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미녀 윤정빈/ 오세곤

독살미녀 윤정빈

장소: 남산예술센터

관람일시: 2013년 3월 30일 오후 3시

작가: 이문원

연출: 이현정

공연단체: 극단 C 바이러스

좋은 연극은 무엇일까? 연극은 경제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경제 원칙이란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얻는 것이다. 보통 이 원칙은 만드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연극에는 불필요한 대사나 장면이 없어야 하고, 얼핏 용도가 없어 보이는 사건이나 물품조차도 고도의 계산에 의해 삽입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압축되고 엄선되다 보니 요즘의 대세인 산문 작품들까지 포함하여 오래 전부터 연극을 시(詩)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경제 원칙은 보는 이들로부터 출발한다. 불필요한 대사나 장면에 들이는 시간과 정신은 아깝다. 재미없는 작품에 쓴 돈은 더욱 아깝다. 똑같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면 가능한 한 재미와 감동이 커야 한다. 일단 그럼 기본 조건은 만족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투자를 해서라도 꼭 봐야 할 만큼 이득이 많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그것은 재미와 감동에 더해 깊은 생각까지 유도하는 작품이다.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격을 보증하는 요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작품은 그 자제로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독살미녀 윤정빈>은 재미있다. 현실의 거대한 힘에 무너져가는 인간을 보면서는 연민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재미와 감동을 갖추었으니 기본은 한 셈이다. 그런데 담긴 주제는 대단히 무겁다. 세상에 진실은 있는가? 어디 있는가? 있다고 해도 찾을 수 없다면 없는 거 아닌가? 이미지란 무엇인가? 허구의 이미지까지도 만들어내는 인간의 상상력은 과연 이로운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허구의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한다면 결국 그 허구가 현실인 셈 아닌가? 실로 선승들이 한 10년 동안 면벽을 하며 매달려도 못 풀 거대한 과제들이다. 범인(凡人)으로서는 그런 철학적 사유에 다가가는 것조차 겁날 일이다. 그러나 어떤 연극 작품들은 잠시나마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들을 모두 철학자나 수도자로 만들라면 그건 연극에 너무 커다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지도 않고 예술의 본분도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그런 고민에 슬쩍 잠기는 정도로 사치의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다. 재미와 감동에 더한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보너스이다. 그 보너스가 원래의 재미와 감동을 억누른다면 그건 자격 미달이다. 연극은 철학서나 종교 경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문원 작가와 이현정 연출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간단하고 순발력 있는 무대장치. 자유로운 시공간 배치. 사실과 비사실을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표현 방법. 적절한 주기의 웃음 유발. 적절한 주기의 연민 유발 등등. 단언컨대 가볍고 유쾌한 방식의 선택은 무거운 주제를 감당하는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SNS까지 가세한 매스컴의 엄청난 힘을 실감하는 요즘이므로 더욱 주제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고, 따라서 그 작품을 억누르는 그 무게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이 작품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독살미녀 윤정빈>은 연극의 주와 부가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예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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