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VE] 그녀들의 첫날밤/ 김창화

***<THE MOVE> 2월호에 게재된 글을 재수록한 것입니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피해 여성의 이야기 : “그녀들의 첫날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2018년이 밝아오면서 연극계에는 ‘me too’ 운동이 활발해졌다. 이미 잘 알려진 연출자의 상습적인 성추행, 성폭행 등이 문제가 되어, 많은 여배우들이 ‘me too’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유제니오 바르바 (Eugenio Barba)의 책 “연극인류학 – 종이로 만든 배”에서 비롯된 이름의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지난해 가을, ‘종이로 만든 배 단막극전’에서 소개한 김나연 작, 김형용 연출의 “그녀들의 첫날 밤”을 지난 2월 8일부터 25일까지 선돌극장에서, 2018년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공식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2017년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 선정 작이기도 하다.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접근한 “그녀들의 첫날 밤”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달콤하고도 은밀한 뉘앙스와는 달리, 아줌마 살인청부업자들의 얘기라는, 다소 섬뜩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결혼을 앞둔 의뢰인 노비아(김진희 역)는 자신과 결혼을 약정한 예비신랑(이건희 역)을 납치해 달라는 요청을 살인청부업자인 코카(김보경 역)와 트리스(김현주 역)에게 한다. 연극이 시작될 때에는 이미 ‘킬러’들은 예비신랑을 납치해, 화장실에 감금하고 난 다음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공과금을 내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두 사람의 희화적인 모습이 연극 초반에 그려지지만, 그렇게 큰 설득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매우 진지한 상황에서, 이들이 푸념처럼 내 뱉는 얘기들이, 지나치게 가볍고, 장난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국이라는 상황과 ‘아줌마들’이라는 현실적인 설정이 왠지 ‘테러리스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이들의 근거지에 납치를 의뢰한 예비신부 노비아가 찾아오면서, 이 연극은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예비신랑의 핸드폰에서 어떤 여성에 대한 ‘윤간’의 내용을 확인하고, 의뢰인은 과거에 자신이 경험했던, 집단 강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지금 결혼을 예정하고 있는 이 남자가 혹시 과거에 자신을 윤간했던 그 남자들 가운데 한명이 아닐까하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예비신랑의 납치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인 여성이 능동적인 가해자의 상황으로 바뀌어서, 과거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그녀들의 첫날 밤”은 과거의 분명하지 않은 기억을 토대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만 하는 불분명한 ‘극적 설정’이며, 그 결과와 연계되는 행동에 많은 의문점을 제시할 수 있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다. 결국 ‘노비아’역을 맡은 김진희는 마지막 장면에서, 납치당해, 꽁꽁 묶여있는 예비신랑 옆에서, 어떤 행동을 준비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미완성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관객은 과거의 성범죄자 가운데 한명이었을 지도 모르는 이 남자를 죽였을 것이다. 혹은 풀어주었을 것이다. 혹은 그냥 버려두고 그 자리를 벗어났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미완성의 이야기로 연상되는 ‘열린 결말’은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me too’운동의 향후 결과와 연계해 흥미로운 대안을 기대하게 한다. 즉 피해자인 여성의 피해에 대한 문제에 집착했던 과거의 ‘여성문제’에 대한 해법과 대책에서, 이제 피해여성들이, 적극적인 공격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가해자로 입장이 변했다는 것이다. 과거 자신에게 가해자로 군림했던 남성들에 대해, 이제 피해자인 여성이 칼자루를 쥐고, 어떤 형태의 복수를 할 것인지, 어떤 보상을 요구할 것인지, 처벌의 수위에 대해 결정하고, 가해자를 억압할 수 있는 ‘새로운 가해자’의 신분이 된 것이다.

 

미스터리하게 진행되는 듯한 “그녀들의 첫날 밤”은, 성폭행의 희생자였던 여성이, 피해자로서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가해자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미완성의 이야기’로 표현했으며, 언제나 ‘약자’인 여성이, 이제 더 이상 ‘당하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새로운 가해자로서의 ‘변신’을 꿈꾸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연극은 한국 여성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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