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유라(연극평론가)
삼일로 창고극장의 공연들은 관람 전 색다른 기대를 하게 만든다. 재개관 이래 그간의 기획과 대관 공연들이 실험과 탈경계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남산예술센터를 잃고 아쉬워 했던 관객들에게 혁신적 공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더욱 반가운 극장이다. 게다가 차세대열전이라니. 이번 공연은 제목부터 남다르다. 김민주 작/연출의 <소는 누가 키우고 논문은 누가 쓰나>(1.21~30)는 소재에서 극장까지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공연장 대관 지원을 하지 않고 자체 선택하게 한 차세대 열전의 변화가 이 공연의 시너지를 올리는 데 한몫을 했다.
차세대열전은 차세대 예술가를 양성하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가 소재 개발에서 작품의 완성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개인 창작자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연극협회가 주관하는 미래연극제나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신진연출가전 등과 함께 젊은 신진 예술 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적 무대를 펼칠 수 있는 대표적 장이라 할 수 있다. 매년 이들을 관람하며 느끼는 점은 해를 거듭할수록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차세대 열전은 올해부터 만 35세 이하였던 참가자격을 다른 사업들과 비슷하게 만 39세 이하로 상향하였고, 연극, 무용, 전통, 음악의 각장르를 다원을 포함한 공연예술로 통합하였으며, 각 발표 단계에서는 참가자의 영유아돌봄비를 지원하는 등 유연한 방안들로 지속적 발전을 모색하는 듯하다.
소는 누가 키우나
<소는 누가 키우고 논문은 누가 쓰나>는 소중대학교 동물자원학과 에서 일하는 조교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리며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을 소의 일생에 비유한 풍자극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는 젠더와 부동산에 집중된 경향을 보이는 데다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와 다가올 선거로 인해 청년 문제는 사회적 관심에서 더욱 밀려난 실정이 다. 한동안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너도 나도 힘든 시기에 청년들의 불안하고 힘든 삶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외면당하고 있다. 소처럼 부지런히 학벌과 스펙을 쌓고 정량적 평가 만이 공정함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경쟁에 밀린 자들은 게으르거나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공정한 가’라는 질문은 회피한 채 말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마주보는 객석 사이에 빈 무대 공간 후면으로 소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흐른다. 소들이 지하철을 탄 건가 착각했는데 아뿔싸, 소를 경매하기 위해 등급을 매기는 곳이라고 한다. 김민 주는 입시를 낙방하고 우연히 찾았던 우시장에서 팔려가는 소들을 보며 이 공연의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혈통과 신체 스펙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소처럼 집안 배경과 학벌 스펙으로 팔려나가는 청년들을 떠올린 것이다. 조교들의 소속 학과가 동물자원학과인 것도 자원으로서 가공·생산되는 소처럼 청년들도 국가의 인력자원인 셈이기 때문이다. 소가 한때는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그리고 여전히 음식자원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지닌 동물인 것처럼, 청년들도 그런 소처럼 억척스럽게 일하며 유용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코미디로 가장한 채 그려낸다. 요즘 말로‘ 깨발랄한’ 조교들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와 엄청난 업무량을 불평 한 마디 없이 오히려 노련하게 수행함으로써 꿈을 위해 착취당하는 그들의 애환을 희화화 하며 풍자적 효과를 노린다.
논문은 누가 쓰는가
흥미로운 점은 무대 위에 갑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섬세하고 예민하여 정해진 업무 외에 개인 의전까지 시키며 조교들을 힘들게 부려먹는 고·구·마 교수님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 등장하지도 않고, 조교들은 그들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면 서도 대놓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기혼자인 김조교는 가정과 학교의 두 집 살림을 하며 시어머니 두 분과 애를 셋 키운다고 농담하지만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부족함이라고만 자책한다. 아이를 돌봐주며 영유아 검진에 데려가주는 어머니가 황송하고 아이를 픽업해주는 남편이 고마울 뿐이다. 집에서는 논문을 쓸 처지가 안 되어 학교로 돌아와도 틈틈이 논문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착각이었음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한다. 그들은 누구와 갈등하고 싸우고 있는가. 그들이 꿈이었던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으레 당연한 것으로 굳어진 관습과 시스템 때문 아니겠는가.
무대의 각 귀퉁이에는 조교들의 업무 책상이 놓여있다. 조교실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 대학에서는 학과 사무실이라고 부른다. 사실이 공간은 그들이 주인인 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흥이 넘치는 세조교들은 새 학기 첫 날의 분주한 업무 중에도 신입 유조교에게 농부보다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빡빡한 학사 일정을 친절하게 설명 해준다. 조교 업무의 매뉴얼을 담은 조교지침서를 하얀 면장갑을 끼고 경건한 의식처럼 펼치는 그들의 진지함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자신들의 일에 진심임을 보여준다. 교수님의 도시락을 하나 덜주문한 작은 실수마저 전쟁을 방불케 하는 비상상황으로 아롱사태를 발령하며 도시락 사수작전을 치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식사를 하지 못했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노력과 헌신에도 그들은 논문을 쓰지 못하고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하며, 직업란에 정정당당히 쓸생각도 못할 정도로 인정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시종일관 유쾌함 에도 불구하고 씁쓸함을 남기는 웃픈 현실인 것이다.
김민주 연출은 특이한 구조의 삼일로 창고극장의 모든 공간을 동선 으로 활용한다. 극장 입구의 철제 계단과 통로에서 펼쳐지는 출퇴 근의 노래와 율동 장면 그리고 도시락 전쟁 장면에서는 벽의 빈 공간마저 활용하여 헬기를 흉내내는 등 무대적 상상력이 빠른 장면전환 함께 어우러져 지루할 새가 없다. 거기에 틈만 나면 울려대는 전 화벨과 소 울음이나 총탄 소리와 같은 음향 효과들, 그리고 뮤지컬 마냥 노래도 넘치게 등장한다. 가장 압권은 역설적으로 희화화 시키거나 재치 넘치는 대사들을 절묘한 타이밍과 호흡으로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력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무거웠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극장에서도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들만 마주하던 관객들에게 간만에 실컷 웃을 수 있던 시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연과 함께 한바탕 놀고 난 후에 돌아보면 결말이 뭔가 찜찜하고 아쉽다. 여기가 공연이 노리는 지점일 것이 다. 답은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막연히 시간이 해결해 줄것이라는 생각으로 어쩔 줄 모르고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수만 빼고는 모두 루저가 되어버리는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더 씁쓸한 것은 그 소수의 성공이 반드시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교를 해본 사람이라면 열심히 해도 일한 만큼 돈을 충분히 벌 수 있거나 스펙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알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모두에게 마땅히 주어지지도 않는다. 사회적 경쟁에서의 성공이 타고난 소의 혈통처럼 물려받은 경제적 요인과 계층적인 상징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비일비재 하게 목격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입시와 취업 비리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마냥 이제는 3포 세대도 아닌 비자발적 N포 세대가 되어버린 청년들을 무기력 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천진난만한 소 눈망울을 한 채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물을 새도 없이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조교들을 보며 감히 웃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본 기사는 한국연극 3월호에 실린 비평문을 재수록한 글입니다. <오늘의서울연극>(TTIS)은 좋은 글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재수록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독자가 연극비평을 접해서 건강한 관극문화가 꽃피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