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채 까담: 예술탄압과 표현의 자유
일 시 : 2015년 12월 14일 오후 7시
장 소 : 노을 연습실
참석자: 채승훈(연출가), 오세곤(연출가), 이신영(연출가, 사회), 이채원(기록)
이 : 안녕하세요. <오채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한 달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건너뛰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예술탄압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주제로서 다시 이어나가도록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지난 기간 동안 전체적인 흐름은 그 뒤에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즉, 문화부 또는 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정부기관들에서 의사표명은 하나도 없었고, 그러는 동안 팝업씨어터 문제라든가 국립국악원 등 다른 예술장르에서의 유사한 사태를 목격하며, 지금 표현의 자유를 다양한 방법으로 침해받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과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이고 연극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대응을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 : 이런 일들이 시간이 지나가다보면요. 문제가 생기고 지적하고, 해명도 하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 반박도 하고, 이런 것들이 서로 파트너쉽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반박하고 그것을 재반박하고 그러면서 서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죠, 누구나 잘못을 할 수는 있는 거거든요. 그 잘못한 것 가지고 밀도를 높여서 토론을 했을 때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결정된단 말이에요. 잘못했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라는 것이죠, 또 사회를 같이 끌고 가는 것도 파트너거든요. 그런 것이 좋은 파트너쉽인데 문제는 누가 잘못했다고 해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정말 맥 빠지는 거거든요. 그럼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나중에는 한쪽에선 계속 반박을 하고 한쪽은 반응이 없다. 그럼 익숙한 하나의 패턴이 되어 버린단 말이죠. 나중에는 도대체 왜 지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지적을 하고 있는지 불분명해지는 식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것이 가장 안 좋은 부분이라고 봐요. 어떤 지적을 받고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고 재반박하고 해명하고, 이런 식이 필요한데, 지금 검열이라는 단어를 놓고는 유감스럽게도 안 좋은 쪽으로 간 것 같아요. 연극계뿐만 아니라 길게 보면 영화 쪽부터 많은 곳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천안함에 관련된 영화도 있었고, 그 이후 미술 쪽에서도 있었고, 그 이후에 가장 뜨겁게 달궈진 것이 연극계입니다. 연극 쪽에서도 정부에 비판적인 작품이라든가 작가라든가, 세월호를 소재로 했다든가 어쨌든 그것에 대해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지원 배제라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술에서도 아시다시피 외국인을 현대예술관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외국에서 검열 관련 물의를 일으킨 인사를 임명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물론 외국인을 임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이 시점에 불러다 임명을 해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예요. 계속해서 이의제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행동의 흐름은 단 한치도 바뀌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이죠. 검열에 대해서도 우리는 검열을 한 적이 없다, 지극히 규칙에 맞는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게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주고받고 계속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끝내버리니까, 아까 얘기했듯이 정말 파트너로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이런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연극계 분위기도 맥이 빠져버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면서 거기에 좌편향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으면서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즉, 본질은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고 이뤄져야하는데 이것은 사라지고 다른 이야기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합니다.
채 :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난 다음에 아직까지 아무런 해명, 사과는 고사하고, 토론 자리마저도 한번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예술인들, 연극인들은 그냥 대답 없는 메아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탄압에 대한 반대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데, 파트너십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극인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어요. 방금 지나오다 보니 비가 오는데도 젊은 후배들이 손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는 것을 봤는데, 그 모습이 참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왜 현 정부 입장에서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마 그들도 문화예술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헌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예술인들이나 예술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과의 사이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소위 권력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이 판단하기를 지금 예술계에는 소위 좌파가 많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의 판을 일정 부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먼저 좌파 우파라고 하는 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의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연극계에서 이런 사태에 대한 성명들을 곳곳에서 냈는데, 이런 표현이 맞는 것인지조차 모르겠지만, 자신이 좌인지 우인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그들 관점에서 좌파적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해왔던 분들이나 또는 보수적 관점을 가지고 작품을 했던 분들이나 또는 예술지향적 태도로 작품을 해왔던 분들이 총 망라해서 서명에 참가했다고 보이거든요. 그리고 소위 좌파라는 것에 대해서 간혹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만, 도대체 좌파가 무엇인가, 연극계에서 작품들을 만들면서 권력의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면, 또는 사회 곳곳의 부정하고 왜곡된 측면들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이 예술의 근간 중의 하나 아니겠습니까? 현대 예술의 개념이 과거처럼 부르주아나 귀족들을 위한 예술에서 보편적 시민과 대중을 위한 예술로, 소외된 자를 위한 예술로 바뀐 지 백년도 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대예술이 지닌 본질적인 성격을 소위 좌우라는 개념으로 이분화해서 판단하는 것은 이해하기 곤란한 것이죠. 지금 그들은 우리를 파트너로 인정할 수가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들의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거든요. 그러므로 예술계는 좌파가 많기에 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술인들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사회가 조금 더 불합리하지 않게, 불평등하지 않게, 부조리하지 않게 흘러가도록 일조하는 사람들이지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님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러니 깨끗하게 지난 일들에 대해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좌우라고 하는 이분법의 도마 위에 예술계를 올려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술계를 스포츠처럼 그냥 그 안에서 세상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장으로 봐주기를 바랍니다.
오 : 그런 고민이 생겨요. 아까 파트너라는 단어를 썼는데, 사실은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면 예술인들이 너무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을 하면, 파트너라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정이 안 되고 적대시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파트너쉽을 발휘해서 계속 대화를 하고 방법을 찾아나가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계속 반응이 없고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이것을 검열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예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계속해서 대화를 해 주세요” 하고 기다려야하는 것이냐 피켓을 계속 들고 서 있어야하는 것이냐 이런 고민이 생겨요. 좌편향이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좌우라고 나누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그 말을 많이 해서 그 말조차도 더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 좌편향이 아니라 지금으로 봐서 심증이 굳은 것은 현 정권에 대해서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 이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끄는 입장에서는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그것이 불편하다고 한다면 굉장히 잘못된 건데, 이런 지적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했잖아요. 제일 고민은 그거란 말이에요. 저분들은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 행동방침이 딱 정해져있는 것 같고, 이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우리는 너무 어지러워요. 난감한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무리 악을 써도 안 됐다는 말이죠. 아무 반응이 없다는 말이에요. 무슨 방법이 있는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채 :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자신의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반대 운동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일제 강점 시대를 거쳐서 해방되고 정부가 수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사실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된 날들이 훨씬 더 길었고, 반대로 표현의 자유를 조금씩이라도 얻어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도 삼보 전진 이보 후퇴, 이런 양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아마도 이러한 난관들을 거쳐 가는 것이 길게 보면 진전을 이뤄가는 유구한 흐름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방법도 괜찮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든 깨어있는 의식이겠지요.
오 : 솔직히 좀 걱정이 되는 게,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우리 문화를 탄압하고 말살하려고 했을 때는 버텼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놋그릇 얘기가 있는데, 놋그릇을 공출하니까 집집마다 제기를 땅에 묻기도 하고 그래서 녹도 슬고 그랬다고 하거든요. 어쨌든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 버텼단 말이죠. 그런 저항의 일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놋그릇이 언제 다 없어지냐면 해방 후 스테인레스 혁명이 일어나 자진해서 바꾸면서부터입니다. 엿장수가 바꿔주고 그랬거든요. 무섭다고 표현을 했는데, 아까 삼보전진 이보후퇴 좋고 어느 정도 인정을 해요. 삼보전진을 했어요. 검열제도가 없어지고, 영화등급은 다른 개념이지만 그래도 가끔 활용을 한다고 합디다. 어쨌든 일단은 브레히트 공연을 못 하다가 할 수 있게 됐고, 대본을 읽어보고 빨간 줄로 긋는 검열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이보후퇴의 시점으로 본다고 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돈이거든요. 사회의 모든 문제를 따져보면 돈이거든요. 세월호도 그렇고요. 돈이 무엇이든 지배하는 상황이 된다는 이 우울한 이야기 사이에서 지원이라는 것이 돈이거든요. 돈으로 모든 것이 환산되고 있을 때 결국 지원을 가지고 검열을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무서운 것이 앞서 놋그릇을 자진해서 갖다버리게 되는 것처럼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 봅시다. 우리가 이렇게 결의는 할 수 있어요. 지원 받지 말고 연극하자, 저예산 연극하자, 지금 채선생과 저만 봐도 우리 현대극을 저예산으로 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렇게 한다고 치더라도, 한쪽에서는 지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죠. 지원이 되고, 좋은 극장들 다 대관이 되고, 거기에 언론까지 결합이 되면서 거기에서 하는 작품들을 굉장히 우수작 명작 이슈거리로 만들어 주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다보면, 결국은 자기검열을 통해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원을 거부하고 저예산 연극으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이런 선명성도 돈의 힘 앞에 무기력해지지 않을까요? 항상 그렇잖아요.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자꾸 좌편향 이야기를 하면서, 예술이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상식과 비상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냥 좌편향으로 몰아가잖아요. 연극계에서도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끼잖아요. 그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굉장히 크고, 그렇게 연극계 전체가 좌편향이 되어서 연극계가 굉장한 많은 문제가 발생을 했다. 지원도 못 받게 되고, 이런 연극계가 더 쪼그라들게 되는 더 망치게 되는 일이다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들도 상당히 있다는 말이죠.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이게 진짜 옛날 검열이라고 하는 부분이라면 타도의 목표가 분명한데 그런 것도 아니고, 여기서는 검열이 아니라고 하고, 원칙에 의해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앞으로 한쪽에서는 저예산 연극을 하고, 한쪽에서는 비까번쩍한 연극을 하고, 거기에 매스컴까지 가주고. 지금 연극계에서는 누구나 다 조선일보에서 기사를 써주길 바라고 있죠. 그건 오래된 이야기잖아요. 조선일보에서 써 주냐 안 써 주냐에 따라서 관객 수가 달라진다잖아요.
채 : 저는 바라지 않아요.
오 : 아니요, 많은 사람들이 원해요. 조선일보가 연극에 대해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봐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요. 아까 얘기했듯이 그런 언론들마저도 큰 것은 크게 다뤄주고 작은 것은 안 다뤄주거나 작게 다뤄주는 부분이 반복이 되었을 때, 전 그런 부분이 가장 두려운 상황이라고 우려가 됩니다.
채 : 동감합니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지원이 사실상 없었죠. 공식적으로 극단지원 이런 것은 거의 없었고요, 대한민국연극제(지금의 서울연극제)에 작품이 뽑히게 되면 지원금이 약간 나오게 되는 정도였죠. 지원이라는 것이 한편으론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지원을 받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자기검열을 하는 경우가 그렇죠. 과거에 대한민국연극제 작품들을 젊은 연극인들은 간혹 새마을연극제, 어용연극제 등으로 희화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했던 서구의 부조리극과 교묘히 접합시켜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빙빙 돌려서 표현하는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지요. 실제로 정권이나 사회를 드러나게 비판한 작품들은 아무런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예리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그것을 잘 피한 작가들이 계속 기회를 갖게 되고 유명해지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겁니다. 능력 있는 작가들이 기회조차 잡지 못할 수도 있었던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연극계 특히 작가군은 많이 왜곡 되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지원을 해주면서 지원을 미끼로 하여 예술인들의 창조적 의식을 보이지 않게 탄압하는 것은 예술을 왜곡시키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는 예술가들만 양산시킵니다. 예술발전을 후퇴시키는 가장 저열한 처사입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본질적 사고를 지원주체 쪽에서 먼저 해야 합니다. 예술인들이 가난하다보니까 지원 받기를 절실하게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을 미끼로 예술인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그들을 심하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화가 나고 저항하는 겁니다. 그건 예술인만이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결코 그 심정을 모르죠. 그러기에 예술인들의 외침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지원금에 대한 정신적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공동으로 말입니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연극단체들이나 작품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적극적인 관심과 주목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지원금을 못 받으면 대체로 작품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극장, 무대, 기타 등등에 돈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 작품들을 볼 때에는 부족한 무대를 상상으로 채워가면서 공연을 보는 겁니다. 완성도가 떨어져도 개념을 우선 평가해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쩌면 연극인들이 지원금에 그렇게 목을 매거나 예술적 자부심, 자존심까지도 다 걸어버리는 그러한 생각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 : 네 그렇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이 지켜지지 않는지 안타깝습니다. 도리어 지원금이 생긴 다음부터 예술인들의 영혼이 잠식당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더구나 지금 같이 이러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니까 그러한 생각은 더 들고요. 이런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 문화예술위원회 센터장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그것과 더불어서 문화예술위원회라고 하는 것의 위상과 독립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또,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연극계 내부에서도 다른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오 : 제가 알기로는 센터장이 대기발령이라든가 어쨌든 물러나는 것 같아요. 거기 본부장은 나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번 팝업씨어터 사태로 세 사람이 거론 되었었어요. 센터장과 본부장과 담당 부장이요. 세 사람 다 인사이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사이동이 어떤 차원에서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실질적인 검열을 하는 것에 대한 것인지, 일이 시끄럽게 된 것에 대한 문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사조치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한팩(한국공연예술센터)의 위상이 바뀌는 것 같아요. 원래 한팩은 독립된 재단이었잖아요. 그게 얼마 전에 문화예술위원회 소속으로 바뀌었는데 그러면서 어정쩡한 상태였었죠, 위원장도 있고 이사장도 있는 상태로요. 이사장 하시던 분이 예술인 복지재단 대표이사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사장직은 없어졌던 것 같고, 그리고 나서 유인화씨가 센터장으로 임명이 되는 이런 식의 조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센터장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팩이 옛날처럼 되는 거죠. 문화예술위원회의 하나의 부서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러면서 한팩이 하고 있었던 행사 중에서 공연예술제도 주관처가 바뀐다더군요. 한팩의 위상이 좀 낮아지면서 서울공연예술제도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그러한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팩의 극장은 연극인들로서는 접하기 힘든 좋은 극장이잖아요. 그것은 전형적인 간접지원의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생각을 해요. 간접지원이라는 것은 심의를 해서 누구는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연극계에 보편적으로 조건만 맞으면 선착순 혹은 추첨을 해서 쓸 수 있는, 소위 공평하게 쓸 수 있는 그런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뽑고 안 뽑고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거죠. 결국 지원에 의한 검열의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거든요. 한마디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간접지원 형태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말 나온 김에 전 지원정책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간접지원 즉, 전체적으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그러한 지원 형태를 늘려야 합니다, 우리 공연 환경을 전반적으로 낫게 해줄 수 있는 ‘소액다건’ 지원이요. 꼭 연극제 초청받고 그런 작품이 아닌 아주 일반적인 제작형태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적으로 다 성공할 수는 없겠죠. 실패를 많이 할 거예요. 실패의 투자가 없는 예술지원은 있을 수 없어요. 확률이 낮은 것이 예술인데 실패한 것은 지원하지 않고 성공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는 것은 그것은 예술을 굉장히 왜곡 시키는 거예요. 우리는 다 성공을 꿈꾸고 작업을 하지만 매번 실패합니다. 일생에 한 번 정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거예요. 하지만 실패할 최소한의 숨 쉴 공간도 여력도 주지 않잖아요. 그럼 못하는 거죠.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는 거예요. 그런 지원 정책에 대해 크게 재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간접지원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합니다. 이렇게 자꾸 뽑고 선정하고가 아니라, 정 뽑아야한다면 추첨해서 뽑고, 선착순으로 하고 예산소진 될 때까지 말이죠, 이렇게 하는 간접지원을 굉장히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에 대해서는 정말 뚜렷한 예술적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진짜 그런 예술가들은 자기를 막 내세우면서 “나 지원 안 해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지 않아요. 자기 스스로의 엄격기준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자랑하지 않으면 지원해 주지 않잖아요. 서류를 깨끗하게 써서 내가 이렇게 잘 났는데 주장하고 왜 이렇게 지원을 안 해주냐고 화를 내는 시스템이잖아요. 그거 말고, 진짜 숨어서 몰래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쫓아가서 진짜 이런 지원을 받지 않으면 이 훌륭한 작품이 망가질 수 있으니까 받으라고 설득해서 지원해 줄 수 있는 “찾아가서 지원”을 해주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경쟁을 시키는데 어떤 예술을 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열 개일 때, A라는 사람은 그 10개중에 8개를 가지고 있고, B라는 사람은 9개를 가지고 있을 때 9개를 가진 사람을 지원해주는 이런 시스템인데, 그거 아니거든요. 예술 지원은 1가지만 갖고 있는데 그 1가지가 굉장히 가능성이 클 때 나머지 9개를 지원해주는 그런 지원이 되어야하거든요. 무조건 서로 경쟁을 시키는 식의 그런 식은 아닙니다. 맞춤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액다건은 무조건 지원, 선택과 집중은 찾아서, 맞춰서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예술 지원의 형태를 바꾸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 충분하지 않은 지원을 가지고는 간접지원을 줄이면 안 된다는 거죠. 그거 아시죠, 극장 몇 개를 더 한팩에서 임대를 했잖아요. 그거 어떻게 대관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극장이 10개가 되면 일주일씩 하면 510주 잖아요. 510주를 3주씩 주면 170개 극단에 줄 수 있어요. 그럼 서울에서 극단들이 조건이 좋은 극장에서 한번은 할 수 있잖아요. 왜 그렇게 안하느냔 말이죠. 꼭 항상 심사를 하잖아요. 심사를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도 모르겠으니까 다들 의심들을 하는 거죠. 검열을 하지 않는다지만 검열한다고 의심을 하잖아요. 왜 그렇게 의심을 받으면서 하냐는 거죠. 차라리 추첨을 하지. 일 년에 한 번은 그런 데서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주면 좋잖아요. 소극장은 4주 주고 중극장은 2주 주겠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잖아요.
채 : 착잡하네요.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의 모습이요. 담당했던 그 직원이 이 와중에 그만두게 됐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것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독립적 위상을 갖추지 못하고 예술인들을 위해 자부심으로 봉사하는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6~7년 전쯤 극장들을 묶어서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독립시키고 재단법인으로 운영했었지요. 그 때 1년 예산으로 5~60억 이상을 쏟아 부으면서 운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문화예술위원회 소속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크게 일을 벌였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와 버린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네요. 또 그런 과정 속에서 일반 연극인들한테 그 극장들은 이제 너무나도 먼 극장이 되어 버렸죠. 저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과거에는 거기서 공연도 많이 하고 그랬죠. 또 실제로 오 선생과 저는 대학로예술극장을 설립하는데 일부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생각은 연극인들한테 문턱 낮은 극장들을 만들어 보자 이런 기대로 한 건데요. 이제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본부는 현재 전남 나주에 있습니다. 기금은 거의 다 고갈되었습니다. 과거 한 때는 직원들의 퇴직금을 너무 많이 준다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기금이 고갈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문화예술위원회는 정부에 더욱 의존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종합해 볼 때 문화예술위원회는 새롭게 자리 잡기 위해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개혁의 시발점은 어디까지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나 예술인들이나 공통으로 가져야 되는 생각이고 또 문화부에 있는 분들도 같이 생각해야한다고 보는 거죠. 그것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인들의 편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합니다.
이 : 문화예술위원회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여러 방안을 강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요새 보는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인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와중에 있어서 연극계에 또 다른 위기일수도 있는 시점에서 연극계 내부에서 조금 더 효율적으로 임할 수 있는 단합의 힘, 이런 것을 창출 하는 데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채선생님, 어떻게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채 : 제가 계속 이어가 보면요. 검열제도가 있었을 때 이런 일이 있는 것보다, 지금 검열제도가 없어졌다고 보는데도 그에 준하는 이런 행위들이 벌어진다고 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이런 일들에 대해서 대체로 연극인들이 모이면 거의 열중에 여덟, 아홉은 우려를 표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예술표현에 대한 억압은 정치판에서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적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아니고 가장 헌법적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하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계 내부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꼭 동일한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분히 권력비호적이고 이런 탄압 행위를 정당화한다든가 아님 사안을 약간 호도시킨다고 할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사석에서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공공연하게 의사표현하기를 권합니다. 그것 또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니까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자신들의 속내를 공적으로 꺼내놓고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또 이런 생각을 해봐요.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적어도 현재 권력과 가까운 예술인들이 있다면 사안의 본질을 깊이 헤아려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요새 보면 예술인들을 양분화하고 그들의 본의를 왜곡시키고, 또 그들을 공격적이거나 현 권력에 위협적인 인물들로 묘사해서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혹시 어디 가서 어떤 얘기들을 할 때에 말도 안 되는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운운 한다든가, 저 사람들은 좌파요, 우리 편이오 저 편이오 갈라서 표현 한다거나, 도리어 그들의 편에 서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술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증거 중에 하나가, 연말에 우리 연극계에 선거들이 있는데, 지금 한창 들리는 이야기들이 소위 현재 연극판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후보를 대리인으로 낸다는 등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아다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생각을 바꿔주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이런 일이 있을 때,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대화의 장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을 그들이 바로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선거와 관련해서 덧붙이고 싶은 것 하나는 지원을 미끼로 선거운동을 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후보는 친 여당이기에 지원금을 더 가져올 수 있다든가 혹은 반대로 어느 후보는 야당 성향이기에 손해를 볼 것이라는 등의 피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선거운동이나 투표에 임하는 자세는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원금을 미끼로 예술탄압을 받아도 좋다고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당사자들도 임원으로 당선되어서는 연극인 전체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함부로 심사를 맡아서도 안 되고 심사에 영향력을 끼쳐서도 안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임원이 되어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지원심사에서 밀어주고 상을 타게 해주고 하는 일들이 지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말입니다. 그런 것이 통하는 연극계의 풍토가 결국 연극인들의 화합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 외부로부터 예술탄압을 가져온 것이죠. 예술탄압이라는 것이 연극계 외부로부터 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부의 문제점들이 연극인들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결국 외부의 억압들을 용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연극인 의식의 문제는 많은 부분 과거로부터 옵니다. 일제에 순응했고 그것이 해방 후에 이어져 권력에 순종하거나 협조하게 만들고, 그런 역사가 이어지고 연극계 주류를 형성해오면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어떤 때는 안타깝게도 반대편에 서기도 하고 사안의 본질을 호도시키기도 하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 옳고 그름이 아주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과거 <매춘>이라는 공연의 연출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지요. 당시에는 사전검열이 법으로 존재했고, 그것을 담당했던 공연윤리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품의 내용에 정치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연을 금지시켰지만 우리는 공연을 미친 척 감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공연을 외설로 매도하고 정치적 내용은 애써 감추면서 관제데모 등등을 하면서 압박하였습니다. 1주일 공연하고 강제로 극장 문을 걸어 잠그고 공연을 못 하게 하였습니다. 작은 극장이었지만 선배연극인, 평론가들이 와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본질을 비껴간 얘기만 하였습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 심지어는 그렇기에 사전검열이 당연시된다는 얘기, 예술탄압 운운 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치적인 작품 내용에 대해서는 한분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 검열도 당연시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나요? 단지 본질을 호도시키기 위한 미봉의 글쓰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후 사전검열제도가 없어진 다음에도 유사한 경우의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비슷하게 처신하였습니다. 그런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후배예술인들의 자부심을 죽이고 화합을 저해하는 처사일 뿐이죠.
오 : 뭐 이럴 때 일수록 본질을 잘 지키는 것은 기본으로 합니다. 연극은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럼 과연, 사회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하는가. 좋아지자고 이야기해야하는 것이죠. 그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을 불편해 한다고 하면 그건 기본적으로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 부분은 양보할 수 없다. 연극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연극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며 더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왜곡이 되거나 이런 것을 허용하면 안 됩니다. 더 똑똑해져야 하고, 지금 무슨 문제가 있는지 더 확실하게 인식해야 하고, 자기검열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거기에 빠진다면 연극사에 오점으로 남을 겁니다. 그렇게 오점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떤 경우에도 의지가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원 기준을 바꿔서 그러한 작품에도 지원이 되도록 힘을 다해야합니다. 또한 문예진흥봅은 다른 법이 생길 때마다 내용이 빠지고 바뀌어서 지금 대단히 어지러운 법이 되었어요. 그 법을 정리할 때가 되었고, 문화예술위원회가 그 법의 핵심인데, 예술계의 의견에 따라서 그 의견이 넓게 반영될 수 있도록 명문화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위원을 선임하는 것도 지금 위원추천위원회가 하는데 그 추천위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습니다. 일단은 이것도 손 보고, 전체적으로 민간 주도라는 것이 보다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법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문예진흥법을 폐지하든지 개정하든지 확실하게 나가야합니다. 예술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예요. 그것을 다시 법에 넣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세부적인 사항들은 법에 담을 수 있겠죠. 또 지원의 기조도 바뀌고, 민간 주도가 되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죠? 문예진흥기금 고갈이라고. 그것도 웃기는 얘기예요. 10년 전에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문예진흥기금으로는 어림도 없고, 국가 예산으로 안정되게 편성해야 하는데, 당장에 바꿀 수 없으니까 일단은 문예진흥기금을 털어서 쓰고, 그러면서 국고 편성을 하든지 특별세를 만들든지 하자고 했던 건데, 10년 동안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이제 와서 큰일났다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제대로 예술 지원을 할 수 있게 국고 편성을 해야 합니다. 국가 경영에서 예술을 빼버릴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물론 그럼 국가가 유지될 수 없겠죠. 결국 나라를 망치는 거고요.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 오늘 장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결론 없는, 왜냐하면 연극계에 일어난 표현의 자유 이런 것들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달에도 계속해서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간에 문화예술위원회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예술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큰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더 다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달에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