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십(幾十) 명이 노래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 임야비(tristan-1@daum.net)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트루그

혼성 합창단

기십(幾十)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두 곡을 소개한다. 모두 슈베르트(1797-1828)의 합창곡으로, 하나는 4성부의 아카펠라 곡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노 반주에 두 명의 독창자와 합창이 함께 하는 곡이다.

천사들의 합창

비극 1부의 제1장. 부활절 전야, 제자 바그너와 대화를 마치고 홀로 남은 파우스트는 허망한 인생을 한탄한다. 긴 독백을 마치고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종소리와 함께 천사들의 합창이 들려온다.

부활절을 알리는 천사의 소리에도 파우스트의 절망은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할 뿐이다. 이후 천사들의 합창은 가사를 바꾸어 두 번 더 등장하고, 그 중간에 여인들의 합창과 사도들의 합창이 삽입된다.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송하지만, 믿음을 잃은 파우스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남의 일일 뿐이다.

슈베르트: ‘천사들의 합창’ (D.440) 악보

슈베르트는 이 부분을 아카펠라(a cappella; 반주 없이 부르는 합창)로 작곡했다. 괴테의 텍스트에서 알 수 있듯, 신의 부활과 인간을 향한 저주가 교묘히 교차하고 있다. 이에 슈베르트는 떠오르는 신비함에 c minor의 무거운 추를 매단다. ‘아카펠라’ 자체가 중세 교회 음악의 분위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성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4성부 합창으로 곡을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된다. 하지만 고음부이자 천사의 목소리에 제일 가까운 소프라노(악보의 맨 윗줄; 가장 높은 성부)를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 동일한 멜로디를 네 성부가 함께 부르거나 베이스(악보의 맨 아랫줄; 가장 낮은 성부)를 바닥으로 테너, 알토(악보의 두 번째, 세 번째 줄; 중음부)를 쌓는 방식으로 느리고 무거운 움직임을 들려준다. 즉, 이 합창곡은 가장 ‘우울한 부활절’ 음악이다.

파우스트의 비극은 부활절 전야에 시작한다. 왜 하필 부활절일까?

믿음을 저버린 파우스트에게는 신의 부활이 아닌 자신의 부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곧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고 파우스트는 청년으로 부활한다. 1, 2부의 긴 여정을 마친 파우스트는 결국 죽음을 선택하지만, 신에 의해 구원받는다. 극작가 괴테는 ‘신의 부활’과 ‘인간의 부활’이라는 대조 효과를 얻기 위해 연극의 초반부에 부활절을 배치했을 것이다. 8년 뒤, 슈베르트는 우울한 부활절 합창을 작곡해 극작가의 의도에 화답했다. 음악이 너무 무겁고 연주 인원도 많이 필요하다 보니, 이 곡이 실제 연주되거나 극에 삽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명민한 극작가의 연출 의도를 정확히 집어내는 천재 음악 감독의 번뜩이는 기지는 놀라울 따름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 ‘성당의 그레트헨’
(Dies Irae(진노의 날)이라고 쓰인 칼이 기절한 그레트헨 아래 놓여 있다.)

파우스트 비극 1부의 제20장 ‘성당’에서 죄책감에 억눌린 그레트헨은 심각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진다. 이 ‘성당’ 장은 앞서 분석한 바 있는 제15장 ‘그레트헨의 방’ (일명 ‘물레 앞의 그레트헨 Gretchen am Spinnrade D. 118; (TTIS 21년 4월호 참조))’과 제18장 ‘성 안쪽 길’(일명 ‘성벽 안의 그레트헨 Gretchen im Zwinger D. 564; TTIS 21년 5월호 참조))과 함께 그레트헨의 붕괴하는 심리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강렬한 장이다.

장례 미사에 참석한 그레트헨은 신자들 사이에 앉아 있고, 그녀의 뒤에는 악령이 서 있다. 그레트헨은 자신이 저지른 죄와 죄책감에 휩싸여, 신부의 목소리도 주변 신자들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 오직 그녀를 힐난하는 악령의 목소리와 라틴어로 진혼곡을 노래하는 성가대의 합창만 간간이 들릴 뿐이다.

결국 그레트헨은 양심의 가책과 악령의 힐난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다. 불쌍한 그레트헨이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이 장이 끝나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발푸르기스의 밤’ 유랑 장면이다. 이곳에서 파우스트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그레트헨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젊은 마녀들과 음탕한 파티를 즐긴다. 장면의 극단적인 배치 역시 괴테의 정교한 설계일 것이다.


슈베르트가 1814년에 작곡한 ‘파우스트의 한 장면’ D.126

슈베르트는 이 명장면을 청각적 드라마로 연출했다. 저주를 퍼붓는 악령과 이에 신음하는 그레트헨의 절규 그리고 장례 미사에서 울려 퍼지는 진혼곡(Requiem)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슈베르트는 매우 독특한 작곡 기법을 동원했다.

첫 번째는 ‘레시타티보(Recitativo; 가사를 말하듯이 부르는 창법)’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6분 정도 되는 이 곡을 자세히 들어보면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가수는 앙상한 피아노 반주 위에서 멜로디 없이 읊듯이 소리를 낸다. 즉, 연극배우의 대사와 오페라 가수가 부르는 노래의 중간 정도로 음악을 이끌어간다. 이것이 바로 레시타티보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절망적인 텍스트를 최대한 살리고 어두운 분위기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래에서 노래를 최대한 덜어냈다.

두 번째는 ‘배역과 성부의 분할’이다. 이 장면에는 악령, 그레트헨, 진혼곡을 부르는 합창단, 이렇게 세 개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슈베르트는 각 목소리에 배역에 맞는 목소리를 배치한다. 즉, 남자 성악가가 악령을 맡고, 소프라노가 그레트헨의 절규를 부르짖는다. 그리고 진혼곡을 부르는 성가대는 합창단이 미사 전례문을 라틴어로 부르게 했다. 일반적인 독일 가곡은 독창 한 명에 피아노 반주 형식인데, 이 곡은 독창 두 명에 피아노 반주 그리고 합창단까지 들어간다. 이런 복잡한 편성은 자주 연주되지도 않을뿐더러, 악보도 잘 팔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슈베르트는 생계를 위한 수익을 포기할지언정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기에 독특한 형식을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음악적 연출’이었다.


슈베르트가 표기해 놓은 배역 분담

악령은 중저음, 그레트헨은 고음 그리고 합창은 둘 사이의 성부를 채운다. 이렇게 수평적 시간의 예술이었던 음악은 수직적 공간을 확보한다. 이 공간은 성당의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진혼곡 (Dies Irae (진노의 날), Tuba mirum (신비한 나팔소리))의 저주를 견디지 못하고 지옥으로 추락하는 그레트헨의 비극에 공간을 부여한다.

즉, ‘레시타티보’로 밋밋하게 흘러가는 텍스트는 ‘배역과 성부의 분할’로 입체적인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괴테가 의도한 비극적 이미지를 팽창시킨다.

슈베르트가 17살에 구현한 이 청각적 장면은 괴테가 구현한 시각적 무대보다 더 강렬하다. 희곡과 극부수음악에 있어서 슈베르트는 극작가와 연출을 전율시키는 전대미문의 ‘음악 감독’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그가 ‘음악 감독’이라는 직책이 없던 시대를 살다 31살이라는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등진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