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황윤동(사)문화창작집단 공터다 대표, 문화예술연구소「점·선·면」소장)
ం 사이 (명사) 1.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의 거리나 공간.
2. 한때로부터다른때까지의 동안.
ం 빈틈 (명사) 1. 비어 있는 사이.
2. 허술하거나부족한 점.
–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
나는 연극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지금은 뜸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갈망하는) 배우이자 연출가이자 기획자이자 제작자의 역할(役割)을 수행하며, 인구 42만 중소도시의 어느 동네에 위치한 소극장을 거점으로 공연제작, 연극교육, 축제기획, 국제교류 등의 주요사업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우리 시대의 사명인 일자리 창출에 부흥하고자 단원들에게 4대 보험이 보장된 (미래가 불안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단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전문예술법인이자 사회적 기업인 극단의 대표이다.
덧붙여 나는 대학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에서 취미로 연극을 하다가 ‘연극의 매력(?)’에 빠져 ‘잘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 자칭 ‘지역 최초의 전업 연극인(이라고 생각하는)’이다. 하지만 “예술 활동 증명”이 없던 시절 ‘학부 전공’도 아닌 내게 ‘전업’은 지역에서 그리 유의미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팔자 좋은 시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은 연극 창작의 출발점”이라는 믿음과 “연출은 작품을 책임지지만 대표는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 19의 위기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연극 예술 활동을 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국가 문화 예술 정책의 흐름(?) 속에 시의적절한 선구안(?)으로 험난한 예술 현장에서 잘 버틴 편이다. 꽤나 맷집이 쌓인 나다.
지난 20여 년 사이 국가 문화 예술 정책은 ‘선택과 집중’, ‘팔걸이 원칙’에서 ‘지역문화’, ‘생활예술’로 변화하였고 그 대상은 ‘예술가(단체)’에서 ‘시민’으로 확장되었고 지금은 ‘청년’이 최고의 화두이다.
나의 극단은 국가에게 선택되어 집중적인 수혜를 받는, 공식적(?)으로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전문예술법인(단체)’가 되고 싶었다. 공동체의 협업이 중요한 연극 예술의 특성상 단체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했기에 ‘선택과 집중’은 나의 극단의 이해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전문예술법인과 사회적 기업이라는 간판을 따냈다. 하지만 ‘직업’과 ‘취미’, ‘전문’과 ‘생활’, ‘창작’과 ‘향유’가 뒤섞인 내 밥벌이 현장에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마라”는 ‘팔걸이 원칙’의 기조는 행정과 정치 관료의 ‘팔에 손을 거는 원칙’이었다. 우리 동네 최초이자 유일의 문화예술 분야 전문예술법인(단체)이자 사회적 기업의 인증서는 행정 기관의 낯내기 보고서의 한 줄에 지나지 않았다. ‘취미’와 ‘생활’ 그리고 ‘향유’와 구별되지 않았다. 국가 정책과 지역 현장의 ‘사이’에 나의 극단은 ‘빈틈’이었다.
문화기본법이 제정되고 문화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예술보다는 문화에 방점이 찍힌 ‘지역문화’ 정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막강했다.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용한 선진 사례를 교과서의 표준으로 삼아 지역 환경에 맞지 않아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 결과 도시는 지역문화진흥법의 목적을 맞게 지역 간의 격차가 해소되는 평준화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와 ‘수평적인’을 내세운 시민 협치 구조는 국가 주도로 설계되고, ‘차이’와 ‘다름’을 수용한 도시들은 ‘문화도시’라는 수식어가 부여되는 순간 문화로 ‘차별’된다. ‘지역문화’가 실현되는 도시에서 예술은 ‘생활예술’이 차지하고 향유로 존재할 뿐이다. 국가 문화 정책과 지역 문화 정책 ‘사이’에 나의 극단의 예술은 ‘빈틈’이다. 나의 극단은 국가와 지역 ‘사이’에 있으나 그 어느 ‘사이’의 ‘빈틈’이다.
‘청년’ 정책이 국가 정책의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청년 예술인에 대한 정책 사업 또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역들은 청년의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역보다 중앙을 선호하는 청년들과 지역보다 더 적극적인 중앙의 청년 정책으로 지역에는 청년이 없다. 청년 예술인은 더더욱 없다. 재미있는 부분은 나의 극단 구성원의 80%는 청년이었다. 아무도 조언을 구하거나 찾지 않았다. 청년들 ‘사이’에 나의 극단의 청년 예술인은 ‘빈틈’이었다. 지금은 떠나고 없다.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활예술인은 그들이 향유했던 취미활동이 ‘예술 활동 증명’이 되어 30여 년 인고의 시간을 견딘 나와 같은 예술가로 불린다. 나의 밥벌이 현장에서 ‘직업예술’과 ‘생활예술’은 동음이의어이다. 직업예술과 생활예술 ‘사이’에 나의 예술은 ‘빈틈’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나는 ‘빈틈’만 남아 있다.
걱정은 없다.
그 ‘빈틈’을 그 동안 다져놓은 맷집으로 메꾸면 되니까.
……..
나는
‘사이’일까
‘빈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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