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극의 고금(古今)을 만나보다

-‘제5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리뷰

배선애(연극평론가)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제5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오수경 회장으로 출발한 한중연극교류협회의 대표적인 사업은 낭독공연과 희곡집의 발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낭독공연은 우리 연극의 레퍼토리 개발 측면에서도 그 역할과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김옥란 회장을 중심으로 2기 임원진이 새롭게 구성되었는데, 1기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를 이번 낭독공연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장막극 중심이었던 이전 공연에 비해 현대 단막극을 두 편 배치했으며, 중국의 고유한 장르로 분류되는 경극을 포함시켰고,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 현대극의 대표작도 명단에 올렸다. 전통에서 단막극까지 장르와 형식적 다양함은 물론이고 창작시기 역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로 넓혀서 중국 연극의 과거와 현재를 망라했다. 두루두루, 널리널리 중국희곡의 좋은 작품들을 찾아내고 선보이겠다는 임원진의 의지가 읽힌다. 국립극단의 협조 하에 현재 왕성히 활동하는 연출가들을 섭외해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선보인 이번 낭독공연에도 관객들의 관심과 호응은 뜨거웠다. 5회에 이르는 시간 동안 낭독공연의 결과들이 우리 연극계에 많이 축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낭독공연의 첫 번째 공연은 현대 단막극인 <붉은 말>, <만원버스>였다. 단막극이기 때문에 두 편을 함께 공연했는데, 문삼화 연출이 작업한 두 편의 단막극은 낭독공연이라기보다는 쇼케이스나 워크숍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배우들이 모두 대사를 외웠기 때문에 대본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았으며, 약속된 동선에 따라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낭독공연인데 이렇게까지? 공연으로 진행되니 작품의 색깔과 의도가 무척 선명하게 다가왔는데, 아마도 문삼화 연출은 희곡의 대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현대 단막극 두 편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방향 잃은 사람들에 대한 우화: <붉은 말>(자오야오민 작, 장희재 번역, 문삼화 연출, 1981)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붉은 말>은 강한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단막극이다. ‘말 타는 사람’, ‘땅 파는 사람’, ‘불 쬐는 사람’, ‘스키 타는 사람’은 설원에서 제 각각의 목표에 따라 움직인다. 겨울잠을 자야한다는 ‘땅 파는 사람’은 쉬지 않고 깊은 땅을 파고 있고, ‘불 쬐는 사람’은 작은 오막살이에서 따뜻한 국물을 마시며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해한다. ‘스키 타는 사람’은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고 있고 ‘말 타는 사람’은 자신의 붉은 말을 찾고 있다. 이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람에 따라 회전하고 있는 표지판과 붉은 말이다. 표지판은 방향을 표시해주기 때문에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그러나 설원의 표지판은 바람개비처럼 쉽게 움직인다. 초원이라는 막연한 공간조차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황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붉은 말은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와 같은 존재로, 방향 잃은 존재들이 찾고자 하는 지향이다. 작품 마지막에 달려가는 말들과 그 말발굽에 밟힌 표지판은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는 인생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문삼화 연출은 설원의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하얀 색 옷을 입혔다. 각각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간단한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불 쬐는 사람’의 자부심인 오두막을 하얀 천을 덧댄 우산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들여 만들었지만 어딘가 초라한 우산의 이미지가 오두막의 실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스키 타는 사람’은 실제로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무대 위를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스키가 갖고 있는 이동성을 구현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다른 배우들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동선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었고, 서는 것과 멈추는 것을 의도에 맞게 표현한 것을 보며 배우의 연습량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낭독공연이라는 명칭에 집중하기보다는 작품의 색깔을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한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중국 현대 단막극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끈끈한 밀도: <만원버스>(장센 작, 장희재 번역, 문삼화 연출, 1990년대 초반)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만원버스>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분명 무대 위에는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한 사람만 계속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빽빽한 만원 버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계속 말을 건다. 어떻게 보면 시비를 걸기도 하는 것 같고 신세한탄을 하는 듯도 하다. 소통할 의지가 없는 듯한 그 길고 긴 대사를 서 있는 사람은 대꾸도 없이 계속 듣고 있다. 어찌 보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관계는 마지막에 역전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싫어! 안해!”라고 소리치면서 존재감을 각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문삼화 연출이 공연으로 방향을 잡은 결정적 이유가 이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마치 1인극처럼 보이는 <만원버스>의 대사들을 낭독한다고 전제하면 쉴 새 없이 한 명이 계속 읽어야 한다. 관객의 집중력도 장담할 수 없고, 지루함도 어쩌지 못할 상황이 쉽게 예측되기에 배우에게 단막극 한 편 분량의 대사를 모두 외워서 연기를 하도록 한 것이다. 대사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은 공연 중반을 넘어가면서 저절로 들었다. 서있는 사람은 언제 대사를 할까 기대하는 것도 잠시였고, 이 작품은 이렇게 혼자서 말하는 것으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예상되자 무대 위에서 움직여주는 배우가 훨씬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그러다보니 김지원, 고재경 두 명의 배우를 이 작품에 캐스팅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김지원 배우는 단막극을 통째로 외워서 연기하는 막강한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그 암기가 단순한 암기 차원에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상황과 캐릭터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바탕에 깔고 감정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재경 배우는 마임이스트라는 특징을 적극 활용해서 듣고만 있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여러 신체 움직임을 통해 구체화하였다. 낭독이었다면 한 마디 말없이 보면대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배우는 물론 관객도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겨웠을 것이다. 대꾸도 없이 서 있기만 했던 사람의 마지막 대사 “싫어!”가 속시원했던 것도 움직임을 통해 축적된 감정들을 관객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배우에게는 힘겨웠겠지만 관객을 위해 낭독이 아닌 공연을 선택한 문삼화 연출의 과감함이 빛을 발한 공연이었다.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경극을 다양한 소리로 듣다: <조조와 양수>(천야센 작, 김우석 번역, 임지민 연출, 1988)

첫 번째로 공연한 단막극들이 공연의 형식을 취했다면 두 번째 공연인 <조조와 양수>는 전형적인 낭독공연으로 진행되었다. 등장하는 배우가 모두 보면대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서 자신의 대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 번째 공연과 비교했을 때 자칫 밋밋하지 않을까 생각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조조와 양수>는 경극 대본이다. 경극은 대사의 구성 중 많은 부분이 노래이고, 대사 역시 성조에 따른 리듬이 중요한 장르이다. 그 대본을 낭독으로 관객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임지민 연출은 고민이 많았을 터인데, 공간을 색다르게 잘 쓰는 연출로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낭독공연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은 ‘경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래를 부를 수 없고, 대사의 리듬을 살려낼 수 없다면 연극의 대사로 관객에게 작품의 의미와 주제를 보여주면서 많은 소리들을 그 속에 섞어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조조 역의 이호재 배우를 비롯해 발음과 화술이 좋은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해서 작품의 대사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 첫 번째 작업, 경극의 리듬은 아니어도 다양한 소리를 넣어 이질적이면서도 이색적인 느낌을 강화하는 것이 두 번째 작업, 이 둘의 조합이 낭독공연으로 성취되었다.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겠는 생소한 악기들인 생황, 율기, 송훈의 연주자들이 무대 오른편에서 책상에 놓인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하면서 장면에 따라 분위기와 정서를 만들어 냈다. 지금껏 익숙하게 들어왔던 소리와는 다른 질감의 악기소리는 대사로만 전달되는 경극의 낭독공연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거기에 배우들의 목소리는 ‘계륵’으로 익히 알려진 조조와 양수 이야기를 현재화하고 있었다. 조조 역의 이호재 배우는 마치 리어왕처럼 복합적인 감정을 대사 속에서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 존재감이 매우 컸다. 보면대 앞에서 대사를 읽기만 하는데도 행동하는 조조가 자연스레 상상되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양수 역의 김원해 배우를 비롯해 김문식 배우, 김정은 배우, 나경민 배우 등 좋은 목소리에 좋은 발성의 배우들이 읽어주는 대사도 소리의 겹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리듬과 선율의 소리가 중요한 경극이기에 그 낭독공연에서도 소리를 강조하고 다양한 소리를 겹겹이 쌓은 연출의 현명한 선택이 우리에겐 낯선 장르인 경극에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 <찻집>(라오서 작, 오수경 번역, 고선웅 연출, 1957)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찻집>은 “중국 근대극사에서 첫손에 꼽히는 기념비적인 작품”(낭독공연 팸플릿 중)이다. 무엇보다 찻집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시대에 따라, 세월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군상을 보여주면서 삶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은 작가 라오서와의 관계가 특별한데,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에서 같은 작가의 작품 <낙타상자>를 선보였다. 당시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들이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호기심과 기대로 관극을 했는데, <낙타상자>는 배우들이 대본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어서 곧 공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 작품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를 연출가가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 당시 극단 마방진의 젊은 배우들이 보여준 에너지가 지금도 선명하다.

고선웅 연출의 낭독공연 형식은 <찻집>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어떤 면에서는 문삼화 연출의 공연과 임지민 연출의 공연 그 중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배우들이 손에 대본은 들고 있지만 간단하게 설정된 무대 세트를 활용해 움직였으며, 마지막 찻집 주인의 죽음 장면에서는 부분무대가 수직이동하는 큰 그림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들 손에 들려 있는 대본도 마치 소품처럼 활용한 점도 재미난 부분이다. 작품 자체가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찻집에 등장하는 인물이 무척 많은데, 그에 호응하듯 35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그 수가 많다보니 명동예술극장 무대를 가득 채웠고, 그 배우들 전체가 서 있던 커튼콜에서는 험난한 세월을 무던하게 살아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예찬을 읽을 수 있었다.


사진제공: 한중연극교류협회Ⓒ이강물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라는 글귀가 찻집의 벽에 점점 쌓여가는 것을 영상으로 투사해서 세월의 변화를 표현한 것, 부분무대를 활용해 찻집주인 왕대인의 결말을 강조한 것 등 실제로 무대 활용의 측면에서는 간단한 몇 가지 아이디어만 활용되었지만 그 효과는 매우 컸다. 낭독공연이지만, 배우들이 손에 대본을 들고 읽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입체감은 바로 그 몇 가지의 장치와 설정으로도 충분히 구현된 것이다.

국립극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이후 낭독공연으로 인연을 맺은 <낙타상자>를 극단의 레퍼토리로 만들었으며, 최근 <회란기>를 선보여 중국연극을 잇달아 공연하면서 레퍼토리화하는 고선웅 연출의 활동을 보면 <찻집> 역시 이번 낭독공연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물론 출연 인원은 변동이 있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에서 느낀 것은 그 동안 중국 연극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었다. 같은 아시아인데, 일본과는 상대적으로 교류가 잦았고 많은 작품들이 소개됐고 공연됐던 것에 비해 중국 연극은 정말 모르고 있었고,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각성이 가장 컸다. 낭독공연의 의미와 역할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몰랐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 이번 낭독공연에서도 창작경극의 특성, 중국 단막극의 질감에 대한 발견이 있었다. 거기에 심포지엄으로 준비된 중국 젊은 연극인들을 통해 동시대를 고민하는 연극인의 공감도 알게 되었다. 내년에는 어떤 작품들이 소개될지, 그래서 어떤 발견과 각성을 이끌어낼지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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