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0)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

 

 

 부록 10편에서는 덜 알려진 작곡가들의 덜 알려진 파우스트 관련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차피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련된 모든 음악 작품을 두루 살펴보는 약 4년에 걸친 길고 험난한 산행이었다. (2020년 10월부터 괴테의 비극 파우스트’  연재 시작) 정상에 오르기 직전 파우스트-부록’ 편으로 중간 휴식을 하고 있다. 기왕 앉은 김에 그리고 정상에 우뚝 솟은 거암의 벅찬 감동을 느끼기 전에, 지나쳐버린 작고 귀한 조약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프리드리히 부르크뮐러 (J.F.F. Burgmüller; 1806~1874)

 첫 번째로 소개할 작곡가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독일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프리드리히 부르크뮐러다. 이름조차 생소한 작곡가지만, 소싯적에 피아노를 꾸준히 배운 사람이라면 부르크뮐러의 피아노 교본 ‘25개의 연습곡 op.100’이 얼핏 기억날 것이다. 

 고전파 시대의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26세에 파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줄곧 활동했고, 창작 시기가 낭만주의의 복판이었기 때문에 부르크뮐러의 음악은 프랑스 낭만의 색채가 짙다. 

 

 19세기 중반, 파리 문화계는 괴테 파우스트에 사로잡혀 있었다. 1828년 제라르 드 네르발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파우스트가 문학계를 강타했고, 1831년 작곡가 루이스 베르탱(1805~1877)이 발 빠르게 오페라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책으로 원작을 읽기보다는 개작한 공연 관람으로 독서를 대신하려는 경향은 똑같았기에, 베르탱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성공을 거둔다. 이후 베르탱을 거울삼아 여러 작곡가가 파우스트에 손을 댔고, 그리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는 밑밥에 불과했다. 1859년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파리 리리크 극장에서 초연되고,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뜨린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이후 파우스트-오페라를 다루려는 작곡가는 크게 두 부류로 갈라졌다. 

(좌, 중) 쥘 마스네와 외젠 디아즈. (우) 외젠 디아즈의 오페라 ‘툴레 왕의 잔’

 

 한 부류는 구노가 차지한 최고의 파우스트 오페라를 빼앗기 위해 도전장을 던진 야심 찬 도전자들이었다. 1866년 24살의 청년 쥘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가 툴레 왕의 잔 (la coupe du roi de thule)’이라는 파우스트-오페라를 완성했지만 상연조차 되지 못했다. 이어 1873년, 26살의 청년 외젠 디아즈(Eugène Diaz; 1837~1901)가 마스네 작품과 동일한 리브레티스트들의 대본으로 동명의 오페라를 완성해 후배 마스네를 제치고 작곡 대회 우승까지 따낸다. 하지만 150년이 지난 지금, 디아즈의 오페라 툴레 왕의 잔은 작곡가의 이름과 함께 완전히 묻혔다. 

 디펜딩 챔피언 구노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신중한 구노는 거듭되는 도전에 안전장치를 걸어둠과 동시에 관객들의 혼동을 피하고자 오페라의 제목을 Margarethe’로 변경해 극장에 올리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비에니아프스키, 알라르, 비와탕, 사라사테, 요제프 슈트라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다른 부류는 공전의 히트작인 구노의 파우스트에 묻어가는 전략을 취한 소심한 편곡자들이었다.

 구노의 오페라에는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즐비한데, 그 인기가 대단하여 파리의 어느 살롱에 가도 사람들이 구노 파우스트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수많은 작곡가가 원작의 멜로디에 악기 편성을 다르게 하여 편곡하거나, 여러 변주를 붙여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OOO ’ 형식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먼저, 헨릭 비에니아프스키는 1865년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어 1868년에는 쟝-델핀 알라르가, 이듬해인 1869년에는 앙리 비와탕이 각각 파우스트 환상곡을 경쟁하듯 발표했다. 1874년에는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새로운 환상곡을 연주회장에 올린다. (TTIS 2022 4월 연재 – 괴테 파우스트 부록(2)’ 편 참조) 이 유행에 비엔나의 왈츠 대가들까지 가세한다. 1861년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구노의 원곡을 인용한 파우스트-콰드리유(op.112)’를 선보였고, 그의 형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3년 뒤 한술 더 떠 파우스트-콰드리유에 파우스트-왈츠와 파우스트-로망스까지 연작으로 작곡했다. 

 

(좌) ‘구노의 파우스트에 의한 화려한 왈츠’ 표지 (우) ‘툴레 왕의 잔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표지

 

 부르크뮐러도 위 여섯 작곡가처럼 슬쩍 묻어가는 전략을 취했다. 

 1862년, 그는 구노의 파우스트에 의한 화려한 왈츠(Valse brillante sur Faust de Gounod)’라는 피아노곡을 두 손과 네 손 판본으로 출판한다. 악보 표지에 가격표가 떡하니 박혀 있을 정도로 상업적 목적이 다분한 곡이다. 부르크뮐러는 11년 뒤인 1873년에 툴레 왕의 잔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Fantaisie brillante sur ‘La coupe du roi de Thulé’)’을 작곡한다. 재미있는 건, 이번엔 주제의 멜로디가 구노의 걸작 오페라가 아니라, 잊힌 작곡가 외젠 디아즈의 잊힌 파우스트였다는 점이다.

 부르크뮐러는 1874년에 사망했다. 만년의 그가 왜 잊힌 작곡가의 파우스트를 끄집어내어 화려한 환상곡으로 변모시켰을까? 그리 빛을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 사라진 작곡가 디아즈에게 그저 그런 실력의 자신을 투영했던 것일까? 디아즈도, 부르크뮐러도 작품은 물론 생전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할 길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일이 있다. 부르크뮐러가 작곡한 두 파우스트 음악은 악보만 겨우 구할 수 있을 뿐, 음반조차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묻혔다. 

 소심한 모방의 작곡가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없고 또 쉽게 잊힌다. 반면, 야심 찬 창조의 작곡가는 성공하면 음악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지만,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 정도의 내상을 입는다. 

 한마디로 “No Risk, No Gain’이다. 디아즈, 마스네, 부르크뮐러에게서 배워갈 것은 그들의 잊힌 음악뿐만이 아닐 것이다. 창조의 모험이냐, 아니면 모방의 안주냐.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대문호 괴테의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안주한 파우스트와 작곡가 부르크뮐러가 자꾸 겹친다. 

 

사무엘 콜리지-테일러 (Samuel Coleridge-Taylor; 1875~1912)

 

 두 번째로 소개할 작곡가 사무엘 콜리지-테일러는 19세기 영국 음악사에서 매우 특별한 작곡가다. 사진에서 보듯이 콜레지-테일러는 흑인 혼혈이었다.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영국으로 의학을 공부하러 온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영국 토박이였다. 생부는 아들의 존재를 모른 채 아프리카로 돌아갔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평소 좋아하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이름을 조합해 아들에게 주었다.

 음악적 재능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특출난 외모가 그의 음악 경력에 단점도 되었겠지만장점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아프리카 음악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작곡가 콜리지테일러는 영국 흑인 음악의 원류가 되었다. 특히, 재즈가 클래식 음악에 녹아들던 미국에서 그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아프리카 말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극부수 음악 ‘파우스트’의 악보 표지와 구성

 

 콜리지테일러가 1908년에 작곡한 파우스트 op.70’는 괴테의 원작을 자유롭게 각색한 연극 대본에 음악을 붙인 극부수 음악이다. 

 제1곡은 브로켄산의 발푸르기스 밤을 그린 마녀들의 춤’, 2곡은 ‘4개의 시야’, 마지막 제3곡은 마녀의 부엌을 묘사한 춤과 찬양이다. 이 중 제2곡은 헬렌, 클레오파트라, 메살리나, 마르가리타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콜리지-테일러의 음악은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모든 서양 음악 중 가장 서구적이지 않다. 뜨겁게 끈적이는 아프리카 리듬을 타고 삐뚤빼뚤한 재즈 멜로디가 얹혀 있다. 갑자기 꺾이고 절뚝거리는 원시적인 선율은 괴테가 창조한 마녀들의 움직임에 기괴하게 공명한다. 이 중 아프리카 음악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난 제3곡 춤과 찬양(마녀의 부엌)의 링크를 걸어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snADI4kr-54

 

 더불어 콜리지-테일러는 원작 1부의 유명한 노래 툴레의 왕에 음악을 붙여 멋진 가곡 한 편을 만들었다. 소박하면서도 매우 서정적인 곡으로, 위의 원색적인 음악과 비교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Ow2BwFAU8

 

(위)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와 그가 번역한 파우스트 (1821)
(아래) 사무엘 콜리지-테일러와 그가 작곡한 파우스트 (1908)

 

 마지막으로 이름에 엮인 가벼운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는 1821년 괴테 파우스트를 영어로 번역본을 완성한다. 가장 공신력 있는 번역본이며, 지금까지도 두루 읽힌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작곡가 사무엘 콜리지-테일러의 파우스트는 널리 연주되지 않는다.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 반짝이는 음악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작곡가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흑인 파우스트의 원초적 힘이 더 많은 청중에게 알려지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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