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김창화

보편적인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김창화 (상명대 연극학과 교수)

 

 

작/연출: 김용을
공연일시: 2013/10/11 ~ 2013/12/14
공연장소: 문화일보홀

 

2009년부터 5년째 계속된 공연이 있었다. 김용을 극단 글로브 극장 대표가 쓰고 연출한 “동치미”가 바로 그 작품이다. 2013년 12월 14일 서대문에 있는 문화일보 홀에서 이 공연을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보편적인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면서, 눈물짓게 만드는 상황과 설정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고, 거부반응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이 통하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진한 삶의 이야기가 결국 내면 깊숙하게 파고 들어와, 울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공연을 보면서 울어 본 것은 실로 20년 만이다. 유치진 작 “춘향전”을 보면서 춘향이 곤장을 맞으면서 외치는 그 억울한 하소연에 절절하게 눈물을 흘렸던 기억과 더불어, “동치미” 공연에서, 자본과 사회적 구조에 떼밀려,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두 노인의 작은 바램,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자식들만 잘되면 좋겠다는,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작은 바램이, 큰 울림으로 가슴을 두드려, 그만 울고 말았다.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왜 울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슬픈 현실을 보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런 ‘치기’어린 생각이 한국연극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각을 가리는 큰 장막이 된다. 나로서는 생소한 극단인 ‘글로브 극장’과 그동안 무대에서 보지 못했던, 박기선이라는 배우를 만난 큰 기쁨.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썩어도, 무대를 지키는, 무대를 만들어내는 소박한 열정은 식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한 셈이다.

 

동치미 사진

 

어느 집이나 문제와 근심, 걱정은 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치미”에 등장하는 아버지 김만복과 어머니 정이분이 노년에 겪게 되는 삶의 ‘황량함’은 21세기 한국의 보편적인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면서도, 그동안 대중매체나 연극적 일상에서 외면했던 이야기 들이다. 일상적인 그 풍경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았던 것은, 연출과 극작을 맡은 김용을 대표의 오랜 연극쟁이 기질도 한 몫 했겠으나, 김만복 역을 맡은 배우 박기선과 정이분 역을 맡은 김계선이 보여준 절묘한 연기의 앙상블이 큰 몫을 다 했다. 평생을 어렵게 살면서도, 자식들을 잘 길러온 두 노인이, 이제 재미나게 살아볼 생각에 들떠 있던 어느 날, 어머니 정이분여사에게 찾아온 병으로, 한꺼번에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다룬 “동치미”는 생명연장을 스스로 차단하는 아버지 김만복의 결의와 아내의 죽음이후, 3일 만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서민적 용기가, 복지사회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의 빈 외침을 먼 메아리로 들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동치미”는 제도와 자본이 닿을 수 없는 현실적인 ‘불가항력’의 상황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온 몸으로 달려들어 스스로를 무너뜨린, 김만복의 죽음이,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만처럼, 한국적 결말, 한국인의 가치관이 담긴, 한국적 죽음을 통한, ‘서민비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극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부모님 사후에 남겨진 세 남매의‘회한’을 통해 한국적 삶과 죽음의 의식과 정서가 잘 부각된 공연이었다.

우린 지금까지 지나치게 서구적인 ‘연극 문법’에 길들여졌었다. 그러나 이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보다 더 보편적인 것, 혹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어렸을 적,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우선 처방책으로 마시게 하던 동치미 국물, 어머니 정이분 여사가 그렇게 잘 담그던 동치미. 겉으로 보면, 아무런 색도 없는 멀건 국이지만, 그 안에 담긴 오묘한 맛과 효과를 연극 “동치미”는 담고 있었다. 박기선, 김계선과 함께 했던, 윤주희, 김현아,안재완의 연기도 박기선과 김계선의 호흡을 잘 받아 주었고, 전체 앙상블이 신선한 흐름과 리듬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공연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대학로 관객’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반 한국인, 중, 장년의 한국인들과 그 가족들이 객석을 꽉 매웠다는 사실이다. 가장 보편적인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한국의 관객들이 공감하고, 함께 울었던 공연 “동치미”가 2014년 다시 새로운 관객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