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작당모의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

글_우수진 (연극평론가)

 

 

사진 제공: 극단 작당모의

튕김, 그 잔잔하면서 역동적인

제목치고는 꽤 긴, 선문답 같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는 연극의 성격을 잘 나타내준다. 연출가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는 이 제목은 사물과 자신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이나 연극을 구성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보인다. 어떤 원리와 같은 이것은 ‘서사’라고 할 수 없기에 그동안 몇몇 평론가들이 ‘수행’이라고 언명했던 바를 극 중에서 구성한다.

사실 무릎을 긁는 행위와 겨드랑이가 따끔거리는 감각은 동떨어져 있다. 무릎을 긁으면 그 무릎이 시원하거나 따끔거려야 한다. 인과적이지 않은 이 두 사건은 그러나 제목 안에서, 그리고 극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연결의 방식은 우발적이고, 그래서 엉뚱하고 우스우며, 그래서 더 자유롭다.

모든 것은 사소하지만 강렬하면서도 분명한 어떤 것으로부터 ‘사건’처럼 그저 튕겨지듯 시작된다. 이 연극에서 그것은 자판기 밀크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어느 버스커의 불현듯한 욕망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카페가 사방에 널려 있는 커피 공화국에서 이제는 찾기도 어려운 자판기의 밀크커피가 불러일으키는 레트로한 감성, 그 코끝에 어른거리는 씁쓸하면서도 달달하고 진한 커피의 향과 맛으로 관객을 정동시킨다. 그렇기에 이 연극에서, 나아가 김풍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서사나 플롯을 대신하는 수행의 가장 심급에 놓여 이를 추동하는 것은 ‘정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제공: 극단 작당모의

 

흩어지고 모아지는, 점성의 유체들

여기에 단돈 50원이라는 잔돈의 부족은 욕망을 좌절시키면서 증폭시킨다. 욕망은 이제 거세게 튀어 오른다. 이제 버스커의 절박함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앞두고 모든 정신을 집중하기 위했던 안중근과 한산섬 푸른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하던 이순신과 비견되면서, 긴장감 넘치는 그 역사적 순간에 족히 위안이 되어주었을 밀크커피 한 잔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러한 장면과 장면들은 선형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분수대에서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흩어질 뿐이다. 안중근의 대사는 안나 까레리나와 쏘냐, 니진스키의 대사와 뜬금없이 교차되고, 하얼빈역 광장 커피자판기 주인이라는 나타샤와 극동 러시아 주재 일본 총영사관인 가또, 그리고 통역관 빅토르가 잔돈이 없어 커피를 마시지 못해 나누는 대화를 안중근이 곁에서 듣고 있다.

아무리 억만장자여도 잔돈이 없으면 자판기 밀크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대사를 여운으로, 어느새 장면들은 지폐와 동전, 그 안에 담긴 사임당과 이이, 이황, 세종, 순신 등의 인물들과 학 같은 동물들, 볏단, 다보탑 같은 사물들을 향해 다시 한번 튄다. 지폐의 화백들, 자판기가 인식하지 못해 뱉어내는 십 원짜리 신권, 동전들의 무덤인 돼지저금통 등등 버스커의 무의식처럼 맥락 없이 여기저기 가지를 뻗어나가며 만들어지는 장면들은, 그러나 점성의 유체들처럼 관객의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유동하면서 서로 결합하고 각자의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사진 제공: 극단 작당모의

 

펼침, 그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무대 위에는 시골 장터 한구석에 자리한 할머니의 좌판처럼 각종 오브제들이 늘어놓아져 있다. 얼핏 그 배치는 마구잡이 같아 보지만 그 안에는 요령이 있다. 던져진 공깃돌이 제멋대로의 모양새를 만들어내도 선수는 언제나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기놀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피자판기를 구성하는 오브제이다. 뒤편 중앙에 자리잡은 버스커의 오른편에는 깡통 하나와 전동드릴 하나, 종이컵 디스펜서 하나가 공중에 나란히 매달려 있다. 이 세 개의 오브제들은 하나의 커피자판기를 환유한다. 지루한 재현과 달리 환유는 연극적인 즐거움을 준다. 깡통에 던져진 동전(소리)은 자판기의 동전 투입구에 동전(소리)과 그 행위를 대신하고, 드릴 소리는 자판기의 작동을 대신한다. 여기에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바닥 위에 카드를 놓아서 만드는 금액판은 찰나의 순간을 기나긴 여정의 시간성으로 놀이화한다.

이 외에도 배우들은 오만원권의 사임당이 말할 때 그가 언급한 가지를 바닥에 직접 그리고, 무대 뒤쪽에 걸려 있는 하얀 종이 위에 물을 뿌리고 하고 칼도 도려내기도 하며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천정에 매달린 쿠킹호일이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공중에 은빛 카페트를 만들어낸다. 친숙한 생활소품들이 재현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무대는 수묵화와도 같이 소박하고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여백은 시간성을 가지고 수행되는 배우들의 놀이를 통해 연극성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연극에서 재현이란 것이 얼마나 지루한 낭비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