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순천향대 명예교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문화향수실태조사를 보면 예술 관람의 장애 요인은 시간부족과 경제적 부담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연극은 이에 더해 어렵고 재미없다는 선입견도 크게 작용합니다.
사실 관람 조건으로 보자면 연극은 걸림돌이 많습니다. 우선 일정한 장소로 가야 하는데, 대부분 그 장소는 집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식물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일단 들어가면 대부분 중간에 나올 수도 없습니다. 아마 극장 출입구에서 음식물을 빼앗기거나 공연 시작 전 “공연 중 이동을 금한다.”는 딱딱한 명령조의 안내 멘트를 들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좌석은 좁고 딱딱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등받이가 없는 경우도 많고 통로는 아예 없거나 너무 좁아서 급히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엄청난 눈총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끝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반면에 영화는 아예 좌석 옆에 팝콘과 음료수를 놓을 수 있게 배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연극은 현장 예술이고 그만큼 예민하므로 이동이나 취식을 금한다고 이해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일 뿐 소비자들에게는 불편한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하려면 연극 관람이 제공하는 다른 매력 때문에 그것이 상쇄되거나 오히려 마치 불편한 전통 생활을 체험할 때 그렇듯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비싼 연극
요즘 연극 한 편 보려면 얼마쯤 합니까? 보통 3만원에서 5-6만원은 할 걸요. 유명 뮤지컬은 좌석에 따라 15만원, 20만원도 하고요. 왜 이렇게 비쌀까요? 물론 제작비를 생각하면 그 정도 받아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거야 자기네 사정이죠. 관객들이야 돈을 낸 만큼 만족을 느껴야 손해가 아닌 거죠. 영화는 얼마쯤 하죠? 요즘 1만 5천원 정도 하나요? 그런데 넷플릭스도 있고 DVD도 있고, 훨씬 싸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죠. 연극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가격 차이가 좀 심한 것 아닌가요? 게다가 재미없고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연극을 보고 나면 스트레스만 더 생기죠. 도중에 나오기도 힘들고요. 이러니 연극 보는 건 미친 짓이거나 아니면 돈이 많아 주체를 못 하는 사람들의 사치죠.
하지만 사실 비쌀 만한 이유는 있습니다. 물론 그럴 만한 조건을 갖추기는 어렵지만요. 상품의 가격과 만족도라는 게 있죠. 예를 들어 아주 싸구려 양복이 5만원이고 그 만족도가 60 정도라면 10만원 짜리면 70이고 50만원이면 90쯤 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뛴다는 겁니다. 95면 2백만원, 97이면 5백만원, 98이면 2천만원, 99면 5천만원, 100이면 1억원, 뭐 이런 식이죠. 여기서 60은 양복을 입을 수 있는 만족도의 하한선이고 100은 상한선이겠죠. 그렇습니다. 아주 높은 수준에서는 만족도와 가격이 정비례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보통 연극 작업을 수공업적이라 합니다. 아주 정교하게 높은 완성도를 달성하기에 수작업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연극 작품이 다 완성도가 높을 수는 없습니다. 완성도가 낮으면 당연히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마치 수제품 양복도 솜씨 없는 양복쟁이가 만들면 단돈 만원에도 안 팔리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현장성의 예술로서 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연극이라고 무조건 높은 가격을 책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비싸기만 하면서 재미없는 연극, 또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연극은 맘껏 욕하십시오, 만들기 어려운 건 자기들 사정이죠. 돈 내고 보는데 그만한 만족감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 어려운 연극
어려운 연극이 많습니다. 순수예술이니까 당연한가요? 고급예술이니까 당연하고요? 천만에요. 아닙니다. 연극은 쉽고 재미있는 겁니다. 운동경기를 보려면 아는 게 많아야죠. 규칙을 알아야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나, 체조나, 규칙 모르고 보면 재미가 없을 걸요. 하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과 문화를 웬만큼만 알면 다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춘향전>을 보십니다. 물론 대학 안 나오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보십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보시느냐 하면, 예를 들어 춘향이가 변학도한테 끌려가 매를 맞는다. 조금 있으면 이몽룡이 나타나서 춘향이를 구해 준다는 거 다들 아십니다. 그런데도 매가 한 대 떨어질 때마다 애처로워 돌아가시려고 합니다. 변학도 욕도 하고요. “아이고, 어쩔꺼나. 아이고, 불쌍해라. 저 천벌을 받을 놈.” 이게 연극입니다. 또 영국의 셰익스피어. 다들 아시죠. 그 사람 작품도 그렇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내용을 보면 정말 유치합니다. 사랑의 묘약을 잘못 발라서 엉뚱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일이 엉키고 마지막에 다 해결되고 뭐 그런 얘기죠. 10분이면 스토리 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거든요. 어른들이, 그것도 학력이 대단히 높은 유식한 사람들이 앉아서 그걸 보면서 요정이 약을 잘못 바르는 걸 보고는 “아이쿠, 저거 어쩌나?” 하면서 정말로 걱정들을 합니다. 정말로 유치한 얘긴데도 완전히 빠져서 보는 거죠. 이게 연극입니다. 아주 쉽지만,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 그렇게 끌어들이는 힘이 바로 재미라는 거죠. 경우에 따라선 감동이 되기도 하고요. 어쨌든 재미없는 연극, 감동이 없는 연극은 보지 마십시오. 그런 게 없으니까 엉뚱한 장난으로 마치 뭐가 있는 듯이 꾸며대는 연극은 더 보지 마시고요.
- 재미없는 연극
연극은 현장예술이고 따라서 객석의 조그만 움직임도 무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으레 공연 시작 전 이동을 삼가달라는 명령조의 멘트가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재미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연극은 재미없어도 참고 보는 것을 마치 미덕인양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대단히 잘못된 태도임이 분명합니다.
연극의 주된 효능은 무엇일까요? 즉 왜 연극을 보는 것일까요? 오락적 기능과 정화작용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둘은 비슷한 겁니다. 일요일에 뭐 하십니까? 등산이요? 등산 왜 갑니까? 일상을 떠나는 겁니다. 일상을 떠났다 돌아오면 뭐가 개운하죠? 정화가 된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일할 힘을 얻는 거죠. 보통 운동이나 오락들이 다 그런 겁니다. 일상을 탈피하게 해 주는 거요. 연극도 마찬가집니다. 일상과 다른 허구의 세계로 떠났다 오는 거죠. 거기서 정화작용이 이루어지고요. 그런데 재미가 없으면 일상탈피가 안 돼요. 재미가 있어야 끌려 들어갈 거 아닙니까. 그 재미에 감동까지 더해지면 대개들 좋은 연극이라 합니다. 사실 연극이란 게 세상을 확 뒤집어 놓는 혁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그것도 과욕이고요, 그저 잠시 재미와 감동에 빠져 세상에 대해 조금은 여유 있게 되는 걸로 충분히 목적 달성한 게 아닐까요?
여기서 문제는 아무 관심도 끌지 못 하는 무미건조한 연극입니다. 그런 연극은 아무리 쉽고 이해가 잘 돼도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작품은 아마 시간 낭비 돈 낭비란 말밖에는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연극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지스러운 일입니다. 취미로 하는 경우라면 그래도 용서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관람료를 받는 공연이라면 절대 용서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무지스럽지는 않아서 재미없는 것을 강요할 수 없음은 알지만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 하는 경우입니다. 즉 재미와 감동을 제공할 능력이 안 되니까 외설 등의 엉뚱한 장난으로 마치 뭐가 있는 듯이 꾸며대는 영악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외설이냐 예술이냐” 하는 식의 논란은 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관객의 존재입니다. 관객이 작품의 문맥 안에서 꼭 필요한 예술적 장치로 받아들이면 그땐 예술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원작에서 의도가 예술적이어도 외설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관객을 만나 비로소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 연극의 운명임을 확인해 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