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가
파우스트는 무겁다. 원작은 심오하고 연극은 심각하다. 당연히 파우스트와 관련된 대다수 음악도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파우스트를 음식으로 빗대자면 최고의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차린 건강식 정찬이다. 하지만 매일 세 끼를 정식으로만 먹는다면 분명 소화에 부담이 될 것이다. 가끔은 문방구의 군것질이나 편의점의 인스턴트 음식이 간절할 때도 있는 법.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는 달콤한 불량 식품처럼 거부할 수 없는 ‘B급 파우스트’를 소개해 본다.
요절복통 B급 패러디 – 에르베(Hervé)의 오페라 ‘쁘띠 파우스트(Le Petit Faust)’
파우스트는 무겁다. 원작은 심오하고 연극은 심각하다. 당연히 파우스트와 관련된 대다수 음악도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파우스트를 음식으로 빗대자면 최고의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차린 건강식 정찬이다. 하지만 매일 세 끼를 정식으로만 먹는다면 분명 소화에 부담이 될 것이다. 가끔은 문방구의 군것질이나 편의점의 인스턴트 음식이 간절할 때도 있는 법.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는 달콤한 불량 식품처럼 거부할 수 없는 ‘B급 파우스트’를 소개해 본다.
요절복통 B급 패러디 – 에르베(Hervé)의 오페라 ‘쁘띠 파우스트(Le Petit Faust)’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웃긴 오페라를 급조에 가까운 속도로 완성해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하나다. 1869년 3월 3일에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새로운 판본이 파리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기민한 흥행사였던 에르베는 이 열기가 꺼지기 전에 구노의 인기에 묻어갈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대본 작가는 파우스트가 궁금하지만 길고 심각한 걸 싫어하는 일반 대중의 심리를 간파해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가극) 형식으로 텍스트를 갈겨썼고, 에르베는 구노 파우스트의 인기 멜로디를 패러디해 음표를 찍어내듯 작곡했다. 그렇게 두 달이 채 안 된 1869년 4월 28일에 엽기적인 오페라 ‘쁘띠 파우스트’를 초연할 수 있었다.
더 황당한 일은 에르베의 쁘띠 파우스트가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당시 대중의 요구를 간파한 틈새시장 공략과 파리 예술계를 지배하던 구노 파우스트의 기류에 올라탄 전략이 적중한 면도 있었지만, 성공의 가장 큰 요소는 웃음이었다. 쁘띠 파우스트는 모든 요소가 폭소를 자아낸다. 연극도, 인물도, 음악도 심지어 일본 만화의 3등신 캐릭터처럼 머리만 크게 강조한 포스터까지도 웃기다. 웃음이야말로 B급 패러디의 진수이자, 흥행사 에르베가 낚아챈 성공 요인이었다.
쁘띠 파우스트의 음악은 약 90분 정도로 오페라치고는 짧은 편이다. 배우들의 노래는 전문적인 성악 기교 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역이고,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는 가볍고 즐겁다. 노래를 받치는 반주도 단순하다. 피아니스트 1명이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 판본과 단원 60명 정도의 단원이 필요한 오케스트라 반주 판본이 있으나, 음량의 진폭이 작고 화음도 단조로워 두 판본의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한마디로 쁘띠 파우스트에는 어렵고 심각한 음악이 없다. 기본적으로 코메디가 맨 아래 깔려 있기 때문에 간혹 어두운 장면을 묘사하는 음악이 나와도 더 큰 웃음을 자아낸다.
쁘띠 파우스트의 노래 중 몇몇 곡은 음악 평론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뒷돈을 받고 호평 일색인 글을 쓰는 삼류 평론 문화가 팽배했다. 그 뒷돈의 출처는 비평가의 칭찬을 공연의 광고로 사용하려는 흥행가의 주머니다. 에르베가 당시 파리를 주름잡던 흥행사였으니 음악성에 대한 신뢰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패러디 오페라 쁘띠 파우스트의 극작 원본은 괴테지만, 음악의 원본은 구노다. 에르베는 대놓고 구노의 음악을 B급으로 패러디했지만, 파리 최고의 작곡가 구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이미 대작곡가 반열에 오른 구노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의 쁘띠 파우스트를 언급하는 것이 되려 자신의 체면을 깎아 먹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B급에 이은 C급 패러디 – 단막 오페라 ‘파우스트 파스망셰 (Faust passementier)’
최고의 흥행사는 한 작품의 흥행 중에 다음 작품 흥행을 생각한다.
에르베는 쁘띠 파우스트의 성공에 취하지 않고 곧바로 패러디의 패러디 파우스트 파스망셰(Faust passementier)를 기획한다.
프랑스어 파스망셰는 파스망트(끈으로 엮은 옷고름이나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작에서 나름 기숙 학교 교장이었던 파우스트는 일개 공예 기술자가 된다. 비루한 처지의 파우스트는 갑자기 중국 황제의 탑을 꾸밀 72,000미터의 파스망트를 대량 주문받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난처하다. 그때 발렌틴이 여동생 그레트헨을 조수로 소개해 주지만, 못되고 게으른 그녀는 방해만 될 뿐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해결사 메피스토펠레스가 뜬금없이 나타나 파우스트에게 젊음이라는 노동력을 선사해 준다. 청춘의 힘이 넘치는 파우스트는 발렌틴을 죽이고 건방진 그레트헨을 유혹한다. 결국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은 메피스토펠레스를 따라 지옥으로 가고, 발렌틴은 천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발렌틴이 하늘로 올라갈 철삿줄에 매달리기를 거부하는 황당한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자 그냥 술이나 먹자고 하며 네 주인공은 술집으로 향하고 그대로 막이 내린다.
줄거리를 적기에도 민망할 수준의 단막 대본이다. 웃음은 풍자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슬랩스틱이나 허무 개그로 전락한다. 그런데 음악은 여기에 한술 더 뜬다. 파우스트 파스망셰의 음악은 쁘띠 파우스트보다 반절정도 짧고 곱절로 유치하다. 그런데 놀라긴 아직 이르다. 에르베는 이 모든 과정을 한 달 만에 해치웠다. 파우스트 파스망셰는 쁘띠 파우스트의 초연을 올리고 정확히 37일 후 6월 4일에 파리의 엘도라도 극장에서 초연을 올렸다.
입이 떡 벌어지는 추진력이지만, 부실에 부실을 얹은 공사이자 급조에 급조를 더한 날림이다. 오페라에도 오페레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C급 작품은 후하게 쳐줘야 변두리 카바레의 즉흥 버라이어티 쇼인 부를레스크(Burlesque)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인스턴트 음식 같은 졸작에 주목할 점이 있다. 예상했겠지만, 파우스트 파스망셰는 쁘띠 파우스트보다 훨씬 웃겼다.
망가지고 상한 오페라 두 편을 살펴보았다. 연재의 큰 제목이 ‘음악으로 듣는 연극’이지만 음악 감상을 추천하지 않겠다. 극의 요란한 분위기만 살짝 맛보길 원하는 분만 위 링크를 클릭하길 바란다. 반드시 음 소거 후 시청하시길 권유한다.
불량 식품은 가끔 먹어야만 맛있다. 강렬한 맛에 끌려 자주 먹으면 입맛만 버린다.
에르베의 쁘띠 파우스트와 파우스트 파티망셰는 대중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지만, 영양가가 전혀 없는 불량 식품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불량이 그러하듯 에르베의 두 파우스트는 유통 기한이 매우 짧았다. 건강식 정찬이 맛이 밋밋하고 소화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우리 몸과 정신에 양분을 공급한다. 불량 식품은 혀끝의 짧은 자극을 줄 뿐, 영양은커녕 배탈과 설사 그리고 소화기계 암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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