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숙명이다.

 

글_이연심(무학여자고등학교 교사)

 

면접관 집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수험생의 사회적 자아는 결국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스튜어디스의 깔끔한 몸가짐과 태도인 모양이다. 하기야 깔끔한 몸단장은 그 자체로 존경의 표시가 되고, 좋은 태도는 존경심의 표현으로 간주된다고 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 출처: 국민대학교 웹진 https://sport.kookmin.ac.kr/kookmin/special/462?pn=59)

 

“선생님, 저 내일 취업 면접이 있는데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차려입으면 가식적으로 보일까봐 걱정이고 그렇다고 편안하게 입고 가자니 무성의하게 보일까봐 걱정이고요. 머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치마를 입을까요? 바지 정장을 입을까요? 구두는 까만색이 좋겠죠? 힐을 신으면 비호감일까요? 스타킹은 살색이 좋을까요, 검은 색이 좋을까요? 화장을 해도 돼요?”

제자 A의 전화다. 인사는커녕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속사포로 질문을 해댄다. 취업 면접을 앞두고 그만큼 걱정이 많은 것이겠거니 생각이 들기도 하고, 취준생의 마음 고생, 몸 고생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짠한 마음에 속이 쓰려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 이랬다가는 사제지간의 인연을 끊자고 할 기세다.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간절함을 생각하면 또 그렇게 상투적인 대답을 해서도 안 된다.

 

 

바야흐로 면접의 시대다. 입시 면접, 취업 면접, 임용 면접…….

여기저기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고군분투한다. 얼마 전 교사 임용시험을 보았던 또 다른 제자 S는 3번의 도전 만에 합격을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단했다고 한다. 지필시험이야 공부를 하면 된다지만 면접시험은 타고난 인상을 무시할 수 없으니 최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그것도 15-20분의 시간 안에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피력해야 하니 전략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면접평가실로 들어가기 전에 노크는 두 번 해야 할지, 세 번 해야 할지, 얼마나 강하게 두드릴지, 들어가서 인사는 눈을 마주치고 난 후에 할지, 인사할 때 허리는 어느 정도로 구부려야 할지, 오른발부터 걸어야 할지, 왼발부터 걸어야 할지, 미소를 지을 때 입꼬리는 얼마나 올리는 것이 좋을지, 왼쪽 면접관부터 눈을 맞출지, 오른쪽 면접관부터 맞출지, 손은 무릎 위에 놓을지 배꼽 위에 놓을지, 왼손을 위로 할지 아래로 할지……. 그 외에도 S는 기가 찰 만큼 세세한 것들을 고민하고 연습하고 점검했다고 한다. 그러니 제자 A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아주 큰 덩어리의 고민에 속한다. 수험생들은 이렇게 면접에서 어떤 이미지를 연출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하지만 사실 실제 면접장에서 만나게 되는 수험생들의 모습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만큼 너무도 비슷하다. 어느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의 교육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좋은 인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직종에 상관없이 비슷한 모양이다.

 

 

“사실상 사람에게는 자기가 존중하는 집단의 수만큼 많은 사회적 자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대개 상대하는 집단에 따라 자기의 각기 다른 면을 보여 준다. 부모와 선생님들 앞에서는 얌전하기 짝이 없지만 ‘거친’ 제 또래 친구들 앞에서는 불량배처럼 욕설을 내뱉고 건들대며 걷는 청소년들이 많다. 우리는 자식을 클럽 친구 대하듯, 고객을 고용 노동자 대하듯, 상사나 고용주를 친한 친구 대하듯 하지는 않는다.”(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자아연출의 사회학』, 67-68쪽에서)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회학자 중 한 사람인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 1922. 6. 11. ~ 1982. 11. 19.)의 글이다. 면접관 집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수험생의 사회적 자아는 결국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스튜어디스의 깔끔한 몸가짐과 태도인 모양이다. 하기야 깔끔한 몸단장은 그 자체로 존경의 표시가 되고, 좋은 태도는 존경심의 표현으로 간주된다고 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공연이며, 우리 사회는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연극적 행동은 우리에게 있어 숙명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연극적 성격장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해 전 연극학과 입시지도를 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실기시험을 보러 가는 제자에게 막내 동생이 아끼던 정장과 코트를 몰래 꺼내 입혀 보냈었다. 준비한 배역연기에 맞는 의상을 선정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그러고 보니 면접시험을 보러 가는 수험생이나 연기 실기시험을 보러 가는 수험생이나 그들이 준비하는 과정이나 원리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배우가 분장실에서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대사를 맞춰보고 동선을 점검하는 것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어디 면접이나 연기 실기시험만 그러할까?

우리 모두는 아침마다 저마다 자신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게으름의 욕망을 감춘 채 하나! 둘! 셋! 심호흡을 하며 자신감에 찬 ‘척’ 위장을 하고 ‘가 보자!’ 하며 집을 나선다. 멀리 셰익스피어까지 갈 필요도 없다. 오늘 아침 나의 일상이 인생은 연극이며 집을 나서는 순간 이미 무대 위에 등장한 배우가 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다만 셰익스피어처럼 멋진 시어(詩語)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고 고프먼처럼 학술적으로 정리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가면’이라는 게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언제 어디서나 다소 의식적으로 역할을 연기한다는 인식을 가리킨다. 우리는 역할을 통해 서로를 안다. 우리 스스로를 아는 것도 역할을 통해서다.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분투하면서 우리가 구축해온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가면이라 한다면, 가면은 우리의 참자아,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아다. 결국 역할이라는 것은 우리의 제2의 천성, 인성을 구성하고 통합하는 성분이다.”(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자아연출의 사회학』, 33-34쪽에서)

이것도 고프먼의 글이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그 옛날부터 일상생활이 연극이며 우리 모두는 연기를 하는 배우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머쓱해 진다.(꽤나 멀리 본 것처럼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도 결국은 선배들의 발뒤꿈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쯧쯧쯧) 그래도 나의 무지(無知)를 위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뻔뻔하게 계속해 보자.

고프먼에 따르면 연극 공연에서 배우에게 무대 구역이 있는 것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개개인에게도 앞 무대(front)가 있으며, 이곳은 긍정적 자아 개념과 바람직한 인상이 제공되는 곳이다. 그러나 무대 뒤에는 보이고 싶지 않는 모습을 감출 수 있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숨겨진 개인의 구역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배우에게 있어 분장실과 같은 곳이다. 그에 따르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공연’이며, 우리 사회는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연극적 행동은 우리에게 있어 숙명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연극적 성격장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아니라 연기가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짧은 시간의 성공적인 인상관리를 통해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연기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하고 타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하는 행동이 ‘인상관리’라면 인상관리야말로 ‘진실한 연기’가 필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가 연기에 완전히 몰입하여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진정한 자기의 실체라고 믿는 순간 관객 역시 배우의 연기에 설득당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의 진실성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편견이 가득찬 비평가이거나 불평불만자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아니라 ‘연기’가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짧은 시간의 성공적인 인상관리를 통해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연기력’이 필요한 것이다.

 

숙명이다. 연극은!’

 

 

그래서 제자의 SOS에 자신 있게 조언을 한다.

“면접관들이 원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 것 같아? 네가 그 인물의 배역을 맡았다고 생각하고 의상을 준비하고 분장을 하듯 화장을 해. 그리고 그가 할 만한 동작과 말투, 눈빛, 제스처(gesture)를 생각해 봐. 면접관을 상대 배우라고 생각하고 그의 눈빛과 호흡을 읽어내도록 노력하되 네가 설정한 인물의 성격이 흔들리지 않게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아. 주어진 상황은 면접상황이니깐…….”

그리고 내친김에 덧붙였다.

“너의 경험에 비추어 네가 그 직업의 적임자임을 설명할 때는 스토리텔링을 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어. 예를 들어 주어진 ‘상황’과 ‘배경’을 설정하고, 너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거야. 조연 배우들도 있어야겠지. 있었던 일을 ‘사건’으로 만들고 그 사건에서 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설명하는 거지.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지(비평) 말하는 게 좋겠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그 직업에 적임자라고 피력하는 것도 빼먹지 말구…….”

그렇게 나는 선생 ‘배역연기’를 수행했다.
‘숙명이다. 연극은!’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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