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2/ 서울연극인대상 총평

<죽음의 집2> 서울연극인대상 총평

– 전문평가단, 시민평가단

공연일시: 2013/07/18 ~ 2013/07/28
공연장소: 선돌극장
원작: 윤영선
각색: 최치언
연출: 이성열
극단: 극단 백수광부

 

***전문평가단

“작고한 윤영선 원작을 최치언 작가가 어느 정도 재구성하였는지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죽음과 삶, 실재와 환상 사이를 모호하게 남겨둔 경계의 작품이다. 젊은 실어증 여자가 늦은 밤 폭풍우를 뚫고 시골 보건소로 찾아와 의사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사실 여자의 존재부터가 실재인지 환상인지 의심스럽다. 의사가 도착한 집은 실재하지 않는, 다시 찾을 수 없는 집이라는 점에서 환상의 경계에 있다. 그들이 도착한 집에 여자의 어머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집안 사정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모호하고 부조리하다. 이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 중 누가 산자이고 죽은 자인지 모호하다. 극 중 얼굴에 분칠을 하고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두 자매는 원작자 윤영선의 희곡에는 없던 인물로, 그들의 분장은 망자임에 틀림없지만 인물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망자인지가 모호하다. 그러나 점점 더 집안으로 깊이 침입해 들어오는 ‘바위’의 존재와 가난 때문에 쥐를 잡아 먹고 쥐가 되어 버린 아들의 존재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변신>을 보면서 주인공 그레고르에 대한 가족들의 소홀함에 아쉬움을 갖은 적이 있었다. 왜 의사를 부르지 않았을까, 여동생이 오빠를 위해 조금 더 헌신적이었더라면, 어머니가 아들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하는 그 아쉬움들이 이 작품에서는 적극적으로 실현된다. 동생은 의사를 데러오고, 오빠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내어 주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리면서까지 아들을 돌본다. 이러한 가족의 노력이 <변신>과 대비되고, 비록 환상 속에서나마 의사와 환자의 대면은 <시골의사>와 대비되어 흥미로웠다. 특히 <죽음의 집2>는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수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점에서 개인적 차원의 부조리를 넘어선 사회적 부조리를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실어증 여자가 허벅지의 상처를 내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안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말을 하게 되는 점, 쥐가 된 사나이가 무대에 등장하는 점, 집안으로 점점 더 깊이 침입하는 바위가 집안을 붕괴시키는 결말에 대해서는 원작 이상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 듯하나 그 의미와 효과에서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 박연숙

 

“한국형 고딕 서사의 가능성을 선보인 윤영선 선생의 탁월한 감각과 진지함이 돋보이는 희곡이다. 낯선 타자에 의해 유발되는 공포와 신비에 더하여 삶의 비의에 다가서려는 용기와 사회적 문제의식을 농축시키려는 시도가 알뜰하다. 초자연력에 대한 거부감을 우화적으로 완화시킨 면도 기억할 만하다. 원작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텍스트의 표층적 의미만 훑고 간 연출은 실망스럽다.”

– 백승무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하고 무채색의 암울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죽음과 집과 어떤 상징성을 계속 생각하며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서미영

 

“<죽음의 집>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어느 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이야기다. 죽은 자도 죽어가고 살아있는 자도 죽어가고 자연도 죽어간다. 모두 화병에 걸려 터지기 직전이다. 이야기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다.

인간은 죽은 자와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연결 지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이러한 맥락은, 역시, 이미 죽은 작가 윤영선과 소통하고 있는 다양한 스탭들의 모습으로 이중으로 중첩되고 있다. <죽음의 집2>는 극중 인물들이 극 안에 존재하는 죽은 ‘아버지’와 소통한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그리고 바위로 지칭되는 ‘자연’이 절대 풀리지 않는 실타래로 엉켜있다. 이 작품은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죽음의 집이 바로 네가 살고 있는 너의 집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엉뚱하고 스릴 넘치고 웃기는 우화이지만, 가난한 삶, 인간의 변질, 빈부의 격차와 소외 이런 모든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아지랑이처럼 안고 있다.

윤영선의 미발표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최치언이 연극적 미학이나 상징성 안에서 드라마터그와 매우 고민하였으며, 풀어낼 수 있는 최선을 갈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분장, 조명을 아우르는 연출력에서 명료하게 보인다.

이성열이 기 연출했던 <야매의사>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윤영선이 카프가의 <변신>을 배경으로 썼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가난한 청년이 배고파서 쥐를 먹다가 쥐로 변했고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우화적 명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한 밤 중, 천둥치고 비오는 날 의사가 이름 모를 여인에게 이끌려 진료를 나가게 되고 환자의 정체를 숨기면서 시간을 꽤 오래 끈다는 것이다. 작품이 허리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집중력을 살짝 잃을 뻔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와 숙련된 무대 운영으로 작은 공간을 욕심 부리지 않고 지혜롭게 이끌어 가면서 마지막에는 명확한 주제를 전달하고야 만다.

쥐꼬리를 단 환자의 등장(원작에서는 안 나온다고 함)과 딸을 연기했던 세 여배우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 쥐 살리는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면서 그 핵심을 유쾌한 납양특집으로 전달하는데 유감이 없다. 여기에 배테랑 배우 김학수와 정은경의 등장은 작품의 리얼한 무게감을 더 해준다.

이 시대 우리 삶의 부조리를 우화로 유치하지 않게 풀어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혜로운 접근으로 선택한 무게감 있는 깊은 의상과 폐가를 연상케 하는 무대 그리고 공간의 연극적 역할을 중실하게 하고 있는 조명의 운영은, 어리둥절한 관객들의 손을 낚아채서 사람 죽이는 귀신의 집으로 잘도 끌고 들어간다. 초연작으로는 우수한 소극장 연극이었다.

중간에 약간씩 마가 뜨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서 대본이 조금 더 중간 얼개가 탄탄했었더라면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죽은 윤영선 작가의 술에 취한 흥건한 얼굴이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묘한 울림이 있다.

윤영선의 미발표작 그대로를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 송경옥

 

***시민평가단

“극단 백수광부는 의사와 인연이 많다. 그 이전 공연은 카프카의 <시골의사>였고, 이번 공연은 의사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고 윤영선 작가의 <죽음의 집2>이다. <시골의사>의 야메 의사가 사회의 부조리를 두고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뺏길 수 있다’라는 간접적인 의미를 줬다면, 이 작품은 다르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라는 직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의사이지만 치료할 수 없는 의사, 즉 사회의 병리현상, 부조리 등을 파악하고 알고 있지만 치료하려고 하지 않는 의사. 그것이 현대 사회의 이기주의이자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연극을 관람했다면 지금 당장 시청으로 뛰어가 촛불시위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깊은 뜻이 숨어있지만, 그걸 파악하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호러 연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방면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었다.”

– 박병교

 

“<죽음의 집2> (별점:★★★☆☆) 작년에 보았던 “2012 윤영선페스티벌” 에서 낭독공연으로 올려졌던 작품이다. 비가 쏟아지는 늦은 밤에 찾아온 벙어리 여자를 따라 왕진을 가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깊은 산골마을에 위치한 집에서 환자는 만날 수 없고 이상한 얘기만 듣게 된다. 현실인지 꿈속인지 잘 모르는 상황들이 의사에게 공포감을 준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파티”처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서 캐릭터들의 독특한 이미지가 매력적이었다. 모든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볼만했다.”

– 이동길

 

“전체적으로 너무 조용했다.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승만 있었다. 그래서 흐름이 일정했기 때문에 재미는 없었다. 공연을 보면서 졸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극 자체가 너무 어렵긴 했지만 이번 공연에는 관객에게 무엇을 알려주려 했는지 어떤 감동을, 어떤 재미를 주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작품의 흐름만 비춘 듯싶다.

극중에 아들이 쥐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첫 아들이 등장했을 때 너무 개그같았다. 웃으면 안 되는 부분이지만 웃음이 났다.

갈등이 고조될 부분에서 정말 절정으로 치솟을 것 같은데 오르지 못하니 아쉽고, 이번 백수광부의 공연은 아쉬움이 많았던 공연이었다.”

-임자혜

 

“집안에 굴러 박힌 돌과 생쥐로 변해버린 아들의 이미지가 한동안 잊히지 않는 작품이었다.  공연의 이해도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리는 작품인 것 같고, 대중성보다는 극을 본 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진지함을 가진 작품이었다.

음산한 분위기가 더 연출되어 여름을 오싹하게 만들어줘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 정희영

 

“죽음의 집2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조명과 음향, 배경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데 크게 한 몫 한다. 특히 ‘비 내리는 밤’이라는 설정은 무슨일이 벌어질 것같은 예감을 느끼게 한다.

집으로 굴러들어온 돌, 쥐로 변해버린 아들의 설정은 풍자적이면서도 사회 비판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족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목소리를 잃은 딸은 이런 사회적 태도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여겨진다.

작품은 관객들에게 이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다.”

– 황미람

 

“죽음과 삶, 그리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극에 뻔뻔하게 보이는 이기주의, 가족 중심주의… 악인도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 모순덩어리 같은 그들의 삶을 보고, 내 삶은 어떤지도 자꾸만 살펴보게 되었다. 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무뚝뚝하게 버티는 큰 바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인간 누구나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가 아닌지… 그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고 인간들은 자꾸만 악랄해지는 건 아닌지… 내 삶에도 존재하는 무거운 바위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의사에게 책임을 강요하는 서민들과 그 책임을 떠안기 싫은 의사의 모습을 보며 ‘책임’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과 괴리감도 생각해보았다. 그저 즐기기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깨우침이 있는 공연이었다.”

– 황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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