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처럼 톡 쏘고 무심하게 돌아서는
배우 강애심
글_선연 김수미(연극평론가)
**릴레이톡톡은 오랫동안 대학로 무대에 섰던 배우들을 찾아갑니다.
긴 시간동안 무대를 지켜왔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좋은 배우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들이 만드는 연극은 어떤 모습일까요. 릴레이톡톡은 배우들이 지목하는 배우들로 이어나갑니다.
작은 기쁨에 대해
강애심은 행신동에서 꽤 오래 살았다. 정릉 단칸방에서 살다가 임대주택으로 들어가 26년을 살았으니 마을이 변해가는 과정을 여러 해 지켜본 셈이다. 최근에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재밌는 일을 발견했다. 오래된 물건이나 쓰지 않은 물건을 싼값에 거래하는 동네 중고거래 앱을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모르던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은 돈을 받기도 뭣한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막걸리 하나랑 교환해요’라고 써놨죠. 그랬더니 어떤 분이 막걸리 두 병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너무 재밌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냉장고에 있는 감자나 채소 한두 개랑 교환해요’ 했는데, 그건 답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물건의 가치가 화폐로 교환되는 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산다. 화폐의 교환가치는 사람들을 행복이라는 감정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돈을 주고 얻은 물건이 때때로 순간의 희열을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을 이미지화한 광고 효과이거나 소비라는 사멸적 쾌락이 주는 일시적 보상일 뿐 실제로 충만한 행복의 감정이 아니다. 화폐 교환의 원리에는 원칙적으로 감정 개입이 불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증여의 가치란 것도 있다. 증여 원리의 핵심은 행복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무의식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물론 중고거래의 교환에도 화폐 가치가 일부 작동하지만, 적어도 그 거래에는 사람들이 담는 다양한 감정의 가치가 있다. 강애심은 그렇게 발견하는 기쁨의 가치를 안다. 조금 먹거나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남편과의 저녁 술자리를 위해서 중요한 사회적 약속을 과감히 접는 마음은 강애심이 자신의 세계에서 중심을 지켜가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호 인터뷰에서 강애심을 추천했던 배우 남동진은 그녀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했다. 그녀의 연기에는 그런 마음이 먼저 담겨 있다.
“연극인들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예민한 사람이 많아요. 저도 작은 일에 자주 상처를 받았고, 상처받기도 싫어했죠. 그게 늘 고민이었어요. 행복하게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순간이 자주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 다스리는 일에 관심이 많고, 명상이나 108배는 못한지 꽤 됐지만 늘 염두에 두고 살죠. 어릴 때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읽으면서 흐르는 강물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한다는 내용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인간과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바라보며 흘러왔던
강애심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애써서 길을 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되어가는’ 것들을 바라보고 흐름대로 흘러가는 쪽에 가깝다. 1983년 데뷔를 한 후에 1985년 국립극단에서 1년 연수를 마치고, 이듬해 민중극단에 들어갔다. 극단이 많지 않았던 1980년에 활발하게 운영되던 민중극단은 정신없이 바빴다. 아침 일찍 청소하고 연습하면서 틈틈이 티켓 팔고 포스터까지 붙이면서 두 차례씩 공연을 했다. 온종일 극단에서 살았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낸 후에 서울시극단이 창단되면서 1997년부터는 시극단 단원이 되었다.
그런데 시극단 생활을 하는 4년 동안 어쩐지 만족감은 점점 떨어지는 듯했다. 달콤한 월급을 포기하면서 욕망을 좇을 만큼 용감하지는 못했다. 마침 외부 단체에서 뮤지컬 <넌센스>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외부작품 출연 금지라는 극단의 원칙이 강경했다. <넌센스>에 출연하기로 하면서 시극단은 자연스럽게 정리를 했다. 하지만 정작 <넌센스>가 끝난 이후에는 무대에 다시 설 방법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을 만큼 오기도 배짱도 없었다. 강애심은 빵을 굽기로 했다.
“집에 오븐이 있었어요. 그래서 빵을 구웠죠. 그랬는데 밀가루로 반죽을 하는 감촉도, 성형하는 과정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좋아하는 일로 일자리를 찾다가 크라운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렇게 1년 동안 빵을 굽다가 다시 <넌센스>에서 연락을 받았죠.”
늘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서 배우에게는 작품의 취사 선택이란 게 어렵다. 그래도 굳이 작품 선정의 기준이 있다면, 강애심에게는 ‘신박함’이다. 강애심의 ‘신박함’이란 배우가 만들 여지가 많은 빈틈이 많은 작품을 말한다. 그것은 동시에 관객이 채울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강애심은 ‘관계’를 고민한다.
“민중극단에서 <오드커플>이라는 작품을 할 때였어요. 당시에 제가 연기하면 관객들이 많이 웃고 재밌어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연출이 ‘관객이 웃는다고 속지 마’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공연 중에 세 번쯤 같은 말을 들으니까 생각하게 됐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오버했구나. 드러내려고만 했구나’를 안거죠.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어요. 관객과 배우 사이와 관계를 생각하게 된 일이에요.”
한때, 강애심은 자신의 직관이 누구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남다른 능력을 자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맞지 않는 상대와 상황이 생기면 속앓이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알았다. 함께 가는 길을 찾을 때, 강애심은 자신의 시선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게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친구가 노란색으로 연기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내 생각으로는 분홍색이 좋을 것 같단 말이죠. 하지만 노란색이라고 해서 틀린 건 아니잖아요. 정답은 없는 거니까. 그때는 내가 초록색으로 받으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명리학을 공부했어요. 아이 학교에서 하는 어머니 평생교육이었어요. 그때 10년쯤 같이 공부했던 엄마들이 지금까지도 1년에 두 번은 만나요. 제 아이가 이제 스물여섯 살이니까, 그 인연이 꽤 오래됐죠. 명리학은 인간학이잖아요. 그 공부가 제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명리학은 단순한 사람의 사주풀이가 아니다. 세상과 연결된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나를 이해하는 일이니, 자신을 아는 만큼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공부이기도 하다. 그 재미에 푹 빠져서 분장실에서 배우들 사주를 신나게 봐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절대 다른 사람의 사주를 안 본다.
”분장실에서 정신 팔려있다가 씬에 안 나갔거든요. 후배가 ‘선배님!’ 하는 소리에, 제가 아마 우사이 볼트보다 더 빨랐을걸요? 대사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제가 침대에 없는데 불이 켜졌다는 거죠. 딸은 괜히 빈 침대만 매만지고 있고, 남편은 쩔쩔매고, 의사는 안절부절하고. 근데 관객은 아무도 몰랐어요. 수술하고 온 것처럼 진행했거든요. 정약용 선생이 50세 때 명리학을 공부했는데, 남은 한 번도 안 보셨대요. 자기 공부로 누굴 봐주냐는 거죠. 저는 그날 그 사건 뒤로 절대 남은 안 봐요.”
나로부터의 출발
강애심은 세월호의 <쪽빛이야기>, 난민 문제를 다룬 <생각은 자유다>, 국가에 대한 토론연극 <2017 애국가>, 위안부 이야기인 <빨간시>처럼 유난히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한 작품에 자주 출연했다. 밝고 활달한 성격까지 더해서 사람들은 그녀를 능동적인 사회참여형 연극인으로 보는 경우가 흔했다. 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러닝메이트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여러 번 받았고, 최근에는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극인 연대의 수장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강애심에게는 번번이 거절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 오히려 폐쇄적인 사람에 가까워요. 그래서 예전에는 극단에서 쫓겨날 뻔도 했죠. 시극단 그만두고도 ‘여기, 강애심이 있어요’를 못해서 빵만 구웠잖아요. 가방에 겨우 노란 리본 하나 달고 있는 것, 연극할 때만 양심상 작품 관련 집회에 몇 번 참여하는 정도를 최소한의 면죄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진보좌파 경향이 분명하지만, 자본주의가 괴물처럼 변하는 것을 우려하는 평범한 관심인 거죠. 제가 강의를 못 해요. 예전에 몇 군데 나갔는데 1년을 다 못 채웠어요. 한 가지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올인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다시는 안 해요. 아마 성향의 문제겠죠. 나는 딱 배우 정도의 그릇이에요. 연극 외에는 크게 관심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아요.”
때때로 완장의 달콤한 유혹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발목 잡는 족쇄란 사실을 강애심은 이미 4년간의 시극단 월급으로 톡톡히 배웠다. 배우 정도의 그릇, 그게 강애심의 정확한 자기 이해의 표현이다.
연기에는 배우의 생각과 삶의 결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연기 중에서 노인의 역할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200세나 되는 거북이를 연기한 <다윈의 거북이>로 2009년에는 김동훈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을 받았고, 2014년에 다시 한번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을 안겨준 위안부 할머니 역의 <빨간시>는 강애심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지금 소속된 극단 고래의 연출가 이해성의 작품이며 의미가 남달라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다.
“민중극단 <신데렐라>의 요술할머니가 제 첫 할머니 역할이었어요. 캐릭터가 분명해서 재밌게 했지만, 마음으로는 ‘나는 20대인데 왜 할머니야’, 그런 생각이 있었죠. <연상의 여자>에서 위트있는 할머니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흉내였어요. 그런데 <다윈의 거북이>를 하면서는 달라졌어요. 200년 묵은 거북이여서 꼭 할머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캐릭터를 잡기도 대단히 어려웠죠. 그때, 연기는 ‘나로부터의 출발’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꼭 한번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빨간시>는 여전히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득 안고 만나는 인물이에요. 정신적으로 영향을 많이 준 작품이죠. 그런데 말예요, 나도 여자예요. 할머니 역보다는 예쁘고 젊은 역할이 나는 당연히 더 좋아요(웃음).”
배우 강애심을 처음 보는 사람은 있어도 무대에서나 TV에서나 한번 본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은 드물다. 최근에는 연극, 드라마, 영화를 합쳐 1년간 출연한 작품이 평균 10여 편이 될 정도로 활동도 왕성하다. 무대에서 긴장과 텐션 사이에 풀어지고 조여지는 그녀의 독특한 호흡은 객석까지 정확하게 전달된다. 리듬감 있는 연기와 대사는 관객의 마음을 쉽게 움직인다. 그녀에게 영향을 준 배우들은 소리에 능한 창극 배우들이었다.
“국립극장에서 연수를 받던 때니까 20대에 안숙선 선생님을 본거죠. 영혼을 흔드는 소리란 걸 처음 알았어요. 춤이면 춤, 소리면 소리, 악기까지 능수능란하셨어요. 배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거죠. 김성녀 선생님은 <벽 속의 요정>을 볼 때였어요. 힘들이지 않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톡 쏘는, 정말 유연하고 깃털처럼 가벼운 연기였어요. 나는 온몸에 힘을 꽉 주고 그렇게 힘들게 하는데 어떻게 저런 연기가 가능할까 보는 내내 놀라웠죠.”
쫓아 걷다 보면 결국 닿게 마련이다. 강애심의 연기가 꼭 그렇다. 호흡을 깊이 가라앉히고 넓은 시야로 강도를 조절하면서 그녀는 사방에서 이크에크 들고난다. 자그마한 체구에 독특한 목소리와 인상적인 마스크를 가진 그녀는 오랫동안 경원해왔던 ‘그녀의’ 배우들처럼 유연한 몸짓으로 희비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단,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톡 쏘고는 돌연 무심한 듯 돌아서는 것, 그것 하나가 강애심과 그들의 차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궁극의 맛>의 개막일은 두 번이나 연기되었다. 6월 2일 첫 공연이 결정되면서 강애심은 벌써 한 달 넘게 연습 중이었다. 일본 만화 원작에서 감옥 속 음식이야기라는 모티브를 빌려와서 새롭게 쓴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의 3편의 푸드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신유청이 연출하고 3명의 작가가 공동각색했다. 코로나를 함께 견딘다는 의미에서 최근 푸드 공연은 모두 전석 무료로 결정되었으며, <궁극의 맛>은 20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다음 릴레이는 남미정 배우에게 넘기고 싶어요.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하는 좋은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유연한 배우죠.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처음에는 텐션이 강한 편이에요. 그런데 미정씨는 처음부터 관계에도 유연함이 있더라고요.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할 때 만났는데, 제가 미정씨에게 배운 게 많아요. 풍부하다고 할까요? 재능도 많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예요. 어떻게 지내는지 저도 궁금하고 보고싶네요.”
*다음 릴레이 배우는 남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