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정치의 절묘한 결합

<초선의원> 리뷰

배선애(연극평론가)

스포츠와 정치, 이 둘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대체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가 적극 이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5공화국이 각종 스포츠의 프로시대를 열어젖히면서 국민들을 우민화하고자 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거기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1980년대는 말 그대로 스포츠의 시대였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1987년 6·10항쟁으로 민주화를 실현한 시대이기도 하다. 스포츠의 시대와 민주화의 시대가 같은 궤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그것도 스포츠의 꽃인 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을 배경으로 스포츠와 정치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 관객을 만났다. <초선의원>(오세혁 작, 변영진 연출, 네버엔딩플레이/웃는고양이 제작, 대학로 TOM 2관, 2022년 6월 3일~7월 3일)이 바로 그 작품이다.


사진제공: 네버엔딩플레이

1988년은 올림픽이 개최된 해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5공화국 권력 비리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청문회가 생중계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온 국민의 관심이 올림픽(9월 17일~10월 2일)에서 청문회(11월 18일 첫 청문회)로, 그러니까 스포츠에서 정치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던 해였다. 1988년, 초선의원, 청문회 등의 키워드를 통해 자연스레 한 명의 실존인물이 떠오른다. 청문회에서 초선의원의 패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故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그렇다. <초선의원>은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 청문회의 스타로 떠오르면서 정치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정치신입의 의욕과 열정을 중심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지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역량을 뽐내고 있는, 연극계에서 바쁜 작가로 손꼽히는 오세혁 작가는 실은 마당극극단 걸판으로 활동을 했고, 그래서 <그와 그녀의 옷장>과 같은 노동극도 열심히 발표했다. 그러다보니 <초선의원>은 공교롭게도 오세혁 작가의 초기 모습을 보는 듯한 즐거움도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사건의 구성에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오세혁 작가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활동을 중심축으로 두면서 올림픽의 여러 종목들을 각 장면과 연결시킨 것이다. 가령, 노동자들과 연대투쟁 할 때는 권투, 전단을 뿌릴 땐 육상, 청문회 연설은 양궁과 결합하는 식이다. 전반적인 서사는 故 노무현 전대통령(극중 인물의 이름은 최수호)의 국회 입성 전후로 진행된다. 인권변호사로만 활동하기엔 제한이 있어서 노동자를 더 위할 방법으로 국회를 선택했고, 초선의원이 되어 부딪힌 정치 현실에 각성하고, 여러 패배 이후 대선에 도전하는 의지를 갖기까지를 다룬다. 이렇듯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정들을 그냥 펼쳐내면 故 노무현 전대통령을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전혀 변별되지 않는 작품이었겠지만, 거기에 올림픽의 각종 종목들과 함께 엮은 것은 서사의 밋밋함을 입체화시켜주는 훌륭한 장치로 작용했다. 달리고, 구르고, 뛰어넘고, 함께 겨루며 몸을 쓰고 있는 최수호를 보면서 초선의원의 신선함과 무모함, 패기를 시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제공: 네버엔딩플레이

이 작품의 연출은 극단 불의전차 변영진 연출이 맡았다. 오세혁과 변영진 두 사람은 뮤지컬 <아르토, 고흐>에서 작가와 연출로 이미 작업한 경험이 있다. 물론 그때는 변영진 연출이 대본을 쓰고 오세혁 작가가 연출을 했는데, 이번엔 역할이 바뀌어 오세혁 작, 변영진 연출이 되었다. 변영진 연출이 연출을 맡은 것은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변영진 연출이 직접 쓰고 연출했던 <펜스 너머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는 야구가 중심이었다. 여행자극장(초연 당시)의 좁은 무대가 넓은 야구장으로 보이게 공간을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야구와 인생을 결합한 통찰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야구의 생동감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다. 그러니 올림픽의 여러 종목을 선보여야 하는 이 작품에 변영진 연출은 찰떡인 셈이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무대 바닥에는 종합경기장 트랙이 깔려 있었고, 선수들이 입장하는 경기장의 출입문 여러 개가 무대 벽면에 설치되어 인물들의 등퇴장로와 무수한 공간으로 변용되었다. 의상 또한 올림픽선수단의 국가대표 단체복인 듯 하얀색 셔츠와 바지가 기본의상이었고 그 위에 점퍼와 재킷 등을 걸쳐 입으면서 금세 다른 인물로 변화했다. 경기장 무대와 선수들의 의상 덕분에 평상복을 입고 있는 최수호가 더 부각되었다. TOM 2관의 무대가 가로로 넓은 것을 활용해서 무대 양 끝을 다양하게 변화되는 공간으로 설정했고, 무대 중앙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각 장의 제목과 당시의 시대상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제공: 네버엔딩플레이

넓지 않은 무대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앙상블 덕분이었다. 갖가지 스포츠 종목을 연기해야 하며, 순식간에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인물로 변신해야 했다. 최수호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그를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변신은 더더욱 바빠졌는데, 그렇게 쉴틈 없이 움직이는데도 각각의 공간에서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연습했는지가 무대 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모든 배역이 더블캐스팅이어서 세세한 연기력을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데, 필자가 관람할 때 최수호는 성노진 배우가, 최수호의 보좌관인 이명제는 유희제 배우가 연기했다. 성노진 배우는 어딘가 평범하면서도 강단 있는 최수호를 잘 살려냈고, 그런 최수호 곁에서 함께하는 열정의 이명제도 유희제 배우가 잘 살려냈다.

최수호가 역동적인 초선의원이었던 만큼 무대 또한 역동적이었고,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 또한 에너지가 넘쳤으며, 최수호가 만들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인지를 배우와 다양한 무대활용으로 구현해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비록 실존인물이 모티프이긴 하지만 작가가 굳이 ‘최수호’라는 이름으로 꾸며낸 점을 끝까지 견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작품 마지막, 영상에서 들리는 故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르는 ‘상록수’, 청문회 연설 장면 등은 최수호라는 가공의 인물로 바라봤던 1988년과 초선의원이라는 상징성을 그대로 휘발시켜 버렸다. 관객들도 최수호가 현실의 누구인지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작품 마지막에 확인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다. 최수호로 마무리되지만 극장을 나서면서는 먼저 떠난 그 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작품의 의도에 더 맞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좀 더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사진제공: 네버엔딩플레이

작품 속 최수호는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의 뻔뻔함에 치를 떨며 “언젠가 역사가 당신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학살의 주범인 당신이 죽는 그 날까지! 반드시 살아서 당신의 죽음을 목격하고 말겠어!”라고 목이 터져라 반복적으로 외쳐댄다. 최수호가 다짐을 하듯 이 대사를 반복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던 것은 저 절실한 다짐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스포츠에 열광하던 시절, 재벌회장에게도, 권력자들에게도 한 치의 주저함이나 굽실거림 없이 질문을 쏟아 부었던 초선의원의 정의로운 그 눈빛과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헛헛했던 것은 아마도 그 그리움 탓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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