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곤
언제부턴가 “영향 평가”라는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해졌다. 아마 가장 자주 듣는 것이 대규모 건축이나 건설사업에 따라붙는 “환경영향평가”일 것이다. 또 얼마 전부터 도시재생 사업 등에 적용되기 시작한 “문화영향평가”라는 것도 있다. 잘 모르긴 해도 환경이나 문화 모두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한 질서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게 급격한 변화 등으로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렇게 민감한 성격으로 보자면 예술보다 더한 것이 없다. 즉 예술 생태계야말로 주변 환경의 극히 사소한 변화에 의해서도 완전히 치유 불가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예술과 관련해서 어떤 정책이 추진된다면 사전에 그것이 예술 현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어떤 부분은 조정하고 또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대선 정국이라 그런지 예술 정책도 큼지막한 것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더욱이 연극계는 각 지역 연극협회들의 회장 선거가 진행되면서, 또 얼마 안 남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선거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정책 제안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대선 공약이건 연극계 공약이건 실제 현장 예술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껏 크게 떠들기만 했지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작업 환경은 계속 열악하기 짝이 없고, 삶은 여전히 더없이 고단하고, 그래서 언제 포기하고 떠나게 될지 늘 불안한 상태의 예술인들에게 아무리 장밋빛 정책을 들이대도 무심할 것은 당연하다. 아니, 대부분의 보통 예술인들은 그럴 여력조차 없는 것이고, 그나마 정책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예외적으로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아니면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일 텐데, 그 소수 중 일부는 자신의 위치에 따른 책임 의식으로 그럴 것이고, 나머지는 어떤 정도건 이해관계가 걸려서 그럴 것이다.
2021년 한국연극협회 정책위원회에서 발표한 7대 정책 과제 중 제1과제는 “공공극장의 정상화”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전국 각지의 문예회관들 중 “일부를 제작극장화하고 그를 통해 1만 명의 공연예술인을 고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자 연극계에서 민간극장 내지 민간극단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아마도 현장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없지 않느냐는 우려일 듯싶은데, 사실은 “공공극장의 정상화”와 같은 점잖은 문구로는 실행 동력을 얻기 어려우니 몇 개의 제작극장이니 몇 명의 예술인이니 하는 구체적 수치로써 눈에 확 띄게 하자는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200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이다. 고등학교에 연극 교과목을 개설할 것을 당국에 촉구하면서 그 중간 단계로 연극인들이 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더니 대뜸 어떤 대학생이 손을 들고는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졸업 후 차지할 자리는 없지 않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래서 이것이 몇 백 개가 아닌 최대 몇 만 개의 일자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틀린 답변이었다. 실제로 2002년 100명의 연극인을 모집해서 시작한 “연극강사풀”은 이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연극분야 학교예술강사 파견사업”으로 이어졌지만 21년째인 올해까지도 매년 겨우 500여 명의 연극인만을 고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500명 중에는 대학 전공학과 졸업생들도 많이 섞여 있으니 2000년 당시 그 학생의 우려는 다소 과민했던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 목표로 했던 최대 몇 만개라는 수치는 참으로 공허하고 민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연극 현장 일부에서는 언제부턴가 학교 수업 나가는 연극인들 때문에 연습 시간 잡기도 어렵다느니, 다들 현장 작업은 안 하고 돈 받고 수업 나갈 생각만 한다느니 하면서 예술강사 사업의 폐단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기성 연극인들 때문에 전공 졸업생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현실의 최소 수십 배 내지 최대 백 배에 이를 정도로 거리가 먼 목표 설정이나, 또 작업 현장의 분위기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무감각이나 모두 전문성이 부족한 결과이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면 그것의 실현 가능성과 그 결과가 미칠 영향까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예 추진 자체가 안 되거나 설령 추진되어 목표를 달성해도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마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는 예가 워낙 드물다 보니까 나중에 부작용이 발견되면 그때 가서 대처하기로 하고 일단 뭐든 추진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가령 앞서 “문예회관의 제작극장화와 1만 명의 예술인 고용”을 제안했다 했는데 1만 명은 고사하고 그 절반인 5천 명, 아니 그 절반의 절반인 2천 5백 명만이라도 고용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그 여파로 연극계 일부에서 우려하듯 민간극장 내지 민간극단의 인력난이 벌어지는 꼴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게 그것이다.
예술은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국가의 필수 구성 요소이다. 그래서 국가는 “법률로써 예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의무화까지 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운영자들은 이러한 헌법 정신에 맞추어 예술 정책을 세우고 펼쳐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예술에 무관심하거나 현장에 대해 잘 모른다. 결국 예술 정책은 예술계나 예술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절박한 대상이 되지 못 한다. 그러니 어떤 정책을 제안했을 때 그에 대해 조그마한 우려나 이의 제기라도 있으면 그것을 보완하기보다는 옆으로 제쳐놓을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만다.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제안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반면에 문제를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또 깊은 생각 없이 피상적으로 부정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책을 구상하고 제안하는 데 있어 아주 유효한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불쑥불쑥 직관적으로 나오는 반응까지도 약으로 생각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적절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애초 구상 단계에서부터 치밀해야겠지만, 그런 뒤에도 계속 여러 의견을 들으며 수정을 거쳐 정책으로 제안하고, 또 실행 단계에서도 계속 세밀하게 보완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 하겠다.
이제 예술 정책에도 현장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을 기존의 다른 영향 평가처럼 틀에 맞춘 구체적 지표들로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그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평가 기준을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함께 그것이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은 예술 정책의 구상과 제안을 위한 필수 선행 조건으로 못 박을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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