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예술강사 해촉 논란(1) 예술강사 파견사업의 의의

글_오세곤(순천향대학교 명예교수, 극단 노을 예술감독)

 

연극 분야 예술강사 파견사업의 역사

 

연극인 강사풀 사업!

2002년 시작된 사업이다. 지금 명칭으로는 연극 분야 예술강사 파견사업이다. 더 정확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학교문화예술교육 연극 분야 예술강사 파견사업이다. 이 사업의 발단은 2000년 10월 한국연극협회와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가 함께 전국청소년연극제 부대행사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면서이다.

바로 이 세미나에서 1999년 연극영화학과 입학생부터 교직이 설치되었지만 2002년 교생 실습을 앞두고 실제로 교직 이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는 전국의 연극영화 전공이 있는 예고 3개교뿐이라는 현실과 그 해결을 위해서는 시급하게 학교에 연극 과목이 개설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당시 발제 중, 특히 97명의 학생이 3개교에 교생을 나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한국연극교육학회 겸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 안민수 회장은 즉석에서 교과목 개설 추진위원회 결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아울러 한국연극협회 최종원 이사장의 제안에 따라 연극 강사풀 사업 추진과도 연계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연극협회는 직전에 시작된 국악 강사풀의 예를 따라 연극에서도 같은 성격의 사업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터에 한국연극교육학회와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와 같은 전문 교육단체의 참여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연극계 교육 연대는 이후 계속 확대되어 우선 한국연극협회와 한국 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가 공동으로 “연극 교과목 개설 추진 및 연극인 강사풀 운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후 두 단체 외에 한국교사연극협회, 민족극운동협회, 한국연극교육학회, 한국연극학회, 한국교육연극학회까지 총 7개 단체가 모여 한국연극교육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물론 한국연극교육위원회는 2005년 봄 연극인 강사풀의 운영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넘기면서 그 활동이 현저히 줄게 되지만 그때까지 강사풀 운영, 연수, 교과서 개발, 시범학교 운영 등으로 대단히 활발하게 움직였고, 현재는 산하 연극교육지원센터(센터장: 이연심)를 통한 실질적인 교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학교비정규직노조

 

예술강사 파견사업의 교육적 의미

 

앞서도 말했지만 예술강사 파견 사업의 시초는 2000년 출발한 국악강사풀이다. 당시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간명하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음악 교과의 국악 비율이 40%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거의 양악 중심 전공자들이었으므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대책으로 등장한 것이 현장 국악인들을 학교로 모셔 교육을 부탁하는 국악강사풀 사업이었다.

물론 국악인들이 이 활동을 통해 얼만 간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일자리 창출의 의미도 있었지만 분명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초기 주된 관심은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비록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강사 선발과 연수도 점점 체계화하고 파견 강사들에 대한 평가 및 관리도 계속 개선해 나갔던 것이다.

국악에 이어 2002년부터 강사풀 사업을 시작한 연극계도 마찬가지로 뭣보다 교육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노력하였다. 초중고 교급별 교재 개발, 140시간 연수 체제 확립, 강사 자체 그룹 연구 및 워크숍, 시간당 강사료 4만 원 책정, 원거리 오지 출강 강사들에 대한 우대, 평가 및 컨설팅을 위해 현역 교수와 교사로 치밀한 지원 조직 구성 등,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예술 장르 간에 서로 자극을 주며 수준을 향상시키는 선순환효과로 이어졌다. 연극에 이어 2004년 출발한 영화는 대학에서부터 원활한 협업이 가능하였고, 2005년 만화애니메이션과 함께 출발한 무용도 학교 교육의 경험이 많은 데다가 국악과 연극의 긍정적, 부정적 사례를 살피며 충분한 준비를 거쳤기에 꽤 탄탄한 기반 위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사진 제공: 학교비정규직노조

 

 

예술강사 파견사업의 일자리화

 

그러나 이렇듯 생산적인 분위기는 지속되지 못 하였다. 경제적 효율을 들이대며 원거리 교통비 지급과 오지 배치 우대를 없애고, 초정밀 맞춤 운영을 추구했던 장르별 위원회도 흐지부지 없애 버리고, 교사와 강사가 함께 했던 세밀한 평가 컨설팅도 지극히 형식적인 평가로 바꾸어 버리고, 4만 원의 강사료는 2017년이 되어서야 단 3천 원을 인상하고, 주휴 수당, 고용보험 의무가입 등을 회피하려고 주당 14시간, 월 60시간 미만이라는 악덕기업에서나 할 법한 원칙을 강요하고, 심지어 불성실한 강사 색출을 한다며 위치 추적 발상을 내놓기도 하고, 급기야 일자리 순환을 위해 기존 강사의 20%를 해촉하겠다는 과감한 계획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예술강사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이 들어온 것은 2004년이었다. 당시 연극 강사풀 사업의 경우 2002년 예산이 5억, 2003년은 8억이었다. 그래서 2004년 예산을 60% 증액된 12억 8천만 원을 요청했는데 갑자기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이 추가되면서 20억 원이 되었고, 청년에 해당하는 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 되는 조건이었기에 환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단어가 번번이 문화예술교육의 목을 죄는 덫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였다.

 

사진 제공: 학교비정규직노조

 

교육과 일자리, 그 본래의 의미로!

 

그런데 과연 “일자리”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기 능력을 살려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고 그것으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며 예술활동과 예술교육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것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일자리다운 일자리 아닐까? 그러니까 일자리를 내세우려면 그 단어에 합당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그 일자리를 늘리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존 예술강사의 20%를 해촉하겠다고 하니 이렇게 무지스러운 정책을 어찌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예술강사 사업의 출발점은 교육이었다. 교육은 짧은 시간에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래된 경력 강사들을 오히려 우대해야 마땅하다. 물론 새로운 인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 학교 수, 학급 수를 보건대 문화예술교육은 적어도 지금의 10배 내지 최대 20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꾸준히 예산을 늘리고, 강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용을 안정시키고 처우를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꾸준히 강사 수를 늘려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10년 이상 강사 수는 약 5천 명 내외로 묶여 있다. 이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단어의 기본 의미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다. 또 그 일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제발 교육이 무엇인지, 일자리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 뒤 정책의 방향을 세워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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