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1회 드림 단막극장

글_김충일(연극평론가)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온다. 늘 그러하듯이 올해는 좀 나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2025년을 시작했지만 연일 어둡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겹치기 출연을 거듭하고 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녹록치 않고,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 매년 그 기대가 배반당하기 십상이지만, 그렇다 해도 뭐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걸 몸에 밴 일상의 체현(體現)을 통해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저것 다 그저 그렇고, 그저 그렇다 해도 그런대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닌가.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의 뜨락에 매양 다가오는 정월의 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얼음장 밑에서도 숨 쉬는 물고기처럼, 봄날을 꿈꾸는 파릇한 미나리 싹처럼, 조촐한 공연 프로젝트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대전의 드림아트홀이 기획한 ‘제1회 드림 단막극장’이다. 몸속의 고요와 생각의 꿈틀거림으로 분주한 차가운 1월은 주말마다 3개의 단막극(01,11~12:창작집단 위.드.유 <마주보는 집>, 01.18~19:극단 위고 <도덕적 도둑>, 01.24~25:극단 새벽 <산 사람>)이 뿜어내는 ‘극적(劇的) 온기’로 소극장 드림아트홀을 감싸 안았다.

 

사진 제공: 문익상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통해 연극이 가진 감동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번 제1회 드림 단막극장 축제를 주도한 드림아트홀 대표 황진호는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즉 ‘연극계 비수기(1월~3월)임에도 연극인들의 지속적인 작품생산의 열정’, ‘관객에게 소개될 기회가 적은 단막극의 자리매김’, ‘젊은 감각과 새로운 시도를 통한 소극장 운영의 활성화’ 등을 통한 대전 연극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연극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였다고.

돌이켜보자, 우린 무대를 우울(슬픔)할 때도 찾고, 기쁠 때도 찾는다. 피상성(皮相性)을 벗어나거나 영감을 얻기 위해서만 찾는 것도 아니다. 관극은 신체와 감각에 파인 결핍의 선명한 인식의 장으로 이끈다. 대체로 삶이란 결핍이고 누추함 그 자체인데, 그 결핍을 채우고 누추함을 벗으려는 욕망 때문에 희곡을 읽고 객석에 앉는다. 이때 욕망은 ‘나(Self)’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존속하려는 본성과 더 나은 ‘나’로 충만해지려는 인간적 열망의 합이다. 그렇게 무대는 숨은 욕망들을 비춰주고 성찰적 사유로 이끈다. 하여 관극에 대한 청정한 이끌림이 다른 것에서 취할 수 없는 기쁨을 줄 것임을 알기에 무대를 찾는다.

올 1월에 만난 3편의 단막극 무대 문을 열면서 인간이 내장하고 있는 삶과 죽음의 욕망이란 사유 덩어리를 만난다. 그 속엔 날카롭게 뒤틀려 엉켜있는 ‘나‘,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 죽음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나’가 다면체적 어둠 속에 숨죽이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무대 위의 ‘나’는 ‘너’나 그(녀)를 만나 대사(대화)라는 극적 서사의 현전들과 뒤엉킨다. 인물과 상황은 모호한 흔적으로 존재하고 사건들은 무대 밑이나 밖으로 숨어버린다. ‘나’, ‘너’ 그리고 ‘그(녀)’는 아는 사이이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낯선 존재다.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다. 이 역설적인 모호함에서 솟아 나오는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그 구체적 무대 현장을 찾아가보자.

 

사진 제공: 문익상

 

이번 ‘1st Dream Scene Festival’의 문을 연 첫 작품은 통합 창작 플랫폼인 창작집단 위,드,유의 <마주보는 집(신영은 작, 황진호 연출)>. 이 작품은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며 고립의 고통을 겪는 외톨이 삶(남자: 지석)이라는 날줄과 취업을 위해 바쁜 삶(여자: 지선)을 살아내는 씨줄을 엮어 생(生)이라는 피륙을 짜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졸업 후 5년 동안 해낸 것은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다.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상처(자기 정체성의 붕괴, 청년 고독사, 가족관계의 단절과 이어짐)를 안고 살아가는 두 남녀는 창문의 작은 구멍과 풍경(風磬) 소리에 이끌려 서로에게 다가오는 ‘어떤 변화’의 모습이 마주 보기란 관찰을 통해 무대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간의 관계는 흐른다. ‘창문은 열리지도, 풍경은 걸리지도, 밖에 나오지도 않는’ 닫힌 삶(폐쇄된 자아)은 ‘누구 없어요? 여기 있어요’라는 관계의 접촉을 통해 ‘아자, 아자!’란 연대(solidarity)의 열린 마당으로 확장된다. 그 결과 무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거울이 된다. 결국 ‘나-너’라는 ‘자기-자리매김(Self-Identity)찾기를 통해서 ‘나-너’는 ‘우리’로서 존재한다. 생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나-너 되기는 곧 우리-되기의 총체이다. ‘나-너’는 늘 ‘우리’들과의 교차로에 서 있게 된다. 그러니까, 무수한 ‘나-너’들이 맺는 관계는 사실상 무수한 ‘우리’들이 맺는 관계망 속에 자리한다. 결국 나-되기란 남-되기의 과정이며 그 경계선상에서 살아간다. 이렇듯 타자-되기란 결국 ‘우리’되기(우리에 갇힌 ‘우리’가 아님)이다. 되기란 관계 속에 들어감이며, 사이에서 자신과 타자의 동시적인 변이를 꾀함으로서 ‘마주보는’ 사이를 통해 손을 잡는 ‘우리’가 된다.

 

사진 제공: 문익상

 

그 다음 주말에 만난 두 번째 작품은 비전문가의 공연예술 분야 활성화를 목표로 참여하는 개인의 창의성과 열정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경험과 성취를 꿈꾸는 극단 위고의 제 5회 정기공연 작품인 <도덕적 도둑>(원작 다이로 포, 각색·연출 황진호). 이 작품은 집을 비운 사이 창문 너머 한 집에 잠입한 도둑이 가방에 금·은 수저를 주워 담는다. 집 주인인 시의원과 그의 아내는 따로 바람을 피우며,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을 비운다. 시의원이 애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자 커다란 괘종시계 안에 숨어있다가 도둑은 시의원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집주인에게 들키지만 집주인도 어찌하지 못한다. 그때 집 주인의 아내가 돌아오고 얼떨결에 시의원의 애인이 도둑의 아내가 된다. 이후 거짓말은 이어지고 꼬여가면서 점점 난장판이 된다. 과연 작품 속 혼인관계, 불륜관계, 오해된 관계로 얽힌 네 커플들은 그로 인해 빚어진 ‘언어를 통한 진실 게임’을 통해 정말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결핍의 충족을 바라는 것일까.

물론 도둑과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 관계는 연극 무대의 인기소재다.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웃음과 풍자를 이끌어내고 이야기의 극적효과를 더해준다. 게다가 ‘도덕적 도둑’이란 제목은 사회 비판의 기대를 부풀린다. 그러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겪는 ‘인간됨의 뼈대’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차라리 바람난 커플들이 벌이는 해프닝 속에 잠겨있는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겪는 과정과 소통방식의 문제를 그렸다고 보는 게 맞다. 과연 진실이 뭐고 거짓이 뭐냐의 어떤 중심선이 희미한 오늘날, 어디에도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파국으로 이끌 지만 이 연극이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에 작은 물음을 던져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사진 제공: 문익상

 

단막극장의 피날레를 장식한 작품은 대전 연극계의 전통연극을 선도하고 꾸준히 독창적이고 진정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 공연활동의 창발적 첨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극단 새벽의 <산사람>(윤소정 작, 한선덕 연출). 이 작품은 산 속 어딘가, 정장을 차려입고 페도라를 든 소진이 서 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소진은 산 속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하려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여성, 원경으로 인해 틀어지고 만다. 원경은 조난당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이미 죽었다고 믿고 있다. 한 쪽은 삶을 포기하려하고 다른 한쪽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이들. 두 사람은 우연히 동행하게 되며 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불합격한 망자(亡者)와 저승사자 두 사람의 줄다리기와 수수께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인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죽음은 삶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존재를 곤경에 빠뜨리며 그 주체를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다. 항상 삶은 죽음이 도래하기 전에 먼저 고갈된다. 그렇지만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生)이 고갈되고 지워져가는 주체는, 그래서, 한없는 수동성에 저를 맡긴 채 죽음을 기다리고 연장시키려 하나 정작 내용이나 의미를 취득하지 못한다. 삶이 죽음을 고갈시키자 결국 죽음이 삶을 집어삼킨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에서 머뭇거리며 견뎌 내려하려하나 그것은 완결되는 법이 없다. 모든 삶과 죽음은 반복하는 것이고, 결국은 그 반복 속에서 실패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하여 우리네 인생이란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무명(無明)의 존재인가 보다.

 

사진 제공: 문익상

 

이 리뷰를 마치면서 필자는 ‘제1회 드림 단막극장 축제’에 참여한 총 26명의 전문·비전문 연극인, 350여명(?)의 관객들이 함께 이 축제를 기획·연출·배우로 참여한 황진호 대표의 고백을 공유하고 싶다. “저는 결핍에서 연극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연극을 통해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그 답을 명확히 찾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연극은 저에게 여전히 탐구의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제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찾지 못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때로는 막막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 결핍과 탐구가 저를 이 무대에 계속 서게 만드는 동력인 것 같아요. 어쩌면 답을 찾는 것보다, 이렇게 끊임없이 찾으려는 과정 자체가 제가 연극을 계속 사랑하고 붙잡게 되는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갖가지 형태의 서사구조물을 ‘무대화’하여 공연하는 작업은 거친 자갈과 잡초로 뒤 섞인 비탈길에 서는 일이다. 평지와는 다르다. 이번 드림아트홀이 기획·실행한 ‘제1회 드림 단막극장’ 역시 그러했으리라. 평지에 서는 것은 평범하게,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비탈에 서는 것은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다. 부디 힘을 내어 이번 시도가 비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여 울창하게 자라 비탈에 서려는 젊은 연극인들을 격려하고 그들과 더불어 공동 연대를 이루어 대전 연극이 보다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첫 걸음의 씨앗을 뿌렸으니 내년에는 보다 더 강건해져서 우리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해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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