 희석하는데 어떤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추측해 보게 된다. 아울러 1937년대에는 아직 일본의 ‘문화검열’이 그렇게 본격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과 공연이 아닌 문자로 발표된 희곡이여서, 또한 구조적으로도 당시 일본에 도입된 독일 ‘표현주의’연극의 구조와 유사해서, 단지 예술적 작품으로만 판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향날”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언급은 충분했으나, 그와 연관된 어떤 주장이나 ‘사상’을 펼친 것은 아니었고, 채만식이라는 작가의 문학적 특성으로서의 ‘풍자적 수법’으로 이 작품을 파악할 수도 있었기에, 그렇게 본격적인 ‘검열’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화계 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많아졌고,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깊어진 반면, 연극계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극단이 한국의 근, 현대 희곡을 재발견하기 위한 기획의 의도로 공연한 “제향날”에서,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준비하는, ‘불씨’를 지키기 위한 제삿날에, 외손자 영오(허진 역)가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연출한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 당시의 분위기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아이러니한 현실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연출자인 최용훈과 인터뷰를 진행한 자유기고가 남궁경은 프로그램에 언급했지만, 왠지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최씨는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동학혁명과 삼일 만세운동, 그리고 미래의 사회주의 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 집안의 ‘불씨’를 지키는 굳건하고 강인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비해, 이번 공연에서 최씨 역을 맡은 강애심의 연기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로 드러나서, 전반적인 공연의 분위기가 아주 가벼워 졌고, 무대와 의상의 톤도 지나치게 화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두운 과거의 ‘역사’를 제삿날에 동시에 드러내는 이 작품의 구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친 역을 맡은 김용선의 연기는, 그 이전의 “산 허구리”에서의 호연에 걸맞게, 이번에도 매우 진지한 ‘사실성’과 연극적 신뢰감, 역사적 감성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래서 김용선의 연기는 국립극단의 무게와 역량을 잘 전달해 주었으나, 최근 국립극단에 합류한 ‘2017년 시즌 단원’들의 기량은 아직 조금은 부족하게 여겨졌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제사는 조상과 자손을 이어주고, 과거와 미래의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로 작용함은 분명하다. 일본인에게 ‘제사’는 ‘기념일’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해 왔기 때문에……. 역사는 ‘가해자’를 기념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희생자’를 기념하는 행위여야만 한다. 그래야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그 의미를 되찾을 수 있고, 미래의 문제에 직면할 용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