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호 편집인의 글)
작고 바르고 강밀한 분야별 예술위원회를 제안하며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원의 후신이다. 70년대 초 문예진흥법 제정과 함께 설립된 문화예술진흥원을 2000년대 초 문예진흥법을 개정하여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것인데 여기에는 여러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민간 전문가들이 예술의 진흥을 주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임제 원장이 아닌 민간에서 추천받은 위원들과 그들의 호선으로 뽑힌 위원장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허점은 있었다. 위원을 추천받기 위해 구성하는 위원 추천위원회 위원들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진정으로 개정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위원 추천위원회의 위원 역시 민간 주도로 선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로 가면 그렇게 되기 어렵다. 누군가 실무적으로 그 일을 하여야 하는데 그런 권한과 의무를 과연 누가 누구에게 부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정부가 나서서 그 일을 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정말 순수하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작은 디테일로 전체를 좌우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위원장 호선 제도마저 슬며시 사라지면서 문화예술위원회는 실제로 전신인 문예진흥원과 하나 다를 바가 없게 되어 버렸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것이 옳은 진단이다. 왜냐하면 바꾸지 않았더라면 숫제 기대도 없었을 것을,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앞으로 제대로 된 예술 지원이 실현될 것처럼 떠들어대고는 그에 대한 실천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2003년과 2004년 예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문예진흥법 개정 운동은 이렇게 철저히 실패로 끝난 셈이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실패 내용이 있다. 바로 예산에 관한 사항이다. 과거 문예진흥원은 영화 입장료 등에서 공제하는 문예진흥기금으로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주된 자원이었던 영화 입장료를 활용할 수 없게 되고 또 금리가 내려가면서 기금 운영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진정한 예술 지원을 위해서는 한층 안정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향후 충분한 예산을 국고로 확보하기로 하고 우선 비축된 문예진흥기금을 헐어서 쓰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현재 벌어진 문예진흥기금 고갈 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예술계의 제안을 받아들여 문예진흥기금을 헐어 쓴 것이다. 그러나 그와 병행해야 할 또 하나의 실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시로 문예진흥기금을 활용하되 빠른 시일 내에 국고 편성으로 전환해야 하건만 그 약속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무슨 이유에선지 예술 지원을 심하게 왜곡시켜 놓고는 기금 고갈이니 예산 부족이니 하면서 엉터리 핑계를 대는 현재와 같은 문화예술위원회가 생겨난 것이다.
앞서 디테일이 전체를 좌우한다고 했다. 이제 초점을 디테일에 맞추어야 한다. 1990년대 말부터 연극계에서는 공연예술진흥위원회 내지는 연극진흥위원회 설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학계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위원회 설립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연극계가 그에 합류하면서 2003년과 2004년의 문예진흥법 개정 운동에 함께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의 결과는 완전한 실패로 드러났다. 현재 문화예술위원회는 인적 구성이나 사업 실행이나 모두 철저히 관 주도로 보아야 한다. 더욱이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없어서 항상 정부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발의한 민간 주도의 예술지원 정책은 이렇게 예술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며 무산되고 말았다.
사실 실패의 가장 큰 폐해는 무기력증이다. 어느새 예술계는 조용해졌다. 떠들어봐야 세상은 알아주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는다고 자포자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알아주고 반응해줄 때만 움직인다면 그건 예술인답지 않다. 부단히 세상의 문제를 찾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주장하기로 한다. 모든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커다란 조직 말고 작은 조직으로 시작해 볼 것을 제안한다. 디테일에서 실패했으니 디테일한 방식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1990년대 말 연극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연극계는 연극위원회, 무용계는 무용위원회, 미술계는 미술위원회, 음악계는 음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현재의 문화예술위원회는 일종의 협의체로 가는 것이 옳겠다.
각 위원회 구성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리 시끄럽고 복잡해도 현장에서 결정이 나도록 맡겨야 한다. 시끄럽고 복잡한 걸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싫다고 원칙을 정해주는 방식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각 분야에서 어떻게 진행되건 어떻게 결정되건 불법과 범죄가 아니라면 절대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결정된 이들이 나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산을 필두로 필요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예술계가 조용하면 안 된다. 분야별 예술위원회를 구성하느라 시끄러워야 하고, 구성된 뒤에는 실행을 하느라 늘 시끌벅적해야 마땅하다. 잘 했으면 칭찬의 소리로, 못 했으면 비난의 소리로, 대부분은 그것들이 섞여서 늘 시끄러워야 한다.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그런 가운데 뭔가 흐름이 생기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 예술이 활력을 찾게 되는 것이고, 그런 예술의 활력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실패를 느끼는 순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의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간 느꼈던 모욕감을 벗어던지고 불쾌감을 지워버리고 무력감을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설 것을 제안한다. 예술이 예술다워지기 위해서, 예술인이 예술인다워지기 위해서, 성공을 위한 디테일 마련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2016년 9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가만히 보니 편집인 오세곤교수는 박근혜대통령을 코스프레(?)하고 있는 듯보인다. 분명 레임덕이 왔으면 나라와 서울연극의 장래를 위해 그만 편집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 아닌가?
잡지가 온통 박정기선생의 글로 도배되어 있으면 이제는 그만 ttis와 서울연극협회를 위해서도 그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게 도리 아닌가. 마치 박대통령처럼 오기(?)를 부리듯 행동하는 것은 절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송협회장도 간곡히 부탁을 해 편집인을 교체하든가, 아니면 이제 ttis의 미래를 위해 그만 접는 게 도리 아닐까? 동료 직업인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선거때 신세진 게 많아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인가? 이 정도면 박정기선생이 편집인을 맡는 게 순서인 것 같아 한마디 하는 것이다.
부디 협회와 편집장은 연극판의 장래를 걱정해 주기를 간곡히 간청드리는 바입니다.
선생님께서 연극계의 문제와 현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써오신 글은 독자가 꽤나 많았습니다. 그 열정적인 작업에 대한 반향은 의외로 크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속으로 박수를 치거나 동의(혹은 반대)를 했습니다. 언젠가 선생님의 고언들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고 싶습니다. 힘들고 반응이 없더라도 선생님을 응원하는 다수의 독자들을 위해 다시 펜을 들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나마 선생님의 글조차 없으니 적막강산의 고요에 더욱 심란해집니다. 선생님의 고견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백승무 드림
우상전 선배의 글이 요즘 안보이던데 서울지회와 무슨 갈등이 있어 안실어 주는건가요?
송 지회장 출마때의 초심을 생각하고 끼리끼리 한다는 말들이 있던데 아니길 바라며
잘 이끄러가기를 바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