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호 편집인의 글)
연극과 자동차
연극과 자동차?
느닷없는 둘의 연결은 의아할 것이다.
답은 이렇다. 자동차가 실체이듯 연극도 실체이다. 자동차가 시동을 걸어 움직여야 비로소 가치가 있듯 연극도 무대로부터 출발한 신호가 객석에 이르러 뭔가 결과를 이끌어내야 그 존재 의미가 입증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가?
아니다. 자동차의 가치는 단번에 확인 가능하지만 연극의 그것은 실로 모호한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진정 연극이 실체라면 그 가치의 확인 또한 단번에 가능하며 또한 그 판정에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하나의 작품을 놓고도 가치가 있고 없고의 판정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원인은 이렇다.
연극의 본질은 인간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를 재미와 감동이라는 말로 대체한다. 여기서 재미란 웃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관심이다. 즉, 작품을 보며 내용에 공감하며 웃거나 울거나 분노하거나 동정하거나 모두 관심이 끌리는 것이고 그래서 감정이 움직인 것이다.
연극이 이러한 본질에 부합하는지 살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마치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이상 없이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연극이 재미와 감동을 제공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다.
사실 이론이란 이렇게 쉽고 당연한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그 현실을 잘 정리한 것이 이론이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좀더 근본적인 이론들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체계적으로 쌓아올려 결국 최고의 형이상학이 성립한다.
그런데 쉽고 간단한 것은 무시되고 어렵고 복잡한 것은 존중되는 묘한 풍토 때문에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을 망각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이론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끊기고 만 것이다.
연극 이론도, 연극 평론도, 모두 이 본질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가치 판정을 출발점으로. 그 가치 형성의 이유와 그 발현의 과정을 세세히 분석하고, 그래서 연극을 만드는 이들과 보는 이들이 더욱 잘 만들고 더욱 잘 보도록 돕는 것이 이론이요, 평론일 것이다.
연극 이론과 연극 평론의 대반성이 필요하다.
서류로만 안전하고 형식으로만 가치를 인정받던 거대한 여객선이 현실의 바다를 만나 순식간에 침몰해 버리는 그 참담한 사건을 보며 우리 연극은 과연 어떤 상태인지 깊이 고뇌해야 한다.
이제 자동차처럼 연극의 가치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는 이나 보고 평가하는 이나 모두 본질로 돌아가 냉정해져야 한다.
만사에 허수가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반응하는 솔직담백한 연극 동네가 되기를 희망한다.
2014년 6월 2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