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라(연극평론가)
<와이바이>는 서울 근교의 농촌 마을에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집과 노동 그리고 소통과 공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영문 제목으로 표기된 ‘Why, bye’와 그들이 쉽사리 공유할 수 없었던 무선 인터넷 Wi-Fi를 중의적으로 의미하는 이 공연명은 안전과 안정을 담보하는 집을 떠나온 이방인으로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와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타인의 배척과 배제 속에서의 외로움 그리고 자연스럽게 간절해지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Wi-Fi를 공유하기 위해 그들은 매일 병아리 농장 사장부부인 용일과 은희의 정자 마루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든다.
마치 Wi-Fi Zone을 상징하는 듯한 원형의 하얀 선은 인터넷 공유가 가능한 내부자와 외부자를 가르는 경계로 기능한다. 자신의 젊은 시절 고생을 곱씹으며 그들의 공유를 도둑놈 심보로 여기는 남편 용일은 외부자인 칸, 이리띤 그리고 마리아에게 이용료라며 불합리한 노동과 복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경계의 안팎을 열어주고 모아주는 구심력의 위치에는 아내인 은희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백수로 귀향하여 남편의 구박을 받는 딸 베이비에게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무도회장에 가기 위한 남편의 거짓말까지도 눈감아주며 이해해주는 그녀의 관용과 배려는 내부자인 가족을 넘어 매 끼니를 얻어먹으려는 뻔뻔한 최씨와 같은 외부자에게도 일관된다. 권위적인 남편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경계선에서 머뭇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식사와 인터넷을 공유해주는 은희는 특히 남편에게 순종하던 자신의 모습과 닮은 마리아를 딸처럼 챙겨준다. 공연 내내 성자와 같이 희생하는 은희의 모성이 항상 모든 걸 품어줘야 하는 어머니의 강요된 정체성 같아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늘 그렇듯 화해와 공존의 결말을 위해서는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돼지 축사 옆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는 칸은 한국 여자와 결혼해 국적을 얻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춤을 연습하고 콜라텍에 다닌다. 몽골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이리띤은 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엄마와 가족들을 위한 큰 집을 짓기 위해 최씨의 복숭아밭에서 일한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로서 일하는 그들은 서로의 필요와 자발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늘 을의 자리에 세워진다. 부조리한 고용 환경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는 당연하고, 핸드폰 판매점이나 푸드 트럭에서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 심지어 백수인 베이비는 무능력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순진한 그들을 멸시한다.
엄마 은희의 선한 영향과 마리아에 대한 연민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가 점점 변하게 된 베이비는 그들이 받는 대우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어리숙한 외국인이라는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과의 대화는 어눌한 어투로 연기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끼리의 대화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설정 아래 표준 한국말을 구사하는 장면연출이 흥미롭다.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의 부조리함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공감하는 개인의 도덕성에서 출발하여 잘못된 사회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사회윤리에 이르기까지 소수인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많은 갈등과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화로 인한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결혼 문제 등의 농촌문제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인권문제가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결부되고, 다양한 세대, 성별, 인종의 사람들이 Wi-Fi나 식탁과 같은, 삶의 공간들을 공유하는 상호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는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농장과 공사장을 오가며 혹독하게 일하던 마리아의 남편 나일이 쓰러진 양돈장 박사장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검거될 것을 알면서도 신고한 것을 계기로 용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무선 인터넷 Wi-Fi가 상용화된 지 사반세기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에서 온라인을 활용한 비대면 일상으로의 전환은 현대 인류의 삶과 문화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심축으로서 무선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멀리 떨어진 소중한 가족을 연결하고 나눔과 공유를 통해 공생을 실천하고자 하는 <와이바이>의 Wi-Fi Zone처럼 소통과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가상공간에서 피어오르는 온기의 주파수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