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형극단아토 <어느날 까치를 보았는데…>

글_오판진(연극평론가)

 

 

ⓒ배길효

 

2025년 5월 제25회 유니마총회와 춘천세계인형극제가 춘천시에서 열렸다.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된 축제 기간에 국내외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주목할 만한 그림자극 한 편이 춘천인형극장을 찾아왔다. 5월 30일부터 5월 31일까지 춘천인형극장 바우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 <어느 날 까치를 보았는데,,,>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주목할 만한 작품 또는 그림자극의 전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발표 연도가 1989년인데도, 지금 보아도 감동적이며, 완성도가 높아 관객의 호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현대 그림자극 가운데 이렇게 독보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이 그림자극은 처음 발표한 지 35년이 지난 2024년 인형극단 아토가 리메이크함으로써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춘천국제인형극제가 가장 빛나던 순간인, 5월 30일에는 공연이 끝난 후 공이모(공연과이론을위한 모임) 평론가와 문재현 배우, 유홍영 협력연출이 함께하는 ‘아티스트 톡’이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전체 공연 가운데 다섯 번밖에 진행하지 않는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만큼 그 가치가 높다는 것을 (재)춘천인형극제가 인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티스트 톡’은 국내외 관객들과 예술가가 통역의 도움을 받아 소통하는 과정이었고, 창작 과정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였으며, 예술가의 고민도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 그림자극으로 만석중놀이가 있다면, 한국의 현대 그림자극에는 이 작품이 그에 견줄만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공연의 내용과 형식 모두 훌륭하고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 신재환

 

먼저, 그림자극 <어느 날 까치를 보았는데,,,>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공연은 국제적인 인형극축제에서 진행되었기에 관객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인이었고, 문재현 배우는 한국어와 영어로 대사를 하면서 연기하였다.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 있었다. 이야기마다 탄성이 나오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었고, 그 비유가 매우 쉬웠기에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첫째, ‘빈 배’라는 에피소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사는 뱃놀이를 다녀온 선생님께서 제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선생님은 뱃놀이보다 재밌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떤 배가 선생님의 배를 향해 왔던 일이었다. 선생님은 배들끼리 부딪칠 것 같아 저리 비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배는 계속 다가왔다. 선생님은 점점 더 큰소리를 질렀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쩌면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정신없이 아주 큰소리를 내질렀지만, 결국에는 ‘꽝’하고 부딪혔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난 선생님은 어떤 놈이 배를 움직였는지 단단히 혼을 내주려고 그 배를 살펴보았지만, 빈 배였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배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화를 낸 것이었고, 이 일을 통해 빈 배처럼 나를 비우라는 걸 깨달으셨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는 화와 감정은 본질이 아니라 사람의 해석에서 나온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고, 대사 하나하나에서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바로보기’라는 에피소드도 아주 좋았다. 제자가 앞산을 그리려고 그 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 제자는 가까이서 산을 보면 잘 볼 수 있을 줄 알고 올랐는데, 오히려 산이 보이질 않아 내려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제자에게 앞산을 제대로 보려면 맞은편 산에 올라야 앞산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나를 올바르게 보려면, 내 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객관화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 과정을 염두하고 생활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지혜롭게 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일 것 같지만, 가장 모르는 사람도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말’이란 마지막 에피소드도 큰 감동을 주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인데, 스승과 제자의 대화로 표현하였다.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한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말을 하지 않고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요?” 스승은 말이란 생각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대답했다. 손가락을 통해 생각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하면서 언어 그 자체에 주목하는 일이 많다. 언어에 집착하지 말고, 그 언어에 담긴 화자의 마음을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하면, 배운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억지로 조작하지 말고, 순리대로 따르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을 이어가면 사람 사이의 갈등이 줄어들고,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넷째, 다른 에피소드들도 하나하나 의미가 깊었지만, 마지막으로 장자의 ‘호접몽’이나 중국의 고사성어 ‘새옹지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호접몽’ 즉,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절대적인 진리나 고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이런 메시지가 문재현 배우의 붓을 사용한 라이브 드로윙과 함께 대사와 연기로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반복하여 생생하게 연기하기에 관객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오래 남는 것이다. 중국의 고사성어 ‘새옹지마’는 변방 노인의 말이란 뜻인데,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예측하거나 확언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있다.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쉽게 흔들리는 사람의 모습을 조심하고, 감정적인 동요 없이 담담하게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지혜가 담겨있었다. 관객들은 그림자극을 보면서,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긴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은 개인들이 자기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쉬운 언어와 붓으로 그린 수묵화로 단백하게 전달되었기에 재미도 있고, 의미도 깊었다.

 

ⓒ배길효

 

다음으로 그림자극 <어느 날 까치를 보았는데,,,>의 형식을 살펴보자. 만약 학교의 한문 시간이나 도덕 시간에 교사의 입을 통해 공연의 내용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은 눈을 감고 졸거나,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예술의 힘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공연의 내용은 촛불을 조명으로 사용하면서 붓으로 그리는 그림이나 글씨였기에 예술로 승화될 수 있었고, 사람들은 기꺼이 바라보면서 감동하고 큰 박수를 보낸 것이다.

첫째, 촛불 조명을 주목해 보자. 전기를 사용한 조명은 사용하기도 편하고, 여러 가지 색깔과 강도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현대 연극에서 전기 조명은 필수 요소이다. 그리고 조명 디자이너와 조명 오퍼 등으로 그 역할을 나눠 전문적인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촛불에 비친 그림자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하고 은근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전기 조명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야외에서 캠핑할 때 텐트에 비친 그림자나 시골집 창에 비친 나뭇가지 그림자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촛불에는 종교적이면서도 근원적인 함의도 담겨있다. 그래서 촛불을 켜면 더 경건해지고, 기도하는 마음이 되며,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심오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번 공연에 사용된 촛불 조명은 관객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다가가며, 동양철학의 정수를 더욱 깊게 전달하는 효과를 유발하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촛불을 적절하게 잘 사용해야 한다. 안전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그림자극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도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문재현 배우는 혼자서 많은 실험을 하면서 연습하였고, 휴대전화로 연습 과정을 촬영한 후 돌려보면서 수정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렇게 애를 쓰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최고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남모를 훈련을 수없이 거듭하였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조명은 스태프의 주요 업무이며, 컴퓨터를 통해 입력하고 자동화하여 작동한다. 조명 분야는 이렇게 어려운 분야이고, 주요한 역할인데, 문재현 배우는 연기하면서 스스로 그 역할까지 수행하였다. 그래서 연기할 때 다른 공연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쉽게 만들 수 없는 완성도 높은 미장센을 보여줄 수 있었다.

둘째, 배우가 공연 중에 직접 붓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라이브 드로윙을 진행하였는데, 그 부분도 살펴보자.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표현하는 일은 고도의 역량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은 다재다능하기에 탤런트라고도 부르지만, 이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문재현 배우의 화가로서의 역량은 재능이 뛰어났고 돋보였다. 평소 문인화를 수련하면서 붓으로 표현하는 역량을 높이지 않았다면, 이런 수준의 그림자극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그림자극에서 관객에게 보이는 한지 두루마리 위에 표현된 영상은 배우가 표현하는 글씨나 그림이 뒤집혀서 전달되는 것이기에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붓을 들고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림이나 글씨를 준비한 대로 보여주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면서도 한지와 촛불과의 거리도 적당하게 유지하는 등 챙겨야 할 일들이 다른 공연보다 많았다. 그런데도 이를 차분하게 수행하여 현장감과 완성도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신재환

 

아티스트 톡을 통해 예술가 두 분의 작품 제작 과정에 관해 더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 먼저, 이 작품을 만든 김은영 선생님은 2024년 돌아가셨지만, 유가족들의 응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유홍영 협력연출은 김은영 선생님과 함께 논의해 온 친구였는데, 그가 협력연출로 그리고 공연에서 고수 역할로 등장하여 음향이나 공연 진행을 돕는 등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인형극단 아토가 35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작품을 부활할 수 있었다. 이런 창작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을 각색한 부분도 있었는데, 긴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여 현재의 시대적 요구에 호응하는 에피소드를 몇 개 추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30일 공연 전날 떠오른 좋은 장면이 있었는데, 주저하지 않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음 날 공연에 바로 도입한 일도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이 그림자극은 제자와 선생님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대화는 허를 찌르는 탁월한 비유로 되어 있으며, 깨소금 같은 인생 조언이 담겨있다. 그래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동양 철학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그림자극의 전설이라 평가한다. 관객에게는 이 공연 소식을 듣게 되면 놓치지 마시라고 강력하게 권장하고, 인형극단 아토에게는 이 작품을 계속 발전시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계속 선사해 주시길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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