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고래 <굴뚝을 기다리며>

글_황승경(연극평론가)

 

고공농성자들에게 투영해보는 우리 삶의 부조리한 방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해성이 2021년에 이어 올해에도 <굴뚝을 기다리며>를 5월 23일에서 6월 11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극의 무대는 굴뚝이다. 고공농성 중인 두 주인공이 굴뚝에서 굴뚝을 기다리는 설정은 살고 있으면서 삶을 기다리는 현실을 조준한다. 연출이자 작가인 이해성은 고도를 통해 ‘실존’을 물었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차용해, 가장 저항적인 행위로써 ‘기다림’을 선택한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실존적 이야기를 의도하려 했다.

이 작품의 구상은 2018년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인텍의 두 해고 노동자는 약속이행을 요구하며 홍성에 위치한 모기업인 스타플랙스의 서울사무소 근처의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으로 올라가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으로 기록된 농성을 벌였다.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활동가들은 서울사무소가 위치한 CBS건물 앞에서 단식자 텐트를 치고 15일간 연대단식을 시작했다. 이때 이해성 연출은 <굴뚝을 기다리며>를 구상했고 한다.

 

사진 제공: 극단 고래

 

굴뚝에 올라간 나나(홍철희)와 누누(오찬혁)는 아래 세상에서 올라올 ‘굴뚝’만을 굴뚝같이 기다린다. 굴뚝청소부(사현명), 로봇 미소(김재환), 이소(김예람)이 찾아오고 굴뚝을 기다라는 그들의 굳건한 믿음은 분열된다. 겨울의 스산한 밤에 나나만이 고공텐트의 불을 밝힌다.

기계적이고 비생명적인 두 주인공이 오히려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부자유성에 대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75미터 고공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 듯 하지만 이들에게 굴뚝이라는 공간은 밀실감옥이 아니다. 언제든 내려 갈 수 있음에도 이들은 불확실한 희망의 빛줄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희망은 놓지 않는 것은 절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얼핏설핏 우스갯소리는 더 이상 반지성적인 언어유희가 아닌 현학적 지성과 타성적 권위에 반박하는 자유와 권리를 심층적으로 습합하고 있다. 언뜻 무표정한 언어 이면에 투영된 날선 암시가 포착되기도 하지만 되풀이 되는 넌센스적 문답은 서사의 표면을 휘발시킨다.

부조리극 관객들은 매우 불편하다. 이 수용양상은 연출이나 배우들에게도 불편함을 선사할 것이다. 이러한 불편의 인상으로 <굴뚝을 기다리며>는 상념의 바닥에서 분출하는 미학적 환상과 몽환적 신기류로 미장센 폐허를 증험하게 한다.

 

사진 제공: 극단 고래

 

2020년대 한국의 연극언어가 아니라 1953년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사하게 설정된 연극적 구조를 고수하는 굴뚝에서 굴뚝을 기다린다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과연 관객이 ‘자신을 고립시키는 의지’를 ‘자신을 지키는 실존의 심연’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사회의 인간과 사회 그리고 실존에 관한 표면적 희극성과 존재적 비극성은 연목구어 대사로 모호하게 잘 버무려져 이해불능상태에 접어들어야 극적 맥락이 이해될 수 있다. 치밀하게 목표를 둔 계산된 부조리적 산출은 오히려 표상을 일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극 무대 위에서 분출되는 절박한 현실과 ‘비현실’적인 주체들이 이해되는 이유는 뒤집어 보면 현대인들의 습관화되고 자동화된 ‘현실’의 반영이다. 부조리극에서의 진실은 세상에 대한 외침이나 여흔의 정보 같은 외적인 상황이나 내적인 상태를 지칭해 제공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불합리’를 제공받을 때 비로소 관객은 의미를 목격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회적 정치적 알레고리가 관련되는 순간 부조리극 본연의 감각과 감정은 마비되고 만다.

기다림의 시간 방출과 불가해 마모라는 딜레마에서 연극적 메시지와 연극적 명상은 혼동된다. 물론 작품은 노동현실만을 고발하지 않지만 ‘굴뚝’이 주는 이미지가 과도해 기계화된 사회의 경고와 세대 간 격차는 선명하지 않고 본질인 부조리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조차 희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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