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아트센터의 뮤지컬과 오페라 연극 그리고 연극 총평/ 박정기

동숭아트센터의 뮤지컬과 오페라 연극 그리고 연극 총평

 

1, HJ 컬쳐의 한승원 김종석 프로듀서, 김유현 극본, 이진욱 김보람 작곡, 이진욱 음악감독,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HJ 컬쳐의 한승원 김종석 프로듀서, 김유현 극본, 이진욱 김보람 작곡, 이진욱 음악감독,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를 관람했다.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Sergei Vasil’evich Rachmaninov, 1873~1943)는 러시아 벨리키노보고로드(Velikiy Novgorod)에서 출생,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CaliforniaBeverly Hills)에서에서 사망했다.

 

라흐마니노프(Vasil’evich Rachmaninov)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에는 크게 종교와 우울증, 그리고 러시아가 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가 어렸을 때 성당에서 들었던 종소리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고, 그의 작품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의 도입부 특유의 피아노 타 건과 합창 교향곡 “종” 전주곡 3-2 ‘종’ 등에서 교회의 종소리와 정교회의 엄숙함이 짙게 풍긴다. 기악곡에 풍기는 종교적 색채 외에도 종교 관련한 작품도 많이 작곡했다. 24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압도적인 비판을 받으며 그 충격으로 후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또 같은 시기에 사촌과 결혼해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을 받아 우울증이 심해진다. 우울증은 교향곡 1번의 혹평으로 3년 간 슬럼프인 것도 있지만, 지주였으나 방탕한 삶을 살아 가정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와 평소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슬럼프시기에 사촌이랑 결혼한 것에 대한 정교회의 비난 등 라흐마니노프의 작곡 환경에서 심적으로 억누르는 요소가 된다. 또한 조국이 소비에트 혁명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그는 죽을 때 까지 조국을 그리워한다. 조국을 떠난 후에도 음악적으로도 ‘러시아인다웠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망명 후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4번과 그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에서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드러내었듯이.

 

2011년에 호주의 라임라이트 매거진이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 100인에게 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뽑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를 했다. 2위부터 5위까지는 호로비츠(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1903~1989),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 1887~1982), 에밀 길렐스(Emil Gilels, 1916~1985)의 순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늘 위로가 되어준 안식처, 차이콥스키(Tchaikovsky, 1840~1893)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진다. 게다가 스승이었던 즈베레프(N.S.Zverev, 1832-1893)까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아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낸다. 그 무렵 라흐마니노프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 안나 로디젠스키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친구의 아내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그녀와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함께 한 사이였지만 그녀와 더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의 배려에서이다. 바그너가 제자의 아내를 빼앗고, 드뷔시가 후원자의 아내와 도피를 한 것에 비하면 지고지순의 사랑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큰 키(190cm)에 스케일도 컸지만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듯이 매우 섬세하고 로맨틱한 사람이다. 안나 로디젠스키를 위해 많은 곡이 작곡되었고, 공식적인 헌정 작품은 ‘caprice bohemien op.12’와 ‘교향곡1번 op.13’이다. 하지만 안나에게 바친 이 작품의 초연에서 평자들의 악평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에 빠지고 이후 3년간이나 작품을 쓰지 못한다. 깊은 사랑만큼 충격도 컸던 것일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영화 <브리지존스의 다이어리>의 OST로, 데이비드 린((Sir David Lean, 1908~1991) 감독의 <밀회> 주제곡,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라스트 씬을 장식한 곡이다. 영화 <혈의누>에서는 주인공이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에 삽입되어 극적 긴장감을 주었던 곡이기도 하다. 호주 영화 샤인 (Shine, 1996)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주제곡으로 연주되고, 특히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 1926~ 1962)가 환풍구에 치마가 날린 명장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녀도 조명이 꺼지면 라흐마니노프와 같이 우울증에 괴로워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믿고 의지한 차이콥스키도 예민한 감수성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슈만은 우울증과 정신착란으로 수많은 자살 시도를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치료를 결심했고 장기간의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여 치료를 도와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헌정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이에 힘이 되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해준다. “당신 안에 위대성이 잠들고 있소, 그 위대성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주인공인 그가 음악활동을 3, 4년간 중단하고 우울증에 빠져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던 시기에 그에게 다가가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신적 치료를 해 마침내 다시 작곡을 하도록 만든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와의 이야기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건반악기와 현악기의 연주석이 마련되고, 무대전체가 주택의 거실이다. 객석을 향해 비스듬한 무대바닥과 상수와 하수 쪽 공간을 각기 작곡가 라흐마니노프(achmaninov)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방으로 설정을 하고, 상수 쪽에는 건반악기와 탁자 그리고 의자가 놓이고 술병과 술잔 등의 소품이 비치되고, 하수 쪽에는 책장과 출입문, 안락의자, 탁자가 놓이고, 출입문에는 메모를 한 용지를 잔뜩 붙여놓았다. 벽과 천정에는 악보용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이채를 띤다. 배경은 실내장면에서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게 해놓고, 대단원에서는 하늘 색 조명으로 일망무제로 탁 트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연출된다. 무대 중앙에 적갈색의 외투형태의 맨틀피스를 옷걸이에 걸어놓았다가 작곡을 다시 하게 된 라흐마니노프가 착용을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배경 가까이 연주석에서 시종일관 출연자 대신 건반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탁월한 기량이 극적분위기 상승은 물론 뮤지컬을 고수준 고품격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박유덕이 라흐마니노프로, 김경수가 니콜라이 달로 출연해 호연과 열창으로 갈채를 받는다. 안재영이 라흐마니노프, 정동화가 니콜라이 달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프로듀서 한승원 김종석, 무대디자인 김대한, 소품디자인 김정란, 음향디자인 김주한, 조명디자인 이주원, 의상디자인 도연, 분장디자인 김숙희, 무대감독 김은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HJ 컬쳐의 김유현 극본, 이진욱 김보람 작곡, 이진욱 음악감독,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를 남녀노소 누구나 보아도 좋을 걸작 뮤지컬로 만들어 냈다.

7월 21일

 

2, 크리에이티브 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주세페 베르디 작곡 이주아 재창작 연출의 오페라 연극 맥베스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에서 크리에이티브 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주세페 베르디(GiuseppeVerdi) 작곡 이주아 재창작 연출의 오페라 연극 <맥베스>를 관람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는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이었다. 베개 맡에 늘 그의 희곡을 두고 틈나는 대로 읽었던 그는 1847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맥베스>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베르디는 이 중에서 맥베스, 맥베스 부인, 마녀들. 이렇게 세 가지 캐릭터에만 집중했다. 극의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극적인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에서 물론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인 맥베스이다. 하지만 맥베스 부인 역시 극적으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오페라의 전반부에서는 오히려 남편을 능가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탐욕의 덫에 걸려 결국 파멸로 치닫고 마는 비극적 인간상의 전형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성숙된 악의 비전”을 다루는 <맥베스>는 밤의 어두움과 살인의 핏빛이 주조를 이루는 가장 어두운 작품이다. 동시에 그의 작품 중 가장 길이가 짧은 이 작품은 플롯의 간결함, 극적 행동의 압축성과 빠른 속도감, 음향과 색채의 화려한 상징성, 마녀와 유령과 환영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등장, 주인공과 레이디 맥베스가 보여주는 욕망을 추구하는 강력한 힘, 난무하는 폭력, 그리고 영혼의 파멸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강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오페라 <맥베스>는 베르디 오페라 10번째 작품으로, 초기 오페라에 속한다. 중후반부의 걸작들과 비교할 때, 이 시기 베르디의 작품들은 범작 혹은 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맥베드>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뛰어난 아이아와 중창이 넘쳐나며, 형식적인 면에서 벨칸토 오페라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첫 번째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다.

 

베르디는 이들의 캐릭터를 무거운 음악과 가벼운 음악으로 대비시켰다. 음악으로 원작이 지닌 극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 베르디는 ‘음악의 셰익스피어’로 불린다.

 

무대는 흑색배경에 흑색의상 거기에 투명한 비닐커튼과 그 뒤에 놓인 의자, 은박 금박을 입힌 무대 덮을 크기의 비닐 천, 그리고 배경 가까이 무대 왼편에 오른 쪽을 향해 놓인 건반악기와 그위에 놓인 가발들….무대장치가 오페라 연극 <맥베스>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낸 조형예술작품이다.

 

도입에 검은 색 천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은 남녀 등장인물-마녀들의 등장, 맥베스와 뱅코우가 예언을 듣는 모습은 일반 연극과 다름없지만, 맥베스나 뱅코우, 레이디 맥베스, 맥더프, 그리고 마녀 들이 출연하면서 부르는 아리아는 성악가가 등장해 부르며 연기하는 2인 1역으로 구성된 오페라 연극이라, 관객의 몰입도와 흥미가 배가된다.

 

오페라연극 ‘맥베스’에서는 서곡, Che faceste? Dite su! – 무얼 했나? 말해봐!(합창), Due vaticini compiuti or sono – 두 가지 예언이 맞다니(멕베스, 뱅코우), Vieni! t’affretta! – 어서 서둘러 오세요(레이디 멕베스 아리아) Mi si affaccia un pugnal? – 눈앞에 놓인 칼(맥베스), Fatal mia donna! un murmure – 끔찍한 당신, 혹시 무슨소리를(멕베스, 레이디 멕베스), Studia il passo, o mio figlio – 아들아, 조심해서 가거라, Come dal ciel precipita – 어두운 그림자 하늘로 드리우고(뱅쿼 아리아), Si colmi il calice – 잔을 가득 채워요 (축배의노래, 합창), Tre volte mia gola – 세 번 울 때에(합창), Oh! mio terror! -불길한 징조구나!(맥베스), O figli, o figli miei- Ah! la paterna mano – 오 나의 아들아 – 사랑하는 그대들이여(맥더프 아리아), Perfidi! Pieta, rispetto, amore(맥베스 아리아) – 반역자! 자비와 명예 그리고 사랑 등의 아리아를 성악가들이 열창한다.

 

 

이주아 연출가는 상명대 연극학부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는 크리에이티브 필 대표이자 연극 연출가다.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오페라연극-시가 살아있는 공연'(수원문화재단, 크리에이티브필), ‘박웅의 수상한 수업’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크리에이티브필), ‘대한제국외국공사 접견례'(덕수궁 정관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크리에이티브필), ‘오페라연극 맥베스'(의정부음악극축제 음악극어워드 본선, 크리에이티브필) 등이 있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성균관 대학교 새천년 홀) ‘오페라 연극 겨울 나그네’ 등을 연출한 미모의 여성 연출가다.

 

김재만, 윤국로, 서지유, 강서환 등 연극배우와 권한준, 이성충, 이경희, 이보영, 곽지웅, 구원모, 전명철 등의 성악가가 출연해 각기 탁월한 기량의 호연과 열창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건반악기 연주자 이윤주의 연주는 극적 분위기 조성은 물론 명 반주로 성악가들의 열창에 날개를 다는 느낌이다.

 

프로듀서 노주현, 음악감독 권한준, 제작피디 윤국로, 미술감독 이정명, 미술감독보 김태훈, 조명감독 곽두성, 세트제작 김민섭, 인쇄디자인 석정현, 사진 박종명, 분장디자인 임영희, 분장감독 김하진, 영상제작 구연모, 조명오퍼 김민재, 영상오퍼 김서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크리에이티브 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주세페 베르디(GiuseppeVerdi) 작곡 이주아 재창작 연출의 오페라 연극 <맥베스>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7월 22일

 

3, 극단 청맥의 마이클 프레인 작 양영일 역 윤우영 연출의 코펜하겐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극단 청맥의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 1933~) 원작, 양영일 번역, 윤우영 연출의 <코펜하겐(Copenhagen)>을 관람했다.

 

마이클 프레인은1933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킹스톤 그래머 스쿨을 다녔고, 캠브리지 엠마뉴엘 컬리지를 1957년에 졸업하였다. The Guardian 신문과 The Observer 신문에 칼럼을 썼으며, 연극과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Noise Off>, <Chopenhagen>, Democracy> 가 있으며, 소설로는 <Towards the End of the Morning>, <Headlong>, <Spies>가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유머러스한 언어를 많이 스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단편 작품들로 <The Two of Us and Alarms and Excursions>, 철학적인 코미디극<Alphabetical Order>, <Benefactors>, <Clouds>, <Make and Break and Here>, <Donkeys Years>, <Balmoral>, <Noises Off>, <Hot Seat> 등을 섰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로는 <Headlong>, <The Tin Men, 서메셋마우함어워드 수상>, <The Russian Interpreter>, <Towards the End of the Morning>, <Sweet Dreams>, A Landing on the Sun>, A very Private Life>, <Now You Know>, <Spies, 위트 프리즈상 수상-2002> 등의 작품이 있다. 존 클리스 주연의 영화 <Clockwise>의 대본을 썼고, 엘리너 브론 주연의 TV 시리즈 <Making Faces>의 대본도 썼다. 프라이언은 <The Seagull>, <Uncle Vanya>, <Three Sisters>, <The Cherry Orchard>의 연극 작품 작업중이며, <Wild Honey>과 <The Sneeze>도 작업중이다.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20년부터 4년동안 뮌헨-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교와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으며, 1923년에 뮌헨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하고 1924년에 괴팅겐에서 교수 자격증을 획득했다.20세기 초 양자역학에 큰 공을 세웠으며, 특히 중요한 업적으로는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또, 양자역학의 기술 방법인 ‘행렬역학’을 고안해 냈는데 이 업적으로 겨우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나중에 폴 디랙에 의해 행렬역학은 슈뢰딩거의 파동역학과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이 밝혀진다. 똑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셈. 간단히 비유하자면 똑같은 과일을 놓고 한국에서는 사과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애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그 외에도 핵이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된다는 이론도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했고, 다체문제나 강자성 연구 등을 발표했다.

조머펠트(Arnold Johannes Wilhelm Sommerfeld, 1868-1951)는 하이젠베르크의 학부 시절 지도교수이기도 했는데, 그는 하이젠베르크의 재능을 일찍 눈치 채고 신입생 시절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시켰으며, 보어나 아인슈타인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조머펠트에게 물리학에 대한 희망을 배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조머펠트의 도움으로 보어의 세미나에 참여한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보어는 여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보어는 세미나가 끝난 후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하이젠베르크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했고, 나중에 자기와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입학한 지 2년이 채 못 되는 대학생이었는데,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대학자 보어의 눈에 든 것이다. 한편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은 그 후 몇 년 뒤에 이루어졌는데 하이젠베르크는 이때의 토론에서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 토론 내용은 하이젠베르크의 저서 ‘부분과 전체’에 자세히 나온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피아노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었다고 하며 어려서부터 상당한 수준의 철학 교육을 받았다. 이 때문인지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때때로 하이젠베르크를 물리학자이자 철학자로 소개하는 인명사전도 있을 정도. ‘물리학과 철학’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으며, 자서전격인 ‘부분과 전체’에서는 양자역학에서 제기되는 온갖 철학적,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주제가 다루어진다. 그의 손자인 베냐민 하이젠베르크는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종전 뒤 나치 협조 관련에선 무죄로 처리되어 1946년부터 1970년까지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Planck-Gesellschaft)에서 소장으로 일했으며 늘그막은 평온했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는 덴마크 출신의 물리학자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된다.수소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면서 원자의 구조에 대한 가설(보어 모델)을 내놓아 192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양자론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내놓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아들 오게 보어도 197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평생 보어 연구소에서 소장 자리를 맡았다.그가 원자의 구조 외에 중요한 일을 한 것이 있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모든 국가에게 개방정책 및 공동 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원자력의 폐쇄적 이용에 따른 핵무기 무한 경쟁시대를 우려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정치인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의 예견대로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는 유대계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게 점령당한 덴마크에서 곧 수용소로 잡혀갈 입장이었다. 가까스로 스웨덴으로 빠져나간 다음 영국으로 도망쳤다.

1941년 9월 경,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만난 사건은 과학사가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만남에서 오간 대화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핵무기의 개발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했고, 보어는 결백을 증명하려고 했다, 독일의 핵무기 개발능력이 없으니 연합국의 개발도 취소해 달라는 등의 다양한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 <코펜하겐>은 하이젠베르크와 보어 교수의 만남을 극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어두컴컴한 무대, 흑색배경과 의자 세 개가 전부이고, 영상투사로 극적 효과를 발휘한다. 조명 변화와 부분 조명, 대단원에서 2차 대전 종식 일본 원폭투하 장면은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관람한 연극 <코펜하겐> 공연 후기를 소개한다.

캐나다 토론토에 들렀다가 연극 ‘코펜하겐(Copenhagen)’을 보았다. 영국의 작가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의 작품인 코펜하겐은 1998년 런던에서 초연한 이래 유럽의 각국에서 공연됐으며, 2000년에는 뉴욕에서 대 호평을 받고 브로드웨이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양자 물리학의 ‘메카’였다. 1920년대에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천재적인 젊은이들은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양자 물리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만들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이었다. 시간이 흘러 41년이 되면 하이젠베르크는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핵분열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책임자가 된 반면, 보어는 점령국의 반(半)유대인으로 힘들게 살고 있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코펜하겐으로 옛 스승이자 친구인 보어를 찾아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눈 대화는 보어를 무섭게 격앙시켰다. 연극 코펜하겐은 보어의 부인 마그레테의 독백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41년 9월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찾아 코펜하겐에 왔는가?” 이 질문은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반복된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옛 스승인 보어에게 “과학자가 핵분열의 결과에 대해 연구를 계속할 도덕적 권리가 있는가”를 물었을 뿐인데, 이를 오해한 보어가 벌컥 화를 내고 대화를 중단했다고 술회했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의문은 남는다. 하이젠베르크가 이런 얘기를 던진 의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하이젠베르크가 미국과학자들과 교류가 있었던 보어로부터 미국의 원자탄 기밀을 캐내려 한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는 해석도 있으며, 정반대로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의 원자탄 개발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연합군에 넌지시 알려주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설득해 독일과 미국 모두의 원자탄 계획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41~44년에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점령지역을 여덟 차례나 방문, 독일이 승리해야 하는 필연성을 선전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주목해 41년 코펜하겐 방문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극 코펜하겐은 이 중 어느 하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연극의 묘미는 “왜 41년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방문했는가?”라는 문제를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하이젠베르크의 동기와 행동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발견한 원자 세계에서의 불확실성과 인간 삶에서의 불확실성의 기묘한 대비는 연극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 프레인은 “삶은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기묘하다”고 말하는데, 41년 9월의 코펜하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동기의 다층성.미확정성.비예측성이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코펜하겐은 단순한 ‘과학 연극’은 아니다. 과학자. 과학이론. 과학사의 사건이 연극의 소재로 쓰이지만, 연극의 핵심적인 모티브는 사람의 행동이 유발하는 수많은 해석, 이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가능성, 이러한 미래의 가능성이 결국 하나의 현재와 과거로 귀결되는 인간사, 그리고 그렇게 닫혀버린 과거를 다시 열 때 갑자기 부닥치는 해석의 유연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연쇄반응, 상보성 이론, 불확정성 이론은 물론 독일 원자탄 개발에 대한 약간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어야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작가의 역량도 관객의 감상의 깊이도 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잡종적’인 소양에 달려 있는 것이다. (2004년 2월 19일)

 

극단 청맥에서는 2008년, 2009년, 2010년에 연극 <코펜하겐> 공연으로 호평을 받고 각종 상을 수상했다.

 

남명렬이 보어, 서상원이 하이젠베르크, 이영숙이 보어 부인 마그리트로 출연해 탁월한 기량과 성격창출로 호연을 펼친다. 독일어로는 하이젠베르크로 발음한다.

기술감독 김진홍, 무대디자인 최영로, 조명디자인 하종기, 영상디자인 김장연, 의상디자인 최영로, 음악 서상완, 분장 최정아 조미영, 무대제작 이영상(스테이지2040), 조연출 이지은, 조명보 장재익 신유진, 일렉트리션 김보미 이지은, 음향보 김성길, 영상보 김민조, 기획 최예지, 진행 백유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노력과 기량이 일치해, 극단 청맥의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 1933~) 원작, 양영일 번역, 윤우영 연출의 <코펜하겐(Copenhagen)>을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월 23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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