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보이토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외계 공작소, 동맹, 아레떼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에서 오페라를 빼놓을 수 없다.
오페라는 연극과 음악이 합쳐진 종합 예술이자 서양 음악사의 꽃인 장르다. 최초의 오페라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년)를 시작으로 비발디,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로시니, 베버,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많은 걸작 오페라를 남겼다.
‘음악이 붙은 작은 연극’ 정도로 출발했던 오페라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군중을 표현하기 위해 합창단이 동원되었고 이에 따라 자연히 오케스트라도 대편성으로 커지게 되었다. 보통 10명 내외의 배역이 있는 독창자(성악가)와 50~80명의 합창단 그리고 60~100명 정도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등장인물이 대사 대신 고난도의 노래(아리아)를 불러야 하므로 배역은 연극배우가 아닌 성악가가 맡아야 한다. 수백 년간 이어진 이런 형태로 자연스럽게 ‘문학성’보다는 ‘음악성’에 집중하게 되었고 오페라에서 ‘연극’은 ‘음악’에 완전히 가려지게 되었다.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의 첫 연재로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 1842~1918)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를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음악에 함몰돼버린 오페라에서 텍스트(희곡)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본 작가이자 작곡가인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에 관해 알아보자.
1842년 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태어나 밀라노 음악원에서 공부한 작곡가이자 시인이자 소설가, 음악 비평가이자 작곡가였다. 많은 직업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단어 중 가장 앞장서는 것은 리브레티스트(Librettist; 오페라 대본 작가)다. 그가 대본(libretto)을 쓴 오페라로 베르디의 ‘오텔로’, ‘팔스타프’, ‘시몬 보카네그라’,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가 있다. 비록 자신의 온전한 창작물은 아니지만, 대사에 음악을 얹어야 하고 동시에 전체 줄거리의 짜임새를 고려해야 하는 오페라의 특성상 대본의 중요성은 음악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도 ‘오텔로’ 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베르디의 오페라를 생각하지 이 둘의 가장 중요한 다리인 보이토의 리브레토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보이토도 늘 ‘베르디’라는 ‘대 작곡가’의 그늘에 가려진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보이토는 대본과 음악을 본인이 직접 썼던 바그너를 평생 존경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쓴 리브레토에 직접 음악을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음악과 문학을 하나로 합치는, 거대한 ‘유리알 유희’ 작업의 주제는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1868년. 작곡 보이토, 리브레토 보이토의 오페라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오페라의 제목은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였다. 왜 주인공이자 원작의 제목인 ‘파우스트’를 지우고, 늘 파우스트의 옆이나 뒤에 서 있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제목으로 내세웠을까? 질문의 답을 하기 전에 작품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1868년 3월 5일,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초연 직후 반응은 참담했다. 우선 보이토의 지휘 실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비평가들은 대본 작가가 바그너를 흉내내 엉성하게 작곡한 음악에 악평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성은 오페라가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프롤로그 – 총 4막 –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오페라는 5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에 보이토는 오페라를 반토막으로 잘라 이틀에 걸쳐 공연하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청중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초연의 실패 후 보이토는 대대적인 개작을 거쳐 1875년 10월 다시 무대에 올린다. 볼로냐에서 열린 두 번째 공연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보이토를 수식하는 단어는 ‘오페라 작곡가’가 아니라 여전히 ‘리브레티스트’였다.
안타깝게도,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는 현재에도 자주 상연되는 오페라는 아니다. 보이토가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고 작품이 과하게 길기 때문이다. 초연의 원작을 절반 정도로 줄인 1875년의 개작이 그나마 좀 음반화 되었다. 그중 유명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아리아 ‘Son lo spirito che nega(나는 부정하는 정령이다)’ 일명 ‘휘파람 아리아’를 들어보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자. 왜 보이토는 일생의 역작에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로 타이틀을 올렸을까? 문학과 연극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오페라는 대본과 음악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지는 예술이다. 하지만 모두가 작곡가와 귀를 울리는 소리에만 집중할 뿐, 대본 작가의 텍스트와 플롯에는 관심이 덜하다. 보이토는 균형을 잃은 두 기둥을 바로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의 리브레토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원작을 잘 살린 대본’으로 지금까지 칭송받는다. 실제로 보이토의 리브레토는 괴테의 원작을 이탈리아어로 번역만 했을 뿐, 비극 1부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괴테의 파우스트를 음악화할 때 빼버리고 시작하는 천상의 서곡까지 프롤로그에 담았고, 비극 2부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인 헬레나를 4막에 등장시킨다. 에필로그에서는 파우스트가 생을 마감하는 대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를 외치며 오페라의 막을 닫는다.
오페라가 대본과 음악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진 예술인 것처럼, 괴테의 파우스트도 늙은 학자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라는 두 기둥이 비극의 핵심이다. 하지만 청중의 모든 관심은 파우스트의 이야기와 운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마 등장인물 중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독자나 관객은 드물 것이다.
대본 작가 보이토는 오페라의 ‘대본’, 원작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늘 주인공인 ‘음악’과 ‘파우스트’에 가려 ‘덜 주목 받고’, ‘덜 갈채 받는’ 이인자에게 자신을 대입했을 것이다.
당시 대본 작가들은 힘이 없었다. 작곡가가 음악을 위해 수정을 요청하면 문장을 바꿔야 했고, 흥행이 지상 목표인 제작자에 의해 대본이 난도질당하기 십상이었다. 보이토는 음악과 흥행의 성화에 누더기가 된 ‘리브레토’에 연극 예술의 혼을 다시 불어넣어 기울어진 두 기둥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음악을 작곡하고, 제목을 ‘메피스토펠레’라고 붙였으리라.
연극계에서는 원작이 작가와 작곡가의 공동 작업이면, 둘의 이름을 병기(倂記)한다. 그래서 ‘서민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은 ‘몰리에르(Moliere)/륄리(J.B. Lully)’로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는 ‘브레히트(B. Brecht)/바일(K. Weill)’이라고 표기하는 게 상례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계는 오페라에서 대본 작가의 이름을 뚜렷하게 병기하지 않는다. 그나마 ‘공동 창작’의 개념이 차차 자리를 잡으면서 음반의 내지에는 반드시 대본 작가의 이름이 작곡가 이름 옆이나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모차르트의 명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의 대본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위 사진은 작곡가의 이름에 가려진 대본 작가들의 사진이다. 위대한 명작 탄생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이들 대본 작가의 이름과 그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문학가와 음악가가 협력하여 만들어 낸 오페라는 두 예술가의 공동 창작물로 보는 게 마땅하다. 그래서 작곡가와 대본 작가의 이름을 병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바람직한 표기법을 덧붙여 본다.
“피가로의 결혼” – 리브레토: 로렌조 다 폰테 /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돈 조반니” – 리브레토: 로렌조 다 폰테 /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 리브레토: 로렌조 다 폰테 /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마술 피리” – 리브레토: 에마누엘 쉬카네더 /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오텔로” –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브레토: 아리고 보이토 / 작곡: 쥬세페 베르디
“팔스타프” –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브레토: 아리고 보이토 / 작곡: 쥬세페 베르디
“펠레아스와 멜리쟝드” – 원작, 리브레토: 모리스 메테를링크 / 작곡: 클로드 드뷔시
“포기와 베스” – 원작: 두보스, 도로시 헤이워드, 리브레토: 두보스 헤이워드 / 작곡: 조지 거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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