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륄리

‘서민 귀족’ Le Bourgeois gentilhomme (1)

글_임야비(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오페라와 뮤지컬을 구별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우가 춤추면 뮤지컬, 안 추면 오페라’, ‘옛날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면 오페라, 요즘 밴드가 반주하면 뮤지컬’, ‘드레스 입고 나오면 오페라, 청바지 입고 나오면 뮤지컬’.

뮤지컬과 연극을 구별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많으면 뮤지컬, 대사가 많으면 연극’, ‘OOO홀에서 하면 뮤지컬, 대학로에서 하면 연극’, ‘극작가가 유명하면 연극, 작곡가가 유명하면 뮤지컬’. 이게 옳은 것도, 저게 틀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몰리에르/륄리의 ‘서민 귀족’은 무엇일까? 연극? 오페라? 음악극? 무용극?

1670년. 작곡가이자 무용수인 륄리는 극작가 몰리에르와의 공동작 ‘서민 귀족’을 ‘코메디-발레 Comédie-Ballet’라 못 박았다.

(좌) 몰리에르 Molière (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 (우) 륄리 (Jean-Baptiste Lully, 1632-1687)

17세기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오스만투르크(터키)와 경쟁 관계였다. 비록 군사력은 뒤지지만, 문화는 우월했기에,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질적인 터키 문화를 비꼬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때마침 왕이 터키와의 외교 문제로 심기가 불편해지자, 이를 포착한 예술가들이 터키를 조롱하는 작품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루이 14세는 자신의 음악 선생이자 무용 선생인 륄리와 극작 신하 몰리에르에게 작품을 의뢰한다. 왕의 의도는 ‘투르크 제대로 한 번 까봐. 실컷 좀 웃어보게’나 다름없었다. 두 예술가는 위협적인 투르크를 공포의 대상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바꿔보라는 왕의 저의를 간파했다.

먼저 몰리에르의 희곡을 살펴보자.

평민 쥬르댕은 장사를 통해 부를 쌓은 일자무식 중년 남자다. 돈으로 음악, 무용, 철학, 검술 선생들을 고용해 귀족적인 교양을 쌓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우스꽝스러워질 뿐이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돈을 노리는 아첨꾼들로 득실거린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옷을 비싼 값에 맞춰 입은 쥬르댕은 모두의 조롱거리가 된다. 하지만 쥬르댕은 평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귀족들의 취향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의 소원은 딸 뤼실을 귀족과 결혼시켜서 신분 상승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런 쥬르댕의 마음을 간파한 뤼실의 연인 끄레앙뜨는 기지를 발휘해 터키 왕자로 변장하고 상황극을 꾸민다. 끄레앙뜨는 쥬르댕에게 가짜 터키 귀족 작위 수여식을 하면서, 딸 뤼실을 왕세자비로 달라는 제안을 한다. 자신은 귀족, 딸은 왕비가 된다는 기대에 쥬르댕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막이 내린다.

웃음의 포인트는 두 곳이다. 하나는 교양 없는 평민이 귀족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상황. 다른 하나는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터키의 언어, 의복, 예법, 음악이다. 희곡으로만 읽으면 이 포인트가 잘 포착되지 않는다. 실제 연극에서도 배우의 연기와 연출만으로 관객의 폭소를 유도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한마디로 ‘밋밋한 풍자 코메디’ 정도랄까?

영화 <왕의 춤> (Le Roi danse, 제라르 꼬르비유 감독, 2000년)’ 중_궁전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루이 14세

이제 륄리의 음악을 살펴보자. 희곡에 명시되어 있는 음악은 9곡으로 크게 3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5곡의 ‘막간극을 위한 음악’이다. 말 그대로 막과 막 사이에 연주되는 곡으로, 무대 위에 조연으로 등장했던 무용수들이 이 음악에 맞춰 발레를 춘다.

둘째는 연기 중에 삽입되는 성악곡들이다. 1막 2장의 ‘세레나데 L’ élève de Musique’와 ‘음악으로 된 대화(삼중창) Dialoque en Musique’ 그리고 4막 1장의 식사 초대 장면에서 나오는 ‘첫 번째 축배의 노래 1er chanson à boire’ 이렇게 3곡이다.

셋째는 클라이맥스인 4막 5장에서 연주되는 ‘투르크 의식 La ceremonie Turque’이다. 쥬르댕에게 가짜 기사 작위를 수여 하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가장 유명한 곡으로 약 15분 정도의 강렬한 행진곡이다. 터키를 표현하기 위해 시끄러운 타악기가 다수 추가된다. 곡 중간에 뜬금없이 ‘알라!’, ‘마호메트!’ 등 배우들의 엉터리 터키어가 삽입된 부분은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륄리의 음악을 음반으로 들으면 또렷한 인상이나 특별한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대부분의 청자에게 ‘대충 작곡한 엉터리 음악’ 정도로 인식될 것이다.

‘서민 귀족’을 텍스트와 음악으로 분리해서 살펴보면 ‘밋밋한 풍자 코메디’와 ‘대충 작곡한 엉터리 음악’일 뿐이다. 투르크를 조롱하려던 프랑스 문화가 오히려 자신의 빈약함을 드러내 버린 꼴이다. 루이 14세는 웃기는커녕 역정을 낼 것이다.

영화 <왕의 춤> (Le Roi danse, 제라르 꼬르비유 감독, 2000년)’ 중_서민 귀족 공연 장면

그런데 이 두 개를 합쳐 놓는 순간 이야기는 180도 바뀐다. 몰리에르와 륄리의 협공으로 쥬르댕은 엉망진창이 되며, 투르크는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민족이 돼 버린다. 여기에 프랑스 왕실의 자랑 발레가 더해지면서 ‘서민 귀족’은 하나의 ‘총체극’이 된다. 왕은 배꼽을 잡고, 프랑스는 투르크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다.

(다음 호에 2부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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