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가, 고통받고 소외된 이를 위한 송가로 다시 태어나다
어쿠스틱 판소리 <청이 엄마>
글_정윤희(연극평론가)
작/연출/음악감독 문수현
장소 춘천 국제극장 몸짓
일시 2019년 8월 30일
관극일시 2019년 8월 30일 19시 30분
고통받고 소외된 이를 위한 송가
<청이 엄마>는 판소리 ‘심청가’에서 ‘곽 씨 부인’이라 불리는 이를 중심으로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곽 씨 부인은 장애인인 남편과 살며 삯바느질과 잡일로 가정의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여인이며, 마흔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후 산후풍으로 운명한 여인이다. ‘민중들의 고된 삶과 원한이 고이 담겨 있었던 민요와는 달리 양반의 음악으로 발전했던 판소리에서는 곽 씨 부인의 일상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곽 씨 부인은 심청, 심봉사에 비해 비중이 낮은 등장인물이기에 판소리 공연에서는 이 여인에 관한 대목이 종종 편집이 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공연 순서의 절반을 대담하게 곽 씨 부인에 관한 대목으로 할애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어떤 성격과 행실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완창 판소리 공연에서가 아니면 듣기 힘든 곽 씨 부인에 관한 대목을 관객들에게 들려준 것은 물론이며, 완창들도 소화하기 힘들어한다는 <부인의 마지막 유언> 대목을 원곡 그대로 부름으로써 극의 절정 역할을 하게 했다. 이로써 판소리는 삼강오륜의 가치를 관중들에게 전달하는 양반 음악의 기능을 잠시 내려놓고, 21세기 관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재구성되었다.
일렉 기타 사운드로 증폭된 극중 인물의 서린 심정
<청이 엄마>는 전통 판소리와 일렉 기타 연주의 컬래버레이션 공연이다. 일렉 기타는 강한 울림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과와 변주가 가능해 판소리 원작이 지닌 음악성을 무대 위에서 극대화해 주었다. 곽 씨 부인의 시점으로 각색한 판소리 공연을 기획하고 있던 문수현은 기타리스트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던 정소율을 찾아가 공연을 제안했다. 기타리스트 정소율은 이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 판소리의 여러 장단을 몸소 익히고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해야 했으며, 문수현 역시 일렉 기타의 다양한 효과에 맞추어 판소리 일부 대목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었다.
본래 <심청가>의 중심 서사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심청이 망망대해로 뛰어드는 사건이기에, 원작은 차고 푸른 바다의 서린 기운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일렉 기타 특유의 울림과 효과는 원작이 지닌 특유의 색깔과 잘 맞아 들어갔다. 특히 <상엿소리> 대목은 일렉 기타 사운드 덕분에 스산하고 시린 분위기가 증폭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반복되어 공연되온 덕분에 현대 관객들에게는 무뎌졌을지도 모를 원작 특유의 색채가 음악성을 강하게 살린 연출 덕분에 다시 한 번 생기를 얻었다.
전통 음악에 갇혀 화석처럼 굳어진 인물들의 개성을 다시 살리다
판소리 심청가는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심청가를 보러 극장을 찾아가면 소리꾼을 따라 술술 대목을 따라 부르는 이가 심심찮게 있을 정도로 애호가가 따라다니는 작품이다. 심청가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의 맛을 잘 아는 이라면 심청가의 등장인물들이 지닌 개성 또한 술술 꿰고 있을 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완성된 원작은 다양한 시점으로 인물을 바라보며 인물의 개성을 잘 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현대인의 뇌리 속에서 심청가는 화석처럼 굳어져 버렸으며, 등장인물의 성격도 그처럼 굳어져 있다. 으레 심청은 전형적인 효녀이고, 심봉사는 전형적인 주책 캐릭터로 알기가 쉽다. 보통 고전에서는 ‘전형적 인물’이 등장하고 현대 작품에서는 ‘개성적 인물’이 등장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심청가의 경우 원작에서는 ‘개성적 인물’이 존재하건만 사람들의 편견 속에 그것은 ‘전형적 인물’로 갇혀버렸다. 그리하여 전통 판소리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시 한번 요리조리 살펴보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전통의 맛을 잘 살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 되었다.
<청이 엄마>에서 두 공연자는 등장인물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재해석해 보았다. 심청이는 바다에 빠지는 순간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심봉사는 딸의 죽음을 아파하면서도 눈을 떠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 곽 씨 부인은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을 했던 가장이었고, 뺑덕은 ‘쿨했던’ 그 시절의 ‘요즘 여자’이다. 작품은 인물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들을 뽑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