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정명문

 전설과 만나는 또 다른 방법                             

– 뮤지컬 <미인> 

 

정명문(뮤지컬평론가)

 

작사/작곡 : 신중현

  : 이희준

연출 : 정태영

편곡/음악감독 : 23(AKA 김성수)

안무 : 서병구

제작 : 홍컴퍼니

출연 : 정원영, 김종구, 허혜진, 권용국, 김찬호, 이정선, 박시인, 백예은, 김수영, 박도경, 이민재, 신호빈, 장보람

일시 : 2018.6.15.~7.22

관람일 : 2018.6.27.4시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주크박스 뮤지컬 다시보기

 

  노래는 짧지만 나름의 완결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곡들을 활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완성된 곡을 활용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20여개의 독립된 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야한다는 과제도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가사의 분위기에 따라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곤 한다. 즉 노래가 메인이고, 스토리가 부수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초기 주크박스 뮤지컬은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극장으로 모으는데 나름 성공했다. 하지만 원곡에 대한 충성도 높은 관객 유입이었다. 이후 작곡가나 그룹의 활동을 조명하거나, <그날들>(2013)이나 <페스트>(2016)처럼 이야기에 노래를 접목하는 방식도 시도되었다. 위 작품들의 경우 원곡과 스토리 연결을 위해 편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는 원곡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끌어당길 수 있는 방식이었다.            

 

  2018년 신중현의 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미인>도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노래와 스토리 연결이 이전과 다르다. 1960~70년대의 곡으로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이야기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제 시대 인물들이 락을 부르는 감성이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노래와 안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2017년 창작산실부터 개발된 <미인>은 원곡을 이전과 다르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격동의 시대와 청춘의 고민     

 

  <미인>은 하륜각이란 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는 변사가 해설하는 무성영화를 상연하고, 가수가 영화 상연 중간에 노래를 부르며, 어깨패가 극장 내외의 문제를 해결한다. <미인>의 중심인물은 변사 강호이다. 그는 노래교실에서 작곡과 작사를 배우면서 재미를 추구한다. 그의 곁에는 일본유학파이자 독립운동을 하는 형 강산, 강산과 친구이면서 극장과 강호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치, 노래하는 시인 김병연과 후랏빠시스터즈, 일본인 경찰 마사오가 있다. 강산이 고문으로 죽자 강호는 변화하게 된다. 강호는 병연과 친일 비판 영화 상연을 도모하다가 수배령을 받고, 병연은 영화 속 매국노가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아편굴로 잠적한다. 마사오는 강호의 히트곡 ‘미인’의 방송을 금지하고, 천황을 위한 작곡을 제안한다. 강호는 병연의 수배령을 풀어주겠다는 마사오의 제안 때문에 갈등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며 강렬히 저항한다. 

 

  <미인>을 들여다보노라면 1930년대 실제 역사와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경성 최고 흥행극장이었던 동양극장, 다재다능했던 변사 신불출, 저고리 시스터즈 같은 여성그룹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실존 인물을 그대로 다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존재했을 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극장을 대중오락장과 독립운동가의 아지트로 설정하였다. 극장은 무대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이 마주치고 공간이기 때문에 우연한 마주침이 생기는 것이 무리가 없다. 예를 들면 후랏빠시스터즈(말괄량이 자매들?!)의 발랄한 노래(알 수 없네, 간다고 하지 마오)와 강호의 노래(떠나야할 그 사람)의 경우 전체 줄거리와 크게 관련 없지만 극장 쇼 중 하나로 처리되기에 무리 없이 연결된다.  

 

 

  한 인물의 성장담은 익숙한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강호의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는 일본에게 통제와 검열을 당하던 시기였다. 또한 1960-7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신중현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박정희 찬양곡을 만들 수 없다고 거부한 뒤, 발표곡이 금지되는 상황을 겪었다. 그 후 나라를 찬양하는 ‘아름다운 강산’를 통해 본인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이렇게 시기는 다르지만 금지와 검열은 꾸준히 존재했다. 뮤지컬 <미인>은 부당한 요청과 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호는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방식인 노래를 통해 부당함을 알린다. 이런 해결은 현재와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30년대가 배경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타협하지 말고 각자의 능력에 집중할 것,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할 것 등을 부각하기에 지금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인>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조망한다. 하지만 인물의 관계 혹은 행동의 연결을 드러내는 장면이 좀 더 필요하다. 강산은 독립투사, 좋은 형, 친구이지만 이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장면들은 부족하다. 특히 두치가 열일 제쳐두고 강호만 챙기는 모습의 경우,  강산과 두치, 강호와 두치의 평면적 관계만으로 설득되기 어렵다. 지금의 경우, 현실 논리로 보자면 지식(강산)과 예술(강호)은 힘(두치)으로 보호받는다는 전제로 읽힐 수도 있어 아쉽기만 하다. 마사오의 경우 강호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져서 미워할 수 없는 악인으로 보인다. 병연은 아편을 피우면서 존재의 근원을 회피하지만, 그 좌절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미인>은 인물과 그가 처한 상황은 있지만 인물 간의 관계와 변화가 연결되지 않아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노래는 감정을 드러내지만 행동은 노래만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쇼 뮤지컬을 위한 편곡과 안무

 

  <미인>에 수록된 노래는 리프라이즈를 포함하여 총 29곡이다. 원곡의 가사는 직설적이고 반복되는 가사가 많은 편이다. 이 작품은 쇼 뮤지컬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막의 노래들은 상황별 감성을 살리는 안무와 편곡으로 재탄생된다. 특히 스윙, 재즈, 비트 등이 담긴 편곡은 1930년대를 지향하지만 지금 들어도 손색없다. 후랏빠시스터즈의 ‘알 수 없네’, ‘커피 한잔’ 같은 노래는 쇼걸 혹은 쇼를 바라보는 극장풍경을, ‘떠도는 사나이’는 칼군무로 사나이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빗속의 여인’에서 우산을 들고 추는 춤은 <싱잉 인 더 레인>의 진 켈리처럼 사랑에 빠진 들뜬 모습을 연상시킨다. ‘꽁초’는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뒤 절제된 동작으로 반복해서 한 명씩 등장하기에 느와르 영화처럼 긴장된 분위기를 살려준다. 강산의 유골을 안고 강호가 ‘거짓말이야’를 부르짖을 때는 거짓말이란 단어가 반복되면서 가족 상실의 애절한 심경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후 ‘봄비’는 빗물이 땅에서 튀는 효과와 더불어 시대의 우울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스페셜머티리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리듬 속의 그 춤을’의 경우 병연의 곡인데, 몽환적이면서도 나락에 떨어진 심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곡인 ‘아름다운 강산’은 독립투사들의 증명사진처럼 연출되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노래하기에 관객들에게 그 중요성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곡이다.    

 

  이렇게 <미인>은 장면에 어울리는 편곡과 안무를 통해 노래의 감성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 부분들이 많다. 백그라운드 뮤직, 삼중창, 사중창, 합창곡처럼 다양한 형태의 곡배치, 아리아, 쇼 스타퍼, 리드 송처럼 뮤지컬 곡 특성을 살려낸 부분도 진일보 하였다. 오리지널 곡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보자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시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편곡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곡의 느낌을 살리되 감성의 변화를 반영하는 이 방식은 분명 참조할 필요가 있다.               

 

 

 헌정과 작품성의 사이   

 

  뮤지컬은 노래가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장르이다. 노래는 상황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이런 공식들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 기존 가요로 스토리 연결이 힘든 이유는 80%이상 가사 때문이다. 정해진 가사로 새로운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려면 가사 외 다른 것을 활용해야만 한다. 한국 락의 대부라고 불리는 신중현의 곡들로 이루어진 <미인>은 1970~80년대를 회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의 다양한 시도와 저항 정신을 미묘하게 결합하려고 한 시도가 엿보인다. 컴필레이션(모음)과 트리뷰트(헌정)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고 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트라이아웃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인물과 에피소드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 숙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쇼 뮤지컬임을 감안해 보았을 때 이전 주크박스 뮤지컬들에 비해 진일보된 모습들이 발견된다. “너가 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래”라는 위로의 메시지와 세대를 아우르는 신중현의 음악이 담긴 이 작품이 트라이 아웃을 거치며 오래오래 남을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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