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배우 장용철이 만난 풍경_ 연극과 사람 1호

1호_ 우리는 모두 처음입니다

글_장용철(배우)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주에서 올라온 25살 절대배우 김상호입니다.”

 

자신을 ‘절대배우 김상호’라고 소개하던 그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나온 ‘절대반지’에서 가져왔다는 그의 말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되었고, “‘절대반지’를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절대배우>라는 말을 내 가슴에 새겨 넣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달려오던 25살 김상호도 분명 그랬을 겁니다.

 

최근에 그 영화가 2002년에 국내 개봉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김상호를 처음 만난 때가 1999년 봄이었는데 어떻게?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배우 김상호’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미래를 미리 앞당겨 살 수 있다니 어디에서 착각이 일어난 것일까? 내 기억의 어디에서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일까?

 

지난 4월부터 갑자기 궁금해졌고 수소문 해 보았지만 김상호가 어디에서 무얼하고 사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연예술아카데미 제9기] 2년 4학기 동안 함께 지냈던 동기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해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김상호, 소식 끊어진 지 10년 되었다는 것을. 내 질문은 길을 잃었습니다.

 

1999년 봄, 반무섭 연출이었습니다. ‘그럼 공연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가 보라! 내일 신청 마감이다.’라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연극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재충전(?)을 위해 들어가는 곳이라 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던 내 마음을 뒤흔들었고 연기 전공자가 아닌 내겐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난생처음 희곡을 한번 써보던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희곡을 ‘한번 써보았다!’라고 표현하는 일은 벌써 죄짓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삼식의 희곡집 [배삼식]에 나와있는 어떤 문장이 눈 시리도록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희곡작가는 playwright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극작가를 영어로 ‘playwright’라고 하는데, 뒷말이 ‘writer’가 아니라 ‘wright’라는 사실… ‘wright’는 장인이라는 뜻이니 ‘playwright’는 희곡장(戱曲匠), 또는 희곡공(戱曲工)이다….”

 

따라서 희곡이란 누군가 ‘한번 써보는’ 작업일 수 없습니다.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김병호 대표님과 지금은 고인이 된 ‘극단 은세계’의 이동준 대표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숲속나라 울보공주>, <우산 속 별과 춤추는 모자>, <별 이야기> 이렇게 세 번씩이나 희곡을 써보도록 나를 추동하여 고무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세 편 모두 어린이 관객을 위한 작품이었고 감사하게도 극단 즐거운 사람들 제작으로 공연되었습니다.

 

2021년 여름, 김경주 시인의 시집 제목을 빌어다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제3회 76페스티벌, 좋은희곡읽기모임 제작)라는 단막극을 써보았으니 내 생애에 희곡을 네 편이나 써보았고 연출작업으로 무대화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으니 이만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정도는 될 법도 하겠습니다.

 

‘연기’ 말고 새로운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공연예술아카데미 제9기] ‘극작평론반’에 서류전형을 통과하고서 면접을 보는데, 안치운 선생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극단 작은신화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극작평론반인가?”

 

선생님께 뭐라고 대답하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새로운 걸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그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던 아르코 미술관 건물 강의실에서 2년을 잘 지냈습니다.

 

어느날 극작평론 전공시간에 한상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이걸 쓰려고 청춘의 밤을 잠도 못 자고 끙끙대고 있었다는 말인가?” 선생님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결국 과제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경기도 가평 어디로 전체 MT를 갔다가 아침나절에 선생님과 산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상철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에, “선생님! 이렇게 조용한 대자연 속에 파묻혀서 하루종일 글만 쓴다면 참 좋겠죠?” 그때 선생님께서 단호하고 명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아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희곡을 쓰겠니? 복잡하고 골치가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써야지. 세상 속에 푹 빠져서 세상 이야기를 써야지. 그게 세상 이야기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는 선생님의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입니다.

2022년 11월, 대학로에서 멋진 서점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가보니 간판명이 ‘어쩌다 산책’이었습니다. 에세이(Essay)의 의미에 대해서 새로 배웠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에세이의 뜻은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철학가 몽테뉴는 자기답지 않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를 알고,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글쓰기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글쓰기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힘든 노력이다. 그는 ‘경험하다’, ‘처음 해보다’, ‘해 보려고 애쓰다’를 뜻하는 동사 essayer에서 ‘시도 essai’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글의 형식인 ‘에세이’가 바로 그것이지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신다면 스스로를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는 모두 처음입니다.

 

그날 내게 새로운 서점을 소개해준 ‘연극집단 반’의 송현섭 배우에게 이 문장을 전합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이라서 참 다행입니다. 처음이란 나를 회복할 때, 내가 돌이켜야 할 지점이 어딘지를 알아챌 때, 비로소 눈을 똑바로 뜨도록 도와주는 방향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방황과 엇비슷하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 여태껏 주로 방황하곤 하였습니다. 살아오면서 만나는 질문들은 그때 그 순간 풍경 속에 잠시 머물던 우리들 자신을 회복합니다.

 

풍경이 창문을 회복하듯이

창문이 풍경을 돌이키듯이.

연극이 우리를 회복하듯이.

연극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질문들을 돌이키듯이.

 

1호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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