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기억 메타포, 몸

극단 노뜰 <Your Body>

글_이성곤(연극평론가)

극단 노뜰은 2019년부터 전쟁연작 시리즈로 ‘전쟁’을 무대에 올려 왔다. 2019년 <국가>를 시작으로 2021년 <침묵>을 공연했고, 지난 2월 말 <Your Body>(후용예술센터 교실극장)를 끝으로 3편의 연작을 마무리했다. 아쉽게도 과거에 공연된 <국가>와 <침묵>은 놓치고 말았다.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고 있는 극단 노뜰의 공연은 조금만 게으름을 부려도 놓치기 십상이다. 3편의 연작은 3년간 이어진 전쟁에 대한 리서치와 연구, 워크숍과 쇼케이스를 거쳐 본 공연으로 완성된 것이다. ‘제주4.3, 여순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아르메니아 대학살, 캄보디안 킬링필드, 르완다 대학살, 베트남 학살, 인도 네시아 동티모르 학살, 거창과 대전형무소, 함양 양민학살사건’ 등 우리 근현대사는 물론 세계사적 비극에 주목해왔다. 전쟁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야만적 사건들까지 아우른다. 열거한 사건들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더 많다는 사실 또한 큰 충격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 고통을 기억하려는 행위를 통해 삶에 대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을 터. 그래서 고통의 기억을 소환해내려는 행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다름이 없다. 극단 노뜰의 <Your Body>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몸이라는 언어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옴으로써 역설적으로 강력한 생명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극단 노뜰

기억의 문자가 기록되는 표면은 마음이나 영혼이 아니라 예민하고 연약한 몸이다. 니체가 했던 말이다. 나아가 ‘고통이 기억술의 가장 강력한 보조수단’이며,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만이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좀 더 과장하자면 기억이 곧 몸이며, 몸이 곧 기억이라는 등식을 상정할 수도 있겠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폭력과 고통의 시간들이 ‘몸의 문자’를 아로새기는 것이다. 우리가 포착해야 할 불편하고도 고통스러운 진실은 여기에 있다. <Your Body>가 몸에 집중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기억, 기억 메타포로서의 몸을 통해 고통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공연은 ‘재현’보다 ‘표현’에 집중한다. ‘서사’를 버리고 ‘추상’을 선택한다. 중심에는 역시 배우의 몸이 있다. <Your Body>는 이렇게 배우의 몸을 통한 추상적 표현을 뼈대로 하여 몸에 아로 새겨진 고통의 문자와 기억들을 무대 위에 소환한다.

표현의 출발은 내적 욕구와 충동이다. 전쟁의 참상을 느끼고 전달하며 공감하기 위한 욕구에서 시작한다. 극단 노뜰의 공연 앞에서 분석적 태도가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느끼고 공감하며 정서적으로 배우들의 표현에 동참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Your Body>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공연에 온전히 나를 맡기다 보면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가 형성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전쟁에 대한 학습과 간접경험, 그리고 유사경험들은 배우들이 창조해낸 몸의 문자와 만나 저마다의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어느 누구도 전쟁과 폭력이라는 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감각하게 해준다. 배우들의 몸은 관객인 나의 세계를 투사하는 하나의 프리즘이 된다. 랑그로서의 언어는 극도로 절제된 채 움직임과 음악을 중심으로 이미지와 미장센을 구축해나간다.

사진제공: 극단 노뜰

그런 점에서 <Your Body>는 극단 노뜰 배우들의 개성과 장점이 잘 발휘된 공연이다. 노뜰은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만의 신체 훈련 메소드를 고집해오고 있다. <동방의 햄릿>부터 <귀환>과 <보이체크> 등 초창기 작업에서부터 다져온 실력이다. 지금도 강원도 원주의 후용리 폐교에 연극 공동체를 만들어 치열하게 공동작업을 해나가며 그 결과물로서 특유의 신체극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Your Body>는 제목에서부터 몸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인간의 몸을 통해 전쟁 그 자체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했다고도 밝히고 있다. 전쟁과 폭력,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공연은 집요하리만치 배우의 몸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한다. 혼자, 또는 짝을 이뤄 등장한 배우들은 독백처럼 짧은 대사와 질문을 던지고는 마치 무용수처럼 움직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몸으로 대사를 쓰고, 몸으로 오브제를 만들기도 한다. 어떨 땐 암흑의 무중력 공간에 부유하다 명멸하는 먼지처럼 덧없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어짐’ , 곧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배우들은 끊임없이 중심을 무너뜨리다가도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낸다. 서로를 떨쳐내는 듯하다가도 다시 끌어당기거나 받쳐주면서 몸과 몸을 이어나간다. 파괴와 회복과 조화의 반복적 움직임은 생명의 순환원리와 닮아있다. 배우들의 호흡과 신체는 마치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공연은 한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죽음과 고통의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생명의지와 에너지가 숭고하게 피어난다.

사진제공: 극단 노뜰

처음 가본 후용예술센터 교실극장은 폐교된 작은 초등학교 교실을 개조해 만든 것이었다. 높이는 말할 것도 없고 넓이도 변변찮았다. 그러나 암전이 되고 희미하게 조명이 들어오면 극장은 우주를 품고 있는 것처럼 무한히 확장된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 떠있는 것 같은. 무대 장치도 거의 없다. 무대 좌우에 놓여 있는 몇 개의 의자가 전부다. 그것도 다음 등장을 기다리는 배우들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빛과 어둠과 음악과 침묵과 배우의 몸과 거친 호흡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이미지가 또 하나의 기억 메타포처럼 각인된다. 공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진 레퀴엠 풍의 음악도 잊을 수가 없다. 음악에 문외한인 터라 공연 후 원영오 연출가에게 물어봤다.

아쉽게도 미국 작곡가 데이빗 랭(David Lang)의 ‘데스 스피크 (Death speaks)’만 기억에 남는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았다. “You will return….” 이 묵시적인 가사와 음악은 단지 죽음을 환기하는 데서만 머물지 않는 듯했다. ‘죽음은 존재의 상태나 장소, 은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올 세상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드라마 속의 인물이자 캐릭터다.’ 데이빗 랭이 작업노트에 적었다는 말이다. <Your Body>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 그 기억이 아로새겨진 몸을 화두로 결국 다가올 세상에 대한 기대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다. 데이빗 랭의 음악도 이러한 질문의 깊이를 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제공: 극단 노뜰

공연을 보는 동안, 지난 2월 23일 밤 뉴스에 소개된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기 바로 전날 밤의 표정들이다. 긴장과 결연함과 담담함과 분노, 그리고 아이들이 짓고 있던 천진한 웃음까지. 수많은 이의 운명을 갈라놓았을 그날 밤. 그 시간 이후 또 얼마나 많은 몸이 파괴되고 상처받고 있을까. 지금도 차고 넘치므로, 인류 역사에 더 이상의 ‘전쟁서사’는 필요 없다. ‘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도 우리 세대를 넘기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본 기사는 <한국연극> 4월호에 실린 비평문을 재수록한 글입니다. <오늘의서울연극>(TTIS)은 좋은 글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재수록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독자가 연극비평을 접해서 건강한 관극문화가 꽃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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