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연극인 복지를 향하여 / 오세곤

진정한 연극인 복지를 향하여

송관우 선생님이 편찮으시답니다. 연극인복지재단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치료에 금방 소진되어 버렸고, 그래 예술인복지재단에 신청했지만 중복지원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아마 사회 전반에 걸쳐 요청은 많고 재원은 적다 보니 그런 중복금지의 원칙이 생겼나 봅니다. 거의 모든 지원기관들이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니 예술인복지재단만 그걸 거스를 수 없는 형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왠지 답답합니다. 마치 한 번 아픈 사람은 절대 또 아프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동일한 병이 아직 치료가 안 돼서 그러는 건데 중복지원이라 안 된다니 참으로 현실을 배려 안 하는 경직된 원칙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중에 예쁜 단어 하나가 조금이나마 우리를 흐뭇하게 합니다. 바로 서울연극협회가 벌인 Merry T-mas 모금 운동입니다. Theater의 첫 자를 크리스마스와 결합한 이 말은 연말 우리 연극인들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는 온도계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다들 어려운 사정이라 아주 많은 금액이 모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연극 동네 식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복지가 화두입니다. 복지란 말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위기에 대한 안전장치는 있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것마저도 시원치 않습니다. 물론 예술인 복지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므로 지금 그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태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지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유연성을 갖는 건 어쩌면 처음 단계부터 바탕에 깔아야 하는 일종의 철학일 수 있습니다.

유연성이란 달리 표현하면 “적당히” 또는 “알맞게”가 될 겁니다. “적당히”는 “대충”이란 뜻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딱 알맞게”가 맞습니다. 마치 한옥 주춧돌 위에 놓는 나무기둥이 돌 모양에 따라 다르지만 제각각 모두 정확한 것처럼 경우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한 원칙이야말로 특히 인간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도들은 이렇게 성숙한 자신감을 갖지 못 합니다. 당연히 유연성이 없죠. 제도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앞서 “Merry T-mas 모금”과 같은 일종의 자구책이라 하겠습니다. 자구책은 절실함의 산물입니다. 더욱이 이번 모금 운동은 동료의 어려움을 자기 문제로 생각할 때 비로소 가능한 자구책입니다. 자신의 범위를 연극 동네 전체로 확대할 줄 아는 지혜로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제 통과된 2014년 예산에 탁아사업(공연예술인 시간제 보육지원)으로 3억이 책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연극계에서 늘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실현이 안 되는 대표적인 게 바로 탁아 아닙니까? 탁아사업을 얘기하다 보면 되는 것보다는 안 되는 게 훨씬 많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다 보니 말 꺼낸 사람이 결국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경직된 제도의 벽을 못 넘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든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마침 서울연극협회에서 학부모 협동조합을 만들고 서로 아이들을 봐주는 품앗이 탁아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통과된 사업과 연결이 될 수도 있고 별도로 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그간의 경직된 틀을 넘어 중요한 문제 하나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술인 복지건 연극인 복지건 아직은 제도에만 기댈 수 없습니다. 제도가 해결해주길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개발하며 정책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구책이란 그것이 내 문제라 여길 때 가능합니다. 결국 연극인 복지는 우리가 모두 한 식구라는 연대감에서 출발합니다.

2014년 새해 벽두 내 옆의 동료가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들 새해 댁내 두루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2014년 1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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