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유목민의 김 숨 작 국민성 각색 손정우 연출의 한 명
극단 유목민의 공연예술 중 장기창작지원 선정작, 김 숨 작, 국민성 각색, 손정우 연출의 <한 명>을 알과핵 소극자에서 관람했다.
김 숨의 본명은 김수진.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나 대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대전일보에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중세의 시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가들 중 한 명으로, 2010년대에 들어서 온갖 문학상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였다.
김 숨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심리, 그 중에서 <불안> 이라는 키워드가 작품 전체적으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어쩔 땐 기괴할 정도로 섬뜩한 묘사가 군데군데 박혀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소설적 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첫 소설집 <투견>과 두 번째 소설집인 <침대>에 실린 단편들이 대체로 그러한 편이다. 인물들은 한없이 병약하고 나약해서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며, 타인에 대한 불안이 가득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로선 드물게 서사를 배제하고 이미지에 강렬함을 싣는 등 시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제일 난해하기로 유명한 <노란 개를 버리러>에서 그것이 잘 나타난다.
국민성은 극작가이다. 2006년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창작 희곡으로는 <인형의 歌>(2012, 경기문화영상위원회 창작 희곡 공모 최우수 당선작), <여자만세>(2013, 한국희곡작가협회 희곡상), <6.29가 보낸, 예고부고장>(2015), <국군의 작별식>(2017, 대한민국연극제 서울예선 희곡상), <여자만세2(부제 : 마지막 하숙생)>(2018), <룸메이트>(2019) 외 <쟈베르&쟈베르>, <소녀 시대>, <조르바 ‘빠’들의 불편한 동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마전선 이상없다>, <잃어버린 세월>, <정조의 꿈> 등 다수가 있다. 뮤지컬, 악극 대본 창작도 활발히 하고 있다.
손정우(1960~)는 경남 마산출신의 연출가다. ‘혜화동1번지’ 동인 2기 출신으로 극단 상상과 표현을 이끌었고, 현재 극단 유목민의 대표다. 연출작으로는 <인형의 집> <체어> <사슬> <사랑의 기원> <빅토르 최> <서민귀족> <낙타풀> <레몬> <만화방 미숙이> <크리스마스에 소꿉놀이를> <병자삼인> <해뜨기 70분전> <유목민 리어> <끝나지 않는 연극>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2012 서울연극제 연출상 수상, 2103 서울연극제 연출상수상(끝나지않는연극, 2014 제3회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연출상 수상자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장이다.
연극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공식 생존자가 80년에 걸친 상처와 분노, 수치와 절망의 세월이 회고된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끌려간 주인공은 내일부터 군인을 받아야 한다는 위안소 주인 여자의 말을, “군인들이 오면 밥도 해주고, 군복이나 양말 같은 빨래도 해주고 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었”을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몰랐던 소녀다. 그러나 그로부터 무려 7년 동안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견뎌야 했다. 연극은 위안소의 끔찍한 실태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이 연극이 위안부 문제의 객관적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도록 했다.
위안소 생활의 세목은 참혹하고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짐승만도 못한 삶과 지옥의 세월 7년을 보내고, 전쟁이 끝난 뒤 만주에서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5년. 열세 살 나이로 떠났던 고향을 스물다섯 나이로 다시 찾았지만, 호적부에는 이미 사망신고가 되어 있고 고향집에는 더 머무를 수가 없다….
백발이 된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나아가 “만주 위안소에서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치를 떨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치매에 걸려 자신이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면 어쩌나 싶다.” 피해 당사자의 기억 투쟁이 진상 규명과 사태 해결의 열쇠이기는 하지만, 시간과 다투는 기억과 증언의 절박함을 강조한 ‘한 명’이라는 제목도 같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되뇌는 주인공이 “그 한마디를 들으면 용서가 되려나?” 그 한마디란 무엇일까. 밝히지는 않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가해자인 일본 정부한테서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이다. 주인공이 평생 감추어 오던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자 나서는 결말부에서도 “여전히 무섭다”며 움츠러드는 장면은 가해자의 사과를 끌어내고 타인들의 이해를 얻기까지 그가, 그리고 인류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사실이다.
무대는 긴 각목을 가로 세로 사선으로 엮어 마치 공사장이나, 은닉장소처럼 만들어, 주인공 할머니의 거처와 위안소로 설정 연출된다. 중앙과 무대 좌우에 각목 사이 통로가 있고, 주인공의 거처에는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출입문이 있다. 탁자와 의자, 작은 함과 궤짝이 사용되고, 구석에 선반으로 사용되는 공간도 있다. 배경에 위안부의 얼굴 사진이 투사되고, 연극은 주인공의 모노드라마 같은 형식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80년의 회고가 현재까지 이어져 펼쳐진다.
차유경이 주인공 할머니, 이일섭이 오토상, 정슬기가 주인공의 조카, 홍은정이 일본여인, 박새롬이 하하, 이수정이 소녀시절의 주인공, 진영진이 석순, 이민수와 김태균이 일본사병 중대장 직원 등으로 출연한다. 출연진 전원의 성격설정은 물론 발군의 기량으로의 열연이 돋보이고, 차유경과 이일섭의 호연은 높이 평가된다.
조연출 황태선, 드라마터그 한윤섭, 안무 이현주, 무대 민병구, 조명 김종석, 의상 조문수, 분장 김미숙, 음악 박용신, 영상 박진태, 연기지도 이승헌, 기획 문화기획 쌀, 홍보디자인 권희주, 제작감독 이황용, 오퍼레이터 문순주 등 스텝진의 열장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유목민의 김 숨 작, 국민성 각색, 손정우 연출의 <한 명>을 관객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한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