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강이 흐르는 소리

<슬픔의 노래>

글_고수진(연극평론가)

 

어디로 갔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은?

폭동이 일어났을 때

내 아들은 잔인한 적에게 살해당했겠지

오, 너 나쁜 사람아

가장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해다오, 왜 내 아들을 죽였는지를

이제 다시는 아들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울고 울어

내 늙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내 아들을 살리지 못하리라

내 아들은 차디찬 무덤 속에 누워 있건만

아무리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도 그곳을 찾을 수 없구나

가여운 그 아이는

따뜻한 침대가 아닌

어느 거친 땅에 누워 있겠지

나는 아이를 찾을 수 없으니

아름답게 우는 신의 새여

그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오

신의 작은 꽃이여

내 아이가 행복히 잠들 수 있도록

활짝 꽃을 피워주오

 

– 폴란드 오폴레 민요 –

 

 

소설 <슬픔의 노래>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정찬의 소설, <슬픔의 노래>는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슬픔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교향곡에는 세 개의 노래가 삽입되어 있는데, 위 가사는 그 중 세 번째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애통함을 담고 있는 폴란드 민요다.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소설의 줄거리는 간결하다. 공산권의 유명 음악원에 관한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 폴란드에 온 신문 기자 ‘유’는 바르샤바에서 젊은 음악가 김성균, 영화학도 민형기, 연극배우 박운형을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작곡가 구레츠키를 인터뷰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그는 박운형이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폴란드에서 ‘유’와 구레츠키가 진행한 인터뷰, 안내와 통역을 맡은 세 명의 젊은이와 함께 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 그리고 ‘유’와 박운형의 대화,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소설가 정찬                                          헨리크 구레츠키

 

작중 인터뷰에서 기자이자 소설가인 ‘유’는 과거의 아픔에 천착하는 구레츠키에게 ‘과거의 슬픔보다 현재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고 묻는다. 구레츠키는 말한다.

 

“흐르는 강을 자를 수 있다면 당신의 말이 옳다. 하지만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

흐르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다. 과거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현재를 넘어 미래로 흘러들어 간다.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보라.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을 인종의 문제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그것은 욕망의 비곗덩어리로 숨쉬고 있는 인간의 문제다.

과거의 슬픔은 곧 현재와 미래의 슬픔이다. 다만 그 슬픔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빛은 슬픔의 강 너머에 있다.

이제 내가 당신들한테 질문하고 싶다.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실제 기자 출신이기도 한 작가 정찬은 이 인터뷰를 통해 고통을 대하는 예술가의 자세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는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유태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의 정문

 

구레츠키와의 인터뷰 후 네 사람은 아우슈비츠로 향한다. 아우슈비츠의 폴란드식 발음은 ‘오슈비앵침’으로 ‘축복받은 땅’이라는 의미다. ‘유’는 그곳에서 박운형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그가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에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선율에 희생자들의 고통과 진혼을 담는 작곡가 구레츠키를 비롯해 자본주의와 유럽의 통합, 종교의 쇠퇴 등이 유발하는 인간 소외 문제를 영화로 만든 감독 키에슬로프스키, 기존의 종합적 연극을 ‘부유한 연극’이라 칭하며 연극의 존립 요소를 오직 배우와 관객의 관계에서 찾는 ‘가난한 연극’을 주창했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 등 전쟁과 학살에 고통받은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를 음악과 연극, 영화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1941~1996)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세 가지 색: 블루 화이트 레드> (1993~1994)

 

그 중에서도 예지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은 계엄군이었던 박운형이 자신의 고통을 신체적 현시로 변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박운형이 오월 그날의 기억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독자에게 광주의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난한 연극》               예지 그로토프스키

 

폴란드를 떠나기 전, 소설가로서 광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유’는 마주 앉은 박운형에게 계엄군 또한 권력에 이용당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논리를 편다. 박운형은 반문한다.

 

“작가 선생들이 광주를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죽은 자들이 흘린 피의 의미, 그들의 눈물, 살아남은 자의 고뇌, 그리고 가해자의 잔인과 악몽과 죄의식 등등 ”

 

“진실이 그렇게 단순한가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을 진압하는 계엄군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들.  ⓒ 연합뉴스

 

 

그리고 뉴욕에서 아우슈비츠의 시체소각장을 배경으로 한 연극 ‘아크로폴리스’를 보며 느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로토프스키의 연극‘아크로폴리스’(1962)

 

“연극은 세계를 모방하는 예술이 아닙니다.

세계를 뒤흔들고, 세계를 꿰뚫고, 세계를 초월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을 깨우는 것이 연극입니다.

배우에게 무대가 가공의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 정찬은 가해행위의 과정에서 생명의 원천에 가 닿은 박운형의 체험을 통해 광주의 고통이 희생자와 가해자의 서사에 ‘박제’되지 않고, ‘운명의 손에 붙들려 있는’ 한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슬픔의 노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가해자의 내면을 응시하며 역사적 고통을 통과하는 예술가의 자세에 대한 물음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5년 김동수 연출, 오은희 각색의 연극 <슬픔의 노래-구레츠키를 아십니까>로 만들어졌으며 1996년 제20회 서울연극제에서 박운형 역의 박지일이 연기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2016년 공연된 <슬픔의 노래>에는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그대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2002년 공연 모습                               2016년 공연 모습

 

2016년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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