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혜정 기자
오랜만에 뵈어요, 연출님.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올해 신작은 처음이지만 중장기사업으로 여러 레퍼토리 프로그램이나 움직임 역량 강화 프로그램, 또 연출부 단원이 하는 재공연 같이하느라 바쁘게 지냈어요. 성인지 교육도 다시 받고 여러모로 극단의 운영에 집중했던 최근이었네요. 그리고 지금은 신작 연습에 정신없어요.(웃음)
<두 코리아의 통일>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어떤 작품인지 소개를 부탁드려요.
2016년도에 프랑코포니에서 초연한 적 있는 작품이에요. 그때는 제가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희곡을 읽어봤어요. 되게 재미있고 신선한데 은유적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적이고, 그래서 처음엔 해석해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작품이 좋으니까 언젠가 워크숍 공연으로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한동안 덮어두고 있었어요. 원래 중장기 계획으로는 올해 선배님들이랑 1인극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작년 <장녀들> 끝내고 나니까 단원들이랑 너무 같이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작품을 찾다가 <두 코리아의 통일>을 다시 떠올리게 됐어요.
결국 각 에피소드들은 되게 일상적인 사랑 이야기예요. 희곡 맨 뒤에 작가 조엘 폼므라가 이산가족을 보고 이 작품을 썼다는 작의가 있어요. 한국 사람으로서 이산가족이랑 사랑을 연결해서 체감하지 못하다가, “이 세상은 사랑의 부재로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대사가 저한테 키워드로 딱 오더라고요. 전쟁까지도, 저 모든 것들이 이유를 불문하고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구나, 이런 생각이 저한테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의 부재에서 가시적으로 가장 큰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건 전쟁일 것이고, 결국 인류 멸망까지 오는 것일 텐데 작가가 메시지를 거기까지 확장 시켜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처럼 2016년도 초연된 작품이고 희곡도 2013년 발표된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지금 시기에 선택하면서 관객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보면 사랑을 완성해 나간다기보다는 사랑이 무너져가고 있고 그리고 이미 무너져 있는 모습들이 떠올라요. 안정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위태로운데 자기들은 모르고, 뭔가 갈구하고 찾고 있으나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모습이죠.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이 싸우고 많이 충돌하고, 저마다 많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우리가 잃어가는 게 뭔지에 대해서 이 작품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에 대한 키워드를 <LOVE SONG>에서 다룬 적 있어서 이번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 지금까지 들었을 때는 많이 다른 것 같네요.(웃음)
<LOVE SONG>은 다분히 사람과 사람에 대한 사랑, 원론적이고 타인이 필요한 사랑이었죠.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사랑이 없다면 나도 없다는 게 주제였다면 이번에는 사랑의 부재로 세상이 무너지고 세상이 폭발해버리는 이야기예요. 심플하게 이야기기하면,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무너진다’라고 할까요.(웃음)
작품에서 특히 관객들이 집중해 주시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지금 구성으로는 1부, 2부를 좀 나눌까 해요. 나눈 이유는 앞에서 여러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2부에 메시지가 강력하게 찍힐 수 있게 배치를 해놨어요. 교권과 사랑, 전쟁과 사랑의 부재, 아이가 없는데 있는 척 하는 부부 등 에피소드 자체는 크게 무겁지 않지만 그 안의 의미를 2부에 초점을 두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연출님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연극반으로 연극을 시작하셨다는 걸 봤는데 그중에서도 연출을 선택한 건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1학년 때는 <춘향전>에 이도령으로 연기도 해봤어요. 여고였는데 잘생긴 이도령으로 인기가 엄청 많았죠.(웃음) 연극반에 스태프도 없고 연출도 없으니까 2학년 때부터는 열심히 하는 학생들끼리 다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서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죠. 그러다 청소년 전문 프로 극단이 학교 폭력에 대한 연극을 하는 걸 보고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겠다 싶어서 희곡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줄 수 없대요. 그래서 그 극단에 허락을 구해서 비슷한 구성으로 <안전지대>라는 작품을 썼죠. 그 작품을 연출하면서 굉장히 많이 싸웠는데 결과적으로 공연이 잘 나와서 선생님들도 좋아해주시고 재공연하자 해주시고 그랬어요. 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연극하는 저를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선생님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한번은 교감선생님이 ‘우리 학교 연극반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셔서 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옆에 공장 부지가 많으니까 같이 가보자고 그런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데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랑 부지를 보러 다녔어요.(웃음)
교감 선생님이 어린애 생각이라고 치부 안 하시고 같이 다녀주신 게 감동적이네요.
결국은 너무 비싸다고 그냥 체육실에서 하라고 하셨지만 감사했죠.(웃음) 그만큼 그냥 연극이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연극을 하면서 중학생 때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더 밝아지고, 선생님들이랑 사이도 좋아졌어요. 연극이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연출가가 되겠다거나 배우가 되겠다거나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연극을 많이 좋아했어요.
연극이 좋아서 계속 하다 보니 연출이 된 케이스라고 할까요?
맞아요. 연출을 계속 했지만 이걸 꼭 해야겠다는 아니었고 그냥 흘러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제가 너무 아는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그때쯤부터 연출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정식으로 더 배워봐야겠다 싶어서 대학원에 갔는데 이론을 공부하는 걸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선배들 조연출도 하고 스태프도 하고 그러다가 되게 늦게 극단에 들어갔어요.
그러다 내 작품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2012년 프로젝트 아일랜드를 창단하신 건가요?
‘나는 어떤 연출을 하고 싶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 이런 고민을 <아일랜드> 때부터 시작했어요. 그 전에도 연출을 하고 연극제도 나가고 했지만 내 작품이라는 느낌을 크게 못 받다가 정말 내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일랜드>부터 갖게 된 거죠.
최무인, 남동진 배우님이랑 오래 같이 한 줄만 알았는데 창단 멤버더라고요.
두 분 다 제가 조연출 하는 걸 지켜보셨어요. 최무인 선배님은 다른 극단에 있었지만, 뭔가 할 거 같은데 왜 기회를 못 갖냐고 안타까워하셨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한 편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가진 돈이 없으니까 최소한의 배우로 밀도 있는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두 분에게 하게 됐죠. 그때 남동진 선배님이 <아일랜드> 희곡을 읽어보라고 주시면서 최무인 선배랑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당시에 두 분은 직접적인 친분은 없지만 서로 연기를 지켜보면서 같이 한번 해보고 싶다 생각하던 사이셨대요. 그래서 최무인 선배님한테 연락드려서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 남동진 선배랑 같이 할 거다 했더니 바로 오케이 하셨죠. 그때는 각자 적이 있으니까 프로젝트로 하는 게 좋겠다 해서 ‘프로젝트 아일랜드’가 된 거예요. 그러고 만나서 같이 하는데 하다 보니 우리끼리 하고 싶은 뭔가가 더 있었던 거죠.(웃음)
어떤 연극적 지향이 서로 닿아 있었나 봐요.
당시에 선배님들은 극단 내 작업을 많이 하면서 배우로서의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하고 싶은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같이 할 젊은 연출을 찾는 중이었고, 저는 없던 기회를 만들어내야 됐던 연출이었죠. 서로가 찾던 상대를 만났던 거예요.
그렇게 올린 첫 작품이니 <아일랜드>는 세 분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겠어요.
열정만 가득한 상황이었는데 홍창진 신부님을 만나면서 저희가 완전히 폭발하게 됐어요. 2011년 <레 미제라블> 연극 초연 때 신부님이 주교 역으로 출연을 하셨고 저는 연출부였거든요. 신부님이니까 다들 잘하는데, 제가 봤을 때는 너무 연습을 안 하시는 것 같았어요. 신부님한테 이왕 하는 거 잘하셔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냐 하셨어요. ‘그럼 저랑 따로 연습을 하시죠’ 한 거죠. 이번에 잘한 거 같다고 하면 영상 찍은 거 바로 보여드리고.(웃음)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그러다 후에 <아일랜드>라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 했더니, 신부님은 그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윤호진 연출님 때부터 전부 다 보셨대요. 윤호진 연출만큼 한 사람이 없다고, 그 정도 못할 거 같으면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하고 싶다니까 그 작품이 왜 좋은지 물어보셨어요. ‘인간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대사가 이 작품의 주제인 거 같다고, 그게 좋다고 답했는데 신부님이니까 그 말이 와 닿으셨나 봐요. 또 작품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굉장히 다큐적인 작품이라 아프리카를 다녀오고 싶은데 예산이 없어서 가지는 못할 거 같다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러다 좀 지나고 밤 11시쯤 신부님이 청담동 어디로 오래요. 버스 막차 타고 가니까 어떤 분을 소개시켜주시면서, 이 분이 여기 사장님인데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브리핑을 해보래요. 그래서 가방도 못 벗고 한 20분 이야기했나. 그 분이 신부님이랑 한참 이야기하다가 ‘연출님이 하는 이야기는 사실 귀에 잘 안 들어오는데 연출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건 느껴져요. 한번 가보세요’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그 분이 4명 분 항공비를 다 지원해주셨어요.
와, 진짜 드라마틱한데요?
가서도 진짜 드라마예요.(웃음) 항공비는 받았지만 가서 지낼 돈이 없잖아요. 저희끼리 돈을 모아서 갔는데, 케이프타운이 영국령이기 때문에 완전 유럽권이에요. 저희가 물가 개념이 없었던 거죠. 가서 보니까 예상했던 거에 거의 2배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비부터 엄청나요. 안 되겠다 싶어서 모든 교회와 성당에 전화를 다 돌려서 혹시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안 된다는 데가 대부분이고, 오면 재워는 줄 수 있는데 오가는 차비가 더 들 거다 하고. 그러다 한 목사님하고 연결이 닿아서 호텔에 일단 가 있으래요. 마침 그 호텔 카운터에 있는 분이 흑인이셨어요. 아돌 퍼가드 아냐고, 우리는 연극인들인데 이 작품을 할 거고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다니까 ‘오케이, 브라더’ 하고 네 명한테 한 방을 줬어요. 호텔 값을 4분의 1 가격으로 아끼게 된 거죠. 거기서 지내면서 로벤섬도 가고 디스트릭트 식스라는 박물관도 가고 그랬어요. 그 목사님이 자주 와서 밥도 사주시고 반찬도 가져다주시고 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많이 배운 거 같지만 아직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게 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칼리처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 하시는 거예요. 칼리처는 옛날 인디언족처럼 흑인 100만 인구를 다 몰아놓은 지역이에요. 일반인들은 못 들어가는 곳인데 봉사할 생각이면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가서 보니까, 100만 명 상상도 안 되시죠? 양철 지붕이 끝도 안 보이게 늘어서 있고 거기에 산이 하나 있는데 다 타서 새까매요. 알고 보니까 어린 여자아이들이랑 성관계를 하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소문이 돌았대요. 그 사람들은 교육 받은 게 없으니까 그 말을 믿는 거죠. 그래서 목사님이 지원 받아서 산을 다 태운 거예요. 못 숨어들게 하려고. 그걸 듣는데 마음이 착잡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마음 아프신가 봐요.
아직도 눈물 날 것 같아요. 거기서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라고 써있는 티를 입고 아이들이랑 계속 걸어요. 하루 종일 걸으면서 ‘아이들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 아이들은 보호를 받아야 돼’ 노래를 불러요. 그러고 저녁 때 호텔로 돌아가서 뻗어서 자다가 일어나서 희곡을 읽는데 눈물이 너무 나는 거예요. 선배들이랑 같이 엉엉 울었어요. 그러고 한국에 돌아올 때는 거의 전사의 마음으로 온 거 같아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에 분노도 있고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가짐이 완전 달라졌어요. 그리고 가기 전에 만들어 논 동선이나 그림을 다시 보니까, 괜찮지만 그냥 머리로 만들어 놓은 느낌이더라고요. 연극도 예술이라 영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빠진 거죠. 우리가 느끼고 온 것들 어디서 표현할 수 있는지 다시 찾자 해서 고민하다가 엔딩으로 만든 거예요. 그전에는 심플하게 존과 윈스톤이 서로 우정을 느끼는 걸로 끝냈는데, 모래를 던지면서 울부짖는 장면을 넣은 거죠. 아마 그런 거에서 관객도 뭔가 느끼신 것 같고 되게 좋아해주셨어요. 그 목사님은 아직 거기 계시거든요. 그때 인연으로 저희도 꾸준히 후원을 보내고 있어요.
연극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잘 만들어진 연극 한 편 같아요.
그 씨앗이 우리를 성장시켜줬어요. 그렇게 무모하게 가서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을 낸 게 신기한 일이죠.(웃음)
얼마 전에 프로젝트 아일랜드가 1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올렸는데요.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한 5년 정도 프로젝트로 진행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16~17년도였기 때문에 실제로 극단 운영이라는 걸 해본 건 한 5~6년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빠르게 자리를 잡고 사랑받게끔 도와주셔서 감사하죠. 선배님들이나 저나 여기에만 올인해서 미친 듯이 했거든요. 정신 차리니까 어느새 세월이 훌쩍 가버렸어요.(웃음) 우리 단원들에게도 고마워요. 저희 극단에 20대 친구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들이 좋아해주고 즐겁게 같이 하는 게 우리한테 보람이 있죠. 우리가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 지금 신입단원, 연구단원들인 것 같아요. 10주년에 드는 생각은 우리 극단의 미래가 밝다.(웃음)
앞서 말씀하신 대로 프로젝트 아일랜드는 연극 <아일랜드>의, 인간은 타인에 대한 책임을 알아야 한다는 기조에서 출발했는데요. 지금 극단은 어떤 가치를 향해 있나요?
거기에 큰 변화는 없고요. 더해서 요즘 저는 저한테 꽂혀 있어요. 무슨 의미냐면, 그 전까지는 제가 굉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거든요. 내 돈 들여서 빚져서 연출하는데 내가 제일 고생하지, 그런 생각이 있었고 극단에서 뭔가 하려고 해도 다들 아르바이트 하러 간다고 하면 그것도 되게 불만이었어요. 그런데 중장기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단원들한테 페이를 지급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지급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 돈만 있어도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되게 미안했어요. 지금 다시 느끼는 건 서지혜는 타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거. 다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극단과 단원들에 대한 연출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연장선으로, 앞으로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방향성을 들어볼까요?
지금까지는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작품들, 거기서의 표현들, 그런 걸 많이 고민했는데 이번 작품이 저희 방향의 시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랑이라는 코드는 본질적이고 인류의 가장 철학적인, 해결되지 않은 고민이잖아요. 그래서 그 무수한 예술가가 가장 많이 한 고민이겠죠. 예술가는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 쑥스럽고 민망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없어지는 미덕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예술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극단은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끝으로 <두 코리아의 통일>을 찾아주시는 관객 분들과 극단 단원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우리 단원들은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하면 다들 응원해줘요. 20대 입장에서 40대가 생각하는 방향이 올드하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워크숍 때 이야기 들어보면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고 파괴의 에너지가 되게 큰데, 거기에 사랑을 이야기하자 하면 공감을 못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오케이하고 함께 가주는 게 고맙죠. 앞으로 우리 극단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기대가 돼요.
그리고 관객 분들이 허무함이나 공허함, 어두움이 아니라 내 안에 남은 사랑이 뭔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만 가지더라도 이번 공연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극단이 이슈를 몰고 다니는 극단이 되지 않더라도 따뜻하고 편안한 극단이면 좋겠어요. ‘저 극단은 연극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 그게 위로가 돼’ 그런 말을 들었으면, 우리가 그렇게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 프로젝트 아일랜드 <두 코리아의 통일>은 11월 26일 ~ 12월 10일, 아트원 씨어터 3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