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희곡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인 황진이를 만나본 작품

연극 <황진이>

 

글_정윤희(공연평론가)

원작   구상
각색·연출   윤기훈
제작   이화원
단체   경계없는예술센터
장소   영등포아트홀 스페이스T
일시   2019년 11월 1일 19시 30분, 11월 2일 20시, 11월 8일 19시 30분
관극 일시   2019년 11월 8일 19:30

 

 

시와 희곡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황진이

작품의 원작자인 구상 시인은 1994년 이 작품을 완성했다. 본래 시인은 시와 산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었다. 시와 함께 많은 수의 수필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의 시 자체가 산문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의 사용을 시의 최고 가치라 여기는 이들은 산문을 닮은 구상의 시를 공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구상은 그러한 외부의 목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추구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시인이 희곡을 발표한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핵 치료를 위해 일본에서 체류하던 시절 희곡 작법을 배웠을 정도로 그는 희곡에도 큰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적인 이미지와 대상을 그림으로써 작품이 현실성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인은 아예 시와 희곡을 결합시킨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섯 수의 시조 작품과 몇 가지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황진이는 이렇게 시인의 손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황진이의 시조와 극중 인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섞인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2019년 경계없는예술센터는 원작을 다듬어 작품을 무대화했다. 현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각색 작업은 불가피했다. 제작자인 이화원 교수는 이 작업이 ‘시인이 정제된 시어로 무한의 예술을 추구했던 궤도와 같이 조심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가슴에 시를 향한 열정을 품고 살아갔던 인물로 재탄생된 황진이

황진이는 현대에서 소설, 영화, 드라마, 공연 작품으로 수없이 재창조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대부 중심의 시대에 살면서 남다른 재능과 성정을 펼치며 살았던 이 인물의 ‘현대성’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때문이었다. 신분제의 굴레를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산 여인, 뭇 남성들을 매혹시킬 정도로 빼어난 미모와 재능을 지녔지만 마냥 도도한 여인, 비록 기생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의리를 지키는 여인은 이들 여타의 작품들은 물론 이번 연극 <황진이>에도 담고 있는 황진이의 면모이다.

 

 

하지만 구상은 황진이가 처한 배경과 사건보다는 황진이의 시심(詩心)에 더 주목한다. 작품의 첫 장면에서도 이를 알 수 있는데, 등장인물인 시인이(구상 시인 본인이다) 황진이의 시를 밤낮으로 읊고 황진이에 관한 글을 쓰다가 황진이의 혼령을 만나게 된 것이다.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한 황진이는 ‘그렇게 밤낮으로 내 시를 읊어대시니 선한 혼령인 내가 모른 체할 수가 있어야지요’라고 시인에게 화답한다. 시공을 초월한 시의 언어가 두 인물의 만남을 중재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 황진이는 자신을 아껴주는 반려자를 만나 정착할 기회가 찾아왔어도 이를 거절한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 즉 ‘시를 향한 열정’이 황진이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어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언어, 그리고 영원성

황진이는 자신을 소재로 희곡을 쓰려는 시인에게 물었다.

“시인께서는 왜 하필 나를 희곡이라는 이상한 형식의 글로 불러내려 하셨나요?”

작품은 필시 시와 희곡이라는 장르의 융합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음의 답은 간명하다. 시와 극중 인물의 대사를 오고 가는 언어는 시인 황진이를 담아내기에 가장 좋은 질그릇이기 때문이었다. 구상 시인의 작품은 장르의 경계가 모호할지언정 모호한 메시지를 담지 않았다. 시와 대화가 어우러진 언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480년 전에 살았던 황진이와 관객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가 되었다. 영원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던 시인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썼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경계없는예술센터는 시공을 초월한 언어와 아름다운 시가 무대 위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담백하게 연출을 구사하였다. 무대 위의 공간 구성과 배우들의 움직임을 간소화하고 배우로 하여금 시조와 옛말의 억양을 구수하게 구사하도록 했다. 반면 ‘생에 대한 욕망과 갈증’으로 몸부림치는 황진이라는 캐릭터는 무대 위에서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인물로 조명되고 있었다.

 

 

수백 년 전 살다간 황진이라는 인물을 우리는 어차피 간접적으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시대를 초월한 교감이란 게 정말 가능한지도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가 그러한 목적에 가닿기에 최적의 언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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