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우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무대 위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즉석에서 관객이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특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하다. 남의 이야기든 나의 이야기든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하고 이를 통해 인생의 방향과 의미를 찾고 자기의 삶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학교의 점심시간이 끝난 다음 시간, 교실의 분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어수선하다. 책상에 걸터앉은 학생은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표정과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실감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둘러싼 친구들은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습에 몰입되어 시작종을 쳤는지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있다. 어젯밤에 본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제부터 1일이라고 약속한 남자 친구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교실 창문 넘어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무대 위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즉석에서 관객이 된다. 또 창문 넘어 이야기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쳐다보고 있는 교사는 마치 극중극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의 관객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장면은 학교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어린이들이나, 며칠 전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하는 중년의 여인들이나, 과거의 찬란했던 청춘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노인들처럼 생의 주기의 전 세대를 거쳐 우리들은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실감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몰입이 되어 웃음이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긴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이야기하기 본능과 모방하기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연극의 본질적 요소인 모방을 생활화하며 살아가고 있고 연극은 인간의 삶을 모방하며 예술이 된다.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스(John Niels)는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고 했고 스토리텔러(storyteller)의 의미로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로 정의했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인간에게 이야기란 근본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통로이며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정서적 몰입과 공감을 이끌어 내어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이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연극의 효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남녀노소, 동물, 심지어 유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그 성격적 특성을 모방하여 표한하기도 한다. 인간의 모방하기는 인간의 전 생애를 걸쳐 나타난다. 미국의 앤듀류 멜조프(Andrew Meltzoff) 박사의 신생아 실험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아기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아기가 얼마나 ‘따라쟁이’인지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모방의 과정을 거쳐 학습과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정설이다. 이렇듯 인간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모방하기는 인류 역사에 연극이 등장하게 된 원인이며 연극의 본질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일생을 통해 연극의 본질적 요소인 모방을 생활화하며 살아가고 있고 연극은 인간의 삶을 모방하며 예술이 된다. ‘따라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리플리쿠스(Homo Relpicus)라는 용어는 이러한 인간 본능의 핵심을 설명한다.
인간을 설명하는 용어에 호모 루덴스(Homo Ludens)도 있다.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사유(Homo Sapiens)나 노동(Homo Faber)이 아니라 놀이이며 인간의 문명 역시 놀이의 충동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놀이가 필요하며 인간의 문명은 놀이하는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인간은 ‘개미와 베짱이’우화 속의 베짱이라는 것이다.
연극교육의 시작은 인간에게는 연극을 하고자하는 유전자가 있으며, 누구나 연극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평생 연극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며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호모 나랜스, 호모 리플리쿠스, 호모 루덴스는 인간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즉, 이야기하기, 모방하기, 놀이하기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말인데,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모방하고 흉내 내어 표현하고 그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 그 과정과 결과물은 곧 연극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본능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연극하는 인간’이라는 용어도 인간을 설명하는 용어로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연극학자는 ‘호모 테아트리쿠스’(Homo Theatricus)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니 이러한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서 연극교육 이야기로 눈을 돌려 보자. 연극교육의 시작은 인간에게는 연극을 하고자하는 유전자가 있으며, 누구나 연극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평생 연극을 생활 속에서 활용하며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 다양한 연극의 모습을 찾아보고, 예술로서의 연극을 체험하고 감상하며, 궁극적으로 문화유산으로서의 연극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15년에 개정된 국가 수준의 연극교육과정은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연극’ 과목이 뜬금없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배치되어 있어 초등학교부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된 것은 아니지만, 연극교육의 방향과 표준을 제시하는 선언적 의미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연극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018년에 ‘2015 개정 연극교육과정’이 일선 고등학교 1학년에 적용되었고 올해는 2학년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된다. 부디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에서 삶으로서의 연극, 예술로서의 연극, 문화유산으로서의 연극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교육적 성과를 바탕으로 늦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의 연극교육과정이 신설되고, 우리 학생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생의 주기와 함께하는 연극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