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DVD 표지 (Royal Opera House)

 

앞선 연재에서 분석했듯이 바비에와 카레의 리브레토(대본)은 괴테의 원작을 상당 부분 훼손했다. 이러한 과감한 왜곡의 대가로 얻어낸 극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이 두 리브레티스트의 가장 큰 패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가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구노의 음악 때문이다.

 그럼, 괴테 파우스트를 음악화(化)한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성공적이라 일컬어지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살펴보자.

 

 

19세기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했던 오페라의 한 장르인 ‘그랜드 오페라’의 형식답게 엄청난 규모를 뽐낸다. 일단, 총 5막 24장에 연주 시간이 170분에 이른다. 여기에 4막과 5막 사이에 삽입되는 7곡의 발레 음악까지 더하면 공연 시간은 3시간이 훌쩍 넘는다. 연주 인원은 주연(파우스트, 그레트헨(마르게리테), 메피스토펠레스) 3명과 조연(발렌틴, 지벨, 바그너, 마르테) 4명의 독창가수와 대규모 혼성 합창단 그리고 약 80명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종종 생략되기도 하지만 발레 장면을 원작대로 살리면 공연 인원은 무용수를 보태 총 200명이 넘는다. 그야말로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가 아닐 수 없다.

 

 각 막마다 오페라를 대표하는 음악을 몇 곡씩 꼽아보자.

 

1막의 늙은 파우스트 (파리 오페라단, 1975)

 

먼저 서곡에 해당하는 Introduction은 확연하게 대비되는 세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굉음과 함께 어둡고 고통스러운 주제가 등장하고 불길한 현의 트레몰로가 긴장감을 고조한다. 이어 영롱한 하프가 등장하면서 애틋한 멜로디가 총주로 연주된다. ‘고통’, ‘불길’, ‘애틋’은 세 주인공인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 마르게리테를 상징한다. 마르게리테의 주제가 절정에 이르면서 제1막이 열린다.

 1막의 무대는 파우스트의 연구실이다. 고통과 고뇌로 자살하려는 늙은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계약을 제시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청순한 마르게리테를 보여주며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1막 2장의 Me voici! A moi les plaisirs(쾌락을 찾아)는 테너인 파우스트와 베이스인 메피스토펠레스의 이중창이다. 고음역인 테너 파우스트가 저음역인 메피스토펠레스까지 낮아지며 노래하는데, 이는 파우스트가 점점 악마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음악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내내 걸쭉한 톤이었던 늙은 파우스트의 음색은 ‘젊음의 묘약’을 마신 후 활력 넘치는 고음으로 돌변한다. 작곡가 구노의 연출가적인 묘미가 돋보이는 이중창이다.

 

2막의 무대. 도시의 광장 (파리 오페라단, 1975)

 

 2막의 무대는 활기찬 광장으로 시민들의 힘찬 합창으로 시작한다. 2막 2장에서 곧 전쟁터로 떠나는 발렌틴이 남겨질 여동생 마르게리테를 걱정하며 서정적인 카바티나 Avant de quitter ces lieux(이곳을 떠나기 전에)를 부른다. 카바티나(Cavatina)는 짧고 서정적인 독창을 통칭하는 형식으로, 이 바리톤 카바티나는 서곡의 마르게리테의 애틋한 주제가 언뜻언뜻 들리는 아름다운 노래다. 오페라 발표 이후, 바리톤 가수들의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파우스트의 제자인 바그너가 발렌틴을 위로한 후, 분위기를 띄우려 의자에 올라가 Un rat plus poltron(겁많은 생쥐; 일명 ‘쥐의 노래’)을 익살스럽게 부른다. 혐오스럽고 겁많은 쥐를 이야기한 다음 고양이(Un chat)를 부르려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며 노래가 갑자기 끊긴다. 구노의 연출이 빛나는 부분으로, ‘쥐’는 바로 메피스토펠레스이고 쥐의 천적인 ‘고양이’가 나오려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바그너의 노래를 중단시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2막 3장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학생으로 분한 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Le veau d’or(황금 송아지) 합창이 유명하다. 황금 송아지는 대표적인 우상 숭배다. 젊은 대학생들을 쾌락으로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악랄함과 괴기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음악으로, 괴테 원작에서는 라이프치히 아우어바흐 지하 술집 장면에 해당한다.

 

3막. ‘보석의 노래’를 부르는 마르게리테 (소프라노 Mirella Freni) (파리 오페라단, 1975)

 

 불길하고 짧은 전주곡과 함께 시작하는 3막의 무대는 초라한 마르게리테의 집 앞이다. 3막은 약 50분으로 전체 다섯 막 중에서 가장 길지만,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테의 사랑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유명한 아리아가 연이어 흘러나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우선, 전주곡이 끝나고, 괴테 원작에 없는 지벨과 마르게리테의 황당한 러브 라인이 펼쳐진다. 희곡의 지벨은 라이프치히 아우어바흐 술집에서 등장하는 단역 중의 단역이지만, 구노의 파우스트에서는 조연급이다. 게다가 소프라노 여가수가 남장을 하고 연기하기 때문에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파괴적이지만, 그(그녀)가 부르는 Faites-lui mes aveux(내 진심을 고백해야 해; 일명 ‘꽃의 노래’)는 3막을 시작하는 감초 같은 아리아로 널리 사랑받는 곡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멜로디인 Salut! demeure chaste et pure(안녕! 순수하고 순결한 곳; 일명 ‘정결한 집’)은 3막 4장에서 파우스트가 마르게리테의 집 앞에서 홀로 부르는 카바티나다. 한껏 분위기를 잡은 테너가 넘실거리는 현 위에서 풍성한 성량을 뽐낸다. 부드럽게 흐르던 노래는 ’여기는 가난하나 신성한 풍족함이 넘치는 구나 – la présence d’une âme innocente de divine’에서 압도적인 절정을 이룬 후 침착하게 끝맺는다.

 3막 6장은 마르게리타의 황홀한 아리아들이 이어진다.

 첫 번째는 Il était un Roi de Thulé(옛날 옛적 툴레의 왕께서)로 수많은 작곡가가 괴테의 원시에 노래를 붙인 일명 ‘툴레의 왕’이다. 구노는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반주에 신비로운 소프라노의 음성을 얹어 전설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앞서 2021년 5월에 연재한 ‘2인(人)이 연주하는 파우스트(2)’ 중 슈베르트가 작곡한 ‘툴레의 왕(Der König in Thule; D.367)’과 구노의 노래를 비교 감상해 보면서 그레트헨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자. 극적 연출과 음악적 감정의 다양한 조합을 경험해 보는 멋진 기회가 될 것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아리아는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정결한 집’과 쌍벽을 이루는 Ah! je ris de me voir Si belle en ce miroir(아! 거울 속의 예쁜 내 모습에 미소 짓네), 일명 ’보석의 노래’다. 파우스트가 몰래 놓고 간 보석을 몰래 착용한 마르게리테는 마치 툴레의 왕비가 된 것처럼 한껏 들뜬다. 휘황찬란한 보석에 흠뻑 취한 젊은 처녀의 설렘을 매우 높은 고음으로 뿜어내는 매우 기교적인 소프라노 아리아다. 구노의 파우스트에서는 원작의 명장면인 ‘성벽 안의 그레트헨(Gretchen im Zwinger)’이 없다. 하지만, 구노는 압도적인 ‘보석의 노래’를 통해 생략된 명장면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보상한다. (슈베르트의 가곡 ‘성벽 안의 그레트헨’에 관해서는 2021년 5월호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3막의 마지막 8장은 마르테와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세한 사중창으로 시작한다. 이후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무대 한 편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젊은 연인을 한껏 비웃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 듯 황홀하게 제3막을 내린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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