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여성 연극제 연출가전 공식참가작
이름을 찾는 여자
작: 데이비드 해로우어(David Harrower)
번역/연출: 정지현
극단: 극단 빨강도마뱀
주최/주관: (사)한국여성연극협회/여성연극제조직위원회
공연일시: 2021/09/01~05
공연장소: 대학로 명작극장
관극일시: 2021/09/04
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오유경
<암탉을 찌른 칼> 작품의 시작은 이렇다.
여자: 내가 어떻게 땅이야? 땅이 뭔데? 평평하고 축축해. 비가 오면 시꺼매. 난 땅이 아니야.
테오: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여자: 내가 여기 있는데 땅이라고 했잖아.
테오: 땅 같다고 한 거야.
여자: 그게 그거야.
테오: 달라.
여자:내가 땅 같으려면 내가 땅이어야 해.
테오: 땅 같으려고 땅이 될 필요는 없어.
여자: 어째서?
테오: 그냥 필요 없어.
여자: 내가 다른 거야? 내가 불이야?
테오: 발이 진흙투성이야.
여자: 내가 신발이야? 침대야?
테오: 같다고. 달은 꼭 치즈 같아. 치즈 같아. 하지만 치즈는 아니야.
여자: 달에 가 봤어? 달은 달이야. 달이 왜 치즈 같아?
테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해. 무슨 소리야? 말이 우나?
여자: 그럼 치즈가 달 같아?
테오: 됐어. 마구간에 가 봐야겠어. 말들이 이상해.
여자: 치즈가 달 같아?
테오: 내가 너보다 많이 알아.
여자: 그건 나도 알아.
테오: 넌 내가 뭐 같다고 말하면 뭐 같은 거야. 아침에 넌 땅 같았어. 지금은 아냐. 지나갔어. 이제 넌 땅 같지 않아.
여자: 내가 뭐 같은지 말해 줄까? 난 그냥 나 같아.
여자(작품 속 등장인물)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발견한다. 자연 속에서.
여자: 바람- 분다. 해- 빛난다. 곡식은 자라지. 하늘은- … 새는 날아. 구름은- … 나무는 … … 서 있어. 똑바로 서 있어. 하늘은- … 하늘은- … 모르겠어. 토끼. 뛴다. 구름은- … 뛰어가? 뭉게뭉게- 커진다? 나뭇잎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늘은- … 하늘은- …
그리고 여자는 자신이 발견한 세계의 사물들에 딱 맞는 자신만의 고유의 이름들을 찾고자 갈망한다.
테오: 어디 아파?
여자: 아니.
테오: 열 나?
여자: 아니.
테오: 그럼 뭐지? 뭐가 이상해.
여자: 난 아무렇지도 않아.
테오: 다 봤어.
여자: 그냥 걸어왔어. 말이랑 당신한테 줄 밥 가지고.
테오: 멍하니 서 있었어. 뭐했어?
여자: 아, 보느라고. … 뭘 보느라고.
테오: 뭘 보느라고?
여자: … 웅덩이.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웅덩이를 봤어. 비가 오고 나서 생긴 깨끗한 물 웅덩이. 밑에 땅이 쪽 쪽 갈라진 게 다 보여. 새 발자국도 보여. 물에 햇빛이 반짝거려. 거기에도 이름이 있어?
테오: 물웅덩이.
여자: 아니, 딱 맞는 이름.
테오: 딱 맞는 이름이 웅덩이야.
여자: 어째서?
테오: 똑바로 앞만 보고 다녀. 계속 걸어. 한눈 팔지 말고.
여자: 웅덩이는 흙탕물이야. 안에 아무 것도 안 보여. 내가 본 건 뭐야? 맑고 반짝이는 물. 그건 뭐라고 해?
테오: 물웅덩이. 그것도 물웅덩이야. 뭐가 달라? 전에도 말했지? 시커먼 물웅덩이, 맑은 물웅덩이, 똑같은 거라고.
여자: 볼 때마다 달라.
테오: 어떤 건 다르고 어떤 건 다르지 않아. 그냥 네가 아는 것만 꽉 붙들어. 그게 제일 좋아. 멍하니 서 있지 마. 사람들이 보면 수군거려. 마을 사람들이 어떤지 너도 알잖아.
여자: 난 모르는 게 많아. 바람이 나무를 이렇게- 이렇게- 흔들 때… (흉내를 낸다) 그걸 뭐라고 해? 거기에도 이름이 있어? 바람은 왜 나무를 흔들어? 나무를 붙잡고 올려다 봤어. 가까이에서 보면 알까 싶어서.
테오: 너도 차차 알게 될 거야. 하느님을 못 믿어?
여자: 신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여자는 테오의 아내다. 테오는 말을 기른다. 마구간은 그의 세계. 아내, 여자는 마구간에 감히 얼씬 못하게 한다. 테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짓은 아예 하지 말라고 늘 여자를 단속한다. 여자는 섬세하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세계를 만나고 신을 향한 믿음을 굳건히 한다. 또 자신만의 고유의 언어로 스스로 발견한 신비로운 세계와 소통하길 갈망한다. 하지만 여자는 마을로 대표되는 세상이 정한 규칙과 관습과 틀 지워진 언어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의 갈망과 강요된 순응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 여자는 방앗간 주인 길버트를 만난다. 그는 마을에서 소외된 자다. 테오는 자신처럼 땀 흘려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단지 방아 기계를 돌려 이익을 얻는 길버트를 경멸한다. 하지만 길버트는 책을 많이 읽고 상대에게 섬세한 사람이다. 처음엔 여자도 길버트를 경계하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글을 모르는 여자에게 길버트는 글쓰기를 알려준다. 오래된 방앗돌 대신 새 방앗돌을 끼우는 축제의 날. 테오와 길버트는 크게 충돌하고, 여자는 자신은 출입이 금기된 마구간에서 테오가 오랫동안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배신감에 좌절한다. 마침내 여자는 테오를 칼로 찌르고 죽인다. 길버트는 여자를 도와 테오의 주검을 은폐하고 고장을 떠난다. 혼자 남은 여자는 테오 없이 당당히 홀로 세상을 마주한다.
공연을 본 후 의문이 남았다. ‘이 작품이 그리는 시대가 언제일까?’ 새 방앗돌을 만들어 구(舊) 방앗돌과 교체하는 것과 테오와 길버트 사이에 있는 육체노동과 기계노동과의 경계선에서의 충돌을 보면 산업혁명이 있기 바로 전 19세기 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자의 자연과의 소통을 들여다보면 마치 중세의 초자연적인 신비함을 그려내는 것 같고, 반면 테오가 여자에게 강요하는 여성의 삶을 보면 17세기 혹은 18세기의 시대상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작가 데이비드 해로우어는 이 작품을 1995년에 발표했으니, 여성주의 작품으로서 당대, 1995년의 여성 문제의 화두를 담았다기에는 또 매우 퇴보적이었다. 갈팡질팡하는 혼란을 잠재우려고 작품의 번역과 연출을 맡은 정지현 연출에게 물어봤다.
정지현 연출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그 어느 시대도 딱 꼬집어 그리지 않았어요. 작가는 작품의 시간도 공간도 한 가지로 특정하지 않고, 모두 애매모호하게 일부러 혼재시켜 놓았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 작품은 데이비드 해로우어의 처녀작으로 ‘치정 잔혹 우화’로서, 여성 문제를 다루었다기보다는 글을 찾고 싶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갈망이 더 짙게 담겨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젊은 시절 가난으로 접시 닦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썼던 작가는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인 ‘여자’에 자신을 대비(對比) 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작가의 한 인터뷰 기사를 보내 왔다.
데이비드 해로우어는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약간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는 바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미심쩍게 쳐다보았다. “난 솔직히 말해서 내 작품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그가 말했다. “나 자신도 작품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에게 입심 좋은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모호함, 비스듬하고 간접적인 화법, 불확실함은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특징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뭔가를 설명하고 단언하는 언어를 믿지 않아요. 난 오히려 언어의 의미를 약화시켜 그 아래 흐르는 감정의 여러 층위를 보고 싶어요.” 데이비드 해로우어의 작품은 일종의 어둠을 담고 있고 그것은 잘 보이기보다는 어슴푸레 느껴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실주의와 상징주의의 사이에서 작가는 언어에 숨겨진 다의적인 겹층을 인물의 이면(裏面)에서 발견하고자 했고, 그 신비로움이 이 작품을 현대의 무가(巫歌)로 여겨지길 의도한다는 것이다.
작품 <암탉을 찌른 칼>의 무대는 연한 갈색(베이지색)이 주색(主色)이다. 바닥은 흙바닥을 연상시키고 테오와 여자는 그 흙바닥에 그대로 누워 자고 먹는다. 특정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경계 없이 책을 쌓아 낮은 경계를 삼고, 테이블과 의자를 둔 곳이 길버트의 공간이 된다. 뒷무대는 천으로 막을 하는 대신 세로로 길게 잘린 종이(지전)로 설치하였는데, 등장인물들의 자유로운 등장과 퇴장을 도우면서 배우들의 역동적인 동선이 생길 때마다 이는 바람으로 움직이는 것이 초자연적인 작품의 신비한 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이 신비한 초자연적인 분위기는 음악과 조명이 더욱 짙게 한몫을 한다. 그들은 결코 튀지 않고 스며들 듯 속삭이듯, 혹은 잔잔히 도르륵 구르는 개울물처럼 움직이며 배우들의 음성과 움직임과 어울려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후에 나눈 대화에서 연출은 ‘원(circle)’의 개념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마을은 사방에 둘러싼 흙으로 표현하며 이것은 사람들이 정복한 땅이자 여자를 가둔 족쇄와 경계이며, 반면 마을의 주변을 둘러싼 자연은 정복되지 않는 곳으로, 무대의 공간은 여인의 발걸음에 따라 경계의 선이 지어지도록 의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도한 만큼 이번 공연에서 이 점이 확실히 구현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아쉬운 자평(自評)을 남겼다.
여자: ‘이게 나다.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어. 그리고 세상을 봐. 하느님으로 가득 찬 세상이 매일,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늘과 땅 사이에 펼쳐져. 그것들은 침대나 식탁을 만지는 것처럼 만질 수 없어. 내 마음대로 사고 팔고 요리할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암탉을 잡아 뱃속에 칼을 찔러 넣듯이, 세상에 이름을 찔러 넣는 것뿐이야. 딱 맞는 이름을 찾아 부를 때 난 거기에 신이 있다는 걸 느껴. 나무를 보고 나무-라고 말하고 걸어가. 나무 말고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이름이 많아. 난 매일 더 알고 싶어.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물웅덩이는 뭐라고 하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뭐라고 하는지, 깨물었을 때 다른 당근보다 훨씬 더 단 당근은 뭐라고 하는지. 바위 밑에 차가운 흙은, 지친 말의 더운 입김은 뭐라고 해? 일 끝난 저녁 남자의 얼굴, 아무도 없을 때 여자가 지르는 비명은, 뭐라고 해? 이제 난 그 이름들을 혼자 힘으로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아. 똑바로 서서 잘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남편이 날 속였어. 마을 사람들도 날 속였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그들이 나보다 많이 알아서도 아니야. 하느님이 그들에겐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제 알겠어. 밭에서 일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여.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질투는 아니야. 질투보다 큰 거야. 이게 뭔지 알아내려면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 해. 그 이름을 찾아내면 난 신에게 한 발 더 가까워 질 거야.’
작품 <암탉을 찌른 칼>은 제6회 여성연극제 연출가전의 2개의 공식참가작 중 하나이다. 여성연극제는 제1회 여성극작가전으로 시작해 5회까지도 여성극작가전으로 개최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여성연극제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기획공연, 작가전, 연출가전, 세대공감모노전과 전시, 시민독백대회까지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으로 10월 초까지 한 달간 진행한다. 여성연극협회 강선숙이사장은 여성연극협회를 사단법인화하는 성과를 내면서 이 축제의 성격을 조금 더 확대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안타깝게도 어느 관 단체에서도 재정적 지원금을 받지 못했고, 협회 측 자체로 광고와 후원을 얻어 열악한 재정조건에도 출품작들에게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극작가전이 여성연극제가 되면서 숙제도 남았다. 여성의 이름을 걸고 올려지는 다른 연극제들과의 변별성이 그것이다. 여성 연출가전, 페미니즘연극제와 함께 올해 시작된 여성연극협회의 여성연극제가 ‘앞으로 시대와 공감하는 어떤 고유의 타당성을 획득하는 가’가 중요한 당면과제가 되었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